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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름다운 프로

스턴트우먼 유미진 · 김미진

“우리가 진짜 길라임이에요”

글·이혜민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입력 2011.02.17 14:33:00

“우리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스턴트우먼으로 나온 길라임(하지원)의 이 말에 남몰래 눈물을 흘린 이들이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스턴트 연기자는 2백여 명.
그중 여성은 10명밖에 안 된다. 매일 구르고 깨지지만 그래도 현장에 서면 심장이 뛴다는 그들을 만났다.
스턴트우먼 유미진 · 김미진


#‘시크릿 가든’ 하지원 대역 유미진씨 “남을 빛내며 사는 일이 매력”

“드라마가 끝나서 너무 아쉬워요. 제가 스턴트우먼으로 처음 출연한 작품인 데다가 스턴트우먼이 주인공인 작품이었으니까요. 배우도 너무 좋았어요. 하지원씨는 대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액션을 잘하는데도 수시로 저희에게 ‘가르쳐달라’고 할 만큼 열정적이었죠. 초콜릿 하나를 먹을 때도 ‘미진아, 너는 대역이니까 하나 더 먹어’라면서 챙겨주고, 새해 첫 촬영이 있던 날 저를 꼭 끌어안고 ‘미진아, 해피 뉴 이어’라고 하는 마음씨 좋은 배우가 어디 그리 많겠어요(웃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스턴트우먼으로 열연한 하지원은 상당 부분 본인이 직접 연기했지만 그에게도 대역은 있었다. 길라임이 백화점에서 떨어질 때, 도둑을 잡기 위해 자전거를 탈 때, 유리창이 깨진 차에서 구를 때 그 연기를 빛나게 해준 이는 바로 유미진씨(22). 경기도 파주군 서울액션스쿨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드라마 종영을 아쉬워했다.
그가 스턴트우먼이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드라마 ‘다모’에서 하지원의 대역을 한 우리나라 스턴트우먼 1호 조주현씨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유 없이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기업 전자회사에 취직한 뒤로는 그 꿈을 접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릴 적부터 ‘돈은 적게 벌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던 일이 떠올랐다.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운동을 전공하러 대학에 진학해 태권도 사범 생활을 병행했다.
“운동을 하니까 역시 이 일이다 싶더라고요. 운동은 간접 경험이 아니고 직접 경험인데다가 자신이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어 그만큼 감동이 크거든요. 운동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즐거웠죠.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누구를 가르치기보다 배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 무렵 서울액션스쿨 14기 모집 공고를 봤다. 하지만 이미 오디션은 끝난 상태.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체육관 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도복을 챙겨 파주로 향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무작정 전남 순천에서 올라왔다고 하니 감독님이 얼마나 황당하셨겠어요. 다행히 감독님이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면 다음주 월요일부터 훈련에 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막상 그 말을 듣고보니 고민이 됐는데 그간 써온 일기를 읽어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했던가 생각해보니 금방 답이 나오더군요.”

운동하며 심장이 뛸 때 살아 있음을 느껴
총 50여 명의 기수생과 함께 하는 첫 수업 시간. 그중 여자는 4명.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수업은 빡빡하게 진행됐다. 예상과 달라 놀랐으나 ‘그만큼 가르쳐줄 내용이 많기 때문에 첫날부터 교육을 하나 보다’ 싶어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6개월 동안 열심히 살았다. 체육관 주변 약 5km 구간을 20분 만에 돌파하는 달리기를 하고 왕복 전력 질주, 쪼그려뛰기, 토끼뜀 등 1시간가량 기초 체력 훈련을 한 뒤 현대 액션, 사극 액션을 두루 배웠다. 수업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하지만 미리 몸을 풀고 있지 않으면 운동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침부터 와서 준비를 해야 했다. 훈련 강도가 세다보니 수료자는 10여명에 불과했고, 이 중 지금까지 스턴트우먼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유미진씨를 포함한 둘뿐이다.
이 과정을 거쳐 그가 처음 출연한 것이 ‘시크릿 가든’이었다. 그는 한두 장면의 좋은 그림을 얻기 위해 종일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했다. 와이어에 매달려 3~4층 높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칼을 들고 동료들과 반복해서 ‘합’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에 느끼지 못한 동지애를 느꼈다”고 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의리가 있는데, 여기는 더 위험한 일을 해서 그런지 서로에게 정이 많아요. 평소에는 무뚝뚝했던 분들도 현장에서는 부모님처럼 엄청 챙겨주시죠. 김민수 무술감독님은 제가 백화점에서 떨어지는 신을 찍을 때 ‘어려우면 안 해도 된다’면서 여러 번 물으셨어요. 그러면서 시범을 보이기 위해 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그냥 뛰어내리시더라고요. 온전히 저를 위해서요.”
위험한 촬영을 하면서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는 “운동하면서 심장이 팔딱팔딱 뛸 때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스턴트 연기를 할수록 스턴트우먼이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일은 내가 아니라 남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살면서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일단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 더 좋은 액션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그는 이 일을 앞으로 10년은 더 할 예정이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 충실할 때 가장 빛나는데 기회가 왔다고 냉큼 기회만 챙기면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길라임처럼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여자 선배이긴 하지만 남자 후배들도 ‘저 사람이라면 온전히 따라갈 만하다’고 느낄 수 있게요. 가능하다면 할리우드로 진출해서 더 멋진 스턴트우먼이 되고 싶죠. 무엇보다 길라임과 김주원이 멋진 사랑을 했듯이 저도 그러고 싶고요. 제 이상형이요? 자고로 몸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신의가 뭔지 알아야 해요(웃음).”

스턴트우먼 유미진 · 김미진

유미진씨는 스턴트 연기를 할 때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기계체조로 기본기 다진 5년차 스턴트우먼 김미진씨 “치명적 부상도 우리의 숙명”

스턴트우먼 유미진 · 김미진

어려서부터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 김미진씨는 스턴트 연기를 뒤늦게 시작해 아쉽다고 한다.



“저는 인터뷰하는 것 싫어요. 전 죽을 때까지 스턴트만 하고 싶어요.”
올해로 스턴트우먼 생활을 한 지 5년이 된 김미진씨(32). 인터뷰 섭외차 전화통화를 했지만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무술감독들에 따르면 그만큼 열정적인 스턴트우먼이 드물다고 했다. 설득을 거듭한 끝에 겨우 그를 만났다.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김미진씨는 스물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스턴트를 시작했다. ‘담 넘고 지붕 타는 걸 좋아하던 꼬마’는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기계체조 선수로 활동해왔다.
“어려서부터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어요. 경치도 좋고 시원하니까요. 그래서 체조를 시작했는데, 운동하는 건 좋았지만 훈련하면서 맞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저희 때만 해도 감독이나 선배들한테 매일같이 쇠파이프나 야구 방망이로 맞았거든요. 그러다 고2 때 양팔 인대가 나가서 재활치료를 받고 복귀한 적이 있는데, 또다시 구타가 시작되니까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하게 하자 급기야 자살을 시도했어요. 그동안 몸매 관리하느라 못 먹었던 것들을 잔뜩 먹고는 수면제 30알을 삼켰죠.”
죽을 운이 아니었는지 다행히 그는 깨어났고, 감독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만 출전하기로 합의를 봤다. 끝내 전국체전 2위를 차지한 그는 그 길로 체조선수 생활을 접었다. 당시 실업팀에 갈 수도 있었지만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연기 중에는 다쳐도 아픈 줄 몰라

스턴트우먼 유미진 · 김미진


졸업 후에는 오기가 발동했다. 집에 있는 동안 부모와 사사건건 부딪히자 무작정 부산을 떠나 지인이 사는 대전으로 향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찻길 근처에 월 7만원짜리 거처를 정하고 주전자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한겨울을 버텼다. 오락실, 고깃집을 전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 스물두 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체조를 하던 친구의 소개로 아크로바틱 공연을 4년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스턴트 감독의 눈에 띄었다.
“막상 해보니 기분이 좋았어요. 움직여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적성에 딱 맞더라고요. 남들이 무섭다고 하는 걸 내가 해내니까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떤 사람들은 책 읽을 때 기분이 좋다고 하잖아요. 그때 느끼는 감동을 저는 스턴트하면서 느끼는 거죠. 특히 저는 파트너와 무술 하는 액션보다 혼자 넘어지고 뛰어내리고 차에 부딪히는 스턴트가 맘에 들어요. 체조하면서 늘 해오던 거라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동작이 기록에 남는 것도 좋았죠. ‘욕망의 불꽃’에서 계단을 구르는 신이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친구들은 저라는 걸 금방 알더라고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직업적 특성이 서운할 수도 있을 터. 그럼에도 그는 이 일 자체가 좋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드라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굴을 감추려는 성향이 생겼을 정도다. 스턴트를 하는 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부상이다. 하지만 그것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면 할수록 경쟁력이 높아지다 보니 “스턴트를 하다가 다치는 건 숙명”이라고 말한다.
“드라마에서 하지원 언니가 ‘우리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대사를 들으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도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 찍으면서 그런 적이 있거든요. 핸드스프링을 하다가 발목이 돌아갔는데도 당시 감독님들께는 ‘30초만 버티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촬영을 계속했어요. 대역으로서 배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왔는데 도리어 저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면 안 되니까 아프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이런 긴장감 때문인지 촬영 중에는 아픔을 덜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촬영이 끝나면 ‘죽음’이지만요. 스턴트업계에서는 자기관리만 잘하면 많게는 1년에 1억원도 벌 수 있어요. 저는 1년에 7천만원 정도 벌어요. 보통, 영화는 하루에 30만원씩 받고 드라마는 시간당 10만원씩 받으니까요. 하지만 부상으로 쉬게 되면 돈 떨어지는 건 금방이에요.”
김미진씨는 무술팀 사람들과의 끈끈한 정 때문에 이런 힘겨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고생하며 돈 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데다 서로가 아니면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더욱 가깝게 느낀다고 한다.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그가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도 여러 작품을 하면서 만난 선배들이 자신들의 비법을 전수해준 덕분이다.
그는 “끝까지 스턴트우먼으로 살고 싶다”면서 직업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냈다. 다만 “기계체조를 하느라 몸을 혹사해서 오래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나를 써주는 곳이 있다면 계속 스턴트우먼으로 살고 싶어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이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아마도 헤어질 거예요. 사랑은 다시 찾아오지만 이만큼 좋아하는 일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어차피 한 번 살다가 죽는 게 인생이잖아요. 이렇게 즐거운 일을 늦게 시작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하고 싶어요. 그럼 스턴트를 오래 할 수 있을 테니까요(웃음).”

여성동아 2011년 2월 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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