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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한은희 제안! 길 따라 느리게 여행하기

울산으로 떠나는 타임머신 여행

백악기 공룡, 선사시대 고래잡이, 신라 왕족의 사랑…

글&사진 한은희 일러스트 조은명

2010. 05. 06

울산으로 떠나는 타임머신 여행

태화강변 십리대숲.



둘러보면 온통 아파트뿐이지만 실상 대한민국은 산이 많은 나라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를 봐도 눈이 산에 가 닿는다. 우리 조상은 산에 기대 살았다. 나무로 무기를 만들어 가족을 지키고, 산짐승을 잡고 산나물을 캐서 허기를 달랬다. 겨울이면 나뭇가지를 때서 추위를 피했다. 그런가 하면 산에 널린 돌을 다듬어 생활도구로 쓰고, 납작한 돌을 모아다 구들장을 만들었다. 돌에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삶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산에서 종종 만나는 마애불상이나 금석문이 그 증거다. 우리 조상은 대체 언제부터 그런 흔적을 남겼을까? 그 답을 찾아 울산으로 휘익~ 떠나보자.

사랑을 기록한 바위그림 천전리 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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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석기시대에 점으로 새겨 넣은 동물 문양과 청동기시대에 선으로 새겨 넣은 기하학적 문양 2 신라시대에 새겨 넣은 글자가 선명한 천전리 각석.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는 대곡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대곡천은 울산 서쪽에서 발원해 동해바다로 흘러가는 태화강의 지류다. 대곡천 중류 기슭에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이 있는데 가로 10m, 세로 3m 크기의 비스듬히 기운 바위 단면에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있다. 위아래 2단으로 나뉘어 신석기시대에 점으로 새겨 넣은 동물 문양과 청동기시대에 선으로 새겨 넣은 기하학적 문양, 신라시대에 새겨 넣은 글자 등이 표현되어 있다. 청동기시대의 굵은 선 아래로 배경처럼 흐리게 새겨져 있는 것이 신석기시대의 점 그림이다. 희미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적으로 묘사된 동물 문양을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문양은 그들만의 약속을 부호화한 듯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각석의 하단부에는 신라시대에 새겨 넣은 글자와 가는 선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울산 사람들은 천전리 각석이 있는 대곡천을 ‘사랑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그 사연은 이렇다. 천전리 각석이 처음 발견된 건 197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당시 원효대사가 머무르던 반고사지를 찾기 위해 울주지역 불교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마을주민의 안내로 암각화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크리스마스때도 천전리 각석에서 계곡 하류 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서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다.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견된 천전리 각석에는 동물 그림이 대부분 암수 한 쌍으로 새겨져 있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랑의 조각인 것이다.
각석 아랫부분에도 사랑과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신라왕족과 화랑들이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525년에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갈문왕이 사랑하는 여동생과 함께 왔다고 기록돼 있다. 입종갈문왕이 죽은 뒤인 539년에는 지소부인이 어머니 법흥태왕비와 아들(어린 진흥왕)을 동반하고 이곳에 와서 입종갈문왕을 그리워했다는 내용도 있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더불어 혈통 보전을 위해 근친결혼을 선호하던 왕족의 풍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천전리 각석 건너편에는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다. 울산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된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은 백악기 공룡들의 발자국이다. 대형 초식공룡과 중형 초식공룡의 발자국 2백여 개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발자국 크기나 모양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곳이 공룡들이 한가롭게 노닐던 서식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선사시대판 고래도감 반구대암각화
천전리 각석에서 ‘선사시대 길’이라 이름 붙은 산길을 따라 30여 분 걸으면 울산암각화전시관(052-229-6678 http://bangudae. ulsan.go.kr)에 닿는다. 고래 모양으로 지은 건물 안쪽에는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암각화의 실물 모형과 관련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눈여겨 살펴볼 것은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 실물 모형이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반구대암각화는 동국대 조사단에 발견되기 6년 전에 건설된 사연댐 때문에 1년 중 8개월 이상 물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댐 수위가 낮아져 반구대가 물 밖으로 드러나더라도 계곡물 때문에 가까이서 보기 어렵다. 박물관 내 모형으로 살펴본 반구대암각화의 특징은 육지동물과 바닷물고기, 사냥하는 사람 등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그림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하늘을 향해 헤엄쳐가는 20마리 넘는 고래들이다. 가장 사납다고 알려진 범고래는 물론 귀신고래, 긴수염고래, 밍크고래, 향유고래 등이 그려져 있다. 새끼를 배고, 또 낳아서는 곁에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습성도 묘사되어 있다. 마치 선사시대의 고래도감을 펼쳐놓은 듯한 이 그림에서 오늘날 우리나라 인근에서 발견되는 고래 10여 종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재미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고래를 어떻게 잡았는지도 보여준다. 고래를 둘러싼 작은 배들과 작살이 꽂힌 고래, 고래를 타고 앉아 분해하는 사람 등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포경의 전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고래를 부위별로 해체하는 그림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고래를 12개 부위로 해체해놓았는데, 현대인도 고래를 잡으면 12부위로 나눈다.
실제 반구대암각화는 전시관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 우회전한 다음 20분쯤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가는 길에 정몽주가 귀양 와서 머물렀다는 반구서원유허비를 지난다. 유허비 건너편에 중창한 반구서원 앞에 서서 대곡천과 어우러진 산을 바라보면 넙죽 엎드린 거북 모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이 반구대(盤龜臺)로 불리게 한 산세다. 습지 위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 반구대암각화 방향으로 길이 이어진다. 울산암각화전시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매주 월요일과 설날, 추석엔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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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구대암각화로 가는 길. 2 울산암각화 전시관에 전시된 모형. 육지동물과 바닷물고기, 사냥하는 사람들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3 울산암각화전시관 내부. 4 고래생태체험관 해저터널. 3마리의 돌고래가 살고 있다.



고래 직접 만나보는 장생포고래박물관 · 고래생태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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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생태체험관 외관.



86년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울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한 고래잡이 도시였다. 고래잡이가 금지된 지금도 울산에는 고래고기를 파는 식당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고래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국계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지역으로 알려진 장생포 앞바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는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돼 있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 외에 한국계 귀신고래가 있음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미국 동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앤드루 박사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실제 모델인 그가 1912년 울산을 방문해 1년간 귀신고래를 연구하고 돌아갔다.
앤드루 박사의 귀신고래 관련 논문을 장생포고래박물관(052-256-6301 www.whalemuseum.go.kr)에서 볼 수 있다. 울산 남구 매암동의 장생포고래박물관에서는 귀신고래의 생태환경과 두개골 모형, 울음소리 등을 확인해볼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수염고래류의 일종인 브라이드고래와 범고래의 골격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잡힌 고래를 2년간 모래 속에 묻어두었다가 살이 분해되면 꺼내서 다시 4개월간 40~45℃의 물에 담가 기름기를 제거한 다음 뼈를 연결해 만든 것이다. 포경 관련 유물을 전시해놓은 포경역사관과 고래해체장도 돌아볼 만하다.
고래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고래체험관이 있다. 3마리의 돌고래가 수족관에서 살고 있다. 체험관 1층 해저터널을 통해 돌고래의 움직임을 관찰한 후 2층으로 올라가면 다시 수족관 위쪽에서 고래의 움직임을 내려다볼 수 있다. 고래박물관과 고래체험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과 설날, 추석엔 휴관한다. 고래박물관 관람료는 어른 2천5백원, 청소년 2천원, 어린이 1천5백원. 고래체험관 관람료는 어른 6천원, 청소년 4천5백원, 어린이 3천5백원이다.

신석기 토기의 흔적 외고산옹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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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러운 옹기 인형이 눈길을 끄는 외고산옹기마을.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어온 흔적이 울산 곳곳에 남아 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와 울주군 온산읍 우봉리의 덧무늬토기,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의 빗살무늬토기 등이다. 선사시대의 토기가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옹기다. 옹기는 잿물유약을 바르지 않은 질그릇과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으로 나뉘는데, 선사시대 토기는 질그릇과 많이 닮았다.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외고산옹기마을(052-238-9889 http://onggi.invil.org)은 6·25전쟁 때 부산으로 모여든 피란민들의 옹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형성됐다. 경북 영덕에서 옹기를 굽던 허덕만씨가 부산과 가깝고 옹기 만들기에 적당한 흙이 있는 이 마을에 터를 잡은 게 그 시초다. 허씨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칸 가마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옹기를 구워내기 시작했다. 이후 이 마을에서 만들어진 옹기는 서울은 물론 외국으로까지 팔려나갔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옹기가마를 만날 수 있다. 1백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를 빚고 있다. 천천히 마을을 산책하며 옹기 장인의 작업과정을 지켜보거나 옹기체험관에 들러 옹기 만들기에 도전해보자. 마을 산책로를 밝히는 가로등조차 옹기로 만들어진 이색적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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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로 나와 반구안길 삼거리에서 우회전. 3km 정도 들어가면 울산암각화전시관에 닿는다. 전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와 다리 건너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면 천전리 각석과 공룡발자국화석을 만날 수 있다. 되돌아나와 전시관과 반구대암각화를 관람한다. 울산시가지로 진입해 장생포고래박물관~서생포왜성~진하해수욕장~외고산옹기마을 순으로 돌아보고 울산고속도로 온양IC를 이용해 돌아오면 된다.

☞ 여행정보
▼ 주변볼거리
고래축제 7월1일부터 나흘간 ‘춤추는 고래도시, 풍요의 한마당’이라는 주제로 제16회 울산고래축제(www.whalekorea.com)가 태화강변과 장생포 일원에서 열린다. 7월1일 반구대암각화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고천제(告天祭)를 시작으로 마당극 ‘고래고래’와 장생포 풍경제(豊鯨祭) 등이 펼쳐진다. 태화강 상설행사장에 마련되는 리얼 선사체험 ‘반구대암각화 속으로’는 움집을 지어보고, 뗏목을 만들어 태화강에 띄워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태화강생태공원 태화지구(십리대숲) 울산 태화강변(http://taehwagang.ulsan.go.kr)은 성공적인 하천생태 복원장소로 손꼽힌다. 공업용수가 흘러가던 썩은 강물이 수영대회를 열어도 좋을 만큼 맑은 물로 정화된 것. 변한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강변 양안이 모두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의 폭 20~30m, 길이 4km의 대숲이 특히 멋있다. 대숲의 유래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태화동 내오산 끝자락에서 자라던 대숲을 이곳에 옮겨 심은 것이다.
서생포 왜성 울산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성내마을 뒷산에 자리한 서생포 왜성(울산문화재자료 제8호)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 서린 공간이다. 1593년 선조 26년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이 서생포와 부산의 다대포로 동시에 쳐들어와 이곳에 성을 만들었다. 둘레 4.2km의 성을 쌓는 데 필요한 돌은 모두 조선인이 날랐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식 건축방법으로 지어 16세기 말 일본의 성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 이곳에 올라가면 진하해수욕장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은 날이면 멀리 부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 먹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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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청 인근에 4대째 이어오고 있는 함양집(052-275-6947)이 있다. 싱싱한 육회를 얹은 비빔밥과 메밀묵을 곱게 썰어 비빔장을 얹어내는 묵채가 일품이다. 장생포 고래박물관 인근의 고래고기원조할매집(052-261-7313)은 60년째 고래고기를 취급하고 있다. 언양읍 암각화 지대로 들어서는 언양읍 직동리에서 싱싱한 언양 소고기를 맛볼 수 있다. 정육점(언양축산 052-264-2256)에서 고기를 구입한 다음 인근 식당에 가면 구워 먹을 수 있다. 태화강변의 터미널식당(052-273-4695)은 아침식사가 가능하다.
▼ 잠잘 곳
태화강변의 태화관광호텔(052-273-3301)이나 울산 남구 삼산동의 S모텔(052-271-7080, 굿스테이),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의 아샘블관광호텔(052-238-0031 www.assemblehotel.co.kr)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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