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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대작가의 새로운 도전

두 손자 위해 위인전 쓰는 작가 조정래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9.22 12:41:00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담은 대하소설 3부작을 통해 우리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 조정래가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 집필을 시작해 화제다. 손자들에게 좋은 위인전을 선물하고 싶어 직접 쓰기로 결심했다는 그를 만났다.
두 손자 위해 위인전 쓰는 작가 조정래

대문이 열리자 ‘까르르’ 투명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뒤를 이어 ‘어어, 재면아, 다친다. 허허~’ 넉넉하게 웃음짓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따라왔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64)의 자택 풍경이다.
조씨는 ‘태백산맥’ 외에도 ‘아리랑’ ‘한강’ 등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하소설 3부작을 집필한 우리 문단의 거목. 해방부터 6월 항쟁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질곡을 생생히 담아낸 이 책들은 그동안 1천3백만 부나 팔리며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난 8월 중순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난 조씨는 한국 문단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 같았다. 휴일을 맞아 놀러온 두 손자 재면(7)·재서(4)에게 둘러싸여 웃고 얘기하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제 삶의 엔도르핀이고, 희망의 샘이고, 보람이고, 기쁨이에요(웃음).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나고 행복해지죠.”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손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금세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질 만큼 행복해 보이던 그는 요즘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그들의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아 ‘할아버지표 위인전’을 집필하고 있는 것. 지난 2002년 ‘한강’을 탈고한 뒤부터 위인전 쓸 계획을 세우고 큰 손자가 읽기에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왔다는 조씨는 “요즘 한창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재면이가 ‘할아버지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묻더라. 지금이 딱 좋은 때인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됐어요. 아들이 어린 시절 읽는 책을 보며 문장이나 내용 면에서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그동안은 대하소설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았죠. ‘한강’을 끝낸 뒤 ‘이제 대하소설은 그만 쓰고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자’고 생각했어요.”

“할아버지가 정성들여 쓴 문장 읽으며 우리 손자들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처음엔 가볍게 시작하려 했지만 ‘손자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니 욕심이 점점 많아졌다고 한다. 한두 권 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올바른 정신을 갖게 할 수 있도록” 책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졌다고. 그래서 조씨는 우리나라 위인전 15권, 세계 위인전 15권, 전래동화 10권, 고전문학 10권 등 모두 50권의 어린이·청소년용 도서 시리즈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 위인전을 필두로 집필을 시작한 그는 올여름까지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도마 안중근, 그리고 전 포철 사장인 경제인 박태준까지 모두 5명의 위인전을 탈고했다. 한 인물당 원고지 4백 장 분량인 이 책들은 오는 10월 말 출간될 예정이라고.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이제 체력이 떨어져 대하소설은 더 이상 못 쓰겠다. 위인전은 좀 낫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전혀 아닙니다. 똑같이 힘들거든요. 역사적 사실을 틀림없이 하기 위해 한 인물마다 대여섯 가지 자료를 놓고 비교 대조하며 꼼꼼하게 공부하는 과정만 보름 이상 걸려요. 원고지 4백 장을 쓰는 데도 꼬박 한 달이 걸리고요. 이것 역시 ‘글 감옥’이고 ‘노동’입디다(웃음).”

두 손자 위해 위인전 쓰는 작가 조정래

두 손자 재면·재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작가 조정래씨. 두 손자는 조씨에게 “삶의 엔도르핀이고 희망의 샘이고 보람이며 기쁨이다”.


조씨는 대하소설을 쓰면서 “집필하는 동안 나는 글 감옥에 갇힌다”고 말하곤 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혹독한 노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작업 스타일이 “아침에 일어나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을 하고 밥 먹은 뒤 오전 작업, 1시간쯤 낮잠 자고 점심 식사와 체조를 한 뒤 오후 작업, 저녁 먹고 운동한 뒤 잠깐 눈 붙이고 야간 작업”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게다가 조씨는 모든 작품을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쓴다. 위인전을 쓰는 지금도 이런 스타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조씨는 “책을 쓰면서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드니 점점 더 노력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모국어로 문학을 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에 대해 절대적인 사랑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더구나 저는 글을 쓰는 동안 늘 험난하고 처절한 우리 역사에 천착해왔잖아요. 그렇게 살아온 작가로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고 후대가 자존심으로 삼아야 하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쓰는 건 피할 수 없는 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독자가 두 손자와 그들의 친구일 거라는 사실도 작가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정성들여 쓴 문장을 읽으며 그 아이들이 바른 정신을 갖게 되기를, 그리고 왜 할아버지가 이 인물을 존경했을까 생각하며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밝혀가기를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마다 간절히 기원한다고.
“그렇다보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돼요. 특히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어 더 공을 들이고 있죠. 위인전이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 글이 되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대상 인물 선정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삶에 기여한 많은 인물 가운데 아이들이 꼭 닮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를 고르고 있는데, 이미 70~80% 정도는 정해졌다고. 손자들에게 간디,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 슈바이처, 퀴리 부인 등에 대해 책을 쓸 것이라고 했더니 큰 손자 재면군이 ‘내가 존경하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얘기도 써달라’고 해 그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할아버지로서 얘기해주고 싶은 사람이나 손자들이 궁금해하는 이들을 모을 생각이라고.
“하지만 나폴레옹·칭기즈칸 같은 ‘전쟁영웅’은 절대 포함시키지 않을 겁니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범죄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위인전과는 구별되는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씨는 “사실 나는 욕심쟁이다. 죽은 뒤에도 손자들이 날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손자를 향한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아들을 키울 때는 저와 아내(시집 ‘사랑굿’으로 유명한 김초혜 시인) 모두 바빠서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손자한테는 절대적이 되는 거예요. 아들이 결혼 뒤 분가해 저희 집 근처에 사는데, 재면이 태어나고 3년 동안은 매일 거기 들렀어요. 우리 부부가 아이만 데리고 나와서 유모차에 태우고 1시간 정도 산책을 한 뒤 다시 데려다줬죠(웃음).”
조씨는 그래서 같이 살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다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 재서군이 태어난 뒤 매일 이어지던 이 산책은 끝이 났지만, 지금도 쉬는 날이면 조씨 부부는 손자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고 여행도 다닌다. 아이들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하고 격의없이 따른다고.
“재면이는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어서 저와 아내가 작가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한번은 우리나라의 위대한 인물들 이름이 죽 나오는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다가 저한테 ‘할아버지, 그런데 왜 가사에 ‘태백산맥 조정래’는 없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제가 할아버지 성함 들어가게 6절 가사를 써야겠어요’ 하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한참을 웃었어요(웃음).”

두 손자 위해 위인전 쓰는 작가 조정래

조정래씨는 지금도 모든 작품을 직접 원고지에 쓴다. 위인전 자료 조사를 위해 모아둔 수첩과 육필 원고.


재면군은 신문에서 ‘광복 60주년 한국을 빛낸 인물들’이라는 기사에 조씨가 나온 것을 보고 좋아하다가 곁에 있는 할머니 김씨에게 “할머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나왔으면 두 분 다 나온 거나 마찬가지예요”라고 ‘위로’를 건넬 정도로 생각이 깊고 깜찍하다고 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벌써부터 책을 읽고 나면 꽤 긴 분량의 독후감을 쓸 정도로 글 솜씨도 좋다고.
“또래에 비해 어휘력과 창의성이 좋아서 담임교사도 깜짝 놀란다고 해요. 보통 아이들은 이 시기에 서너 문장을 이어 쓰기도 힘들다는데, 재면이는 논리적으로 글을 완성하거든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동화부터 과학, 역사 분야까지 고루 읽고요.”

어휘력 풍부하고 총명한 손자, 용기 있고 나눌 줄 아는 사람 되길
조씨는 재면군이 이처럼 말과 글에 특별한 소질을 보이는 건 남다른 태교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외아들 조도현씨(36)가 대학에 입학한 뒤 ‘태백산맥’ 10권 전체, 원고지 1만6천5백 장 분량을 모두 원고지에 베끼도록 했다는 게 알려져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조씨는 99년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 이민경씨(35)에게도 같은 숙제를 냈다고 한다. 소설을 옮겨 적으며 역사·인물·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고 문장 공부도 하라는 게 첫 번째 이유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어떤 고통 속에서 그 작품을 썼는지를 조금이나마 직접 느끼도록 하려는 뜻도 있었다고.
“저작권은 작가 사후에도 50년 동안 보장됩니다. 값진 노동의 대가를 일부라도 향유하려면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며느리도 자식이니까 똑같이 시킨 거고요. 그래서 며느리가 결혼하면서부터 소설을 옮겨 쓰기 시작했는데 마칠 때까지 5년이 걸리더군요. 그 사이 재면이를 낳았으니 저 아이는 배 속에서부터 ‘태백산맥’을 읽은 거죠(웃음).”
조씨가 직접 쓴 ‘태백산맥’ 원고와 아들·며느리가 각각 옮겨 쓴 원고,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우리도 하겠다”고 나서서 자발적으로 소설을 옮긴 팬클럽 독자들의 원고까지 모두 네 뭉치의 원고 묶음은 9월 전남 보성에 문을 여는 ‘태백산맥 문학관’에 나란히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조씨는 “언젠가는 손자들에게도 ‘태백산맥’을 옮겨 적도록 하고 싶은데 아내가 반대해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며 “만약 쓰지 않는다 해도 아이들 안에는 ‘태백산맥’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태교 덕분인지 글을 깨치기 전부터 어른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을 만큼 독서를 즐긴다는 재면군은 요즘 할아버지가 쓴 위인전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조씨의 집필실에는 지난 3월 말 장편소설 ‘오 하느님’이 나오던 날 재면군이 쓴 편지가 코팅돼 붙어 있다.
“할아버지 오 하느님을 쓰셔서 힘들었겠습니다. 그리고 오 하느님도 쓰고 신채호도 쓰고 아리랑도 쓰고 한강도 쓰고 태백산맥도 쓰고 인간연습도 쓰셔서 아주아주 힘들었겠고요. 그 많은 여섯 권을 써서 오른팔이 너무 아프겠습니다. 2007년 3월25일 조재면 올림.”
어린아이다운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이 편지를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웃으며 “더 열심히 좋은 책을 많이 써야겠다”는 마음을 다진다는 조씨는 “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손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 아이들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린이 책을 쓰고, 평소에도 삶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해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용기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살며 어려운 일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기꺼이 나누며 살기를 바라죠. 제가 먼저 그런 모습을 아이들 앞에 보여주기 위해 늘 노력해요.”
그는 “언제부턴가 내 가장 큰 바람은 손자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어린이 책 집필은 지금껏 해온 다른 어떤 작업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스스로 세운 인생계획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요. 이번에도 10년 안에 50권의 책을 모두 완성하는 걸 목표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책이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손자들도 그만큼 자라나겠죠. 책을 완간하고 우리 손자들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웃음).”

여성동아 2007년 9월 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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