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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다들 만족스럽게 하고 계신가요?” - 성생활 코치하는 사회

2006. 03. 08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 4개국의 부부 1천2백 명을 대상으로 한 성생활 만족도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최하위로 나타났다고 난리다. 또 부부관계 자주 갖는 부부가 장수한다는 연구결과도 수시로 나온다. 실제 내 주위를 보면 성생활 자주 한다는 부부는 거의 없다. 성적 욕망을 너무 억압하거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모범답안 같은 성생활 척도에 얽매이면 오히려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싶다.

“다들 만족스럽게 하고 계신가요?” - 성생활 코치하는 사회

은밀한 부부의 잠자리가 최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를 판매하는 한 제약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 탓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 4개국의 30~50대 부부 1천2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부부의 성생활 만족도가 가장 낮게 나타나자 점잖은 신문들까지 톱기사로 실었다.
‘부부관계가 만족스러운가’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 남성의 53.3%, 여성의 33.1%만이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에 프랑스의 경우 남성은 92.7%, 여성은 80%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미국 남성도 78%로 대부분 아내와의 성관계에 만족스러워했다. 성관계만이 아니라 대화 등에 관한 부부만족도 역시 한국 여성이 4개국 중 꼴찌였다.
한국 남성들은 ‘아내가 성관계에 관심이 없다 보니 횟수가 적고 테크닉도 없다’는 점을 불만사항으로 꼽았고 아내들은 ‘남편이 자기의 성적 충족감만 생각하고 성관계 전후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에 가장 언짢아했다. 몇 년 전에 다른 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성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인데 막상 횟수나 만족도 면에서는 제일 낮아서 ‘마음은 가득하나 실전에 약하다’는 서글픈 모습을 보여줬다.

마음은 있으나 실전엔 약한 우리네 부부생활
1950년대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경악케 한 ‘킨제이 보고서’ 이후 부부 성생활은 이렇게 과학적인(?) 통계 수치로 드러나서 옆집도 모자라 이젠 다른 나라의 부부와 비교하게 만든다. ‘40대 부부 평균 섹스 횟수는 주 2회’라는 기사를 보면 ‘도대체 우리 부부는 뭐하고 사나, 올림픽 열릴 때마다 한 번씩 하기도 어려운데… 혹시 이 인간이 바람피우는 건 아닌가’ 하고 남편을 의심하다가 자신이 여성적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결혼이란 한 상대하고만 성생활을 하라는 법적인 약속이자 허가증이고 성생활을 해야 아이도 탄생한다. 또 각종 연구 자료나 보고서마다 ‘키스를 매일 하면 평균수명 5년 연장’ ‘키스는 몇 칼로리, 섹스는 몇 칼로리 소모, 성생활이 다이어트의 지름길’ ‘부부관계 자주 갖는 부부가 해로하고 장수한다’ 등의 자료를 내놓아 성행위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정말 그럴까? 매일 뽀뽀하고 섹스 자주 해서 그 부부들이 오래 사는 걸까? 사이가 좋은 부부는 핏대 올려 싸우지 않으니까 혈압도 적당하고, 화병도 안 걸려서 오래 사는 건 아닐까? 식성이나 취향이 잘 맞아서 매일 깔깔거리지만 잠자리는 하지 않는 섹스리스 부부는 일찍 죽을까? 만일 내가 일찍 죽으면 성생활 부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려나.
얼굴, 몸매, 학벌, 연봉 등 감추기 어려운 각종 조건들이 수시로 비교당해 열등감에 시달리는데 과거엔 알 길 없던 부부 잠자리 횟수나 만족도까지 수치화돼 비수처럼 찔러대니 참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성생활도 자주 하고, 대화도 풍족하며 아직도 상대방을 보면 가슴이 뛴다”는 중년들은 신혼의 단꿈에 빠진 재혼커플 외엔 드물었다. 결혼생활 10년 차 이상 되면 부부는 가족이지 남녀가 아니라고 했다.
“술김에 혹은 의무방어전으로 하는 거지, 뭐 사랑의 감정이 솟구쳐서 하나요. 잠자리를 해주지 않으면 괜히 바람피우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짜증을 부리니까 코피 쏟으며 하는 거죠. 알고 보면 남자들, 불쌍해요.”(40대 중반 의사)
“나이 들면서 왜 그렇게 코를 골고, 냄새가 나는지 몰라요. 뭘 먹고 마셨는지 다 알겠다니까요. 술 냄새, 삼겹살에 마늘냄새 가득해서 뽀뽀하자는 것도 역겹고, 억지로 한 다음에 코를 드르렁 골고 자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한심하다니까요.”(40대 초반 주부)

“다들 만족스럽게 하고 계신가요?” - 성생활 코치하는 사회

“아이들 엄마랑 어떻게 섹스를 해요, 가족끼리. 하하하. 밥풀 묻고 무릎 튀어나온 ‘츄리닝’ 입은 아줌마를 보고 성욕을 느끼면 변태지.”(50대 회사원)
“아무리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똥배가 나왔어도 소녀 같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잖아요. 드라마에서 본 에릭의 미소, 조인성의 눈빛, 이병헌의 목소리 등을 떠올리며 로맨틱한 꿈이라도 꾸려는데 머리 벗겨진 영감이 무작정 달려들면 발로 차버리고 싶죠.”(50대 주부)
“이 무한경쟁시대에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못 버티잖아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조금 놀아주다 보면 몸이 물에 젖은 솜 같고 머리는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욕구도 없어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도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거예요.”(30대 후반 직장여성)
물론 이런 이들이 절대 바람직하거나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지 모른다.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부부가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고 푹 퍼진 만두가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을 갖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할 게다. 또 잠자리에 들어서도 “대충 끝내자”가 아니라 “여보, 난 그곳을 만져주면 기분이 좋아요” 등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런데 평소에 “누운 거야, 엎드린 거야. 가슴이 납작하니 알 수가 있나” “하이고, 꼴에 사내라구” 등으로 서로 무시하고, 낮에는 걸진 음담패설을 하고 포르노 사이트를 서핑하면서도 정작 잠자리에서는 요조숙녀나 성직자 같이 되는 대한민국 중년부부들이 갑자기 풍부한 성적 대화와 정성 어린(?) 섹스를 잘할 수 있을까. 또 20% 정도라는 섹스리스 부부들은 다 위선자들일까.

모범답안 같은 성생활 수치에 얽매일 필요 없어
성적 욕망을 너무 억압하거나 호기심과 열정을 잃었다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서로에게 솔직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마치 모범답안이나 평균 치수처럼 부부의 성생활을 수치로 규정하고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면 비정상적이거나 문제가 많은 부부로 매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
보기만 해도 짜릿짜릿 전율이 느껴지고 온몸의 기관이 더듬이 촉수 같던 미혼 시절엔 ‘순결을 지켜라’ ‘정숙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정작 지쳐서 귀찮아진 중년엔 ‘왜 안 하냐’ ‘그것밖에 못하냐’고 성생활을 코치하는 이 사회가 너무 심술궂은 것 같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나는 24시간 함께 하며 독서토론도 하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는 지적이고 자상한 남편이나 변강쇠 같은 정력적인 남편보다는 ‘단무지’ 남편이 필요하다. 단순하고 무식해도 지갑에 돈을 가득 채워주며 “또 줄게”라는 말을 하는 남편 말이다. 아니 바쁘면 굳이 직접 전해주지 않고 은행계좌에 넣어줘도 고맙겠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나이 들수록 닫혀 있던 입은 열리고,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잠자리를 안 할 때가 아니라 외식하고 밥값 안 낼 때 남편에게 더 분노가 치미는 걸 보면 난 모든 욕망이 식욕에 몰려 있나 보다. 뽀뽀 자주 하고, 소식해야 오래 산다는데 어떡하나.

유인경씨는요
“다들 만족스럽게 하고 계신가요?” - 성생활 코치하는 사회

경향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 편집장. 얼마 전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을 펴냈다. 뭔가를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하기보다 좀더 덜어내고, 나눠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의 홈페이지(www. soodasooda.com)를 방문하면 그가 쓴 다른 칼럼들을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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