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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②

16세기 프랑스의 참극 그린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2006. 02. 08

16세기 프랑스의 참극 그린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프랑수아즈 뒤부아,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연도 미상, 나무에 유채, 94x154cm, 스위스 로잔 미술관


신앙은 우리를 지켜주는 귀중한 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영혼의 평화와 삶의 소망을 얻습니다. 이렇게 좋은 종교도 잘못 받아들이거나 광신에 빠지면 삶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권력과 돈을 위해 종교와 신앙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는 종교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한 개인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를 종종 보여줍니다.
프랑수아즈 뒤부아의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은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그린 그림입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는 주류인 가톨릭 신도들과 개신교도인 위그노파 신도들의 대립으로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의 어머니이자 섭정인 카트린 드 메디치는 위그노파인 나바르의 왕 앙리와 화해를 하려고 했지요. 그래서 자신의 딸 마고를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결혼식에 즈음해 카트린은 생각을 바꿉니다. 완고한 가톨릭 세력인 기즈 가문과 공모하여 결혼식에 온 위그노파 지도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지요. 화해를 위해 잔치에 왔던 위그노파 지도자들은 졸지에 비명횡사했습니다. 이 참극은 곧 프랑스 내의 모든 위그노파 신도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센 강은 시체로 넘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원한이 맺혔던 사람을 신교도로 몰아 애꿎게 죽이는 사람도 있었다는군요.
그림은 그 학살의 광기를 갖가지 살육 장면을 통해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림 중앙에서 약간 왼쪽 상단에 검은 옷을 입은 카트린이 쌓여 있는 시체 더미를 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의 신이 이런 학살을 원한다고 믿었던 것일까요? 올바른 신앙은 언제나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데서 시작하는 법이지요.

한 가지 더∼
1560년경부터 1660년경까지 한 세기 동안 유럽은 갖가지 종교적 갈등으로 신음합니다. 이런 종교적 갈등을 바탕으로 벌어진 전쟁을 종교전쟁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독일의 30년 전쟁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로 인해 유럽은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주헌씨는요…
16세기 프랑스의 참극 그린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일반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서양 미술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칼럼니스트. 신문 기자와 미술 전문잡지 편집장을 지냈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 문화마을에서 아내와 아들 셋, 딸 하나와 함께 살며 집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엔 어린이 미술책 인물화편을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비밀이 담긴 명화 이야기’ ‘명화를 통해 보는 전쟁 이야기’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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