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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우리는 라이벌

17대 총선 앞두고 나란히 대변인으로 발탁된 한나라당 전여옥 VS 열린우리당 박영선

■ 글·최호열 기자, 이남훈 ■ 사진·지재만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4. 04. 02

4월15일 치르는 17대 국회의원 총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쟁으로 여야간의 입씨름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여당과 야당 모두 대변인으로 여성을 내세웠다. 당당한 이미지에 똑 부러지는 말솜씨를 자랑하는 MBC 앵커 출신의 박영선 열린우리당 대변인과 편안한 이미지에 거침없는 글쓰기로 유명한 KBS 기자 출신의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이 그 주인공. 똑같이 81년 KBS에 입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등 비슷한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의 정치 입문 동기와 정치관, 가족이야기.

17대 총선 앞두고 나란히 대변인으로 발탁된 한나라당 전여옥 VS 열린우리당 박영선

전여옥은 유시민 의원과의 TV 토론 후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5년, 10년 후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게 하고 싶어 정치 입문 결정했어요”
전여옥(45)이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다음날인 3월19일, 그를 만나기 위해 당사 5층에 있는 대변인실을 찾았다. 당초 오전 10시30분에 만나기로 했지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편파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예정에 없던 KBS 항의방문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KBS는 그가 10년 넘게 일했던 곳이자 남편이 현재 일하는 곳. 앞으로 그가 가야할 길이 얼마나 험난할 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로, 거침없는 글쓰기로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그가 왜 그동안 쌓아온 명예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는 정치라는 전쟁터로 뛰어든 것일까.
“많은 분들이 저더러 왜 고생길로 들어섰냐고 해요. 하지만 제 인생 자체가 잘 포장된 도로보다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왔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보면 이제 막 사는 재미를 느끼고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그는 지난 2∼3년간 주부로서의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고 한다. 아이가 웬만큼 자라니까 키우는 재미도 느끼고, 여행 운동 음악을 즐기며 그림도 배워보려던 참이었다는 것. 그런데 최근 대통령 탄핵 사태 흐름을 보며 ‘과연 이런 나라에서 5년, 10년 후에도 아이를 잘 키우고 개인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치입문 제의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내 몫이 아니라며 거절했어요. 최근에도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여러 정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어요. 그래도 정치는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는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한 방송 토론프로에서 유시민 의원과 토론을 한 후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저에게 항의전화와 협박성 메일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이건 사회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거죠. 다음날 온종일 고민을 한 끝에 정치에 참여하기로 결심을 했어요.”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처음으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남편하고는 정치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아이들 이야기, 여행을 어디로 갈까, 외식은 무엇으로 할까 하는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물론 남편에게 집에서 담배피우지 말라거나, 밤에 라면 먹지 말라는 잔소리는 하지만 서로의 일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죠. 그런데 이 일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반대할 줄 알았던 남편도 흔쾌히 찬성했다. 대학에 다니는 두 아이도 격려를 해줬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불과 한달여 전 칼럼을 통해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대표직을 물러나야 하고, 박근혜 의원은 당 대표 출마 자격이 없다며 비판했다는 사실. 이젠 그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
“저에게 입당 제의 전화를 한 사람이 바로 최대표였어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은 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그런 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이런 당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의원에 대한 칼럼 역시 그를 비난하기보다 큰 그릇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적했던 거예요. 박의원도 제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더군요.”

17대 총선 앞두고 나란히 대변인으로 발탁된 한나라당 전여옥 VS 열린우리당 박영선

아직 당 고위관계자 얼굴도 몰라 고생하고 있다는 전여옥.


과거 대변인으로 영입된 인사들은 대부분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는 어떤 제안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일단 들어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조건을 보고 뭘 한 적이 없어요. 결혼도 조건을 보지 않고 했고요(웃음). 당에서 원내로 들어와 일을 하라고 하든, 당에 남아 일을 하라고 하든 요구하는 대로 할 생각이에요.”
그는 대변인이라고 해도 월급은커녕 교통비조차 당에서 지원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보좌관이나 운전기사가 제공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운전기사가 있기는 해요.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같은 방에서 자는 사람이 가끔식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죠(웃음). 게다가 얼마전 10년 동안 타던 차가 길거리에서 멈춰버리는 바람에 폐차시키고 지금은 택시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어요. 무보수 봉사직인 셈이죠. 솔직히 지금까지 제 사회봉사라는 게 책 인세나 광고출연료의 일부를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정도였어요. 그동안 전 사회로부터 과분할 만큼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어요. 이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할 거예요.”
그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바삐 출근준비를 마치고 7시30분까지 당사로 나와 8시 간부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여당과 입으로 전쟁을 치른다. 더구나 당 고위관계자의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정치초년병이기에 더욱 정신이 없다고 한다. 전날인 3월18일은 출근 첫날이라 집에 일찍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게 밤 10시. 주부로서의 역할은 당분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막내(9)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죠.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을 다해야 하잖아요. 더구나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동안 ‘놀자’주의로 키웠거든요. 매일 밤 받아쓰기도 봐주어야 하는데…. 당분간은 어쩔 수 없죠.”
재산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지만 그는 “먹고살 정도”라고만 할뿐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집은 영등포에 있는 60평대 아파트. 경기도에서 31평 아파트에서 살다가 지난 2월 이사를 했다고 한다. 평수를 갑자기 넓힌 이유에 대해 그는 “큰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해 방이 필요하고, 나도 회사 사무실을 없애고 재택근무를 하기로 해 방이 필요하고, 막내도 컸다고 자기 방을 달라고 졸라 안방과 큰딸 방까지 5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곳은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내고 비교적 싼 곳을 고르다 그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집이 넓으니까 이방에서 저방으로 가는데 다리가 아프더라고요(웃음). 한창 집안 살림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변인이 되는 바람에 앞으로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에요. 어제도 밤 10시에 들어가니까 집안이 어지러웠어요. 그래서 제가 청소기를 돌리고 남편이 대걸레로 밀고 아이들이 쓰레기봉투를 치웠어요. 딸아이가 처음엔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니 말 뿐이에요. 저처럼 청소보다는 요리에 관심이 많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인 막내 아이는 엄마가 대변인이 되었다는 것은 모르고 그저 더 큰 회사로 옮긴 것으로 안다고 한다. 그래서 월급이 늘었을 테니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UFO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중이라고. 기자를 만나는 중에도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내 필통 어딨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81년 KBS 기자 공채 동기인데다 동시에 대변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박영선 대변인과는 취재현장에서 종종 만나곤 했어요. 매우 부지런하고 뛰어난 기자였죠. 상황 판단력도 빨랐고요. 또한 저는 앵커 경험이 2년밖에 없지만 그는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전달력도 뛰어나요. 정치판에도 저보다 일찍 들어왔고. 그래서 그에게서 많이 배우려고 해요.”
그는 박대변인과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방송, 신문 등에서 대담할 기회를 많이 가져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싶다는 것.
둘 사이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냐고 묻자 그는 “나는 문화부 국제부 지방부 편집부 제작부 등 당시 한직으로 인식되던 곳에 많이 있었고 박대변인은 경제부 쪽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있을 기회는 없었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이번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남편의 입장이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전여옥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지금 KBS에 있어서…, 저는 찬성한다고 했어요.”

17대 총선 앞두고 나란히 대변인으로 발탁된 한나라당 전여옥 VS 열린우리당 박영선

정당 활동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영선.


“남편의 권유로 입문, 차별받는 여성들의 입이 되고 싶어요”
지난 1월초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박영선 대변인(44)은 82년 MBC에 입사한 이후 MBC 최초로 여성 해외특파원과 여성 최초 경제부장을 지내는 등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해왔다. 그가 정치 입문을 권유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 16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런 그가 4년이 지난 지금, 4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에 정치에 입문한 데는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입당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 스스로는 반신반의했지만 남편이 적극적으로 권유해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정동영 의장과의 인연도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큰 이유가 됐다. 90년대 중반 LA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회사 선배였던 정동영 의장이 지금의 남편인 이원조 국제변호사를 소개시켜준 것. 박대변인은 결혼 후 정동영 의장에게 감사의 표시로 고급 양복을 선물했다고 한다.
정의장은 이번에 박대변인을 영입하기 위해 남편을 먼저 설득하는 ‘우회전략’을 구사했다고. 또한 박대변인에게도 “지난번에 선물한 양복은 치수가 커서 입지도 못했다”며 “내가 신랑을 구해줬으니 이번에는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입문한 후 한동안은 정치현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당 대변인의 논평이 너무 거칠고 때로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폭력적인 단어를 많이 쓰는 것에 놀랐어요. 그래서 (그렇게 안하면) 당장은 우리당이 손해보는 것 같겠지만 지금 잠깐 손해를 보더라도 긴 안목에서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이어 “뉴스 앵커가 그날 하루의 정보를 제공하듯이 대변인은 세상에 메시지를 던져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유머러스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는 논평을 하고 싶다. 물론 현실 여건이 그렇지 못하지만 논평에도 유머를 제공할 수 있는 ‘잘 발효된’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며 대변인으로서 새로운 정당 논평문화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침묵하는 여성,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특히 자식 뒷바라지로 정작 자신의 삶은 포기한 여성들, 직장에서 차별 받으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입당 직후 험악한 대변인 논평 보고 가슴이 철렁하기도
현재 그에겐 여섯 살 된 늦둥이가 있다. 정치를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도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주말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당에 급한 일이 생겨 외출 준비를 하자 아이는 “엄마는 바쁜가봐” 하고 투정을 부렸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라고.

17대 총선 앞두고 나란히 대변인으로 발탁된 한나라당 전여옥 VS 열린우리당 박영선

박영선은 남편과 정동영 의장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고 밝혔다.


“표시는 잘하지 않지만 남편도 힘들 거예요.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제가 바빠서 신경을 못써도 남편이 뭐든지 잘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이 없었다면 애초에 제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겠죠. 어느 날은 냉장고에 각종 음식들이 들어 있더라고요. 남편이 그렇게 드러내지 않고 저를 도와줘 항상 고마워요.”
그는 한나라당 대변인이 된 전여옥에 대해 “과거 문화부 시절에 취재 현장에서 많이 만났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분의 리포팅을 보고 내가 저런 점이 모자랐었구나 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여옥, 박영선 두 여성대변인 임명을 놓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정치판에서 여성은 꽃에 불과하다’ ‘여성은 이미지 정치에 도움을 줄 뿐이다’라는 주장이 그것. 하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그런 주장은 남성들의 편견일 뿐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시켜주었다. 두 여성 대변인도 정치권에서 보다 성공적인 여성정치인으로서의 모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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