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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동화처럼 사는 여자

‘인형의 집’처럼 예쁜 미니어처 만드는 돌 하우스 작가 박은혜

■ 글·박윤희 ■ 사진·조영철 기자

2004. 03. 10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돌 하우스(Dolls House) 작가로 변신한 주부 박은혜. 세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일본 유학길을 떠난 당찬 엄마인 그는 아들도 돌하우스 작가로 키우고 싶다고 말할 만큼 자신의 일에서 꿈을 실현하고 있다.

‘인형의 집’처럼 예쁜 미니어처 만드는  돌 하우스 작가 박은혜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완성된 ‘돌 하우스(Dolls House)’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늘 뭔가를 아주 작게 만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죠.”
돌하우스 작가 박은혜씨(34)는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거느린 ‘여자 걸리버’다. 매일 톱질을 해서 나무를 잘라내고 집을 짓는다. 집짓기가 끝나면 실내 인테리어도 도맡아 한다. 갈색 창틀에 하얀색 페인트칠을 하고 벽에 꽃무늬 벽지를 도배하는가 하면 장롱과 화장대, 침대 등의 가구도 직접 디자인하고 망치질을 한다. 집이 완성되면 전기를 연결해 천장에 조명기구를 설치해서 불을 밝히는 일도 그의 몫이다.
꿈을 디자인하는 여자 박은혜. 살고 싶은 집, 박물관, 상점 등 상상 속의 공간을 12분의 1 또는 24분의 1 크기로 축소시켜 건축물 외관뿐 아니라 실내장식물까지 일일이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그의 하루 일과다. 노송나무를 주재료로 뚝딱뚝딱 작은 왕국을 만들어내는 그이지만 먹다 남은 감기 알약, 아이 옷에서 떨어진 단추도 그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부활한다.
“감기 알약에 밀가루를 살짝 접착하면 코코넛가루가 뿌려진 도너츠가 되고요. 빨간 단추의 구멍만 메우면 깜찍한 쟁반이 돼요. 버려진 폐품도 상상력과 버무려지면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 있거든요. 저희 집에는 언제나 돌하우스 소품으로 쓸 폐품이 방 두개에 꽉 차 있어요.”
돌하우스는(Dolls House)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해석하면 ‘인형이 사는 집’ 정도가 되지만 그 안에 인형이 꼭 있지 않더라도 미니어처(Miniature)로 만들어진 작은 집이나 상점 등의 건물을 돌하우스라 부른다. 따라서 돌하우스를 ‘작은 집’ ‘작게 만들어진 집’으로 이해해달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돌하우스를 예술성과 창작성을 가미한 미니어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일반 건축 축소 모형은 실제 지어질 외관만 만들어놓지만 돌하우스는 건물뿐만 아니라 가구, 장식품 및 소품이 필수 구성요소예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죠.”
돌하우스는 16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일종의 목공예로 영국,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사랑받는 창작예술이다. 이들 나라에 사는 어린이들 대부분은 돌하우스를 장난감 삼아 노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돌하우스협회가 만들어져 있을 만큼 상상 속의 집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이를 ‘동경국제미니어처쇼’에 출품하는 작가들이 상당수 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 있다. 현재 박씨는 일본돌하우스협회 한국지부장으로 있으면서 인터넷에 ‘푸펜하우스(www.puppenhaus.co.kr)’를 개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돌하우스를 국내에 보급하고 있다.

상상 속의 집 만드는 재미가 돌하우스의 매력
“지난해 4월에 공방을 마련해서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국내에는 돌하우스 강사가 저밖에 없거든요.”
그의 돌하우스 공방을 거쳐간 수강생은 70여명. 부산, 포항 등 지방에서도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성격이 급하잖아요. ‘빨리빨리’만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오래 못 버티고 나가떨어져요. 돌하우스는 손끝이 예민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아주 정교한 작업이거든요. 참을성 없이 서두르기만 하면 절대 못해요. 저는 평생 싫증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우연히 선택하게 되었는데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인형의 집’처럼 예쁜 미니어처 만드는  돌 하우스 작가 박은혜

수강생에게 돌하우스 제작 기술을 가르치는 박은혜씨(위 왼쪽). 박씨의 아들 시온이도 돌하우스 제작에 관심이 많다(위 오른쪽).


박씨는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학생 때 일본으로 건너가 시즈오카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혈혈단신 한국으로 다시 왔다. ‘일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점이 자신의 경쟁력이라 믿고 대기업, 백화점 등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그때 충격과 좌절감을 맛보았죠. 그러던 중 싱가포르 관광청에 일자리가 생겨서 일단 전공 쪽으로 자리가 날 때까지 일해보자는 심정으로 취업했어요.”
그는 이렇게 시작한 싱가포르 관광청 일을 7년 동안 했다. 다른 어떤 직종보다 안정적이고 일년에 두번 해외출장 기회도 있을 만큼 여러가지 혜택이 많은 일이었지만 7년 동안 근무하다 보니 매년 똑같이 진행되는 회사 일정에 싫증을 느끼게 됐다.
“평생 시간 투자를 해도 질리지 않고 제가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일단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그는 회사를 다니는 짬짬이 그동안 사서 모은 책과 잡지를 다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무엇에 관심이 있어 어떤 책을 샀나 살펴보면 뭔가 아이템이 나올 것 같았어요. 며칠 책을 뒤졌는데 어느 날 책 한권이 반짝거렸어요. 대학 졸업하고 영국에 1년6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그때 샀던 ‘돌하우스와 미니어처’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그때는 아이가 생기면 만들어줘야지 하고 샀는데, ‘나라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아들 데리고 무작정 일본 건너가 돌하우스 배워
우선 그는 인터넷을 뒤졌다.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돌하우스’를 입력했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일어가 제2의 모국어인 만큼 다시 일본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만 해도 돌하우스가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단계별 학습기관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일본에만 전문가 과정이 있었어요. 당장 회사에 사표를 냈죠.”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02년 5월, 그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아들 시온이(5)만 데리고 현해탄을 건넜다.
“남편이 반대할 줄 알았는데 ‘얼마 정도 걸려? 내가 도와줄게’하고 흔쾌히 찬성했어요. 친정아버지께서도 ‘아이는 내가 돌봐줄 테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용기를 주셨죠.”
그는 1년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돌하우스협회 공인강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가 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이는 일본 유치원에 보냈다.
“처음에는 일본 아이들 사이에서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할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시온이가 일본인 친구나 선생님을 한국화시켰죠. 일본 유치원생들이 한국말 배우기를 좋아해서 친구가 많았어요.”
일본에서 수강료와 체류비를 포함해 2천만원 남짓 투자한 그는 공인 강사자격증을 들고 한국에 오자마자 돌하우스 공방을 차렸다. 다행히 한 건물 안에 수강생을 위한 공방과 살림집, 작업실을 마련해 ‘일하는 엄마’의 부담감을 줄이며 육아와 경제활동, 작품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다.

‘인형의 집’처럼 예쁜 미니어처 만드는  돌 하우스 작가 박은혜

박은혜씨가 만든 돌하우스 작품들.


“시온이는 제가 하는 일을 아주 좋아해요. 길에서 병뚜껑 하나를 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머니에 담아와서 저에게 줘요. 저의 직업병이면서 시온이와의 공통점은 어디를 가도 폐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뭐든지 보면 돌하우스 만드는데 응용하고 싶어서 다 주워 모아요. 폐품 중에서 활용할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만들고 나면 무척 신선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는 앞으로 시온이를 돌하우스 작가로 키우고 싶다고 한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돌하우스를 유아 정서교육이나 정신질환자 치료에도 활용해요. 그만큼 돌하우스를 만드는 과정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요. 직접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감동’을 모를 텐데 시온이가 평생 돌하우스를 만들면서 그런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는 소개로 만난 남편과 1년6개월간의 연애 끝에 지난 98년 3월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연애기간 동안 거의 매일 만났을 만큼 지독한 열애를 했지만 요모조모 따져봤을 때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단 하나, 문화생활에 인색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둘을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했다.
“무슨 공연을 보자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 비싼 공연을 보는 대신 차라리 밥을 사먹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화끈하게 로열박스에서 보자’고 해요. 문화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 돌하우스 작업에도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의 남편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지만 새로 벌인 사업 때문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고 서재를 꾸밀 만한 정신적인 여유도 없다고 한다.
앞으로 다양한 유럽식 건축 모형을 만들어 작품의 영역을 넓혀 보겠다는 박은혜씨. 그에 앞서 박씨는 남편이 꿈꾸는 서재를 돌하우스로 제작해 선물하고 싶다고 한다. 꿈과 사랑, 그리고 성공까지 돌하우스에 압축해 아기자기하게 만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동화 속 주인공처럼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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