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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완창’기록 세운 타고난 꼬마 판소리꾼 길여름

■ 글·임소영 ■ 사진·성경훈

입력 2002.10.08 14:15:00

지난 7월31일, 다섯살배기 길여름양이 최연소의 나이로 판소리 수궁가를 완창했다.
생후 42개월에 판소리에 입문한 길양은 3년 만에 완창 무대를 가졌다.
특히 이번 공연은 유태평양군이 갖고 있던 만 6세 최연소 완창 기록을 깨는 것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손에 땀을 쥐게 했던 4시간 동안의 공연과 꼬마 판소리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최연소‘완창’기록 세운 타고난 꼬마 판소리꾼 길여름
지난 7월31일 광주광역시 동구 시민회관에서 이색적인 판소리 한마당이 펼쳐졌다. 다섯살배기 꼬마 소리꾼이 ‘수궁가’ 완창에 도전한 것이다. 도전자는 올해로 만 5세가 되는 길여름양. 길양은 특히 판소리 입문 3년 만에 완창 무대를 열어 더욱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판소리 최연소 완창 기록은 유태평양군(10)으로 유군은 만 6세가 되던 지난 98년에 ‘홍보가’를 3시간에 걸쳐 완창했다. 따라서 길양이 이번 공연에 성공하면 판소리 완창의 새 역사를 쓰는 셈. 세인들의 기대 반 우려 반 속에서 시작된 공연에서 길양은 4시간에 걸쳐 ‘수궁가’를 완창했다.
이날 공연은 한마디로 탄성과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5백여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꼬마 소리꾼의 거침없는 소리와 몸짓에 연신 탄성을 지르며 즉석에서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하지만 공연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길양은 목이 아파 물을 마시기도 했고, 가사가 틀려 다시 하는 등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종반부에 가서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공연을 하자 객석은 안타까움으로 술렁였다. 꼬마 소리꾼의 고군분투를 보다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완창 안해도 좋으니 그만 내려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같은 술렁임에 더욱 긴장한 길양은 한순간 포기하는 듯했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완창을 강행, 4시간 동안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나자 길양의 수궁가 완창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던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길양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큰절로 답례했다. 판소리 완창 최연소 기록이 새롭게 씌어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완창을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그동안 배운 기량을 원 없이 발휘하기만을 바랐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여름이가 대견스러울 뿐입니다.”
공연 내내 가슴을 졸이며 막내딸을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 마윤덕씨(39)는 완창 성공이 믿어지지 않는 듯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공연을 끝낸 여름이와 함께 여름양의 스승인 김선이 명창(43)에게 큰절을 올리며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예의를 갖췄다. 어린 제자와 제자 어머니의 인사를 받은 김명창의 눈시울도 금세 붉어졌다. 이윽고 “자네하고 여름이가 고생했지, 내가 무슨 고생인가”라며 이들을 격려, 판소리로 맺어진 사제지간의 흐뭇한 모습을 연출했다.
길여름양은 96년 8월, 회사원인 아버지 길병석씨(47)와 어머니 마윤덕씨의 세 딸 중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리고 생후 42개월이 되던 2000년 2월에 판소리를 처음 접했다.
“여름이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마치 꽹과리 소리 같았어요. 웬만해서는 목이 쉬는 법이 없었죠.”
여름이 별명은 일명 ‘철목’. 마씨는 여름이 목소리가 너무 커서 공공장소에서 한번 울기라도 하면 달래느라 진땀을 빼곤 했었다며 웃는다. 이처럼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여름이에게 ‘판소리를 가르쳐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이어졌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판소리 학원을 찾았다. 하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판소리는 무리’라는 것이었다. 몇 곳을 방문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마음을 접고 돌아오는 길, 우연히 ‘김선이 판소리 학원’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같은 대답이겠지’ 하는 심정으로 학원 문을 열었다.

최연소‘완창’기록 세운 타고난 꼬마 판소리꾼 길여름

스승 김선이 명창이 고수를 하며 ‘최연소 제자’의 완창을 격려하고 있다.

“마침 김선생님에게 여름이 또래의 자녀가 있었죠. 그래서 아이들을 같이 가르쳐보겠노라고 흔쾌하게 승낙해 주시더군요.”
김선이 명창의 아들 역시 ‘국악 신동’ 소리를 듣는 김수인군(6). 어쩌면 한때의 ‘장기’로 묻히고 말았을 길양의 ‘철목’은 김선이 명창을 만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연습에 한번 들어가면 옷에다 쉬를 싸는 한이 있더라도 중간에 일어서는 법이 없었어요. 정신력과 집중력이 대단한 아이입니다.”
여름이를 3년 동안 지도해온 김선이 명창은 무엇보다 여름이의 ‘외고집’을 높이 샀다. 아무리 목청이 좋아도 집중력과 의지가 없으면 완창을 해내기 힘들다는 것. 어릴 적부터 국악을 시작해도 보통 중고등학생이 돼야 완창에 도전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글을 모르는 여름이를 위해 토막소리 방식을 택했어요. 일단 짧은 내용을 입에 익히게 한 후 곡을 붙이고 음률을 가르쳤죠.”
그러다 보니 자연 한 소절을 배우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두세배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여름이는 좀처럼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루 다섯시간씩 연습을 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조그만 입술을 벌려가며 앵무새처럼 잘도 따라했다. 틈틈이 언니 오빠들이 소리 연습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고 나중엔 제법 흉내도 냈다.
간혹 가사가 틀려 매를 맞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그만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 학원 언니 오빠들이 ‘독한 가시나’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그래도 가사전달이 안되더군요.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무조건 반복해서 연습하는 수밖에요.”
글을 모르는 여름이를 위해 어머니 마씨의 노력도 끝이 없었다.
“일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같은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었어요. 글을 모르니까 듣고 외워야 했죠. 50번이고 1백번이고 외울 때까지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작년 초부터 소리가 줄줄줄 나왔다. 본격적으로 연습에 속도가 붙었다. 나름대로 감정표현도 했다. 슬픈 대목은 슬프게, 기쁜 대목은 기쁘게 대목마다 색깔을 입힐 줄도 알았다.
“높은소리와 낮은소리를 자유롭게 잘 구사하는 것이 여름이의 장점이에요. 목소리가 짱짱하니까 상청과 하청을 오갈 때 목소리에 무리가 가지 앉죠. 그만큼 듣는 사람도 편하게 들을 수 있구요.”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시종일관 쩌렁쩌렁하던 ‘철목’은 스승의 지도에 따라 완급과 높낮이를 조절하게 됐다. 한국무용을 배우면서 발림도 익혔다.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는 모양새가 제법이었고 손놀림의 곡선도 우아했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성인 소리꾼이었다. 말 배우는 속도도 빨랐고 발음도 비교적 정확했다. 전라도 사투리에 육두문자조차도 천연덕스럽게 따라했다. 여름이는 그렇게 소리꾼으로 단련돼 갔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꼬마 소리꾼은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2000년 11월에는 전국국악경연대회에 참가, 유아부 장려상을 수상했고 그 이듬해에는 대상을 수상했다. 그러자 꼬마 소리꾼을 찾는 행사나 공연도 많아졌다. 군부대 및 각종 기관과 단체의 축하공연 자리에 초대됐고 지난 월드컵 때는 서울 인사동 거리축제에서 수궁가 창극에 출연했다.
이처럼 크고 작은 공연이 겹치면 하루에 두 번 무대에 오른 적도 있었다. 짙은 화장에 불편한 한복을 입고 몇 시간씩 서서 소리를 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안하겠다고 고집 피우지도 않았다. 관객이 많다고 긴장하거나 실수하지도 않았다. 무대 아래서는 가끔씩 투정을 부리긴 해도 일단 무대에만 오르면 의젓하게 공연을 했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여름이의 소리에는 자신감이 쌓여갔다. 그만큼 실력도 늘었다. 이같은 변화를 지켜 본 김명창은 작년 초부터 여름이에게 수궁가를 지도하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완창을 시킨다고 비난도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들 욕심 채우기 위해서 아이를 고생시킨 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름이의 발전 속도를 봤다면 누구나 다 완창에 도전하라고 그랬을 겁니다. 또한 여름이의 정신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성적 성향이 강한 동편제 수궁가를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여름이의 기질 때문. 워낙 목의 힘이 좋고 호흡이 길어 동편제가 더 맞다고 판단한 것. 여름이는 그런 스승의 기대에 걸맞게 수궁가를 잘 소화해냈다. 어머니 마씨 역시 여름이 뒷바라지에 더욱 정성을 들였다. 수궁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관련 동화책도 읽어주었고, 끊임없이 수궁가 이야기를 해주었다. 틈만 나면 수궁가 테이프를 틀어주었고 TV며 옷장, 거실, 방문에다 수궁가 대목을 붙여놓았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여름이가 수궁가를 익힐 수 있도록 어머니의 배려는 끝이 없었다. 또한 건강도 세심하게 체크했다. 이제껏 예방주사 맞는 것 외에는 병원에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튼튼한 아이였지만 큰 무대를 앞둔 만큼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얼음과 죽염으로 여름이의 목이 다치지 않도록 했고 끼니마다 사골을 달여 주었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 그리고 어머니가 모두 힘을 합해 완창에 정진할 무렵 여름이에게 돌연 위기가 닥쳐왔다.
“공연 20여일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공연날짜도 잡았고 팸플릿도 찍고 여기저기 홍보도 다 해놓았는데 갑자기 여름이가 연습할 때마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헛구역질을 하는데 갈수록 심해지더군요.”
처음에는 뭘 잘못 먹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연습시간 내내 여름이는 구역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쩔 땐 한시간 연습을 하면 스무 번도 넘게 구역질을 했다. 한번씩 구역질을 할 때마다 배를 움켜쥐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렇다고 뭘 토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며칠 남겨둔 공연도 걱정이었지만 소리를 너무 일찍 시켜 몸에 이상 신호가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소아과에 가보니 여름이가 심한 비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콧물이 자꾸 목 뒤로 넘어가서 맹맹한 소리가 나오고, 콧물의 바이러스 때문에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는 것. 이대로 연습을 강행하면 목청을 다치고 평생 허스키한 목소리로 살아야 한다는 경고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일. 3년 동안 공들인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었다. 어떻게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어머니는 여름이를 데리고 한방병원을 찾았다. 우선 공연 때까지라도 더 악화되지 않도록 민간요법을 사용해볼 작정이었다.
“귤껍질, 생강, 대추, 은행 등을 달여 매일 물처럼 마시게 하라고 했어요. 맛도 쌉싸레하고 냄새도 좋지 않았을 텐데 불평 없이 마시더군요.”
그러자 여름이의 구역질 증상이 차츰 가라앉았다. 하지만 예전의 목소리를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높은 소리를 낼 때 시원스럽게 나오지 못하고 갈라져 나왔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 마씨는 그나마 이 정도로 버텨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오히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공연을 포기하지 않고 잘 마무리한 막내딸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지리도 독한 것’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공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여름이가 ‘이제 내일부터 난 뭘 배워야 돼요?’라고 묻더군요.”
4시간 동안의 공연이 힘들고 판소리가 지긋지긋할 텐데 누구보다 먼저 ‘수궁가’ 이후를 궁금해 했다는 여름이. 그런 여름이 모습에서 ‘천상 소리꾼’의 운명을 느꼈다는 어머니는 여름이가 따라준다면 판소리 다섯마당 모두 차례차례 도전해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판소리 역사상 최연소 완창 기록을 세운 길여름양. 110cm의 키에 18kg의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철목’ 여름양이 앞으로 또 어떤 기록에 도전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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