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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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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신인배우상 수상한 이창동·문소리

교사의 길 버리고 감독·배우 된 두 사람의 영화보다 더 재밌는 인생역정

■ 글·이영민 ■ 사진·박해윤 기자, 연합뉴스 제공

2002. 10. 04

제5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오아시스>가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단 3편의 영화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창동 감독, 그리고 세계 영화팬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 신인 여배우 문소리의 가슴 벅찬 수상 소감을 들었다.

세계 최고 권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신인배우상 수상한 이창동·문소리

베니스 영화제 참석 후 귀국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창동 감독과 배우 문소리.

9월10일 오후 1시30분.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후 귀국한 이창동 감독(48)과 배우 문소리(28)가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1백명이 넘는 취재진과 영화감독협회, 영화진흥위원회 회원들, 그리고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이 이들의 귀국을 반겼다. 귀국하기 전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막상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몸싸움이 이어지자 이창동 감독은 시선을 제대로 두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공항 게이트를 나오는 순간부터 수많은 카메라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그를 따라 움직였다. 기자회견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는 결국 손사래를 치며 잠시 담배 한 개피를 필 시간을 구했다. 잠시 숨 좀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그는 특유의 어눌한 어투로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레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말투는 독특하다. 한마디 한마디의 간격이 길어 오래 말한 듯 싶지만 정작 말한 내용은 적다. 긴 여백과 여백 속에 수많은 의미를 담는 절제를 통해 그는 말을 아끼고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묘한 화법을 가지고 있다.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한 일면이기도 하지만, 소설가로서 또 영화 감독으로서 그가 보여주는 응축과 폭발의 박자, 스토리 텔링의 묘미가 말 속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찍는 내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영화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을 영화적으로 아름답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 통할까 하는 회의가 영화를 찍는 내내 들었죠. 영화제에 출품하기는 했지만 큰 기대는 안 했어요. 서양 사람들은 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동서양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보여주는 일은 제 역량 바깥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외국 영화제에서 예상보다 강한 찬사를 받아 놀랍기도 했고 기뻤습니다.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이 말은 의례적인 게 아니고 진심입니다.”
베니스에서 <오아시스>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베니스 영화제는 출품작 마감을 한달이나 연기해주면서 <오아시스>를 경쟁 부문에 초청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사실 한국 영화와 인연이 깊다. <거짓말>(장선우), <섬>(김기덕), <수취인불명>(김기덕)에 이어 <오아시스>까지 한국 영화가 4년 연속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리고 이런 칙사 대접이 무색하지 않게 9월6일 현지에서 열린 기자시사회는 각국 기자들로 거의 만석을 이루었다. 영화 상영 도중 설경구의 연기에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던 기자들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10여초간 큰 박수로 베니스에 온 <오아시스>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기자들은 “Great film”이라며 한국 관계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고, 혹자는 눈물을 닦고 있기도 했다.

“진심으로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계 최고 권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신인배우상 수상한 이창동·문소리
다음날 일반 시사에서는 더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고, 이미 이창동 감독과 문소리는 스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수상식 전날 있었던 비공식 부문에서 <오아시스>는 국제비평가협회상, 미래의 영화상(청년비평가상), 그리고 가톨릭심사위원단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며 본상 수상의 전조를 보이기도 했다. 폐막 겸 수상식이 있던 9월8일, <오아시스>는 결국 감독상과 신인상 부문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는 쾌거를 이룩했다.
“보기 편한 영화도 아닌데 박수도 많이 받았고 현지에서 관심도 많이 받았죠. 박수는 영화제에서야 원래 치는 거니까 단순 비교하는 건 웃기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영화제에 온 관객들이 과연 일반 관객들과 같은 관객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고…. 하지만 배우들에 대한 반응은 열광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남우 주연상은 이탈리아 배우가 탔지만 설경구씨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알 파치노 보다 낫다는 소리도 있었으니까요. 문소리씨도 다른 인물들보다 화제가 됐습니다. 갈 때하고 올 때하고 이미 대우가 달라져 있지 않습니까?(웃음)”
<광복절 특사>의 막바지 촬영으로 설경구는 베니스에 동행하지 못했다. <오아시스>에서 보여준 설경구의 열연은 수상 여부에 상관없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감독의 생각. <박하사탕>에서 보여준 신들린 연기의 이미지를 깨고, 또다시 반푼수로 거듭 태어난 설경구에 대해 이감독은 수상 전부터 극찬을 해왔었다. 그리고 베니스 관객들도 설경구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감독은 이제까지 단 3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 3편의 영화가 모두 국내외적인 관심의 초점이 됐다는 사실은 그의 역량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그는 배우 복도 많은 감독임에 분명하다. 그의 첫 영화 <초록 물고기>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석규가 선뜻 출연을 해주었고, 두번째 영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서는 설경구와 문소리의 신들린 연기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소설가 출신의 감독. 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씨는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한때 고교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연극을 하던 형의 영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연극을 시작,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되어 대구를 떠날 때까지 7년 동안 10여편의 작품을 연출하거나 출연했다.

세계 최고 권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신인배우상 수상한 이창동·문소리
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에 소설 ‘전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 87년까지 소설가와 교사직을 병행했다. 그는 당시 ‘소지’ ‘끈’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 80년대의 아픔을 녹여넣은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그가 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박광수)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 뒤늦게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원작자 임철우와 박감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다 우연찮게 조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설가 출신이라는 기득권에 의지하지 않고 영화판 도제수업의 과정을 제대로 밟아갔다. 당시 그는 소설가로서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방황하던 중 영화로 탈출구를 연 셈이었다.
97년 그는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초록 물고기>의 감독으로 ‘입봉’하게 된다. 조감독 생활 동안 쌓은 친분으로 문성근, 심혜진의 출연을 약속받고, 친구 명계남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었지만 문제는 주연 남자배우였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받는 시나리오마다 거절해버리기로 유명한 ‘왕까탈’ 한석규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의외로 한석규가 출연에 응하면서 영화는 ‘빅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물론 <초록 물고기>가 속칭 대박을 터뜨린 건 아니었지만, 90년대 한국에서 리얼리즘 영화의 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는 감독으로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초록 물고기>는 그해 백상예술대상, 영화평론가상,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제 등 국내 주요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고 20여개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어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년 후인 99년, 그는 설경구, 문소리와 함께 한 한국사 20여년간의 시간 여행 <박하사탕>으로 다시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거머쥐는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단 3편의 영화로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은 감독이 또 있을까? 그에게 소설가라는 이력은 이제 초라해보이기까지 한다.
단 3편의 영화로 일약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라
“소설가인가 영화 감독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라…. 수상과 상관없이 이미 원하든 원치 않든, 나와 맞든 맞지 않든 어느 정도 올 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영화를 할 만한 사람인가’ 하는 회의, 또 ‘나는 영화 감독과 안 어울리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영화 찍는 내내 쫓아다녔던 것은 사실입니다.”
전과 3범으로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사회부적응자, 또는 반푼수로 보이는 남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를 통해 그는 <박하사탕>의 세계와는 고별을 고했다. “뭔가(사회적인 시각)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보지 마라. 이건 그냥 사랑 이야기다”라고 영화 촬영 내내 그는 말했다. 이번엔 오로지 멜로에 충실할 것이라고. 그러나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사의 결을 투영해낸 그의 시선은 영화 <오아시스>에서도 번뜩인다. 사람과 사회가 만나는 그 접점의 긴장 속에서 그의 시선은 사람과 사회, 양자의 내면 깊숙이 침투해간다.
항상 국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그이지만 그 또한 불만은 있다. 무엇보다 흥행의 문제다. 높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이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기엔 겸연쩍은 성적을 낸 탓이다. 때문에 현재 <오아시스>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말에 그는 다소 시니컬하게 답한다.
“흥행에 불이 붙어봤자 큰불이 나겠어요? 꺼지던 불이 잠깐 사는 거겠지. 왜 밖에서 평가해주면 보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실 국제적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은 높아요. 수년 전부터 아시아 영화가 세계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실이죠. 그리고 알 만한 사람들은 아시아 영화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가 한국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요.”
관객들에게 할 이야기는 다음 영화에서 할 것이라며 그는 인터뷰를 마쳤다. 아직 다음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없지만 그는 잠시 쉬면서 또 기다려보겠다고 한다. 때가 되면 노크할 것이라고. 현재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기도 하다.

“수상 사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겁니다”
이감독 못지않게 멋쩍어한 사람이 역시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한 문소리. 여배우답지 않게 그녀는 인터뷰 도중 볼까지 붉게 물들이며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에 애를 먹었다. 평소 자신의 외모에 대해 춘향이역 하기엔 너무 안 예쁘고, 향단이 하기엔 조금 넘치는 애매모호한 수준이라며 헛헛하게 웃을 정도로 수더분하고 털털한 성격인 그녀는 인터뷰 도중에도 그런 소박함을 여과 없이 노출,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베니스에 따라가면서 제가 수상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영화제 끝나면 유럽 여행하려고 유레일 패스 끊어놓고, 민박집도 예약해뒀는데 그거 못 쓰게 돼서 너무 아까워요. 수상하면서 그냥 한국으로 끌려왔죠(웃음).”
문소리에 대한 관심은 수상 전부터 놀랍도록 컸다. 그녀 또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고.
“영어로 말해 서로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웃음), 많은 분들이 제가 실제 장애인인 줄 알았다면서 어떻게 연기해낸 것이냐고 묻더군요. 감독의 연기지도 방식이 어땠는지 등의 질문을 하시고요. 또 ‘아름답지 않게 나오는데 샤론 스톤이나 줄리아 로버츠처럼 아름다운 배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도 받았는데(웃음), ‘여배우라기보다 배우이기 때문에 연기에 성실히 임하고 싶다’고 대답했죠.”
이감독이 세편의 영화만으로 세계적 거장으로 인정받았다면, 문소리는 단 두편의 영화 출연으로 세계적인 여우 반열에 든 케이스. 이번 문소리의 수상은 3대 영화제에서는 87년 강수연이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여배우로는 두번째다. 그녀는 성균관대 교육학과 93학번. 중간고사가 끝나고 우연히 친구와 함께 최민식이 출연한 연극 <에쿠우스>를 본 후 연극에 매료돼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녀는, 대학시절 연극동아리에서 연기활동을 한 것이 경력의 전부다.
그러나 당시 이미 못 말리도록 열정 넘치는 연기자 지망생으로 소문났던 그녀는 판소리를 배운다고 1년 정도 지방에 내려가 있기도 했고, 연극 활동을 위해 1년 동안 대학을 휴학하기도 했다. 이런 그녀의 연기 투혼은 데뷔작 <박하사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주인공의 첫사랑 순임역을 맡은 그녀는 병원에 누워 투병중인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5kg을 감량하기도 했다. 정작 누워 있는 그녀의 얼굴은 단 몇 컷 잡히지 않았지만.
<오아시스>의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역 또한 그녀가 겸손하게 말한대로 스태프와 동료 연기자들이 만들어준 캐릭터는 결코 아니다. 그녀는 이 영화를 위해 두달여 동안 장애인들과 같이 생활하며 배역 준비를 해왔던 것.
“제가 수상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제 시작하는 배우니까 ‘영화가 좋아서 격려받았다’ 정도로 생각하고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상은 뒤로 묻어두고 더 겸손하게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번 영화 <오아시스>의 베니스 영화제 수상은 양적, 질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앞으로 더 좋은 소식이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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