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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actress

다 시, 성 현 아

editor 정희순

입력 2017.01.17 14:52:29

그녀가 광장에 섰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행복한 표정이다.
3년 간의 법정 공방 끝에 무죄 판결을 받고 연극 무대로 복귀한 배우 성현아를 다시 만났다.
다 시,  성  현  아
추위가 잠시 누그러졌던 12월의 어느 날, 배우 성현아(42)를 만났다. 토요일 점심 대학로에는 공연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녀는 지난 12월 15일 막을 올린 연극 〈사랑에 스치다〉의 여자 주인공 ‘은주’역을 맡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서는 연극 무대다. 공연 전 배우들과 합을 맞춰보기 위해 일찌감치 공연장에 나온 그녀는 활짝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 그녀의 첫 번째 공연을 관람했다. 오랜만에 ‘배우’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서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지적이고 도도한 느낌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는데, 이번에 그녀가 맡은 역할은 밝고 쾌활한 성격의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오랜만의 복귀 무대가 많이 긴장됐을텐데도 무대에 오른 그녀의 표정에선 그런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진짜 성현아’의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다.

“연극이 처음이라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연출가께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길 바라셨는데, ‘연기톤’으로 대사를 하는 것보다 그게 몇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아서 연습 중간에 서러움에 북받쳐 운 적도 있어요.”

그녀가 연극 무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건 지난 가을부터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의 소개로 드림시어터컴퍼니의 대표이자 유명 공연연출가인 정형석 씨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오랜 법정공방 끝에 ‘성매매 의혹’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일상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다시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미용실 원장님이 정형석 연출가와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셨어요. 사실 연출가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내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분도 내게 편견을 갖고 계시겠지’ 하면서요.”   



무려 3년이었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그녀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세상에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그녀가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가의 예물과 가방 등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배우 성현아는 온데간데 없고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연예인’이라는 꼬리표만 남았다.

“처음엔 억울하고 황당했어요. 한 번도 나서서 제 입장을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마치 제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변명하는 것처럼 비춰진 거예요. 막판에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변호사님이 제게 ‘결과에만 집중하고 가자’ ‘이대로 끝낼 순 없다’라며 펑펑 우시더라고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로 한 날, 한 인터넷 매체에는 “성현아가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아침부터 판결 소식을 기다렸던 그녀에겐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소식이었다. 해당 기사가 오보였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지만, 그녀에겐 그때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그거 아세요? 정말 기분 나쁜 곳에 가야 하는데, 기자들을 만날까봐 화장대 앞에 앉아 눈썹을 그리고 있는 심정. 제 처지가 그랬어요. 일반인이었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들을 마주해야 했죠. 법원 문을 나설 때 표정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담담하면 담담하다고, 울면 또 운다고 말이 나올 텐데.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참 고되다는 걸 그때 처절하게 느꼈어요.”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참 기뻤겠다고 하자 그녀는 “덤덤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녀의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데 ‘덤덤했다’는 말은 그때의 상황을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원래도 감정 표현을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더구나 이 일은 바라던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와!’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 그땐 이미 너무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3년 간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을 연습하며 살아왔어요. 혹시라도 제 감정 상태가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봐요.”

아이는 성현아가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힘든 싸움을 이어간 이유였다. 그녀는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아이의 엄마로서 당당히 살고 싶다”며 재판에 임하는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그 아이는 이제 곧 만 나이 다섯이 된다. 아이의 나이만큼 성장한 건 엄마 성현아였다.

“보통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고 키운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아요.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을 때 저를 더 강하게 만든 게 아이였으니까요.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제가 계속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제 안에 깊숙이 내재돼 있던 결핍과 외로움들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채워진 느낌이에요.”  



이제, 광장에 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얻은 결론은 그녀가 현재 공연중인 연극에 등장하는 내레이션과도 같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이 약이라는 것. 세상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에도 한결같이 곁에 남아준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연극판은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에요. 배우들의 ‘케미’가 중요하다고 해 얼마 전엔 강원도 원주로 다 같이 캠핑도 다녀왔어요. 고기 굽고 술잔 채우면서 인생 얘기 좀 했죠(웃음). 정형석 연출가가 아빠 같은 존재라면, 저와 호흡을 맞추는 상대 배우 김지완 씨는 ‘큰오빠’ 같은 느낌이에요. 본격적인 공연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이 많은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을까’ 하면서 걱정을 했는데 그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셨거든요.”

그렇게 틈틈이 쌓아온 ‘케미’ 덕분인지 극중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배우들끼리 대사를 치는 장면은 마치 실제 술집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성현아는 “호흡 하나, 맥박 하나까지 표현하는 것이 연기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한데, 아이는 요즘 약간 삐져있는 눈치에요(웃음). 두 달을 꼬박 연극 준비에 몰두하는 바람에 어딜 가든 떼어놓은 적 없던 아이를 잘 챙겨주지 못했거든요. 특히 잠을 혼자 자야 하는 상황이 싫은가보더라고요. ‘엄마 다녀올게’하고 말하면 ‘또 대학로 가?’ 하고 물어요. 태어나서 대학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 말이죠.”

그녀의 뒤에서 묵묵히 도움을 주는 조력자는 또 있다. 바로 영화감독 김기덕이다. 2006년 영화 〈시간〉을 통해 인연이 닿아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아 왔다. 성현아는 지난 10월 개봉한 김 감독의 영화 〈그물〉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제 ‘대나무 숲’이에요. 재판 과정에서 겪은 속상한 일을 하소연하기도 했죠. 복귀를 고민하던 제게 감독님이 먼저 〈그물〉 출연을 권하셨어요. ‘여자가 두 명 나오는데 그중 한 명은 베드신이 나와서 네겐 못 맡긴다’며 농담도 하시더라고요(웃음).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처음엔 많이 망설여졌어요. 제작자를 비롯해 남자 주인공인 배우 류승범 씨에게 괜한 피해를 주게 될까 봐요. 다행히 괜찮다고 해주셔서 출연하게 된 거예요.”

그러고 보면 성현아는 〈사랑에 스치다〉의 ‘은주’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겉으로는 굉장히 강해 보이는데,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상처 받을까 겁을 내고 두려워한다. 극중 은주의 대사이기도 한 질문을 성현아에게 똑같이 던졌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잠깐 망설이던 그녀가 말을 이어나간다.

“잔잔함. 소소함. 무탈함.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이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암초에 부딪치기도 하고 막다른 길을 만난 적도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잡히지 않는 미래의 행복을 꿈꾸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죠. 하루를 보내고 무사히 잠자리에 누웠을 때 느껴지는 감정. 그게 행복이더라고요.”   

성현아는 이제 내일이 두렵지 않다. 오늘 행복하니까. 이게 행복이니까. 그게 성현아니까.


다 시,  성  현  아

사진 홍태식
디자인 이지은




여성동아 2017년 1월 637a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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