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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book #place

노홍철이 왜 하필 책방을?

hjc6183@donga.com

2016. 12. 08

Who

하고 싶은 거 하는 남자

그는 미적 감수성이 뛰어난 아이였다. 다른 건 아무리 해도 안 됐지만 미술 하나만큼은 신기하게도 상을 탔단다. 정체성이 강했던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콘텐츠 삼아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도 CD 플레이어의 상표에 자신의 얼굴을 오려 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액정 화면을 분해해 그 안에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였다. 부모님의 권유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게 됐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개성이 넘치는 아티스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이번에 그가 해방촌에 꽂힌 것도 골목골목 둥지를 틀고 활동하는 아티스트들 때문이었다. 그가 펴낸 책 〈철든 책방〉의 내지 첫 장에는 자필로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글귀를 써넣었다. 이 말은 그의 인생 모토이기도 하다. 돈이나 명예를 좇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바로 노홍철이다.




When

삶의 여유가 필요했을 때





그가 서울 해방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갑작스레 방송에서 하차한 직후였다. 그의 매니저는 분명 마음에 들 것이라며 이곳을 추천했다. 과연 이 오래된 동네는 그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지리적으로는 분명 서울의 중심인데 시골 읍내에 온 것 같은 정겨운 동네 분위기가 반가웠다. 거리에는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서 이야기하고 계시고, 조금 있으면 교복 입은 10대 아이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그 사이를 개성 강한 아티스트 같은 친구들이 작업하다 말고 나온 듯한 앞치마 차림으로 재료를 한 아름씩 들고 오가고, 또 조금 있으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주민들 사이로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은 거짓말처럼 편해졌다. 그렇게 이곳을 매일 드나들다 보니 해방촌 아티스트들과 친분을 쌓게 됐고, 드디어 2016년 5월 중순 무렵 해방촌 아티스트들의 전시 공간으로 ‘철든 책방’을 오픈했다.




Where

또 하나의 책방, 해방촌

그에게 해방촌은 또 다른 의미의 책방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이웃 어르신들을 뵙고 나누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거다. 혹자는 해방촌을 두고 머지않아 상권이 넘어올 동네라서, 또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이라서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노홍철이 생각하는 해방촌의 진정한 장점과 매력은 이런 경제적인 이유에 있지 않다. 그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어치와 무한한 에너지와 오가는 정이 남다른 지역이기 때문이다.  

주소를 알아도 철든 책방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를 따라 찾아가도 그곳엔 붉은 벽돌로 된 낡은 벽이 하나 떡하니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밖에서 봤을 땐 그냥 벽인데 안에 들어서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공간이 펼쳐진다. 철든 책방 자리는 흔히 부동산을 구입할 때 꼭 따져봐야 하는 입지 조건인 모퉁이, 대로변, 역세권 등등 뭐 하나 충족되는 것이 없다. 큰길에서 떨어져 있고, 주차도 안 되고, 마음먹고 찾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곳. 그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 끌렸다. 상업적으로 접근한다는 오해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고, 사람들이 오더라도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What

홍철이 들어 있는 ‘철든 책방’

그는 철든 책방을 이 세상에서 책을 가장 싫어하던 사람이 차린 만만한 책방이라 소개한다. 책과는 평생 담을 쌓고 살던 그가 어느 순간 책에 흥미를 붙이게 됐고, 이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만든 공간이다. 원래 ‘홍철 문고’ ‘홍철 서점’ ‘홍철 책방’ 정도에서 정해볼 요량이었는데 해방촌에서 ‘별책 부록’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이웃의 아이디어로 철든 책방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다. 한동안 방송을 쉬던 그를 지켜본 결과 생각도 많아지고 철이 든 것 같아 보여 떠올린 이름이란다. 노홍철 역시 이곳이 자신이 들어 있는 공간이니 그만한 작명은 없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철든 책방은 노홍철이 있을 때만 문을 연다. 보통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8시 사이인데 이마저도 상시 오픈은 아니니 그의 SNS를 통해 오픈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Why

순례자의 길에서 느낀 독서의 기쁨



방송을 쉬는 동안 그는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순례자의 길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접경 지대를 잇는 약 800여km의 길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그는 알베르게(여행자 숙소)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을 보게 됐다. 본인이 걸었던 여정이 묘사된 장면을 보며 흥미를 붙이다가 전율이 이는 구절을 발견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라는 글귀였다. 다른 때였다면 대수롭지 않았을 저 구절이 그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 잠시 책을 내려 놓고 주위를 돌아봤는데 옆자리에서 어떤 무슬림 아저씨가 명상을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기묘한 상황에 무척 벅찬 감정을 느꼈다. 아, 이런 거구나. 책이 주는 감흥이 이런 거구나. 독서의 기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독서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방 주인이 됐다.




How

처음부터 이곳의 일부였던 것처럼



노홍철은 이곳에 원래 있던 것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왁자지껄하게 판을 벌이는 게 아니라 아지트처럼 조용히, 혹은 처음부터 동네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원했다. 그의 복귀작인 인테리어 관련 예능 프로그램 에서 얻은 해박한 지식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 거기에 옥상까지 갖춘 철든 책방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1층은 책방으로, 2층은 여행지 같은 느낌을 살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마련했다. 화장실에 오래 머무는 그의 생활 습관을 반영하고 침대에 누우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창도 만들었다.  

철든 책방은 대표도, 직원도 노홍철이다. 아직은 초보 책방 주인이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단다. 이곳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서 느낀 감동과 의미를 공유하고 나눌 수 있도록 모든 이들로부터 책을 기부받고 있다.

못 본 새 철이 제대로 든 노홍철을 만나고 싶다면 작정하고 이곳을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제공 벤치워머스
참고서적 철든책방(벤치워머스)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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