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왔다고 터틀넥을 옷장 깊숙이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 이번 시즌 터틀넥은 단순한 보온용 이너 웨어가 아닌 룩의 인상을 좌우하는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한다. 셀린이 강렬한 레드 터틀넥 위에 셔츠와 카디건을 겹쳐 지적인 긴장감을 만들었다면, 뮈글러는 톤 다운된 브라운 계열 하이넥 톱과 스커트 슈트를 한 벌로 연출해 절제된 우아함을 끌어냈다. 보다 관능적인 레이어드 방식도 눈에 띈다. 돌체앤가바나는 경쾌한 파자마 셋업에 이너 웨어로 레이스 시스루 터틀넥을 택하고 오버사이즈 가죽 재킷으로 마무리해 글래머러스한 무드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런가 하면 씨에프씨엘은 시어한 터틀넥 드레스에 셔츠 블라우스와 집업 재킷을 차례로 겹친 올 화이트 룩으로 보다 로맨틱한 해석을 내놓았다. 마음먹기에 따라 터틀넥이 얼마든지 스타일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올 시즌 런웨이에는 ‘셔츠 테트리스’라 부를 만한 장관이 펼쳐졌다. 말 그대로 셔츠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파격적인 레이어드 장면들이 곳곳에서 목격된 것. 서로 다른 분위기의 셔츠를 한 겹씩 더할 때마다 색과 질감이 미묘하게 부딪히며 자유롭고 분방한 태도를 만들어낸다. 모이세스니에토는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에 그레이 셔츠를 겹쳐 입고 데님 팬츠와 트렌치코트로 마무리하는 기지를 보였다. 셔츠 단추는 두어 개 풀고 소매를 슬쩍 걷어 올려 힘을 뺀 듯 무심하게 연출한 것이 포인트. 안셀름 역시 셔츠 레이어링으로 라임과 그레이 컬러 대비를 은근하게 살리고 빈티지 가죽 재킷과 데님 팬츠를 더해 한결 여유로운 스트리트 무드를 완성했다. 셔츠 원피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치카키사다는 스트라이프 셔츠 원피스에 셔츠 집업과 보머 재킷을 연달아 레이어드했고, 아이아유는 셔츠 원피스를 무려 세 겹이나 겹쳐 입어 별다른 디테일 없이도 시선을 붙드는 룩을 연출했다.

스커트와 팬츠를 함께 입는 레이어드 방식인 스칸트(skant) 패션이 여전히 강세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점잖은 셔츠나 재킷, 슬랙스와 결합해 한층 정제된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 예컨대 프라다는 셔츠와 니트 베스트에 복서 팬츠를 매치한 뒤, 그 위에 다시 서스펜더 스커트를 얹는 실험적인 실루엣을 만들었다. 여기에 정갈하게 쓸어 넘긴 슬릭 헤어와 각진 선글라스로 포멀한 무드를 부여했다. 스칼스튜디오는 인디고 데님 슈트에 플레어 미니스커트를 착용해 보다 걸리시한 분위기를 강조했고, 보테가베네타는 두툼한 테리 원피스에 하늘하늘한 오간자 슬랙스를 겹쳐 입어 질감 대비를 통한 변주를 즐겼다. 사카이 역시 부드러운 실크 블라우스에 구조적인 데님 스커트와 팬츠를 믹스 매치하는 방식으로 스칸트 패션을 재해석하고 나섰다. 이 근사한 치마 바지는 이제 독립된 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이번 시즌 보디슈트가 룰 브레이커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옷의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기존의 레이어링 공식을 뒤집는 연출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에베는 셔츠 안이 아닌 바깥으로 보디슈트를 겹쳐 입는 신공을 펼쳤다. 여기에 마치 점퍼 여러 벌을 겹쳐 입은 듯한 집업 디테일의 윈드브레이커로 혼란을 부추겼다. 장폴고티에도 크롭트 후디 위에 보디슈트를 얹은 듯한 구조적인 피스들을 선보이며 이너 웨어의 위계질서를 흔들었다. 에르메스 역시 스포츠 보디슈트와 셔츠, 스카프 위에 다시 브라톱을 더하는 천연덕스러운 레이어링으로 이 흐름에 가세했다. 한편 빅토리아베컴은 단정한 슈트 룩에 셔츠 대신 컷아웃 보디슈트를 매치해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가 해프닝인지, 반란의 시작인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레이어드패션 #셔츠레이어링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모이세스니에토 뮈글러 스칼스튜디오 씨에프씨엘 아이아유 안셀름 장폴고티에 치카키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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