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는 MZ세대를 겨냥해 투앤스킨(2NDSKIN)으로 리브랜딩을 예고하며 ‘속옷은 제2의 피부’라는 철학을 글로벌 무대로 이어가려 한다. 속옷에 화려한 장식이나 몸을 조이는 보정 기능 대신 편안함과 지속 가능성에 무게를 둔 그의 철학은 속옷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K-란제리’를 넘어 ‘K-이지 캐주얼’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는 세컨스킨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안함 속에서 발견하는 자존감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창업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섰어요. 어머니가 의상실을 오래 하셔서 어릴 적부터 동대문 원단 시장과 부자재 시장을 따라다녔거든요. 어머니는 용돈 대신 제가 원하는 옷을 직접 만들어주시기도 했어요. 대학 시절에는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과 작은 브랜드를 만들어 옷을 팔기도 했죠. 처음에는 물건을 떼다 파는 방식이었는데, 직접 제작을 해보고 싶어서 공장을 알아봤지만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할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에 결국 스스로 공장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대학 졸업 후 공장에 취업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종국엔 내 브랜드를 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는 게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어요. 친구들이 대기업에 취업할 때 저는 하루 평균 15시간씩 기계와 씨름하며 원사, 패턴, 염색, 봉제까지 전 과정을 익혔죠. 처음 공장에 들어갈 땐 ‘10년 정도 배우면 내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목표가 명확해서였는지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빨랐어요.

제가 취업했던 곳이 심리스 공정으로 속옷을 만드는 공장이었어요. 그때 처음 여성 언더웨어랑 이지웨어를 접하게 됐죠. 속옷을 위탁 제작해주는 OEM 공장이었는데,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주로 미국이나 남미로 수출됐어요. 그러다 문득 ‘이걸 한국 시장에도 도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세컨스킨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여성 속옷 분야에 진출하게 된 이유예요.
‘세컨스킨’이라는 이름에 담긴 철학은 무엇인가요.
말 그대로 ‘두 번째 피부’라는 뜻이에요. 옷은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편안해야 한다’는 게 제 철학이에요. 몸에 착 감기면서도 입지 않은 듯 가벼운, 천의무봉(天衣無縫·하늘나라 옷처럼 바느질 자국이 없는) 같은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제품을 내놓을 때도 원재료와 내구성을 먼저 생각하고 있어요. 튼튼한 베이스가 있기에 심미적 요소가 빛나는 것이지, 장식은 부차적인 요소예요. 자기 몸을 꾸며내는 보정보다는 본래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옷, 일시적 유행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남석우 대표는 “속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이자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사업 초창기에는 중국 공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현지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외롭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스승과 친구들을 많이 만났죠. 당시에는 작업복이 아니라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직접 공장에 들어가 밤새워 납기를 맞춘 적도 있어요. 다들 불가능하다고 손을 들었던 상황이었는데,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다림질을 하고 새벽에 컨테이너에 물건을 실어 보냈어요. 그때부터 저에 대한 신뢰가 쌓였던 것 같아요. 말로만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기계를 돌리고 제작까지 같이 해내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세컨스킨의 대표 아이템과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대표 아이템으로는 심리스 드레스, 베이식 브라와 팬티가 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직접 패턴을 그린 탱크톱은 해외 수출에서도 큰 성과를 냈죠. 지금까지도 꾸준히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예요. 세컨스킨이 여느 브랜드와 다른 점은 원단을 고르는 방식이에요. 대부분은 완성된 원단 샘플에서 선택을 하지만, 저는 원료인 ‘실’부터 직접 고르고 있어요. 원사의 혼합 비율을 설계해서 원단 자체를 개발하고, 그걸 기반으로 디자인과 생산을 이어가는 거죠. 이렇게 만든 원단은 신축성과 내구성이 좋아서 세탁을 해도 뒤틀림 없이 매끈함을 유지합니다.
또 하나의 차별점은 ‘심리스’와 ‘심실링(seam sealing)’을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거예요. 심리스는 심(옆솔기)이 없는 원통형을 그대로 재직해 한 벌씩 생산하는 방식이고 심실링은 재단끝을 본드로 덮어 붙이는 방식인데, 시장에서는 이 둘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이 차이를 분명히 나눠서 제품에 적용합니다. 그게 세컨스킨만의 디테일이자 자신감이에요.
국내 최초로 심리스 속옷 시장에 도전하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소재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가장 큰 벽이었어요. 당시엔 ‘속옷은 면 100%가 최고’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좋은 나일론은 가격도 비싸고 성능도 뛰어나죠.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제품으로 직접 보여줘야 했어요. 다행히 소비자들이 제품을 경험한 후에는 확연히 다르다고 느끼며 단골이 됐어요. 현재는 30만 명 이상의 누적 고객층을 확보했어요.
스마트 봉제 공장을 직접 구축한 이유는 뭔가요.
개발한 제품들의 카피가 너무 많아 자체 개발실과 공장이 필요했어요. 아이디어를 바로 구현하고 싶어서 비용이 많이 들어도 국내에 스마트 봉제 공장을 세웠죠. 그런데 당시 내수 섬유 제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운영이 쉽지 않았어요. 이 경험을 통해 ‘제조는 혼자 다 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문 공장과 협력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현재는 OEM 협력 체제로 전환해 효율을 높이고 있어요.

3대가 같이 입을 수 있는 컨셉의 브랜드 화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브랜드가 목표
창업 이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죠. 코로나 이후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제조 산업에 어려움이 많아요. IMF도 겪어봤지만 이번에는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오랜 시간 쌓은 기술력과 직원들의 지지가 있으니 반드시 극복할 거라고 믿어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중국에서 7년 가까이 상주하며 일했던 시기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죠. 언어보다도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고, 사실상 주말도 없이 공장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냈거든요. 하나하나 직접 부딪히면서 배웠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단순히 제품을 ‘만든다’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재료가 쓰이고, 어떻게 조립되고,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는지 본질부터 몸으로 익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사업을 하면서도 그 경험이 큰 자산이 됐어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같이 뛰어야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더라고요. 말로만 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실제 제작 과정의 땀과 어려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생긴 것도 그때였죠. 지금도 새로운 아이템이나 브랜드 방향을 정할 때는 늘 ‘본질부터 직접 경험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믿음이 저의 기준이 되었어요.
MZ세대와의 소통도 중요할 텐데요.
최근에 ‘할머니, 엄마, 아이까지 3세대가 함께 입는 속옷’이라는 콘셉트로 화보를 찍었어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죠. 또 유튜브 채널 ‘서구적 사고’를 열어 브랜드의 리브랜딩 과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패션이나 창업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글로벌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요.
그동안 원사이즈 전략으로 전개했지만 앞으로는 해외 시장에 맞춰 사이즈와 컬러를 더 늘릴 계획이에요. 체형이 다양한 해외 고객들에게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려고 2026년 리브랜딩을 계획 중이에요. 단순히 한국의 속옷을 수출하는 게 아니에요. 심리스와 홀가먼트(whole garment·무봉제 방식으로 옷 한 벌을 통째로 만듦) 같은 독창적인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에도 이런 브랜드가 있구나’라는 반응을 끌어내고 싶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비전은 무엇인가요.
궁극적으로는 한국 최초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언더웨어 & 이지웨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에요. 해외에서 “이건 한국 브랜드야”라고 인정받는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그리고 그 성공을 통해 얻은 경험과 자원을 후배 디자이너와 젊은 브랜드에 투자하고,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세컨스킨 #심리스공정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세컨스킨 남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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