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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총기 소지는 곧 ‘자멸’이란 결말이 다행스러워요”

‘트리거’로 돌아온 액션 장인, 김남길

정세영 기자

2025. 08. 26

배우 김남길이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로 필모그래피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절제된 몸짓과 농밀한 감정선으로
완성한 그의 연기에는 작품의 서스펜스와 인물의 깊은 내면까지 공감할 힘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에 불법 총기가 풀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7월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트리거’는 이와 같은 상상에서 시작한다. ‘트리거’는 총기 청정국 대한민국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총기가 배달되는 사건을 전개하는 재난 액션 스릴러다. 각자의 이유로 총을 든 두 남자 이도(김남길)와 문백(김영광)을 중심으로 고시생, 학교폭력 피해자, 자식을 잃은 부모 등 다양한 사정으로 총기를 드는 사람들의 사연을 그린다. 

반응은 뜨겁다. 넷플릭스 투둠(Tudum) TOP 10 웹사이트에 따르면 트리거는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에서 2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등을 포함한 전 세계 45개국 TOP 10 리스트에도 랭크되며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 

‘트리거’의 세계적인 관심은 김남길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김남길이 연기한 이도는 과거 분쟁지역에서 스나이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 절대 총을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의를 위해 다시 총을 쥐어야만 하는 내적 흔들림을 특유의 눈빛으로 그려냈다. 극 중 “총 그만 잡고 싶습니다”라는 절절한 고백처럼, 김남길이 보여준 묵직한 감정선은 극의 깊이를 더하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눈빛과 대사, 액션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그의 섬세하고 진중한 연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 관련 매체들은 “최고의 집중력과 연기력”이라는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드라마 개봉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남길은 “이도가 총을 드는 사람들을 말리는 모습에 작품의 주제 의식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총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는, “‘트리거’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서로에 대해 얼마나 배려하고 양보하면 좋을지, 그런 것들을 놓아버리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 포스터.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 포스터.

“뽐내는 액션이 아니길 바랐어요”

실제 총이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 있나요. 



대본을 보며 어릴 적 총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그때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시기가 아니잖아요. 조금만 감정적으로 변해도, 화가 나도 흥분하게 되죠. 만약 당시 나에게 총이 있었다면 쐈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또 총을 누군가를 응징하는 용도가 아닌, 소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권력적인 부분에 더 큰 의미를 둘 것 같기도 해요. 당시에는 억압되고, 눌려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잖아요. 총을 탈출구 같은 느낌으로 여겼을 것 같아요.

 ‘트리거’를 통해 총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나요.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작가님, 감독님의 이야기와 메시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사실 ‘트리거’를 찍기 전까지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총이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트리거’를 통해 그 인식이 조금 바뀌게 된 것 같아요. ‘총으로 누군가를 사살해 얻는 평화가 의미 있을까’라는 이도의 생각에 공감하게 됐거든요. ‘트리거’를 통해 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죠. 

이도는 특수부대에서 아군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테러 집단의 소년병을 사살했어요. 그 죄책감으로 전역하고 실탄 권총 대신 테이저건을 선호하는 파출소 순경이 됐죠. 그러다 가족 같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잡았습니다. 이도의 선택에 공감이 되나요.  

공감보다는 이도의 근본적인 상처와 아이러니를 안고 가려고 노력했어요. 혼란스러웠던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도는 총이 없는 세상에서 평화를 지키려 애썼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들었고요. 개인적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도구를 가리지 않던 인물이 변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다시 총을 드는 과정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는 장면에서는 이도가 도망가고 싶어 하는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조금 답답하게 와닿기도 했죠. 

경찰서에서 펼쳐진 총격 장면이 화제예요.   

사실 처음에는 경찰서를 난도질하는 콘셉트였어요. 하지만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어 최소한 방어하는 액션을 취했죠. 뽐내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거든요. 경찰서의 동선을 활용해 미로처럼 숨으며 게릴라전을 하듯 연출했어요. 공간의 조도를 낮추고 범인이 자발적으로 총을 내려놓길 바랐는데, 사적 복수에 혈안이 된 인물이라 뜻대로 되진 않았죠. 결국 범인을 죽이는 데까지 이를 수밖에 없었고요. 

‘트리거’에는 주로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의 사연이 등장해요. 이 모습이 마치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땐 절대 아니에요. 누군가를 해치거나 피해를 주는 데는 어떤 서사나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어요. 극 중에서 이도는 ‘사적 복수는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그가 총을 드는 피해자들을 계속해서 말리는 모습을 통해 이와 같은 주제 의식을 표출하거든요. 앞서 말했듯이 ‘트리거’는 총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예요. 우리가 서로에게 배려와 양보를 하지 않으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니까요. 

극 속에서 총을 잡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요. 따로 훈련을 받은 건가요. 

(견착 자세 시범을 보이며) 특수부대 출신을 만나 자문을 받았어요. 예전에는 총을 어깨까지 교착했다면 최근에는 사람 성향에 따라 더 위로 올린 뒤 방향을 재빠르게 바꾼다고 하더라고요. 이와 같은 기본적인 부분을 배운 뒤 이도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죠. 학습한 대로 연기하는 건 이도가 아닌 전문가의 모습을 흉내 내는 거잖아요. ‘이도가 이 상황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총을 들까?’ 등 다양한 상황을 생각하며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발사 동작 등을 조금씩 변형시켰어요. 장면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무술 감독님에게 “저번에 했던 거 말고 다른 거 하자”라며 새로운 합을 구상했고요. 

부상은 없었나요.

액션이 연이어 나왔지만 다행히 부상을 입진 않았어요. 몸을 사리기도 했고요. 이전에는 대역을 거절하고 직접 액션 신을 소화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몸이 너무 달라졌어요. 저는 분명 빠르게 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니터를 보면 기린이 달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느리더라고요(웃음). 또 이제는 겁을 좀 내기 시작했어요. 상대 배우와 합을 많이 맞춘 뒤 촬영에 들어가거든요. 그래야 모두가 안 다치니까요. 그리고 저보다 액션을 잘하는 배우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장혁 형은 정말 날아다닌다니까요. 하하. 

트리거는 배우 김남길과 김영광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총기가 배달되는 사건을 그렸다.

트리거는 배우 김남길과 김영광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총기가 배달되는 사건을 그렸다.

“나만의 트리거 당겨지는 순간 ‘기본 질서 무시할 때’”

공교롭게도 제작발표회를 앞둔 이틀 전에 인천 총기 사고가 발생했어요.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요. 

다들 정말 깜짝 놀랐죠. 전후 사정은 잘 모르지만, 총기 사고가 더 이상 해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총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실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판타지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작품 크랭크업은 작년 7월에 했거든요. 그사이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작품이 공개되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혹시 유사 범죄가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도 작품의 메시지가 명확해서 조금은 안심이 됐어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총을 든다는 건 절대 안 되는 일’이라는 결말로 마무리돼서 다행이었고요.

결말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제작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국가가 개입하는 재난 상황으로 마무리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사람들이 스스로 총기를 반납하고 질서를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죠. ‘사람은 실수를 딛고 자생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이도가 아이를 구하는 장면은 과거에 입은 은혜를 갚는 선택으로 느껴졌어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마음을 담은 결말을 선택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고요. 사람들이 스스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김남길 배우의 트리거가 당겨지는 순간이 있다면요.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 등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는 상황을 봤을 때요. 그런 일을 겪으면 화가 나지만 결국 내 손해로 이어지더라고요. 스스로 화를 내면 도움보다는 자멸에 가까운 것 같거든요. 상대방은 내가 화를 내는 것조차 모를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부분은 일부러 안 보려고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다수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면 제가 총대를 메고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팬 미팅을 5시간이나 할 정도로 수다쟁이로 통해요. 분위기를 띄우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현장이 좀 더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에 분위기를 띄우는 거니까요. 제가 애를 쓰면서 즐거움을 만드는 거면 힘들 텐데 다행히 그러진 않습니다(웃음). 5시간 팬 미팅은 마치 혼자 5시간 떠든 것처럼 알려졌더라고요. 노래도 하고, 팬들과 게임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더해진 시간이에요. 다만 활동 사이사이에 이어진 이야기가 약간 길었을 뿐이죠. 팬 미팅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귀가 후 주무시고 계신 부모님을 깨워서 했습니다(웃음).  

수다쟁이로 보이는 걸 억울해하는 느낌이네요.

약간은요. 수다쟁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말에 힘이 안 먹히는 것 같아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우우~” 이러고···. 진중한 의도에도 힘이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 모든 건 주지훈, 윤경호 배우 때문이에요. 그들이 저를 말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거든요(웃음). 사실 주지훈, 윤경호 배우가 더 수다스러워요. 저는 그들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거든요. 말할 틈을 안 줘요. 하하.

#트리거 #김남길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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