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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그대에게 건배 ‘라모스 핀토 아드리아노 화이트 레세르바’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5. 01. 15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롤랑프티안무, 1945 (왼쪽). 스페인 무희들, 오랑주리미술관, 1921~22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롤랑프티안무, 1945 (왼쪽). 스페인 무희들, 오랑주리미술관, 1921~22

울산의 간절곶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고, 포르투갈 호카곶(Cabo da Roca)은 유럽 대륙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진다. 2018년 이 두 곳을 연결하는 우호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호카곶에 있는 돌탑을 본뜬 상징물을 간절곶에 설치했다.

암사슴들, 오랑주리미술관, 1924 (왼쪽). 춤, 한가람미술관, 1919

암사슴들, 오랑주리미술관, 1924 (왼쪽). 춤, 한가람미술관, 1919

2020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갔다가 서쪽으로 약 42km 떨어진 호카곶에 들렀다. 대서양을 마주한 채 서 있는 돌탑에는 16세기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의 “여기 땅이 끝나는 곳이고 그리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절벽 아래 바다는 가슴이 탁 트이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빨간 등대를 보러 언덕을 오르다 작은 기념품 가게에 이끌리듯 들어섰다. 그곳에서 춤과 관련된 와인을 만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라벨의 컬러감이 꽤 인상적인 ‘라모스 핀토 아드리아노 화이트 레세르바(Ramos Adriano Pinto White Reserva)’. 라모스 핀토는 1880년 아드리아노 라모스 핀토가 설립한 와이너리로, 1990년 루이 로드레가 인수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루이 로드레는 ‘황제의 샴페인’으로 불리는 크리스털로 유명하다.

라모스 핀토 아드리아노 화이트 레세르바

라모스 핀토 아드리아노 화이트 레세르바

라모스 핀토 아드리아노 화이트 레세르바는 포트와인(주정 강화 와인)이다. 일반 와인에 브랜디 등을 추가해 도수를 18도 이상 강화하면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함께 높아져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대개 8℃에서 12℃ 사이로 차갑게 마시며 똑바로 세워서 보관하는 것이 특징이다. 라모스 핀토는 도루강 주변 계곡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고, 화이트 레세르바는 도루 경계 지역의 최고급 화이트와인 품종으로 만들며 7년 정도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라벨에는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맨발로 춤을 추는 3명의 여성이 아르누보 스타일로 그려져 있다. 감각적이고 원숙한 여성미를 드러낸 세 여성을 보는 순간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1883~1956)의 그림 ‘무희들’(1932)이 떠올랐다. 피카소 등 파리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마리는 시인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혼은 독일 화가인 오토 폰 베티엔 남작과 했다. 베티엔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그는 무척 똑똑하고 춤을 잘 추니까”라고 말할 만큼 로랑생은 춤을 사랑했다. 그러나 1914년 신혼여행 중 제1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과 프랑스가 적성국이 되면서 스페인으로 망명했던 두 사람은 결국 이혼하고 마리는 홀로 파리로 돌아왔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마리의 그림도 바뀐다. 초기엔 여성의 얼굴을 각지게 표현했으나 후기엔 부드러운 곡선이 됐다.

‘암사슴들’로 주목을 받은 뒤 마리는 춤추는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무희들’과 ‘춤의 향연’(1937), ‘두 무희’(1940),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무희들’(1941), 발레용 무대미술 ‘풀밭 위의 점심식사’(1945) 등을 그렸다. 몽환적이고 감미로운 그의 그림이 있기까지 수많은 시련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라모스 핀토 아드리아노 화이트 레세르바의 라벨을 보며 마리 로랑생과 그에게 영감을 준 무희들을 떠올려본다.

#와인 #와인과춤 #와인라벨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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