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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강타한 “장충동 왕족발 보쌈~”

김경수(@인문학적개소리) 밈평론가

2024. 01. 10

유튜브 안의 작은 음악 페스티벌, 인간 악기 밈에 대하여.

한 달 전부터 유튜브를 강타한 영상이 있다. 몸매가 다부진 남성이 족발을 한 손에 든 뒤 성악가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장충동 왕족발 보쌈~” 노래를 부르는 것. 영상 아래에는 악보가 자막처럼 흘러나오며 이 남성이 어떤 음으로 부르는지 다 표기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급작스럽게 유튜브의 온갖 계정이 앞다퉈 그의 목소리를 다른 노래에 합성하기 시작했다. “장충동 왕족발 보쌈~”은 크리스마스캐럴이 되기도, 2006년 방영된 일본 TV도쿄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OST ‘질풍가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장충동 왕족발 보쌈~”은 인터넷 밈이 되며 유저 사이에서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장충동 왕족발 보쌈’ 밈으로 유명세를 탄 유튜버 말왕.

‘장충동 왕족발 보쌈’ 밈으로 유명세를 탄 유튜버 말왕.

유명 헬스 유튜버 말왕은 이 밈이 유행하기 전부터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했다.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운동을 쉽고 재밌게 하자’이다. 해외 논문을 기반으로 하되 누구나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운동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구독자 수가 늘자 브이로그나 먹방 등의 영상도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장충동 왕족발 보쌈을 먹을 때마다 “장충동 왕족발 보쌈~” 노래를 부르며 구독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이 노래의 출처는 케이블TV에서 종종 들리던 장충동 왕족발 보쌈 프랜차이즈의 CM송이다. 물론 그의 노래가 인터넷 밈이 될 정도로 퍼진 것은 아니었다. 최근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여러 웃긴 영상을 악보로 그려내는 음악 유튜버 ‘notnoisebutart’가 말왕이 부른 노래에 오케스트라 반주를 입혀 ‘장충동 왕족발 오케스트라’ 영상을 제작했다. 이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퍼지면서 인터넷 밈이 생겼다. 말왕은 이제 장충동 왕족발 보쌈과 ‘장충동 왕족발 보쌈 페스티벌’을 열기로 했다. 이 밈이 유행하는 이유를 아는 이는 없다. 그저 우연히 웃겨서 밈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 밈은 흔히 인간 악기로 불린다. 말 그대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특정 곡을 연주하는 악기로 쓰는 식이다. 인간 악기는 인터넷 밈이 형성된 시기에 나온 가장 고전적인 형식 중 하나다.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 밈은 그 원본인 합성 소스를 재가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개죽이’라든지 ‘심영물’ ‘싱하형’ 등 널리 알려진 인터넷 밈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합성을 어떻게 하느냐다. 인터넷 밈으로 쓸 만한 작품을 내려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대부분 전문가용으로 가격도 비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인터넷 문화의 부흥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는 불법 복제다. 전문가용 프로그램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은 불법 복제자로 인해 크랙이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사진을 보정하는 행위를 ‘뽀샵 한다’고 하는 것도 그 이후다. 음악이나 영상에서도 마찬가지. 유료지만 무료로 쓸 수 있는 음악 편집프로그램 ‘골드웨이브’가 대중화하면서 타인의 말을 음절 단위로 잘라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 문장을 두고, 그 문장에 적혀 있는 단어와 비슷한 음절을 찾아 배열해 그 문장으로 들리게끔 착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흔히 ‘조교’라고 한다. 또 여기에 피치를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 악기 밈은 누구나 노력을 들이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기공룡둘리’의 고길동, 축구선수 호날두 등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활용해 인간 악기 밈을 만들고 있다.

‘아기공룡둘리’의 고길동, 축구선수 호날두 등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활용해 인간 악기 밈을 만들고 있다.

인간 악기의 사례는 다양하다. “장충동 왕족발 보쌈~” 직전에는 주호민의 “재즈란 말이죠~”를 가공한 인터넷 밈이, 그전에는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에서 고길동이 부른 설운도의 ‘나침반’을 가공한 콘텐츠가 유튜브를 휩쓸었다. 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득점할 때마다 하는 ‘호우(라고 부르고 ‘Siu’라 읽는)’ 세리머니도 유명하다.



현재 인간 악기는 마치 틱톡 챌린지처럼 모두가 즐겁게 즐기는 페스티벌로 변모하는 중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인간 악기 밈이 부정적으로 쓰이며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발언을 뱉은 공인의 목소리를 재료로 삼아 그를 조롱하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 정치적 성향이 강한 국대 인터넷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씨’ 등에서 유래한 인터넷 밈이어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베 등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가공한 사례다. 이윽고 박근혜, 이명박, 문재인 등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숙명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인간 악기 밈은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며, 딱히 누군가를 조롱하려는 의도를 지니지도 않는다. 인터넷 유저의 집단지성이 만든 유머의 청정 지역이라 불릴 정도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가 된 것이다.

#장충동왕족발보쌈 #인터넷밈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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