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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rinkology

천편일률 콜라보 맥주, 이제는 그만

오홍석 기자

2022. 12. 13

편의점에 갈 때마다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새로운 콜라보 맥주들. 스타일도 맛도 거기서 거기, 달라진 건 라벨뿐이다. 이제는 편의점에서 참신한 맥주를 맛보고 싶다. 

“양조장들도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입니다. 최근에 젊은 양조사들이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편의점과 계약해 맥주를 납품하려면 양조장 생산 인력과 설비가 대부분 투입돼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반복되는 지루한 공정이 이루어지는데, 개성 있고 독특한 맥주를 만들려고 양조사가 된 친구들은 못 견디는 거죠. 양조장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을 생각하면 편의점에 진출해야 하긴 하는데, 저도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맥주를 만들려고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얼마 전 국내 한 양조장 대표를 만났을 당시 편의점 ‘콜라보 맥주’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기간,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임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이는 주류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마찬가지로 고민에 빠진 국내 맥주 업계는 편의점 내 ‘네 캔 만 원’ 유행에 국내 맥주를 포함해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다. 하지만 해외 맥주 사이에 포위된 인지도 낮은 국내 맥주는 소비자들에게 쉽게 채택되지 못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택한 타계책이 인지도 높은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콜라보 맥주를 출시하는 것이었다. ‘곰표 맥주’를 비롯한 몇몇 상품은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편의점 주류 코너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때 맥주 업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평가받는 콜라보 맥주를 향한 회의의 시선이 업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제 맥주 성공 이끈 콜라보, 이젠 골칫덩이로

한때 맥주 업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평가받는 콜라보 맥주를 향한 회의의 시선이 업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때 맥주 업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평가받는 콜라보 맥주를 향한 회의의 시선이 업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히트작 곰표 맥주는 아는데 곰표 맥주를 실제 만든 양조장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콜라보라면 ‘곰표’ 상호를 보유한 대한제분과 협업해 맥주를 만든 양조장도 있을 텐데 말이다. 곰표 맥주를 만든 ‘세븐브로이’는 이번 콜라보 열풍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양조장이다.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영업이익이 약 1억3000만 원에 불과했던 회사가 지난해 영업이익 약 11억5000만 원을 기록했다.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인지도 상승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증권가에서는 곰표 맥주의 히트에 힘입어 세븐브로이가 상장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 “매출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캔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맥주를 캔에 담는 고가의 캐닝 설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해 군소 양조장의 성장을 돕겠다는 취지로 타사 맥주를 대신 생산하는 주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을 허용했는데, 규제 완화가 도리어 맥주 업계에 독이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은 ‘갑’의 위치에서 주문하고, 군소 양조장은 발주량을 맞추기 바쁜 하청 공장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소비자의 반응도 이전만 못하다. 곰표 맥주 흥행 이후 편의점은 MZ세대가 선호한다는 명목하에 콜라보 맥주를 잇달아 출시하기 시작했다. 구두약, 치약, 과자, 껌, 라면, 골뱅이 통조림 등 기상천외한 조합도 탄생했다. 단순히 유명 기업의 이름만 새겨져 광고판을 연상케 하는 맥주도 등장했다. 편의점을 방문할 때마다 다른 맥주가 냉장고에 앉아 있었다. 맥주 장르 또한 라거, 미국 서부식 IPA, 앰버 라거, 밀맥주에 치우쳐져 있었다. 편의점 씨유(CU)에서 2020~2022년 5월까지 출시한 수제 맥주는 모두 26종인데, 이 가운데 12종은 이미 단종된 상태다.

‘맛’보다는 ‘신선함’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비자 반응이 미지근해지는 건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국내에서 맥주 잘 만든다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이름난 양조장들이 양조사를 해외 연수 보내거나 유명 양조장 근무 경험이 있는 양조사를 영입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해외에서 새롭게 쓰이는 홉 여러 가지를 수입해 조합해보고, 각종 부재료를 첨가해 세상에 없는 맥주를 만드는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양조장들은 짧으면 서너 달, 길게는 2년까지 레시피를 수정해가며 맥주를 만든다. 해외 양조장 중에는 수년에 걸쳐 맥주 한 병을 만드는 곳도 많다.

덩치 커졌으니 이제 다시 기초로

비슷한 콜라보 맥주가 아닌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비슷한 콜라보 맥주가 아닌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1980년대 미국 수제 맥주 시장의 태동은 천편일률적인 대기업 라거 맥주에 대항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맥주 덕후’들에 의해 시작됐다. 그들은 맥주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맛으로 차별화를 꾀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한국 막걸리 업계의 행보도 주목해볼 만하다. 막걸리라고 협업 제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막걸리 업계의 진일보에는 차별화된 맛을 앞세운 양조장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아스파르템 같은 감미료 대신 재료를 고급화했고 색다른 레시피를 개발했다. 생산 단가가 올라감에 따라 가격도 비싸졌지만 젊은 소비자들은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콜라보를 통해 수제 맥주를 판매한 양조장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매출 상승에 힘입어 투자도 적지 않게 받았다. 이제 덩치를 키웠고 여유도 생겼으니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 콜라보에 열광한다는 MZ세대는 사상 최초로 ‘맛으로 술을 먹는 세대’라고 불린다. 콜라보 맥주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콜라보맥주 #수제맥주 #편의점맥주 #여성동아


오홍석의 Drinkology
마시는 낙으로 사는 기자. 시큼한 커피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 안 가리고 찾는다. 술은 구분 없이 좋아하지만 맥주와 위스키를 집중 탐닉해왔다. 탄산수, 차, 심지어 과일즙까지 골고루 곁에 두는 편. 미래에는 부업으로 브루어리를 차려 덕업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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