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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정보라 작가가 모교 상대로 소송 낸 이유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 2022.09.01 16:20:16

4월 8일 정보라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된 후 ‘여성동아’와 인터뷰 하고 있다.

4월 8일 정보라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된 후 ‘여성동아’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시간강사는 비정규직 근로자지만, 대학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니까 차별하겠다는 말이다.”

8월 31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 선 정보라 작가의 외침이다. 4월 그는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 및 수당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21학년도 2학기를 끝으로 2010년부터 이어온 강사직을 그만뒀다. 책 ‘저주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기 수 달 전의 일이다.

그가 11년간 일한 연세대는 정 작가가 학부시절을 보낸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 인문학부 졸업 후, 미국 예일대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번 소송을 통해 모교에 요구하는 것은 노동 시간에 상응하는 퇴직금과 각종 수당이다. ‘여성동아’와의 통화에서 정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2003년부터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례가 지속적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사들은 퇴직금을 받으려면 소송을 걸어야 해요. 이 상황 자체가 비정규직을 향한 차별이죠. 퇴직금뿐 아니라 연차·주휴 수당 등을 인정받는 판례를 만들고 싶어요. 현재 일하고 계신 분들 뿐 아니라 미래에 강사가 되실 분들이 당연한 권리를 보장 받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하는 일입니다.”

그가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변호사 선임 비용을 감안하면 정 작가가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측은 “소송이 진행 중이라 별도의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투쟁하는 소설가’로 불린다. 4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언론의 인터뷰가 쇄도할 때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이동권 보장 시위에 참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차별금지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에도 참여했다. ‘투쟁’은 그의 작품 세계에도 스며있다. 2021년 8월 출간한 ‘그녀를 만나다’의 표제작에는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전역 당한 고(故)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 역시 버려지고, 착취당하는 것들의 모음집이다. 그럼에도 그는 문학의 역할을 ‘즐거움’이라고 설명한다. 4월 8일 ‘여성동아’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수용소에 가면 나치가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직업이래요. 의사와 화학자를 살려둔대요. 꼭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먼저 죽이는 사람은 문학하는 사람이에요. 쓸모없고 말만 많으니까(웃음). 그렇게 1차 관문을 통과해 강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정신적인 생존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었대요. 재미있는 입담으로 현실을 유쾌하게 바꿔서 들려주면 그걸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았던 거죠.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즐거움’인 것 같아요.”



여성동아 2022년 9월 7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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