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투알(etoile),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무용수 박세은(33) 뒤를 따르는 칭호가 됐다. 2021년 6월의 일이다. 박세은(33)은 353년 역사의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16명만 오를 수 있는 수석무용수, 에투알 자리에 올랐다.
박세은이 한국 무용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수상하면서다. 당시 서울예고 1학년이었던 그는 이후 세계 4대 발레 콩쿠르 중 3개(잭슨, 로잔, 바르나)를 석권하며 명성을 떨쳤다. 그가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파리오페라발레단 문을 두드린 것은 2011년. 준단원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세계 최고(最古)의 발레단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이러한 공로를 바탕으로 지난해 언론·문화 부문 인촌상을 최연소로 수상하기도 했다. 8월 12일 그런 그가 인터뷰를 위해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스튜디오를 찾았다. 7월 31일 국내에서 열린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 ‘2022 에투알 갈라’를 마친 지 꼭 2주가 지난 시점이다.
에투알로서는 처음 국내 관객을 만났습니다.
갈라 공연을 굉장히 오래전부터 준비했어요. 한국 관객들에게 제가 몸담고 있는 발레단이 어떤 곳인지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말로 설명하기보다 공연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죠. 준비하는 과정과 공연하는 순간이 모두 재밌고 설레었습니다. 뿌듯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유튜브에 업로드된 짧은 영상을 보고도 “너무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많았거든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에투알로 지명되기도 했고요. 동시에 제게 가장 어려운 작품입니다. 시즌 막바지라 체력이 달렸지만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다음에는 전막(全幕) 공연으로 다시 한국을 찾고 싶어요.
별의 자리 “압박감에서 해방”
1669년 만들어진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세계 최고의 발레단 중 하나다. 역사와 명성뿐 아니라 엄격한 승급 제도로도 유명하다. 발레단 단원 등급은 총 5단계(에투알-프리미에 당쇠르-쉬제-코리페-카드리유)로 이뤄져 있다. 매년 11월 승급 시험이 치러진다. 특히 에투알은 프리미에 당쇠르 중 감독과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선정된다. 뼈를 깎는 고통 속에 오른 에투알인 만큼 그 영예는 크다. 9월 시즌 개막과 함께 열리는 데필레(defile·행진) 행사가 그 서막이다. 파리오페라발레단 단원 모두는 에투알로 데뷔하는 무용수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린다.지난해 데필레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의상과 왕관을 피팅하러 오라고 전달받은 순간부터 생생히 기억나요. 이제야 부르다니, 생각하며 달려갔죠. 제 얼굴만 한 왕관이 준비돼 있었어요.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도 된 것처럼 혼자 왕관을 쓰고 걷는 데필레를 상상했어요. 에투알로서의 첫 데필레에선 150명 정도 되는 발레단 동료 무용수와 에콜 드 당스(발레 스쿨)에 다니는 학생을 합쳐 200여 명이 소리도 질러주고 박수도 쳐줘요. 하우스 전체가 저를 축하해주는 경험이죠. 하지만 실제 데필레 날에는 상상한 만큼 즐기지는 못했어요(웃음). 데필레 후 ‘에튀드’라는 작품을 올렸는데 주인공을 맡아서 춤에 대한 걱정이 앞섰어요.
에투알로서의 첫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랐나요.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느꼈어요. 더 빨리 됐으면 정말 좋았을 거라고 많이 생각했죠(웃음). 꼭 하고 싶은 작품을 고르거나, 자신 없는 작품을 하지 않을 권한이 생겼어요. 모든 게 쉬웠다고 해야 할까요. 그만큼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높아지지만요. 정신적인 자유도 컸어요. 이번 작품에서 잘하면 에투알 노미네이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따라다녔거든요.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워진 거죠.
‘동아일보’에 실린 임세경 소프라노와의 대화에서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에 여유가 없었다. 서른 전에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해방감을 느끼시나요.
성공만을 원했던 건 아니에요. 정상으로 올라가는 게, 에투알이 되는 게 목적은 아니었어요. 다만 캐스팅을 받으려면 우선 승진이 필요했죠. 혹시 그 말을 한 게 언제였나요.
2016년입니다.
아, 당시엔 쉬제(세 번째 등급)였거든요. 아직 프리미에 당쇠르(에투알 전 등급)도 안 됐을 때라 솔리스트(주연) 역할을 조금씩 맡고 있는 정도였어요. 프리미에 당쇠르가 돼야 원하는 춤을 출 수 있겠다고 생각할 때라 빨리 올라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에투알이 되고 나니 압박감이 정말 하나도 없어졌어요.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맡을 수 있으니까요.
승진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들어요. 저뿐 아니라 모든 발레단 무용수들이 겪는 고통이죠. 매년 11월을 위해 1년간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할까요. 휴가 때도 제대로 쉬기 어렵죠. 더구나 발레단 작품도 함께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 2가지를 병행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2014년 ‘발레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뱅자맹 밀피에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며 기존 등급 시스템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승진 시험 제도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발레단이죠. 다른 발레단은 감독 영향력이 커요. 저희는 매년 12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춤을 추고 다수의 표를 받아야 승급이 되는 시스템이죠. 그래서 공정합니다. 저처럼 외국인이, 더구나 파리오페라발레단 스쿨도 나오지 않았는데 에투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제도 덕분이지 않나 싶어요. 물론 모두가 그만큼 고통스럽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박세은은 2011년 다섯 등급에도 속하지 않은 준단원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에투알이 됐다.
밑바닥을 선택한 신(新)천재
2000년대 후반 당시 언론은 세계 발레 콩쿠르를 석권한 박세은을 김연아, 박태환과 함께 ‘신(新)천재’라고 불렀다. 그는 2009년 국립발레단에 특채로 입단해 최연소 주역을 꿰찼다. 하지만 그는 안온한 온실을 벗어나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김용걸 교수와의 만남 때문이다. 김 교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해 주역으로 활동했다.“한예종 3학년 시절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어요. ‘프랑스 춤’을 처음 알게 됐죠. 한국은 기본적으로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러시아 춤, 바가노바 메소드로 교육받거든요. 당시 교수님이 프랑스 스타일로 수업하시는데 반응이 갈렸어요. 저는 푹 빠졌어요. 프랑스 무용수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기 시작했고, 교수님에게 파리오페라발레단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죠. 그렇게 첫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프랑스 춤은 어떻게 다른가요.
“우아한 것 같아요.” “정교한 것 같아요.” “발 사용에 정말 예민해요.” 매번 인터뷰마다 다르게 말했을 거예요(웃음). 한국 공연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것이었어요. 테크닉이 두드러지기보다 춤이 한 편의 영화 같다는 거였죠.
어렵네요.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춤출 때는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잖아요.
느끼는 건가요.
그 느낌이 강하게 와요. 발레를 잘 모르시더라도 실제 무대를 보면 ‘프랑스 춤이구나’ ‘러시아 춤이구나’ 딱 알아요. 그 특징을 명확하게 느낄 수밖에 없어요.
춤출 때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감성적인 부분도 있지만 저는 좀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편입니다. 한 작품을 준비하기 전에 알아야 할 내용이 많아요. 저는 음악과 스토리는 기본이고 창작한 무용수가 이 작품을 만든 의도와 춤추는 이에게 요구하는 것까지 인지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런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올 때 영감이 생기거든요. 연습실에서 나와도 발레 생각은 이어져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제가 하는 예술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멀어질 때 발레가 가진 아름다움이 제대로 드러난다”는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추는 춤이 많이 변했어요. 어렸을 때는 거울을 보며 연습을 많이 했죠. 거울을 통해 본 내 모습에서 라인이나 동작의 정확성에 만족해야 다음으로 넘어갔어요. 테크닉이든 라인이든 모든 게 완벽해야 했죠. 나이 들면서 내가 느끼는 게 더 중요하고 그게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한계는 스스로 알게 되는 거거든요. 그 에너지가 객석에 전달되는 거죠. 연습으로만 될 수 있는 건 아니고, 매번 같지도 않아요. 그래서 거울을 보며 라인을 만들기보다 스스로 체화하는 연습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굉장히 다른 춤이 되더라고요. 그 첫 계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어요.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당시에 클로드 드 불피앙이라는 일흔 살 가까운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항상 가르칠 때 “나는 나이가 많으니까 직접 보여주지는 못해”라며 춤을 보여주세요(웃음).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무리를 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라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그런 거죠. 설명하기가 쉽지 않네요.
배우의 연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는 게, 물려받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세대는 본인의 매력을 발산하는 데 좀 집중하는 편이에요. 세대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대물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70대, 80대 선생님이 계시면 막 달려들어서 캐내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선생님도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가인 누레예프의 파트너였어요. 그의 말을 듣는 건 제게 하나하나가 재산인 거죠. 그런 대물림을 잘 받아서 후배 세대에게도 잘 전달해주고 싶어요.
은퇴 후 한국에 와서 ‘전수’할 계획도 있나요.
아직도 저는 매일매일 배우거든요. 지금도 배울 게 많지만 나중에는 이걸 다 나눠주고 싶죠. 그게 프랑스가 될지, 한국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디에 있건,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국땅에 10년 넘게 살면서 문화 차이도 느꼈을 것 같아요.
가장 놀랐던 건 프랑스 무용수들이 그림도 잘 그리고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다 칠 줄 아는 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러 분야에 많이 열려 있는 교육을 받았구나, 생각했죠. 저는 발레밖에 할 줄 몰랐는데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었어요.
파리에 살며 새로운 취미도 생겼나요.
저희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이거든요. 휴가 때 한국에 들어와서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하면, 손이 굳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피아노는 그래서 포기했고, 제과에 취미를 붙였어요. 제가 만들어놓고 먹지는 않아서 남편이 계속 살찌고 있죠(웃음). 케이크를 만드는 시간엔 발레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돼요. 연습 시간이 끝나도 ‘오늘 연습을 어떻게 했지’ ‘부족한 건 뭐지’ ‘내일은 이걸 해야겠다’ 하면서 계속 머리를 굴리게 되거든요. 그 생각을 차단해보려고 취미를 만들었죠.
“발레가 좋아, 내가 좋아?” 남편이 묻는다
제대로 쉬기 위해서네요. 쉴 때는 어떻게 보내시나요.머리가 쉬어야 몸이 쉬는 거잖아요. 발레 생각을 차단할 때 저는 좀 제대로 쉬는 것 같아요. 가끔은 프랑스 남쪽으로 차를 타고 여행을 가기도 해요. 하지만 집안일도 있고, 빵도 만들어야 하니까 굉장히 바빠요(웃음).
휴가 기간이 따로 있나요.
보통 9월에 시즌을 시작해서 7월 중순에 끝난 뒤, 5주 정도 휴가가 있어요. 무용수 커리어가 짧기 때문에 휴가를 줘도 개인 갈라 공연을 한다든가, 특강을 한다든가 스케줄을 소화하며 보내요.
남은 휴가 기간은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가요.
사실 제가 지금 임신 4개월입니다(웃음). 너무너무 행복해요. 많은 분이 발레리나가 임신과 출산을 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 한국 공연 당시 임신 3개월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임신하면 몸을 조심하는 분도 많지만 프랑스에서는 원하면 마음껏 해보라는 분위기더라고요. 공연을 잘 마쳤으니 내년 1월 출산 때까진 쉬어야죠. 6월쯤 ‘마누엘’이라는 작품으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무용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인간 박세은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도 있나요.
사실 저는 꿈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어요.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이나, 여기서 에투알이 되는 것도 제 꿈은 아니었어요. 항상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했죠. 제게 중요한 건 현재입니다. 오늘 이만큼을 해야 내일 더 나은 모습의 내가 그려지고, 저는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멀리는 잘 못 보는 것 같아요. 진짜 멀리 봐야 앞으로 있을 공연 정도(웃음)? “이제는 뭘 하고 싶냐”고 많이들 질문해주시는데, 잘 모르겠어요. 미리 계획하지는 않는 스타일입니다.
진부한 질문 하나 더 드리면, 박세은에게 발레란 무엇인가요.
진부한 질문이긴 하네요(웃음). 발레는 제게 가장 재밌는 것입니다. 저를 설레게 하고, 계속 생각나고, 계속 알고, 배우고 싶은 삶의 일부분이죠. 가끔 남편이 섭섭한 일이 있으면 “내가 좋아, 발레가 좋아?” 묻곤 해요. 당연히 남편이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망설여지죠(웃음). 그만큼 저는 발레에 정말 진심이에요. 발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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