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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power woman

40대 여성 최초 10대 로펌 대표, 이정란 변호사

문영훈 기자

2022. 07. 11

법조계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꼽힌다. 이정란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가 그 틀을 깼다. 

“파트너급 여성 변호사가 거의 없어요. 롤 모델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이정란(41) 변호사가 2011년 4년 차 시절 ‘법률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까짓 롤 모델, 내가 하면 되지’라고 생각한 것일까. 2022년 1월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이 변호사를 등기 대표로 선출했다. 그는 다섯 명의 대표변호사와 함께 10대 로펌 중 하나인 대륙아주를 이끈다. 대형 로펌에서 40대 여성이 대표변호사로 선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치러진 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44.45%(761명). 매년 전체 합격자 중 절반에 가까운 여성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지만 법조계 피라미드 위로 갈수록 여성의 숫자는 줄어든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법률신문이 2020년 18개 대형 로펌을 상대로 ‘로펌 운영과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한 결과, 주니어 변호사 중 여성 비율은 36.95%, 파트너 변호사 중에서는 12.31%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4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8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법무법인 화우로 자리를 옮긴 이 대표는 2017년 파트너 직책을 단 뒤, 올해 대륙아주에서 대표변호사가 됐다. 6월 7일 만난 이 대표는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기쁘게 생각한다”며 “반짝 있다 사라지지 않도록 대표로서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동갑인 최수연 네이버 CEO와 비견되며 보수적인 법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로펌도 서비스 마인드로 접근해야”

대표변호사라는 직책이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사내 변호사들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의 일원이죠. 로펌은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회사거든요. 이규철 대표님이 경영 총괄을 맡고 다섯 명의 대표변호사가 이를 지원하는 일을 해요. 일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행정 업무를 보기도 하고, 사내 다양한 팀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도 해요.



선출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법조계는 보수적인 편이고 로펌도 마찬가지거든요. 서울대·50대·남자 세 카테고리 중 어느 하나 해당하지 않는 제가 이 길을 뚫었다는 데 뿌듯함이 있어요. 제가 변호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파트너급 여성 변호사는 거의 없었고, 일부 계신 분들도 전관 출신이었거든요. 그래서 5년 후, 10년 후에도 계속 로펌에 남아 있게 될까 생각했어요. 역량보다 큰 자리가 주어져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도 뽑아준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고 더 열심히 해야죠.

어떤 이유일까요.

일단 제가 일을 되게 좋아합니다(웃음).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업무를 넘어 우리 팀, 그리고 회사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했어요. 경영진에 관련 의견을 많이 건의하기도 했고요.

예를 들면요.

로펌도 홍보나 마케팅 업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객을 안정적으로 유치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냈죠.

이 대표는 “최근 법조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네트워크나 변호사 개인의 권위만으로 사건을 수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소위 전관 출신이라든가,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 분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건을 맡아달라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법률 시장이 전문 지식을 상품으로 내놓는 서비스 시장이라는 마인드가 자리 잡았어요. 흔히 ‘법률 서비스’라고 말하잖아요. 변호사가 고객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거죠. 업무 분야도 전문화·고도화돼서 이제는 변호사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건은 많이 줄었어요. 그만큼 협업도 중요해졌죠.”


“경험 넘어선 감수성 갖기 힘들어”

여성 법조인을 향한 시선도 달라지고 있나요. 여성 변호사가 성차별적 발언을 듣는 일도 빈번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초짜’ 때부터 기업의 임원이나 부장을 만날 일이 많았거든요. 어려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에 말투나 옷을 신경 썼죠. 그래서 프릴 달린 옷이나 도트 무늬 옷이 없었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서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고 나니 그런 고민은 사라졌어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인지 변호사 일을 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건에서 배제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누구나 탐낼 만한 사건이 있거든요. 사건 규모가 크다든가, 사회적으로 주요 이슈가 되는 사건 같은 거죠. 10년 전만 해도 상사가 직접적으로 “이 사건은 남자 변호사가 해야지”라는 말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감수성을 가지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물론 책을 읽고 간접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따르죠. 쉬운 예로 저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워킹맘’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이를 낳아보니 왜 힘든지, 어떤 게 필요한지를 알게 됐어요. 법이 천상계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질서나 기준을 현실에서 합의하는 건데, 아무래도 다양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 많이 진출해야 합리적인 결과가 도출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표님은 일과 육아의 밸런스를 어떻게 지키고 계신가요.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많이 봐주세요. 스케줄 조정이 필요할 때는 남편과 상의하고요. 이걸 밸런스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결국 국가가 양육 시스템을 갖춘다든가 법적 지원이 확실하게 뒷받침 되지 않으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거죠.

로펌 차원에서 육아를 돕기 위한 제도는 잘 운영되고 있나요.

대표로서 법이 정한 취지대로 출산·육아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전제 조건이 뒤따라요. 로펌이 고객과의 신뢰, 위임 관계에 기초하다 보니 담당 변호사가 바뀌면 클레임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특정 개인 변호사가 아니라, 담당 팀과 회사가 사건을 케어해준다는 느낌을 줘야 해요. 그런 시스템을 먼저 갖추려고 해요.

1981년 태어난 이 대표는 사법연수원 37기다. 대륙아주의 다른 대표변호사들과 최소 15기수 이상 차이 난다. 그는 대표변호사로서 경영진과 변호사 업무를 막 시작하는 MZ세대 변호사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힘들지 않나요.

저는 주니어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다만 제가 직원 처지에 있다가 경영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다 들어줄 수 없는 측면은 있죠(웃음). 함께 일하는 경영진 선배님들도 귀를 닫고 있는 권위적인 스타일이 아니어서, 제가 제안을 하면 “그래 한번 해봐”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저연차 변호사들의 고민은 뭔가요.

다들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싶은 꿈이 있잖아요. 변호사도 회사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해요. 사건 배당에 신경 써달라든가 팀에서 지원을 해달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하죠.

법조계에서도 전문성이 중요한 화두군요.

10년 전만 해도 변호사 사이에서 제너럴리스트냐 스페셜리스트냐가 이슈였을 만큼 넓고 얇게 알아도 사건을 처리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업무 처리는 기본이고 자신만의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해요.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고 일하라”

이 대표의 플러스 알파는 공정거래 분야다. 초임 변호사 시절부터 관련 업무를 맡아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을 대리해 공정거래 및 경쟁법 관련 사건에서 성과를 냈다. 다수 기업에 대한 자문 업무도 수행했다. 그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재신고사건민간심사위원단에서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분야를 오래 파셨네요.

제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것도 좋아하고요. 공정거래 사건을 맡으면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어요. 같은 담합 사건이라고 해도, 제조업·건설 등 분야마다 상황이 달라요. 한번은 자동차 옵션 관련 사건을 맡았어요. 당시만 해도 제가 차를 국산차, 외제 차, 빨간 차로 분류할 줄만 알아서 서점에서 관련 책을 잔뜩 사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호기심 많은 법조인에게 추천하는 분야입니다.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했죠(웃음). 한 분야를 파서 전문성을 가지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만 해서 괜찮을까 걱정했죠. 이건 계속 반복되는 고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아서 눈 돌릴 틈이 없었어요. 다행히 공정거래를 확장해볼 수 있는 이슈가 계속 생겼어요.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시 투명성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 식이죠.

송사에 엮인 액수가 적지 않을 텐데 부담스럽지 않으셨나요.

액수와 상관없이 모든 사건은 고객에게 중요해요. 사건이 잘 처리돼야한다는 부담은 모든 변호사에게 숙명 같은 거죠. 그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고 하면 이 일을 오래 하기 힘들죠.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셨나요.

일할 때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요. 그리고 스트레스도 받죠(웃음). 그만큼 잘됐을 때 기쁨이 엄청나요. 항상 바라던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실패하면 처음부터 복기를 해요.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이때 의견서를 한 번 더 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서 점차 기준을 잡아가는 것 같아요. 그게 결국에는 노하우가 되는 거죠.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 많은 이들의 고민입니다.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세 가진데요. 첫 번째는 고객이든 상사든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일하라는 거예요. 가끔 뭘 해야 할지를 모른 채 일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고객이나 상사가 원했던 게 빠져 있으면 일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구체적인 디렉션을 파악하고 모르면 묻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해요.

두 번째는 빠른 시간 내로 피드백을 주는 거예요. 일을 받을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다 보면 안 될 수도 있거든요. 방향이 맞는지 틀린지 모를 수도 있고요. 그럴 때 빨리 말해야 해요. 데드라인에 임박해서 상사에게 갖고 갔는데 뭔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서로 힘든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마지막으로는 자원을 잘 활용하라는 거예요. 주변에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혼자 끙끙대지 말고 물어보라고 해요.

후배 여성 변호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 같아요. 여자들은 계속 챌린지에 부딪혀요. 결국 육아 문제가 큰데, 아이가 태어나면 ‘세 살까지는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데 애를 떼놓고 회사를 다녀도 괜찮을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지금 적응을 잘해야 학교를 잘 다닐 텐데’, 이런 생각을 하죠. 사실 남자분들은 그런 고민을 하면서 회사에 다니지는 않거든요. 그럴 때 여자들도 좀 더 담대해졌으면 좋겠어요.

이 대표는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라”고도 당부했다.

“자기 PR이 중요한 시대예요. 100%까지는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도 남자 후배들은 ‘그쪽은 제가 잘합니다’라고 말해요. 반면 여자 후배들은 ‘제가 잘하는 것까진 아니고요’라거나 ‘더 공부해야 합니다’라고 해요. 남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믿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어요.”

#이정란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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