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공포안이 의결됐다. 4월 12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당론으로 채택한 지 꼭 3주 만이다. 그간 검찰·법조계를 비롯한 시민 단체는 검수완박 입법에 가속페달을 밟은 민주당을 거세게 비판했다.
이번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골자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 범죄로 한정하는 등 검찰의 수사 범위를 최대한 좁히는 것.
“검수완박 논쟁에서 국민적인 인권뿐 아니라 아동,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는 보이지 않는다. 형사사법시스템의 기본적인 기능은 법정에서 범죄 혐의를 입증하고 범죄자에게 합당한 형량을 내리는 것인데, 검수완박 논쟁이 이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4월 14일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호사회)는 이러한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1991년 만들어진 여성변호사회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 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검수완박법 시행과 사회적 약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김학자(55) 여성변호사회 회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5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지난 1년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힘없는 약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채 검찰 기능을 더 축소하는 법안 통과가 이뤄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변호사가 모인 단체 대화방이 있어요. 최근 경찰로부터 고소장을 반려당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요. 그만큼 사건이 경찰에 적체돼 있는 거죠. 사건 처리 속도도 너무 느려졌어요. 범죄 사실이 3개 이상이면 1년 넘는 건 기본이죠. 예전에는 이런 경우에 검찰의 통제를 받았어요.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검사가 직접 수사 지휘를 하는 식이었죠. 처음부터 검찰에 고소장을 직접 낼 수도 있었고요. 이제는 지연되는 수사에 제동을 걸 방법이 없어요. 경제적 능력과 시간 여유가 있는 피해자들은 괜찮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수의 사람은 경찰이 고소장을 안 받아주거나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이번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어떻게 보시나요.
제일 황당했던 건 수사 검사가 공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수사 기록만 A4 용지로 500쪽이 넘는 사건이 수두룩해요. 수사 검사 외에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막은 것도 문제죠. 힘없는 사람들이 고소로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해 택하는 방식이 제3자를 통한 고발이거든요.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 대응할 방법이 사라졌으니 고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대법원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9월 검수완박법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요.
고발인에 대한 이의신청권이 보장돼야 해요. 일반 사건 고소장을 검찰이 받아줘야 하고요. 범죄 피해자가 사건 해결에 진척이 없을 때 경찰서에 가서 피해를 호소해봤자 계속 같은 답변만 받게 돼요. 그럼 최소한 검찰에 고소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줘서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찾게 해줘야 한다는 거죠. 사실 피해를 입은 국민 입장에서 경찰이든 검찰이든 그 억울함만 제대로 해소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검찰이 그동안 권한을 남용해 특정인을 겨냥한 표적 수사를 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던 건 사실이죠. 이에 대한 자기반성과 개선 의지도 더뎠어요. 그래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과감하게 제도를 바꾸자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못 바꾸니까. 그래도 (국회의원들이) 공부도 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고 바꿔야죠.
그간 아동·여성 인권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하셨던데요.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인권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에요(웃음). 다만 검사를 그만두면서 삶의 10%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돕는 데 쓰자고 결심했어요.
검사 시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두 사람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한 명은 대학교 새내기 여학생이었는데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그 일로 충격받아 잘 때 이를 심하게 간다고 했어요. 일주일에 마우스피스 3개가 닳아버릴 만큼. 다른 한 명은 성폭력을 당한 아이의 어머니였어요. 한이 맺혀서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몇 년을 매달리셨죠. 제가 의견서나 질의서를 써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두 사건 모두 피의자들은 재판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가요.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죠. 그 당시만 해도 성폭력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일로 치부됐어요.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 진술을 인정받지 못했어요. 너무 절망했죠. 검사를 그만두자마자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로 찾아갔어요. 고문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다짜고짜 말했죠(웃음).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더니 검사로 10년 일했고, 아동 폭력과 관련된 논문을 썼다고 하니 그제야 받아주더라고요.
김 회장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근무하면서 ‘아동 폭력에 대한 형사법적 분석과 입법, 제도적 대책’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동 폭력 범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지침 마련을 포함한 아동폭력법 제정의 필요성을 담은 내용이다. 법복을 벗은 뒤에는 여성변호사회 일원으로 2013년 울산과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 공동변호인단을 맡았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아동 보호 활동을 지속해온 그에게 “아동 폭력과 관련해 법률적으로 미비한 점이 남았는지”를 묻자,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2021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아동·청소년 피해자 진술이 촬영된 영상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별법) 제30조 제6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위헌 판결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피해 아동이 다시 법정에 서게 됐어요. 피의자를 대면하거나 날 선 변호사의 심문에 맞닥뜨려야 하죠. 법무부는 피해자 진술 횟수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어요. 영상 중계 방식 등을 통해 심문하는 간접 심문 방식을 도입하자고도 했고요. 이 역시 나쁘지 않지만 여성변호사회는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있죠.
어떤 방식인가요.
형사소송법에는 공판 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 등 진술 불능 상태에 있을 때 조서나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조항(제314조)이 있어요. 이를 폭넓게 적용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자는 거죠.
헌법재판소는 위헌 판결의 이유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들었습니다.
피해 아동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건 아니에요. 피의자 변호사는 다양한 간접적인 증거를 수집해 진술에 반박할 수도 있고요. 판단은 판사가 하는 거죠. 성인 성폭력 피해자도 공판에서 진술하기를 힘들어하는데 아이들이 겪을 고통은 훨씬 커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 심포지엄도 열고 법무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요.
여성변호사회는 아동뿐 아니라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성폭력특별법 개정안, ‘n번방 방지법’으로 알려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성범죄 피해자의 권익 보호 활동에 힘썼다. 지난해 8월에는 이와 같은 공로로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회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여성변호사회의 또 다른 역할로 여성 변호사들의 역량 강화를 꼽았다. 여성변호사회는 다양한 변호사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중재·금융·IT 등의 분야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기업 사내이사로 추천할 풀도 만들었다. 김 회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직에 어려움을 겪거나 불평등한 업무 배정을 받는 일이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치러진 제11회 변호사 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44.5%입니다. 갈수록 여성 법조인 비율이 늘고 있는데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나요.
최근에야 대형 로펌 내 파트너급(로펌 지분을 가진 변호사) 중 여성 변호사 비율이 10%를 간신히 넘겼어요. 과거에 클라이언트가 남성인 경우가 많았잖아요. 접대 문화도 있었고요. 고객을 상대하기에 여자보다 남자가 더 낫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남아 있어요. 육아 문제를 빼놓을 수 없죠. 초임 여성 변호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로스쿨에 다닐 때만 해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전혀 느끼지 못했대요. 그런데 고용 단계에서 “자녀가 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야근할 수 있냐”는 물음에 직면해야 했대요. 업무 배정에 있어서도, 민사·가사·형사 등 로펌에서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해 10월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는 5년 차 이하 변호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 응답자 중 35.5%가 ‘성별로 인해 근속 가능성에 대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성별로 인해 배정되는 업무 내용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응답한 여성 변호사는 31.3%에 달했다. 같은 질문에 남성 변호사가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10.1%, 9.0%다.
전문직인 변호사가 경력 단절의 위기를 겪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변호사도 경력을 쌓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대개 2~7년 차인데 출산, 육아 기간과 겹치죠. 육아를 한다는 이유로 회사의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해요. 그 기간에 변호사 일을 그만두시는 분도 많고요. 변호사는 일흔이 넘어서도 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나이 지긋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죠.
“구조적 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에 나선 현 정부에도 해줄 이야기가 있나요.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가를 다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이제는 남녀를 막론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는 여성이 차별을 겪는다고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취업과 결혼, 육아의 과정을 통과하며 생각이 바뀐 여성이 많아요.
이와 같은 여성계 반발에도 여성가족부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5월 11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의한다”며 부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구와 가족 문제를 제시했다. 이에 김 회장은 “왜 성평등 문제를 인구·가족 문제와 연결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여성 인력 문제는 국가 경쟁력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인구 대비 여성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10% 이상 부족해요.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성이 경제활동을 통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죠.”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검수완박 #구조적차별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한국여성변호사회
이번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골자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 범죄로 한정하는 등 검찰의 수사 범위를 최대한 좁히는 것.
“검수완박 논쟁에서 국민적인 인권뿐 아니라 아동,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는 보이지 않는다. 형사사법시스템의 기본적인 기능은 법정에서 범죄 혐의를 입증하고 범죄자에게 합당한 형량을 내리는 것인데, 검수완박 논쟁이 이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4월 14일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호사회)는 이러한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1991년 만들어진 여성변호사회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 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검수완박법 시행과 사회적 약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김학자(55) 여성변호사회 회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5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지난 1년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힘없는 약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채 검찰 기능을 더 축소하는 법안 통과가 이뤄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고발 사건, ‘경찰’이 ‘대법원’ 됐다”
그간 사회적 약자가 어떤 피해를 입었나요.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변호사가 모인 단체 대화방이 있어요. 최근 경찰로부터 고소장을 반려당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요. 그만큼 사건이 경찰에 적체돼 있는 거죠. 사건 처리 속도도 너무 느려졌어요. 범죄 사실이 3개 이상이면 1년 넘는 건 기본이죠. 예전에는 이런 경우에 검찰의 통제를 받았어요.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검사가 직접 수사 지휘를 하는 식이었죠. 처음부터 검찰에 고소장을 직접 낼 수도 있었고요. 이제는 지연되는 수사에 제동을 걸 방법이 없어요. 경제적 능력과 시간 여유가 있는 피해자들은 괜찮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수의 사람은 경찰이 고소장을 안 받아주거나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이번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어떻게 보시나요.
제일 황당했던 건 수사 검사가 공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수사 기록만 A4 용지로 500쪽이 넘는 사건이 수두룩해요. 수사 검사 외에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막은 것도 문제죠. 힘없는 사람들이 고소로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해 택하는 방식이 제3자를 통한 고발이거든요.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 대응할 방법이 사라졌으니 고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대법원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9월 검수완박법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요.
고발인에 대한 이의신청권이 보장돼야 해요. 일반 사건 고소장을 검찰이 받아줘야 하고요. 범죄 피해자가 사건 해결에 진척이 없을 때 경찰서에 가서 피해를 호소해봤자 계속 같은 답변만 받게 돼요. 그럼 최소한 검찰에 고소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줘서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찾게 해줘야 한다는 거죠. 사실 피해를 입은 국민 입장에서 경찰이든 검찰이든 그 억울함만 제대로 해소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검찰이 그동안 권한을 남용해 특정인을 겨냥한 표적 수사를 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던 건 사실이죠. 이에 대한 자기반성과 개선 의지도 더뎠어요. 그래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과감하게 제도를 바꾸자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못 바꾸니까. 그래도 (국회의원들이) 공부도 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고 바꿔야죠.
“아동 2차 피해 막는 제도적 방안 필요”
김 회장은 사법연수원 26기 출신으로 1997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인천지검,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등을 거쳤다. 2008년 검사 생활을 그만둔 이후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자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인권위원장 등을 맡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힘써왔다. 여성변호사회 임원으로서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무료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인권 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김 회장은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그간 아동·여성 인권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하셨던데요.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인권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에요(웃음). 다만 검사를 그만두면서 삶의 10%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돕는 데 쓰자고 결심했어요.
검사 시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두 사람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한 명은 대학교 새내기 여학생이었는데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그 일로 충격받아 잘 때 이를 심하게 간다고 했어요. 일주일에 마우스피스 3개가 닳아버릴 만큼. 다른 한 명은 성폭력을 당한 아이의 어머니였어요. 한이 맺혀서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몇 년을 매달리셨죠. 제가 의견서나 질의서를 써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두 사건 모두 피의자들은 재판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가요.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죠. 그 당시만 해도 성폭력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일로 치부됐어요.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 진술을 인정받지 못했어요. 너무 절망했죠. 검사를 그만두자마자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로 찾아갔어요. 고문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다짜고짜 말했죠(웃음).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더니 검사로 10년 일했고, 아동 폭력과 관련된 논문을 썼다고 하니 그제야 받아주더라고요.
김 회장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근무하면서 ‘아동 폭력에 대한 형사법적 분석과 입법, 제도적 대책’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동 폭력 범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지침 마련을 포함한 아동폭력법 제정의 필요성을 담은 내용이다. 법복을 벗은 뒤에는 여성변호사회 일원으로 2013년 울산과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 공동변호인단을 맡았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아동 보호 활동을 지속해온 그에게 “아동 폭력과 관련해 법률적으로 미비한 점이 남았는지”를 묻자,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2021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아동·청소년 피해자 진술이 촬영된 영상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별법) 제30조 제6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위헌 판결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피해 아동이 다시 법정에 서게 됐어요. 피의자를 대면하거나 날 선 변호사의 심문에 맞닥뜨려야 하죠. 법무부는 피해자 진술 횟수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어요. 영상 중계 방식 등을 통해 심문하는 간접 심문 방식을 도입하자고도 했고요. 이 역시 나쁘지 않지만 여성변호사회는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있죠.
어떤 방식인가요.
형사소송법에는 공판 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 등 진술 불능 상태에 있을 때 조서나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조항(제314조)이 있어요. 이를 폭넓게 적용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자는 거죠.
헌법재판소는 위헌 판결의 이유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들었습니다.
피해 아동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건 아니에요. 피의자 변호사는 다양한 간접적인 증거를 수집해 진술에 반박할 수도 있고요. 판단은 판사가 하는 거죠. 성인 성폭력 피해자도 공판에서 진술하기를 힘들어하는데 아이들이 겪을 고통은 훨씬 커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 심포지엄도 열고 법무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요.
“면접에서 ‘결혼 언제 할 거냐’”
한국여성변호사회는 3월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왼쪽). 5월 9일 서울시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 공동업무 협약을 체결한 모습.
올해 회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여성변호사회의 또 다른 역할로 여성 변호사들의 역량 강화를 꼽았다. 여성변호사회는 다양한 변호사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중재·금융·IT 등의 분야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기업 사내이사로 추천할 풀도 만들었다. 김 회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직에 어려움을 겪거나 불평등한 업무 배정을 받는 일이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치러진 제11회 변호사 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44.5%입니다. 갈수록 여성 법조인 비율이 늘고 있는데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나요.
최근에야 대형 로펌 내 파트너급(로펌 지분을 가진 변호사) 중 여성 변호사 비율이 10%를 간신히 넘겼어요. 과거에 클라이언트가 남성인 경우가 많았잖아요. 접대 문화도 있었고요. 고객을 상대하기에 여자보다 남자가 더 낫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남아 있어요. 육아 문제를 빼놓을 수 없죠. 초임 여성 변호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로스쿨에 다닐 때만 해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전혀 느끼지 못했대요. 그런데 고용 단계에서 “자녀가 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야근할 수 있냐”는 물음에 직면해야 했대요. 업무 배정에 있어서도, 민사·가사·형사 등 로펌에서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해 10월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는 5년 차 이하 변호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 응답자 중 35.5%가 ‘성별로 인해 근속 가능성에 대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성별로 인해 배정되는 업무 내용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응답한 여성 변호사는 31.3%에 달했다. 같은 질문에 남성 변호사가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10.1%, 9.0%다.
전문직인 변호사가 경력 단절의 위기를 겪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변호사도 경력을 쌓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대개 2~7년 차인데 출산, 육아 기간과 겹치죠. 육아를 한다는 이유로 회사의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해요. 그 기간에 변호사 일을 그만두시는 분도 많고요. 변호사는 일흔이 넘어서도 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나이 지긋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죠.
“구조적 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에 나선 현 정부에도 해줄 이야기가 있나요.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가를 다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이제는 남녀를 막론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는 여성이 차별을 겪는다고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취업과 결혼, 육아의 과정을 통과하며 생각이 바뀐 여성이 많아요.
이와 같은 여성계 반발에도 여성가족부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5월 11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의한다”며 부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구와 가족 문제를 제시했다. 이에 김 회장은 “왜 성평등 문제를 인구·가족 문제와 연결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여성 인력 문제는 국가 경쟁력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인구 대비 여성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10% 이상 부족해요.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성이 경제활동을 통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죠.”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검수완박 #구조적차별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한국여성변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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