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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홉, 토마토, 맥아로 맥주 만드는 사람들

글 오홍석 기자

2022. 05. 04

재료의 대부분이 ‘수입산’인, 그야말로 무늬만 국산인 맥주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우리 농산물’을 재료로 국내 맥주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이들이 있다. 강원도에서 자란 토종 홉, 감자, 토마토와 군산의 보리로 만든 맥주에선 도대체 어떤 맛이 날까.

수입산 맥주의 급팽창에 대항해 ‘국산’을 강조하는 홍보 마케팅이 점차 늘고 있다. 문제는 국산을 강조하는 맥주 재료의 대부분이 수입산이라는 점. 국내 맥주 회사들 중 많은 수는 외국산 재료를 가지고 양조만 해 팔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두가 맥주의 주재료인 맥아와 홉의 가격이 국산보다 수입산이 저렴해 빚어지는 결과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맥주 재료의 국산화에 힘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도전은 ‘좋은 품질, 지역성이라는 서사로 승부하면 높은 가격에도 소비자가 선택해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독립 자본’과 ‘지역성’이라는 수제 맥주 정신을 계승하는 화제의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우연히 발견한 홉, 상업 재배 성공한 홍천의 협동조합

강원도 홍천은 우연히 발견한 야생 홉의 품종 개량에 성공해 현재 연간 3t을 생산한다.

강원도 홍천은 우연히 발견한 야생 홉의 품종 개량에 성공해 현재 연간 3t을 생산한다.

홉은 맥주의 풍미와 향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다. 특히 홉을 강조하는 장르인 에일 맥주의 경우 홉의 종류에 따라 맥주의 캐릭터가 확연히 갈린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홉은 전무하다시피 한 게 사실. 하지만 원래 한국에서도 홉을 재배했었다.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 강원도에서 주로 재배됐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개마고원에서 홉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농산물 수입 관세가 철폐되면서 국산 홉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최근 국산 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수제 맥주 산업이 성장하며 홉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홉 농사로 주목받는 지역 중 하나는 강원도 홍천이다. ‘사회적협동조합 홍천군 산학플러스사업 추진단’이 토종 홉 개량에 성공에 ‘케이홉스(K-hops)’라고 이름 붙였다. 이전까지 국내 홉 재배는 대부분 외래종 씨앗을 수입해 파종하는 방식이었다. 케이홉스는 유전자 검사 결과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토종 홉임을 인정받았다. 주요 홉 생산국인 미국이 외부 반입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종자를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만의 홉을 갖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케이홉스의 시작은 우연으로부터 출발했다. 2015년 한 농업인이 홍천군 내촌면 야산에서 우연히 야생 홉을 발견한 게 발화점이었다. 홍천군은 2018년부터 강원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발견된 홉을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개량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고 2021년 특허 출원에 성공했다. 현재 8개 농가에서 재배 중이며 연간 생산량은 3t에 이른다.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차에 접어들지만 케이홉스로 생산한 상품의 본격적 판매는 준비 단계에 있다. 케이홉스 관계자는 “주요 양조장과 협업해 자체 맥주를 생산하는 한편, 국내 양조장에 홉을 판매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특산물로 정체성 부각하는 ‘감자아일랜드’

강원도 춘천에 기반을 둔 ‘감자아일랜드’가 양조한 평창 감자를 넣어 만든 ‘포타페일 에일’(왼쪽)과 영월 토마토를 첨가한 ‘토마토로’.

강원도 춘천에 기반을 둔 ‘감자아일랜드’가 양조한 평창 감자를 넣어 만든 ‘포타페일 에일’(왼쪽)과 영월 토마토를 첨가한 ‘토마토로’.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개성 있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도 있다. 그 주인공은 강원도의 두 젊은 창업자가 운영하는 ‘감자아일랜드’다. 이 회사 김규현(28), 안홍준(27) 대표는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전공 수업을 들을 당시 독일과 강원도의 특색을 함께 살린 상품을 만들어오라는 과제물을 받아 들었다. 안 대표는 “단순하게 강원도 하면 감자, 독일 하면 맥주라고 떠올려 감자가 들어간 독일식 맥주를 만들었는데 예상외로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후 맥주에 눈을 뜬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양조 공부를 시작해 올해로 창업 2년 차를 맞았다. 2021년 5월부터 제품 개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맥주 판매를 시작했다.

감자아일랜드의 특징은 지역 특산물을 맥주에 부재료로 첨가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시그니처 맥주인 ‘포타페일에일’에는 평창 감자가 들어간다. 안 대표는 “맥주에 감자는 15%가량 첨가되며, 곱게 간 파우더 형태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감자 함유량을 높여 감자 맛이 더욱 돋보이는 맥주도 출시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소양강 복숭아 맛을 살린 ‘말랑피치사워’와 강원도 영월 토마토를 사용한 ‘토마토로’라는 제품도 있다. 토마토로는 지난달 말 열린 ‘대한민국맥주산업박람회(KIBEX)’에서 첫선을 보였다. 토마토로는 토마토 향이 돋보이는 사워 맥주로 공개 당시 KIBEX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지역 특산물을 맥주에 사용하게 된 계기를 묻자 안 대표는 “수제 맥주 정신에는 지역과의 연계가 강조되는데 한국에선 이 점이 잘 부각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양조장들이 시도하지 않는 방식인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독특한 맥주가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감자아일랜드는 강원도 춘천에서 양조장과 함께 펍을 운영 중이다.

‘보리에서 맥주까지’

전북 군산시는 ‘보리에서 맥주까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농가 재건에 힘쓰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보리에서 맥주까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농가 재건에 힘쓰고 있다.

전북 군산의 ‘군산맥아’는 맥주 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뛰어든 케이스다. 군산시는 ‘보리에서 맥주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보리 재배, 가공, 양조까지 모든 맥주 제조 과정을 시행할 수 있는 설비를 마련했다. 맥주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보리 농가와 전문가들을 연결해 각종 농업 기술 자문을 제공한다. 맥아 가공 설비는 독일에서 수입했다. 맥주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을 모집해 10개월간 양조 교육도 진행했다. 군산 내항은 펍으로 개조해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군산시는 2018년 맥주 사업을 시작해 2020년 12월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군산시가 맥주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주 재배 작물이었던 보리의 생산량이 감소하면서부터다.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는 싹을 틔운 보리를 말한다. 이선우 군산시 먹거리정책과 주무관은 “한국 보리의 주산지는 호남평야였는데, 1980년대 후반 수입 농산물 관세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보리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이전, 군산을 포함한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국산 보리를 구입하던 ‘큰손’은 OB맥주였다.

군산시는 국산 보리 재배 농가를 되살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다 수제 맥주 시장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 이 주무관은 “한국 수제 맥주 산업은 재료를 대부분 수입해서 사용해 농업과의 연계성이 낮다”며 “고품질의 맥아를 재배해 국내 수제 맥주 기업이 국산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스토리를 만든다면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내 주류 대기업 출신으로 사업 초창기부터 군산시에 기술 자문을 해온 김관배 성균관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군산 맥아의 품질은 여느 수입 맥아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주 경쟁국인 미국, 호주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10배가량 비싼 가격은 숙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김관배 교수는 “한국의 농산물이 수입 농산물과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힘들다”며 “좋은 품질, 한국 농부와 상생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고객들에게 설득시키는 데 집중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수제맥주 #국산농산물 #지역성 #여성동아

사진제공 감자아일랜드 군산시 사회적협동조합 홍천군산학플러스사업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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