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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앞에 무릎 꿇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사회구조적 환경 미비가 장애를 만든다”

글 오홍석 기자

입력 2022.04.25 10:30:01

3월28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참석해 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다. 그를 만나 시위에 참석해 사과한 이유, 남은 의정활동 기간 동안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 11일, 시각장애인 김예지(42) 국민의힘 의원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국회 주변은 벚꽃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의원실에 들어가자 김 의원의 분신과도 같은 안내견 조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전 주에 김 의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조이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안내견 학교에 잠시 돌려보낸 것이었다.

여유로운 국회 밖과 달리 의원실 안 김예지 의원은 분주했다. 기자와 잠시 인사를 나눈 뒤 인터뷰 전 짬이 나자 양해를 구하고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점자정보단말기에 손을 올려 빠른 손놀림으로 어떤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전화기를 들어 읽은 문서에 대한 피드백을 수화기 반대편에 전달했다
.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묻자 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정책 공약집 장애인 이동권 관련 내용 중 장애 감수성이 결여된 단어가 있어 수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에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부탁한 일이냐”고 묻자 곧바로 손을 내저으며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에요. 잘못된 단어가 나가면 국민의힘에 대한 편견이 굳어질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는 “스스로 일을 만드는 성격이다 보니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며 “이번 사과도 제가 가만히 있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책임감을 느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 3월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현장에 참석해 “정치권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들이 이런 일을 겪는 것에 정말 죄송하다”며 무릎 꿇고 사과했다. 엄연히 말하면 그의 말대로 비난할 사람은 없었을 터, 그가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석한 진짜 이유를 물었다.

소수의 목소리, 이슈 안 되면 파묻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3월 28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 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참석해 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3월 28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 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참석해 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있다.

지하철역 시위 현장에서 의원님 사과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과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정권,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에 책임감을 느끼고 출근길에 불편을 겪으신 시민들께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장연 시위에 대해 시민들의 반대도 거셌습니다. 시위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특히 높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저는 이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본인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 공감하기 힘들잖아요. 더군다나 지금은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보니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이 아무리 목소리를 크게 내도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다수에게는 들리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번 시위가 화제가 됐지만 장애인들은 지난 오랜 시간 지속해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장애인들이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시민들이 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위 현장에 나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선택이셨을 것 같습니다. 주저하거나 망설이지는 않으셨나요.

망설이면 가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장애인들이 시위를 하게 된 배경에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치권이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점은 논쟁의 주제가 시위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역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방안에 대한 논의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의 5.1% 정도. 미등록 장애인까지 합치면 더 많다. 그럼에도 대중교통 이용 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반면 선진국에선 장애인의 대중교통 사용은 아주 자연스럽다.

미국에서 공부하셨는데,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이 실제 많은가요.

미국을 예시로 들면, 1990년에 미국장애인법(ADA)이 통과됐습니다. 그 법안으로 인해 대중교통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지 않으면 차별로 간주합니다. 영국의 경우에도 평등법이라는 비슷한 법이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이러한 법안이 없어 시설이 미비하다 보니 장애인을 마주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보급률도 96%로 결코 낮지 않고 저상버스도 많이 갖춰져 있다고 하는데요.

시설이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저상버스의 경우, 지난해 12월 본회의에서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폐차되는 차량이 있을 경우 이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를 단순히 시설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또 어떤 문제가 있나요.

시설이 마련돼도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좋은 시각보다는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아직 많습니다. 이런 인식이 장애인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 물리적인 접근성 말고 정보 접근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됐으면 합니다. 장애인 중에는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 시청각장애인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교통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버스 정류장에 가도 어떤 버스가 도착했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을 떠올리시면 될 듯합니다. 장애인 이동권은 단순히 시설 보급률을 높인다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예지 의원은 장애인 이동권의 국내외 역사부터 최근 입법 동향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다방면에 걸쳐 디테일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과연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애인 인권이나 이동권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원래 관심이 많으셨나요.

기자님도 소수자의 삶을 사셨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졌을 겁니다. 장애인 인권, 이동권은 제 인권과 관련된 내용이잖아요. 장애인 인권 문제는 제가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삶에 녹아 있습니다.

정보접근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점자정보단말기에 손을 올리고 글을 읽는 모습.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점자정보단말기에 손을 올리고 글을 읽는 모습.

정치인이 되기 전 김예지 의원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연주회를 열고 강연을 하는 방식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김예지 의원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런 활동으로는 장애인 의제를 해결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느껴서다. 그는 “정치인이 되기 전 의원님을 만나 정책 제안을 하고 정보를 전달해도 문제 해결이 안 된 적이 많았다”며 “주변에 맴돌면서 부탁하기보다는 직접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돼야겠다는 마음에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변화는 임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촉발됐다. 김 의원이 당선인 신분일 당시 안내견인 조이의 국회 본회의장 출입 여부가 이슈가 된 것이다. 그간 국회는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 회의 진행에 방해되는 물건이나 음식물을 반입해서는 안 된다’는 국회법 제148조를 근거로 안내견 출입을 막아왔다. 당시 여야는 초당적 합의를 통해 조이의 본회의장 출입을 허용했다.

김 의원은 “저도 활동가를 해봐서 알지만, 조이의 본회의장 출입 이슈에서 볼 수 있듯 논란거리가 돼야 그간 보이지 않던 차별이 드러나고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주어져요”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그가 국회에 들어온 뒤 점자로 자료를 제공하는 국가기관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열심히 잔소리를 많이 한 결과”다. 김 의원은 지난 2년간 117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활발하게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정 활동의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정치는 할 만하신가요.

쉽지는 않은데 보람 있습니다. 제가 대표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으로 약국에서 점자로 볼 수 있는 약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식품 관련법이나 화장품법 개정안도 준비 중입니다. 임기는 반환점을 돌았지만 다음 총선 기간을 감안하면 저는 1년 반 정도의 시간만 남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주일에 피아노 한번 칠 여유가 없을 정도로 힘들게 보내고 있지만 제대로 시간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의원님이 법안 발의를 위해 다른 의원들을 찾아가면 반응이 어떤가요.

당을 가리지 않고 “이런 사안이 있는지 몰랐다”며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세요. 아직 반대 의사를 표명하신 의원님은 없습니다. 다만 발의를 해도 큰 예산이 드는 사안은 잘 통과가 되지 않고, 통과돼도 예산이 축소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답답하죠.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게 정말 어렵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특히 안타까운 부분은 의사 개진이 필요한 해당 상임위원회에 장애인 의원이 없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이동권 담당 상임위는 국토교통위원회예요. 이슈가 되면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막상 장애인 당사자가 상임위에 없다 보니 관련 사안에 대해 정밀한 의사 개진이 어렵습니다.

장애인이 국회에 조금 더 많았더라면 이동권 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됐을까요.

당연하죠. 여태 대부분의 장애인 국회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만 활동하셨어요. 제가 추천을 통해 최초로 다른 상임위에 들어가게 됐죠. 저는 문화 예술인이었기에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장애인 이슈는 국정 전반에 분포되어 있거든요.

의원님께서 남은 임기 내에 꼭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은 무엇인가요.

너무 많네요(웃음).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현재 이동권에 대해 논의할 때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논의는 뒤로 밀리는 감이 있습니다. 담당 상임위에 당사자가 없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죠. 사람이 이동하는 건 숨 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정보접근권에 대한 논의도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애인도 교육받고 일자리를 얻어야 세금도 내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겠어요. 물리적 접근성만 논할 것이 아니라 지금 국민들께서 관심 가져주실 때 정보접근권에 대한 내용도 같이 논의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인 김예지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제가 혼자 만들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국민 여러분들의 공감과 협력을 통해 연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이상적일 수 있지만 인간이라면 현실에만 국한하지 않고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조금 더 다양함을 이해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다른 편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관용이 존재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는 인터뷰 일주일 전, 김예지 의원실에 사전 질문지를 보냈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득 앞이 보이지 않는 그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마음에 질문지를 잘 확인했는지 물었다. 김 의원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A사 휴대폰을 쓰는데요. A사는 장애인도 보조 기구 없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저 같은 시각장애인도 보이스오버(텍스트를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로 문서를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 A사는 무엇을 특별히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쓸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이게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요.”

인터뷰 중간, “장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추상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의원은 “사회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환경”이라고 답했다. 그는 “99%의 시민이 휠체어를 탔다면 지하철 시위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회구조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환경이 장애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는 곧 사회가 장애인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면 장애는 이상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 된다는 의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며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과 안내견 조이.
2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의원실에 마련된 조이의 자리. 조이가 안내견 학교에 가 있어 야외 사진촬영은 인터뷰 이튿날 이루어졌다.
3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 조이 국회 출입 문제를 예시로 들며 “이슈가 돼야 보이지 않던 차별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예지의원 #장애인이동권 #정보접근권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뉴시스 



여성동아 2022년 5월 7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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