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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Festival

돌아온 봄의 전주, 영화제에서 꼭 봐야할 영화 5

글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입력 2022.04.24 10:30:01

영화인의 대축제 전주국제영화제가 4월 29일 개막한다. 여성동아가 제23회 개최를 기념하며 라인업에 오른 56개국 217개 작품 중 놓치면 후회할 작품 5편을 골랐다.
‘독립’ ‘대안’의 기치 아래 2000년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새로운 영화의 발굴을 통해 국내 시네필(cinephile·영화 애호가)에게 영화적 영토를 확장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올해 제23회 영화제의 경우, 지난 3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된 217편의 작품이 4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세계적인 영화제는 지난 2년여간 오프라인 상영을 최소화하고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는 등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개최를 포기한 영화제도 속출했다. 2020년 봄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아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기도 했다.

끝나지 않는 악재 속에서도 영화제를 이어온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올해 제23회를 맞아 “축제성의 회복”을 선언했다.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참조할 만한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극장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영화는 총 56개국에서 온 217편으로, 지난해 186편에 비해 많이 늘었다. 3000명 객석의 돔 상영이 복구되고 새로운 섹션과 부대 행사가 늘어났다. 올해 개막작은 애플tv+ 시리즈 ‘파친코’로 주목을 모은 감독 코고나다(Kogonada)의 신작 ‘애프터 양(After Yang)’, 폐막작은 프랑스 감독 에리크 그라벨(Eric Gravel)의 ‘풀타임(Full Time)’으로 선정됐다.



그 밖에 눈길을 끄는 특별 섹션은 이창동 감독의 예술 세계를 되짚는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연상호 감독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고른 5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가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를 추모하고 태흥영화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회고전 ‘충무로 전설의 명가 태흥영화사’,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원작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모은 ‘밀란 쿤데라, 문학과 영화 사이’ 등도 영화 팬들의 눈길을 모은다.

방역과 축제가 공존하는 영화제를 위해 온라인 상영도 마련돼 있다. 총 217편의 상영작 중 112편의 장·단편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전주를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면 온피프엔(onfifn.com)에 접속해보자. 아직 모두가 코로나19의 영향권 속에서 지내며 힘든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완연한 봄, 전주 영화의 거리를 오가며 잠시라도 일상성을 되찾는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파친코’ 감독 코고나다의 신작 
애프터 양(After Yang)

감독 코고나다ㅣ개막작

감독 코고나다ㅣ개막작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 벌어지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미국 작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책 ‘양과의 안녕(Saying Goodbye to Yang)’이 원작이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코고나다는 모던한 건축과 서사를 매끄럽게 엮은 데뷔작 ‘콜럼버스’(2017)로 이미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최근 저스틴 전과 함께 연출한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통해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이 두 작품만으로 코고나다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디오 에세이스트 출신의 그는 ‘베리만의 거울’ ‘히치콕의 눈’ ‘브레송의 손’ 등 영화 거장들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시적으로 함축한 영상 에세이로 남다른 미감을 보여줬다. 전주에서 공개될 ‘애프터 양’은 감 좋기로 소문난 제작사 A24(‘미나리’를 만든 바로 그 제작사)의 신작으로,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사랑에도 유물이 있나요
사랑의 고고학(Archaeology of love)

감독 이완민ㅣ한국경쟁

감독 이완민ㅣ한국경쟁

첫 장편 ‘누에치던 방’으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을 받은 이완민 감독의 신작이다. ‘사랑의 고고학’은 만난 지 8시간 만에 연인이 된 영실과 인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8시간 만에 맺어진 사랑이라니, 다소 파격적인 시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이라는 영역만큼 논리를 거스르는 돌발의 장소는 없다.

고고학 연구자 영실은 눈치를 많이 보며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인식은 영실에게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별칭을 붙여 비아냥대지만 영실은 그런 인식에게 집착을 보인다.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두고 “영실이 남긴 사랑의 유물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섬세하게 파고든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쟁 섹션에 초청된 ‘사랑의 고고학’은 공개된 시놉시스만으로도 관심이 기우는 작품이다. 전작 ‘누에치던 방’에서 보여줬던 모호하고 혼란한 연출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을지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

이상일이 들여다보는 인간이라는 우물
유랑의 달(Wandering)

감독 이상일ㅣ월드시네마

감독 이상일ㅣ월드시네마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은 ‘악인’(2010)과 ‘분노’(2016)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악인’이 악의 근원을 묻는 질문을 던진다면, ‘분노’는 응어리진 감정이 영화 속을 내내 떠도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두 작품 모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전주에서 첫선을 보일 ‘유랑의 달’은 나기라 유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대학생 후미가 비를 쫄딱 맞고 서 있는 열 살 소녀 사라사에게 우산을 내밀지만, 어쩐지 사라사는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게 후미는 사라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두 사람은 함께 두 달의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얼마 후 후미는 납치 혐의로 체포된다. 소아성애의 낙인이 찍힌 두 사람은 15년 뒤 재회한다. ‘기생충’ ‘곡성’을 촬영한 홍경표 촬영감독의 참여로 섬세한 빛을 다룬 영상미 역시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

전쟁 시인, 시그프리드 서순의 삶
베네딕션(BENEDICTION)

감독 테런스 데이비스ㅣ마스터즈

감독 테런스 데이비스ㅣ마스터즈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마스터즈 섹션에서는 영국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의 신작이 눈길을 끈다. ‘베네딕션’은 제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 시인 시그프리드 서순의 굴곡진 삶을 조명하는 전기영화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전형적인 전기라기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내러티브 형식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유대계 시인 시그프리드 서순은 ‘역습’ ‘전쟁시’ ‘여우사냥꾼의 추억’ 등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견딘 비참함과 무의미함에 관해 사실적이면서 박력 있는 서정시를 썼다.

테렌스 데이비스는 인간이 경험하는 슬픔을 가장 유려하고 시적인 영상으로 전달할 줄 아는 감독이다. 그는 ‘먼 목소리, 조용한 삶’(1988)에서 아버지로부터의 억압을 즐거운 노래로 견디는 아이러니한 시대적 풍경을 그린 바 있다. 이후 ‘더 딥 블루 씨’(2012), ‘조용한 열정’(2015)을 통해 한 인물의 심연에 진입해 연민과 성찰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세계의 역사가 뒤바뀌는 순간을 유려한 필체로 담아낼 전기영화 ‘베네딕션’을 기대하는 이유다.

연상호, 봉준호가 극찬한 공포영화를 4K로
큐어(Cure)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ㅣ올해의 프로그래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ㅣ올해의 프로그래머

‘부산행’ ‘반도’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 특별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그가 고른 작품은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 가타야마 신조의 ‘실종’,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가 선택됐다.

공포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의 호러 3부작 중 하나인 ‘큐어’(1997)는 단언컨대 가장 느린 템포로, 최고의 공포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한 영감을 ‘큐어’에서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화면은 거의 정지한 듯 움직이고, 스크린 네 귀퉁이 구석진 공간에서는 불온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포커스는 종종 엇나가고 짙은 어둠 속에서 식별하기 힘든 형체가 천천히 움직인다.

바로 이런 연출로 관객들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보면 보다 근원적인 공포와 불안에 잠식된다. 무엇보다 ‘큐어’는 ‘나’와의 대면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더욱 기이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많은 공포영화 단골 레퍼토리인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의 반복과 자극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연상호 감독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공포의 재료로 사용해 끊임없이 관객을 두렵게 한다”고 선정의 변을 밝혔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큐어’는 4K 복원판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코고나다 #구로사와기요시 #여성동아

사진출처 다음영화 전주국제영화제 JanusFilms



여성동아 2022년 5월 7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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