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가 보여주는 검사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영웅의 모습. 영화 ‘내부자들’(2015)에서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정치권과 기업, 언론의 비리 커넥션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거악(巨惡)’으로 비치기도 한다. 영화 ‘더 킹’(2017)에 등장한 한강식(정우성)은 이른바 ‘특수통’ 검사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들과 정보를 거래하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한다. 그렇다면 실제 검사들의 삶은 어떨까.
“영화에서는 직업의 일부분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우리끼리는 검찰을 ‘회사’라고 불러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서류와 씨름하고 사건 관계인에게 전화를 돌리며 보내죠.”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형사부 소속 백가영(31) 검사의 말이다. 전국 검사 중 약 80%는 형사부에 속해 있다. 한 달에 100여 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고 소위 ‘잡범’과 씨름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백 검사는 유능한 회사원이다. 2018년 임용 후 5년 차 검사인 그가 진행한 공판은 지난해 7월 대검찰청의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지청 내에서 야무지게 일 잘하는 검사로 소문났다. 4월 11일 충남 서산시, 대전지검 서산지청 내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책상 위와 캐비닛 속에는 백 검사가 처리할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한 달 평균 150건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일반 형사부 기준으로 사건이 많은 청에서는 한 검사가 200건까지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서류를 봐도 시간이 부족해요. 업무에 치이다 보면 가끔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때마다 초심에 대해 다시 돌아봐요. 검사로 임용되기 전에는 임용이 되기만 하면 이 한 몸 부서져라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웃음).
검사를 꿈꾼 이유는 뭔가요.
법학과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로스쿨에 진학하게 됐어요. 특정 이익을 위해 일하기보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었죠.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검찰 실무 과목을 듣거나 법무연수원에서 검찰 실무 수습을 하며 나와 잘 맞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는 변호사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돈을 벌고자 선택한 일은 아니에요. 검사 월급으로도 생활하기엔 충분하고요. 다만 저희끼리는 “시급이 너무 짠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는 해요. 시간 단위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건 단위로 처리해야 하는 양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야근이 잦거든요.
보통 언제 퇴근하시나요.
매일 달라요. 평균을 내면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8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정말 가끔은 ‘칼퇴’할 때도 있고요(웃음).
일과가 궁금해지네요.
공판 검사와 수사 검사가 다른데요. 수사 검사는 배당받은 사건 기록을 검토해 범죄 혐의 소명에 따라 기소, 불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합니다. 공판 검사는 하루 종일 재판에 들어가 있어요. 공판 검사로 일할 때는 일주일에 나흘은 재판에 들어가죠. 중간중간 비는 시간엔 다음 재판을 체크하고 준비하거나 수사 검사와 상의를 하기도 하고요.
검사를 떠올리면 피의자를 심문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럴 때도 있죠. 대질 조사를 할 때는 고소인과 피의자가 소리치며 싸우는 걸 보기도 합니다. 바쁠 때는 조사가 여러 건씩 한꺼번에 이뤄질 때도 있는데 그러면 정말 정신이 없죠. 피의자가 여러 명인 사건, 가령 조직폭력배 사건이 생기면 검사실이 꽉 찰 때도 있어요.
저에겐 매달 처리하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라 루틴 업무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사건 관계인 처지에서는 인생이 걸린 일이잖아요.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끼죠. 이제 익숙해져서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다만 가끔 상식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힘들죠. 떼를 쓰기도 하고요.
검사에게 떼쓰는 사람도 있나요.
피의자와 고소인의 의견은 대립하기 마련이라 처분이 났을 때 양측 다 만족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러면 항고나 재정신청, 사건 관계인이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죠. 그런데 그런 절차를 안내해도 막무가내로 검사실에 전화해서 계속 따져 묻는 거죠.
인천지방검찰청 형사부에서 공판 검사로 일하다 지난해 2월 서산지청으로 옮겨온 백가영 검사는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수사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2학년 검사(임용 후 두 번째 부임지에 발령받은 검사)지만 서산지청 내에서 “야무지고 똑똑한 검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그가 맡은 공판이 대검찰청의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년간 유흥업소 종사자를 폭행하고 12억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조직폭력배 피의자에 대한 실형 선고를 이끌어냈기 때문. 그는 “재판 단계에서 새로운 쟁점이 부각된 경우”라고 이 사건을 설명했다.
어떤 쟁점이었나요.
참고인과 피의자가 경찰이 강압수사를 했다고 주장했어요. 법리적으로 증거능력이 문제가 됐어요. 공판 과정에서 다시 사건 기록을 보고 사건 담당 형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죠. 다행히 영상 녹화를 해두셨더라고요. 누락된 영상을 디지털포렌식으로 복원해 분석했죠. 결국 수사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밝혀졌죠. 공판 단계에서 형사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검찰과 경찰은 서로 대립 구도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관할 구역 형사님들과는 계속 협력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되기 어려워요. 가령 수사 단계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증거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유죄 입증이 어려워져요. 형사님이 수시로 연락해서 수사 절차나 증거능력 등 법리적인 점에 대한 검토를 부탁해오는 경우가 많죠. 사건 규모가 크거나 언론 관심이 모아진 사건은 수사 초기 단계부터 기록을 같이 보면서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백 검사가 공판을 맡은 또 다른 사건이 3월 15일 자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2020년 12월 충남 서산시 길거리에서 A 씨가 한 여성을 뒤쫓아 가 강제 추행하려다 붙잡힌 사건이다. A 씨는 불구속 기소됐으나 백 검사가 공판 과정에서 A 씨가 기소된 후에도 피해자를 계속 스토킹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지난해 8월 이후 구속된 상태로 공판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는 “사건을 검토하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강제 추행 미수는 사실 큰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CCTV를 확인하니 오싹하더라고요. 피해자가 전속력으로 도망가는데 계속 피고인이 쫓아갔어요. 피고인은 얼굴만 보려고 했다는 둥 피해자 진술을 부인했고요. 피해자 증언을 들어봐야 하는 상황이라 진술서를 보다 보니 피고인이 이전부터 피해자 근처에서 머물렀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직도 피고인이 접근을 한다고 하고요.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피의자를 구인해 최대한 빨리 재판에 세워달라고 요청했죠. 실무관이 새벽에 피의자를 구인하러 가니 피의자의 방에 신체 해부도가 붙어 있기도 했죠.
피의자가 살인 전과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경찰 송치 단계부터 살인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어요. 그런데 30년 전 사건이라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았어요. 국가기록원에 추가로 자료를 요청해 그 살인 역시 길거리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일을 적극적으로 하시네요! 수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쉬운 선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저는 수험생이 아니니까 주어진 서류만 보고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추가적인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니라 다른 검사가 앞서 설명한 사건을 맡았어도 저와 똑같이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나요.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었어요. 은밀하게 벌어진 사건이라 증거는 피해자 진술밖에 없었죠. 피고인은 부인으로 일관해 피고인 심문이나 정황 증거를 찾고자 공판 단계에서 애를 썼거든요. 피해자가 재판이 끝나고 제게 오더니 “검사님이 이 재판을 맡아줘서 너무 든든하다”고 말해줬어요. 검사가 사건에 신경을 쓰는 만큼 피해자도 그걸 느끼고 위안을 얻더라고요. 선고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그랬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갖고 계신 원칙이 있나요.
내가 틀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꼭 해요. 놓치고 있는 걸 떠올려보는 거죠. 저도 사람이니까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최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해서 교차 점검을 해보고, 최대한 실체적 진실에 부합해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끔 하는 거죠.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검사로 남고 싶어요.
교과서 같은 답변이네요. 실제로도 모범생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웃음). 어릴 때부터 튀는 건 별로 안 좋아했어요. 로스쿨에서 검찰심화실무수습 과정을 거치며 공직자로서 검사직에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누군가는 그런 딱딱한 요구를 싫어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게 저와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검찰 조직문화가 보수적이라는 인상이 있어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저희가 경직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검사는 사람의 신병을 다루는 일이잖아요.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사건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검사뿐 아니라 검찰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한번 벌어진 실수가 큰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거죠. 그래도 내부적으로 엄청 수직적이거나 꽉 막혀 있는 조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웃음).
최근 검찰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시행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6대 중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등으로 축소됐다. 20대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임시국회 내 관련 법안 통과를 예고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일선 형사부 검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났어요. 다만 간단한 확인만으로 혐의 판단이 가능한 경우에는 직접 확인하기도 합니다. 보완 수사 지시를 하면 아무래도 사건 처리가 지연되거든요.
수사권 조정 이후 발생하는 애로 사항도 있나요.
지난해 사기 사건 공판을 맡은 일이 있었어요. 참고인이 법정에서 기존 진술을 뒤바꿨어요. 그 과정에서 해당 참고인이 이전 민사소송에서 거짓증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요. 이건 소송사기에 해당되거든요. 과거라면 검사가 그 죄를 인지하고 기소를 할 수 있는데 지난해부터 직접 수사 범위에서 벗어나 못 했죠. 판사님도 “저 사람은 소송사기죄가 명확한 것으로 보이는데 인지 수사해서 기소하시냐” 물었어요. “바뀐 제도하에서는 힘들 것 같다”고 답하자 의아해하셨어요.
소송사기죄의 피해자가 직접 고소할 수 있을 텐데요.
피해자가 매번 법정에 들어오는 게 아니기도 하고, 그런 증언을 들었다고 해서 법리적으로 소송사기죄가 성립된다는 걸 알기 어렵죠. 범죄 성립 가능성을 캐치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고소하게 되면 경찰 처지에선 또 다른 사건이라 처음부터 수사를 되풀이해야 해요. 그렇다고 검사가 피해자에게 경찰에 가서 고소를 하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경찰에서 검사가 고소하라고 한 사건이라고 하면 일종의 압력처럼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범죄를 보고도 눈을 감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검찰 내부에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Q&A 게시판이 있는데 거길 들어가 보니 저와 같은 사례가 많았어요. 아무도 소송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를 책임져주지 않는 거죠.
백 검사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될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면서도 “제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선 검사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검사의 말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변화 방향 자체가 올바르다고 해도 그 속에서 업무 공백이 발생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없어야 하잖아요. 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라는 검사의 중요한 사명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백가영 #검사 #검수완박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영화에서는 직업의 일부분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우리끼리는 검찰을 ‘회사’라고 불러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서류와 씨름하고 사건 관계인에게 전화를 돌리며 보내죠.”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형사부 소속 백가영(31) 검사의 말이다. 전국 검사 중 약 80%는 형사부에 속해 있다. 한 달에 100여 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고 소위 ‘잡범’과 씨름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백 검사는 유능한 회사원이다. 2018년 임용 후 5년 차 검사인 그가 진행한 공판은 지난해 7월 대검찰청의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지청 내에서 야무지게 일 잘하는 검사로 소문났다. 4월 11일 충남 서산시, 대전지검 서산지청 내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책상 위와 캐비닛 속에는 백 검사가 처리할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공익을 위한 법조인이 되고 싶었다”
서류의 양이 만만치 않은데요.한 달 평균 150건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일반 형사부 기준으로 사건이 많은 청에서는 한 검사가 200건까지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서류를 봐도 시간이 부족해요. 업무에 치이다 보면 가끔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때마다 초심에 대해 다시 돌아봐요. 검사로 임용되기 전에는 임용이 되기만 하면 이 한 몸 부서져라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웃음).
검사를 꿈꾼 이유는 뭔가요.
법학과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로스쿨에 진학하게 됐어요. 특정 이익을 위해 일하기보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었죠.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검찰 실무 과목을 듣거나 법무연수원에서 검찰 실무 수습을 하며 나와 잘 맞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는 변호사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돈을 벌고자 선택한 일은 아니에요. 검사 월급으로도 생활하기엔 충분하고요. 다만 저희끼리는 “시급이 너무 짠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는 해요. 시간 단위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건 단위로 처리해야 하는 양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야근이 잦거든요.
보통 언제 퇴근하시나요.
매일 달라요. 평균을 내면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8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정말 가끔은 ‘칼퇴’할 때도 있고요(웃음).
일과가 궁금해지네요.
공판 검사와 수사 검사가 다른데요. 수사 검사는 배당받은 사건 기록을 검토해 범죄 혐의 소명에 따라 기소, 불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합니다. 공판 검사는 하루 종일 재판에 들어가 있어요. 공판 검사로 일할 때는 일주일에 나흘은 재판에 들어가죠. 중간중간 비는 시간엔 다음 재판을 체크하고 준비하거나 수사 검사와 상의를 하기도 하고요.
검사를 떠올리면 피의자를 심문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럴 때도 있죠. 대질 조사를 할 때는 고소인과 피의자가 소리치며 싸우는 걸 보기도 합니다. 바쁠 때는 조사가 여러 건씩 한꺼번에 이뤄질 때도 있는데 그러면 정말 정신이 없죠. 피의자가 여러 명인 사건, 가령 조직폭력배 사건이 생기면 검사실이 꽉 찰 때도 있어요.
“경찰과 대립? 일선에선 협력 관계”
정신적 소모가 클 것 같아요.저에겐 매달 처리하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라 루틴 업무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사건 관계인 처지에서는 인생이 걸린 일이잖아요.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끼죠. 이제 익숙해져서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다만 가끔 상식에서 벗어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힘들죠. 떼를 쓰기도 하고요.
검사에게 떼쓰는 사람도 있나요.
피의자와 고소인의 의견은 대립하기 마련이라 처분이 났을 때 양측 다 만족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러면 항고나 재정신청, 사건 관계인이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죠. 그런데 그런 절차를 안내해도 막무가내로 검사실에 전화해서 계속 따져 묻는 거죠.
인천지방검찰청 형사부에서 공판 검사로 일하다 지난해 2월 서산지청으로 옮겨온 백가영 검사는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수사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2학년 검사(임용 후 두 번째 부임지에 발령받은 검사)지만 서산지청 내에서 “야무지고 똑똑한 검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그가 맡은 공판이 대검찰청의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년간 유흥업소 종사자를 폭행하고 12억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조직폭력배 피의자에 대한 실형 선고를 이끌어냈기 때문. 그는 “재판 단계에서 새로운 쟁점이 부각된 경우”라고 이 사건을 설명했다.
어떤 쟁점이었나요.
참고인과 피의자가 경찰이 강압수사를 했다고 주장했어요. 법리적으로 증거능력이 문제가 됐어요. 공판 과정에서 다시 사건 기록을 보고 사건 담당 형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죠. 다행히 영상 녹화를 해두셨더라고요. 누락된 영상을 디지털포렌식으로 복원해 분석했죠. 결국 수사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밝혀졌죠. 공판 단계에서 형사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검찰과 경찰은 서로 대립 구도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관할 구역 형사님들과는 계속 협력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되기 어려워요. 가령 수사 단계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증거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유죄 입증이 어려워져요. 형사님이 수시로 연락해서 수사 절차나 증거능력 등 법리적인 점에 대한 검토를 부탁해오는 경우가 많죠. 사건 규모가 크거나 언론 관심이 모아진 사건은 수사 초기 단계부터 기록을 같이 보면서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백 검사가 공판을 맡은 또 다른 사건이 3월 15일 자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2020년 12월 충남 서산시 길거리에서 A 씨가 한 여성을 뒤쫓아 가 강제 추행하려다 붙잡힌 사건이다. A 씨는 불구속 기소됐으나 백 검사가 공판 과정에서 A 씨가 기소된 후에도 피해자를 계속 스토킹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지난해 8월 이후 구속된 상태로 공판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는 “사건을 검토하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검사는 엄격해야 하는 직업”
어떤 느낌인가요.강제 추행 미수는 사실 큰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CCTV를 확인하니 오싹하더라고요. 피해자가 전속력으로 도망가는데 계속 피고인이 쫓아갔어요. 피고인은 얼굴만 보려고 했다는 둥 피해자 진술을 부인했고요. 피해자 증언을 들어봐야 하는 상황이라 진술서를 보다 보니 피고인이 이전부터 피해자 근처에서 머물렀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직도 피고인이 접근을 한다고 하고요.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피의자를 구인해 최대한 빨리 재판에 세워달라고 요청했죠. 실무관이 새벽에 피의자를 구인하러 가니 피의자의 방에 신체 해부도가 붙어 있기도 했죠.
피의자가 살인 전과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경찰 송치 단계부터 살인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어요. 그런데 30년 전 사건이라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았어요. 국가기록원에 추가로 자료를 요청해 그 살인 역시 길거리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일을 적극적으로 하시네요! 수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쉬운 선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저는 수험생이 아니니까 주어진 서류만 보고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추가적인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니라 다른 검사가 앞서 설명한 사건을 맡았어도 저와 똑같이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나요.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었어요. 은밀하게 벌어진 사건이라 증거는 피해자 진술밖에 없었죠. 피고인은 부인으로 일관해 피고인 심문이나 정황 증거를 찾고자 공판 단계에서 애를 썼거든요. 피해자가 재판이 끝나고 제게 오더니 “검사님이 이 재판을 맡아줘서 너무 든든하다”고 말해줬어요. 검사가 사건에 신경을 쓰는 만큼 피해자도 그걸 느끼고 위안을 얻더라고요. 선고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그랬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갖고 계신 원칙이 있나요.
내가 틀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꼭 해요. 놓치고 있는 걸 떠올려보는 거죠. 저도 사람이니까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최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해서 교차 점검을 해보고, 최대한 실체적 진실에 부합해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끔 하는 거죠.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검사로 남고 싶어요.
교과서 같은 답변이네요. 실제로도 모범생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웃음). 어릴 때부터 튀는 건 별로 안 좋아했어요. 로스쿨에서 검찰심화실무수습 과정을 거치며 공직자로서 검사직에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누군가는 그런 딱딱한 요구를 싫어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게 저와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검찰 조직문화가 보수적이라는 인상이 있어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저희가 경직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검사는 사람의 신병을 다루는 일이잖아요.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사건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검사뿐 아니라 검찰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한번 벌어진 실수가 큰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거죠. 그래도 내부적으로 엄청 수직적이거나 꽉 막혀 있는 조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웃음).
최근 검찰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시행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6대 중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등으로 축소됐다. 20대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임시국회 내 관련 법안 통과를 예고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일선 형사부 검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일선 검사 의견 반영해달라”
지난해 공판 검사로 일하면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났어요. 다만 간단한 확인만으로 혐의 판단이 가능한 경우에는 직접 확인하기도 합니다. 보완 수사 지시를 하면 아무래도 사건 처리가 지연되거든요.
수사권 조정 이후 발생하는 애로 사항도 있나요.
지난해 사기 사건 공판을 맡은 일이 있었어요. 참고인이 법정에서 기존 진술을 뒤바꿨어요. 그 과정에서 해당 참고인이 이전 민사소송에서 거짓증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요. 이건 소송사기에 해당되거든요. 과거라면 검사가 그 죄를 인지하고 기소를 할 수 있는데 지난해부터 직접 수사 범위에서 벗어나 못 했죠. 판사님도 “저 사람은 소송사기죄가 명확한 것으로 보이는데 인지 수사해서 기소하시냐” 물었어요. “바뀐 제도하에서는 힘들 것 같다”고 답하자 의아해하셨어요.
소송사기죄의 피해자가 직접 고소할 수 있을 텐데요.
피해자가 매번 법정에 들어오는 게 아니기도 하고, 그런 증언을 들었다고 해서 법리적으로 소송사기죄가 성립된다는 걸 알기 어렵죠. 범죄 성립 가능성을 캐치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고소하게 되면 경찰 처지에선 또 다른 사건이라 처음부터 수사를 되풀이해야 해요. 그렇다고 검사가 피해자에게 경찰에 가서 고소를 하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경찰에서 검사가 고소하라고 한 사건이라고 하면 일종의 압력처럼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범죄를 보고도 눈을 감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검찰 내부에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Q&A 게시판이 있는데 거길 들어가 보니 저와 같은 사례가 많았어요. 아무도 소송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를 책임져주지 않는 거죠.
백 검사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될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면서도 “제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선 검사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검사의 말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변화 방향 자체가 올바르다고 해도 그 속에서 업무 공백이 발생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없어야 하잖아요. 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라는 검사의 중요한 사명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백가영 #검사 #검수완박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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