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날로 성장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4조원에서 2019년 20조원으로 5배 커졌다. 온라인 중고 거래 시장을 이끄는 3대장은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이 중에서도 ‘취향을 잇는 거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MZ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번개장터의 성장세가 무섭다. 2019년 이후 지난해까지 거래액 기준 매년 30%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 중고 상품 거래액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최재화 번개장터 최고운영책임자(COO·37)는 이 급격한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맥주 회사 AB인베브 아시아 마케팅 디렉터, 구글 한국지사 유튜브 마케팅 총괄로 일했던 그는 2020년 3월 번개장터를 택했다. 이후 오프라인 매장 ‘브그즈트 랩(BGZT Lab)’ 론칭을 주도하고, ‘지름신’ 대신 ‘파름신’을 내세운 중고 거래 축제 ‘파름제’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번개장터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그가 입사할 당시 번개장터 직원은 5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0명에 이른다. 최 COO를 3월 14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만나 번개장터의 성장과 성공적인 마케터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많은 스타트업이 선택한 방법인데 번개장터는 닉네임 베이스로 일해요. 회사 안에서 사용하는 ‘부캐’라고 할까요. 제게 미팅을 요청할 때는 “제인 미팅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거죠.
번개장터 입사 당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획자 바로 옆에 개발자가 앉아 일하는 문화가 신기하다”고 하셨어요. 회사 규모가 커진 지금도 다양한 직군이 함께 일하는 구조인가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마케터, 서비스 기획자, 개발자 등 다양한 직군이 힘을 합쳐야 하죠. 번개장터에서는 그걸 셀(cell)이라고 부르는데요. 자리 배치도 셀 단위로 하려고 합니다.
번개장터에는 ‘회의는 30분 컷! 결정은 번개같이!’ ‘결정 후엔 네 편 내 편 없이 하나가 되는 편’ 등의 9가지 조직문화 원칙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은 대개 의미 없는 구호로만 남을 때가 많은데 번개장터에서는 잘 지켜지는 편인가요.
직원 평균 연령대가 낮은 편이라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많아요. 이걸 명문화시켜놓은 것은 기존에 번개장터가 갖고 있던 좋은 조직문화를 잘 계승하기 위함이죠. 저희가 지향하는 업무 스타일이 지켜지지 않을 때 피드백도 활발한 편입니다. 같은 주제로 회의를 너무 오래 하거나 그러면 바로바로 지적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반성도 빠르고요.
2020년 3월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번개장터에 들어올 당시 월간활성이용자(MAU)는 240만 명 수준이었습니다. 올해 650만 명의 앱으로 성장했는데,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으신가요.
마케팅팀에게는 200점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새롭게 맡은 역할에 대해 아직 증명해야 할 부분이 있어 70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최 COO는 입사 이후 ‘취향을 잇는 거래’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대중에게 번개장터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21년 2월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오프라인 매장 브그즈트 랩 1호점에는 지난 1년간 21만 명의 고객이 방문해 성공적인 오프라인 마케팅의 사례로 불리고 있다.
2년간 번개장터가 급격히 성장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마케팅만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중고 거래 시장이 확장된 영향이 크죠. 과거에는 이사 갈 때처럼 특수한 경우에만 중고 거래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사실상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번개장터는 전국구 단위로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앱인데 그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죠. 마케팅을 하면서 번개장터의 장점을 강조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어요. 리브랜딩 작업도 했고요.
어떤 리브랜딩을 하셨나요.
번개장터라는 이름으로는 다양한 유저에게 어필하기는 조금 어렵다고 봤어요. 당시 유재석씨가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활동을 하던 때라 번개장터도 여러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캐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먼저 번개장터의 앞 글자를 딴 ‘브그즈트’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영문 이니셜로는 BGJT를 썼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J를 Z로 바꿔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알파벳 Z를 돌리면 번개 모양 같다는 거죠. 그래서 브그즈트(BGZT)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 이름이 Z세대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브랜드를 설명할 때 그런 스토리텔링도 가능하겠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브그즈트 랩이라는 이름의 오프라인 매장이 큰 화제를 불러 모았어요.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구동되는 앱만으로는 번개장터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로 온라인 시장에서 옷을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도 오프라인 쇼룸을 갖고 있잖아요. 비슷한 개념입니다. 서비스를 좀 더 알리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판매량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낼 때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요.
번개장터 앱에서는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다 보니 패션 전문 앱이나 골프 전문 앱보다 전문성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죠.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은 한 카테고리에 집중했어요. 1호점은 스니커즈, 2호점은 나이키 ‘조던’, 3호점은 명품에 초점을 맞췄어요. 앞으로 골프 등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를 반영한 매장을 낼 아이디어도 갖고 있습니다. 입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호점이 2030을 타깃으로 한 더현대 서울에 입점하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생각해요.
한정판 신발의 경우 정가가 20만원대인 제품이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번개장터에서도 스니커즈가 효자상품인데요. 스니커즈 인기의 원인이 뭘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을 탐구하는 시대정신이 확산되고 있다고 봐요. 요즘 세대는 스니커즈뿐 아니라 오디오, 만화 등 각자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그와 관련된 소비를 하는 것에 적극적이죠. 부정적인 사회 현상의 단면일 수도 있어요. 예전처럼 집을 사거나 외제 차를 사기엔 부담이 크니까요. 대신 수백만원에 거래되는 스니커즈를 신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요.
특히 패션 분야에서 중고 거래 시장이 성장한 이유는 뭘까요.
실용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아직도 충분히 쓸 만한 물건이면 과거에 사용된 적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백화점에 가면 50만원을 주고 사야 하는 맨투맨 티셔츠가 있다고 해보죠. 그런데 타인이 몇 번 입지 않고 드라이클리닝까지 거쳐서 거의 새 제품과 다를 바 없는 옷을 25만원에 팔아요. 그러면 굳이 중고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봐요. 과거 ‘아나바다 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주도적으로 한 캠페인이었는데, 이제 환경부 영역이거든요. 아끼고 절약하는 게 재무적인 관점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연관되는 시대입니다.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어떤 기회든 잡아서 다양한 종류의 마케팅을 경험해보길 권해요. 마케팅 업무 중에는 우뇌를 사용하는 창의적인 일도 있지만 좌뇌를 사용해야 하는 업무도 있어요. 오프라인 행사 기획 등 경험 위주 업무가 있다면 데이터를 중요하게 다루는 일도 있는 거죠. 광고부터 브랜딩까지 전체를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업무도 있어요. 자신의 관심사를 빨리 파악하고 관련된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하나하나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Porte Mode’라는 이름의 패션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관심을 커리어로 전환한 경우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컨설팅 펌에 다닐 때 자정을 넘겨서 퇴근하기 일쑤였어요. 퇴근하고 동대문에 자주 갔죠. 거기는 24시간 열려 있으니까(웃음). 그래서 어떤 디자이너가 요즘 뜨고 있는지 그런 걸 꿰고 있었어요. 이후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을 때 동대문 옷을 많이 입고 다녔거든요. 현지 친구들이 어디서 산 옷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좀 자신감을 얻어서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들과 한국 디자이너 옷을 해외 시장에 소개하는 사업을 했었죠.
옷 말고도 관심사가 있다면요.
우선 저는 소비 측면에서 ‘맥시멀리스트(maximalist)’고요(웃음). 특히 술과 음악을 좋아합니다. 예전에 맥주 회사에 입사했을 때 여자가 왜 주류 회사에 가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평소에 맥주 한잔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술이 들어가면 친밀감을 쌓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걸 발전시키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는 거네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찾고 관련한 일에 도전해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길이 거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창업한 패션 회사는 결과만 놓고 보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맥주 회사에 입사해보니 마케터 중에 스타트업 창업 경험을 가진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그래서 신사업 조직을 담당할 기회가 생겼죠. 맥주 회사에서 경험한 음악이나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활동 덕분에 유튜브 한국 마케팅 총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고요.
채용 시장이 얼어붙으며 스타트업과 대기업 중 어디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취업 준비생이 많습니다.
안전하게 일을 배울 수 있는 건 대기업이죠. 체계나 역사 면에서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지 못해요. 기초체력을 쌓을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스타트업은 ‘복불복’이죠. 기업이 성장을 거듭하며 재능 있는 분이 유입되는 곳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훌륭한 팀이 있어도 아이디어가 너무 앞서 나가서 시장의 외면을 받기도 하고요.
좋은 스타트업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보통 일반 기업은 지원자한테 회사가 짜놓은 채용 단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잖아요.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형태죠. 스타트업은 채용 프로세스가 훨씬 유연해요. 지원자가 먼저 “팀에 계신 분들과 커피 챗(coffee chat)을 해볼 수 있을까요”처럼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죠. 직무에 대한 질문을 준비해 면접장에서 물어볼 수도 있어요. 자신이 준비한 질문에 회사 구성원들이 얼마나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지를 보면 회사의 성장 가능성과 업무 환경 등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 COO는 “이직할 때도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은 유명 기업에 비해 공개된 정보가 적어요. 그러니 더 의도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죠.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직할 회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합니다.”
마케터로서 최신 트렌드를 어떻게 파악하시나요.
예전에는 핫한 곳은 직접 다 찾아가 봤어요. 요즘에는 주말에는 좀 쉬어야겠더라고요(웃음). 대신 간접적으로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많이 활용하고요. 특히 유튜브 댓글을 자주 봐요. 댓글을 보면 영상의 시간 좌표까지 찍어주면서 “이 부분이 재밌다” 이런 코멘트가 많은데 그런 걸 보면서 이게 ‘나에게도 재밌나’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주말에도 일을 하는 셈인데 ‘워라밸’은 어떻게 지키시나요.
쉬는 날 업무 관련 알람은 다 꺼둡니다. “쉴 때 연락해도 나는 받지 않는다”는 걸 어필하기도 하고요. 대표님이라도 제게 주말에 연락하면 미안하게끔 분위기를 만들어놓는 거죠. 혹여나 피치 못한 경우 주말에 일을 해야 하더라도 알람이나 업무 처리 시간을 10~15분 이렇게 정해두고 있어요. 주말은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최재화 #번개장터 #취향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최재화 번개장터 최고운영책임자(COO·37)는 이 급격한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맥주 회사 AB인베브 아시아 마케팅 디렉터, 구글 한국지사 유튜브 마케팅 총괄로 일했던 그는 2020년 3월 번개장터를 택했다. 이후 오프라인 매장 ‘브그즈트 랩(BGZT Lab)’ 론칭을 주도하고, ‘지름신’ 대신 ‘파름신’을 내세운 중고 거래 축제 ‘파름제’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번개장터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그가 입사할 당시 번개장터 직원은 5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0명에 이른다. 최 COO를 3월 14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만나 번개장터의 성장과 성공적인 마케터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회의는 30분 컷, 자리 배치는 셀 단위로
회사에서 ‘최재화 COO님’이라고 불리나요. 입에 잘 붙지 않는 호칭입니다.많은 스타트업이 선택한 방법인데 번개장터는 닉네임 베이스로 일해요. 회사 안에서 사용하는 ‘부캐’라고 할까요. 제게 미팅을 요청할 때는 “제인 미팅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거죠.
번개장터 입사 당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획자 바로 옆에 개발자가 앉아 일하는 문화가 신기하다”고 하셨어요. 회사 규모가 커진 지금도 다양한 직군이 함께 일하는 구조인가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마케터, 서비스 기획자, 개발자 등 다양한 직군이 힘을 합쳐야 하죠. 번개장터에서는 그걸 셀(cell)이라고 부르는데요. 자리 배치도 셀 단위로 하려고 합니다.
번개장터에는 ‘회의는 30분 컷! 결정은 번개같이!’ ‘결정 후엔 네 편 내 편 없이 하나가 되는 편’ 등의 9가지 조직문화 원칙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은 대개 의미 없는 구호로만 남을 때가 많은데 번개장터에서는 잘 지켜지는 편인가요.
직원 평균 연령대가 낮은 편이라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많아요. 이걸 명문화시켜놓은 것은 기존에 번개장터가 갖고 있던 좋은 조직문화를 잘 계승하기 위함이죠. 저희가 지향하는 업무 스타일이 지켜지지 않을 때 피드백도 활발한 편입니다. 같은 주제로 회의를 너무 오래 하거나 그러면 바로바로 지적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반성도 빠르고요.
2020년 3월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번개장터에 들어올 당시 월간활성이용자(MAU)는 240만 명 수준이었습니다. 올해 650만 명의 앱으로 성장했는데,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으신가요.
마케팅팀에게는 200점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새롭게 맡은 역할에 대해 아직 증명해야 할 부분이 있어 70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최 COO는 입사 이후 ‘취향을 잇는 거래’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대중에게 번개장터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21년 2월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오프라인 매장 브그즈트 랩 1호점에는 지난 1년간 21만 명의 고객이 방문해 성공적인 오프라인 마케팅의 사례로 불리고 있다.
2년간 번개장터가 급격히 성장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마케팅만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중고 거래 시장이 확장된 영향이 크죠. 과거에는 이사 갈 때처럼 특수한 경우에만 중고 거래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사실상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번개장터는 전국구 단위로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앱인데 그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죠. 마케팅을 하면서 번개장터의 장점을 강조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어요. 리브랜딩 작업도 했고요.
어떤 리브랜딩을 하셨나요.
번개장터라는 이름으로는 다양한 유저에게 어필하기는 조금 어렵다고 봤어요. 당시 유재석씨가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활동을 하던 때라 번개장터도 여러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캐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먼저 번개장터의 앞 글자를 딴 ‘브그즈트’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영문 이니셜로는 BGJT를 썼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J를 Z로 바꿔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알파벳 Z를 돌리면 번개 모양 같다는 거죠. 그래서 브그즈트(BGZT)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 이름이 Z세대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브랜드를 설명할 때 그런 스토리텔링도 가능하겠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브그즈트 랩이라는 이름의 오프라인 매장이 큰 화제를 불러 모았어요.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구동되는 앱만으로는 번개장터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로 온라인 시장에서 옷을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도 오프라인 쇼룸을 갖고 있잖아요. 비슷한 개념입니다. 서비스를 좀 더 알리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판매량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낼 때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요.
번개장터 앱에서는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다 보니 패션 전문 앱이나 골프 전문 앱보다 전문성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죠.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은 한 카테고리에 집중했어요. 1호점은 스니커즈, 2호점은 나이키 ‘조던’, 3호점은 명품에 초점을 맞췄어요. 앞으로 골프 등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를 반영한 매장을 낼 아이디어도 갖고 있습니다. 입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호점이 2030을 타깃으로 한 더현대 서울에 입점하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생각해요.
한정판 신발의 경우 정가가 20만원대인 제품이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번개장터에서도 스니커즈가 효자상품인데요. 스니커즈 인기의 원인이 뭘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을 탐구하는 시대정신이 확산되고 있다고 봐요. 요즘 세대는 스니커즈뿐 아니라 오디오, 만화 등 각자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그와 관련된 소비를 하는 것에 적극적이죠. 부정적인 사회 현상의 단면일 수도 있어요. 예전처럼 집을 사거나 외제 차를 사기엔 부담이 크니까요. 대신 수백만원에 거래되는 스니커즈를 신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요.
특히 패션 분야에서 중고 거래 시장이 성장한 이유는 뭘까요.
실용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아직도 충분히 쓸 만한 물건이면 과거에 사용된 적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백화점에 가면 50만원을 주고 사야 하는 맨투맨 티셔츠가 있다고 해보죠. 그런데 타인이 몇 번 입지 않고 드라이클리닝까지 거쳐서 거의 새 제품과 다를 바 없는 옷을 25만원에 팔아요. 그러면 굳이 중고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봐요. 과거 ‘아나바다 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주도적으로 한 캠페인이었는데, 이제 환경부 영역이거든요. 아끼고 절약하는 게 재무적인 관점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연관되는 시대입니다.
“관심사에서 길이 시작된다”
마케터로서 화려한 스펙을 갖고 계십니다. 마케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어떤 기회든 잡아서 다양한 종류의 마케팅을 경험해보길 권해요. 마케팅 업무 중에는 우뇌를 사용하는 창의적인 일도 있지만 좌뇌를 사용해야 하는 업무도 있어요. 오프라인 행사 기획 등 경험 위주 업무가 있다면 데이터를 중요하게 다루는 일도 있는 거죠. 광고부터 브랜딩까지 전체를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업무도 있어요. 자신의 관심사를 빨리 파악하고 관련된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하나하나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Porte Mode’라는 이름의 패션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관심을 커리어로 전환한 경우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컨설팅 펌에 다닐 때 자정을 넘겨서 퇴근하기 일쑤였어요. 퇴근하고 동대문에 자주 갔죠. 거기는 24시간 열려 있으니까(웃음). 그래서 어떤 디자이너가 요즘 뜨고 있는지 그런 걸 꿰고 있었어요. 이후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을 때 동대문 옷을 많이 입고 다녔거든요. 현지 친구들이 어디서 산 옷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좀 자신감을 얻어서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들과 한국 디자이너 옷을 해외 시장에 소개하는 사업을 했었죠.
옷 말고도 관심사가 있다면요.
우선 저는 소비 측면에서 ‘맥시멀리스트(maximalist)’고요(웃음). 특히 술과 음악을 좋아합니다. 예전에 맥주 회사에 입사했을 때 여자가 왜 주류 회사에 가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평소에 맥주 한잔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술이 들어가면 친밀감을 쌓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걸 발전시키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는 거네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찾고 관련한 일에 도전해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길이 거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창업한 패션 회사는 결과만 놓고 보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맥주 회사에 입사해보니 마케터 중에 스타트업 창업 경험을 가진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그래서 신사업 조직을 담당할 기회가 생겼죠. 맥주 회사에서 경험한 음악이나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활동 덕분에 유튜브 한국 마케팅 총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고요.
채용 시장이 얼어붙으며 스타트업과 대기업 중 어디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취업 준비생이 많습니다.
안전하게 일을 배울 수 있는 건 대기업이죠. 체계나 역사 면에서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지 못해요. 기초체력을 쌓을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스타트업은 ‘복불복’이죠. 기업이 성장을 거듭하며 재능 있는 분이 유입되는 곳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훌륭한 팀이 있어도 아이디어가 너무 앞서 나가서 시장의 외면을 받기도 하고요.
좋은 스타트업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보통 일반 기업은 지원자한테 회사가 짜놓은 채용 단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잖아요.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형태죠. 스타트업은 채용 프로세스가 훨씬 유연해요. 지원자가 먼저 “팀에 계신 분들과 커피 챗(coffee chat)을 해볼 수 있을까요”처럼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죠. 직무에 대한 질문을 준비해 면접장에서 물어볼 수도 있어요. 자신이 준비한 질문에 회사 구성원들이 얼마나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지를 보면 회사의 성장 가능성과 업무 환경 등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 COO는 “이직할 때도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은 유명 기업에 비해 공개된 정보가 적어요. 그러니 더 의도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죠.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직할 회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합니다.”
마케터로서 최신 트렌드를 어떻게 파악하시나요.
예전에는 핫한 곳은 직접 다 찾아가 봤어요. 요즘에는 주말에는 좀 쉬어야겠더라고요(웃음). 대신 간접적으로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많이 활용하고요. 특히 유튜브 댓글을 자주 봐요. 댓글을 보면 영상의 시간 좌표까지 찍어주면서 “이 부분이 재밌다” 이런 코멘트가 많은데 그런 걸 보면서 이게 ‘나에게도 재밌나’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주말에도 일을 하는 셈인데 ‘워라밸’은 어떻게 지키시나요.
쉬는 날 업무 관련 알람은 다 꺼둡니다. “쉴 때 연락해도 나는 받지 않는다”는 걸 어필하기도 하고요. 대표님이라도 제게 주말에 연락하면 미안하게끔 분위기를 만들어놓는 거죠. 혹여나 피치 못한 경우 주말에 일을 해야 하더라도 알람이나 업무 처리 시간을 10~15분 이렇게 정해두고 있어요. 주말은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최재화 #번개장터 #취향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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