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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essay

홈쇼핑 MD 3년이면 풍월도 읊고, 재주도 넘어요[프로 직장인 다이어리]

글 김지민 현대홈쇼핑 MD

입력 2022.03.21 10:44:07

판매직에 매력을 느껴 선택한 홈쇼핑 MD. 애초 생각과는 많이 다르지만 좌충우돌하며 오늘도 저는 행복 회로를 돌립니다. 저는 어쩌다 매번 벌벌 떨리는 홈쇼핑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된 걸까요. 시트콤 같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제품을 검수하고 방송 리허설 중에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지민 MD.

제품을 검수하고 방송 리허설 중에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지민 MD.

홈쇼핑 MD(상품기획자)는 드라마에서처럼 멋들어진 정장에 굽 높은 스틸레토 힐 그리고 완벽한 풀 메이크업으로 회사를 다닐 줄 알았습니다. 정장보단 편안한 비즈니스 캐주얼,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는 낮은 신발, 그리고 맨얼굴에 가까운 상태로 직장 생활을 할 줄은 몰랐죠.

고객 마음은 사고 물건은 파는 일

방송과 유통의 결합체인 홈쇼핑에는 치열하고, 가슴 뛰는 순간이 자주 있습니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홈쇼핑 MD로 살아가며 저는 풍월도 읊고 재주도 넘게 됐어요. 왜 이 일을 직업으로 택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제가 홈쇼핑 MD를 꿈꾼 건 대학 시절 ‘러쉬(LUSH)’라는 화장품 매장 파트타이머로 근무하면서부터였습니다. 남의 지갑을 여는 건 어려운 일인데, 고객과 소통하며 그걸 해내는 게 무지 대단하게 여겨졌죠.

러쉬에서 일할 때 제 이름은 ‘베를린’이었습니다. 일종의 ‘부캐’랄까요. 저는 그곳에서 물건을 팔 때마다 실적이 쌓이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는 독특한 시스템을 경험했습니다. 신상품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특징을 외우고, 고객에 맞춰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상품을 추천하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제가 기록한 매출이 월 100만원이 넘게 되고, 절 찾는 단골도 생겼습니다. 한번은 향기에 이끌려 우연히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화장품 15만원어치를 판 적도 있죠. 절 믿고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 좋은 말로 가득한 후기를 남겨주면 수업에서 ‘A+’를 받은 것보다 뿌듯해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순간이 모여 MD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큰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소개하고, 만족을 이끌어내는 것. 고리타분한 홈쇼핑 회사 슬로건 같지만, 대부분의 홈쇼핑 MD가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홈쇼핑 MD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격렬합니다. 기승전결은 없고, 매 순간이 절정인 삶이라고 할까요. 상품을 선정할 때부터 방송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방송이 끝난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배송이나 사이즈 교환 같은 자잘한 문의부터 칭찬과 비난이 엇갈리는 상품 평까지, 일하다 보면 핸드폰 끄고 노트북 덮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찾아옵니다. 고객과 소통하는 게 좋아 이 직업을 선택한 저조차 그렇더군요.



누구나 회사를 다니다 보면 고비라고 여겨지는 순간을 만나잖아요. 저는 여기서 제 스물네 번째쯤 되는 고비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제가 회사에서 언더웨어 MD를 맡게 되면서 시작된 일이에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몸에 차고 다닌 그거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언더웨어를 판매하려니 머릿속이 아득해지더군요. 와이어, 피본, 훅 앤드 아이 등 낯선 용어는 왜 그리 많은지. 그렇게 방송도 찾아보고, 서적도 뒤적이고, 시장조사도 많이 다니다 보니 점점 어딜 가든 속옷만 눈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아마 그쯤일 거예요. 제가 라이브 커머스에 쇼호스트로 출연했던 게.

MD로 일하다 보면 종종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아, 이거 진짜 너무 좋은데 쇼호스트님한테 방송에서 이 얘기해달라고 해도 되려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요. 특정 상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커졌을 때 하루는 모바일 라이브 편성 담당자와 협의(라고 쓰고 애원이라고 읽습니다)를 하게 됐습니다.
“이 상품 정말 좋아요. 모바일 라이브 편성 한 번만 잡아주세요!”

“MD님, 지금 진행자가 부족해서 아무래도 편성이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 MD님이 출연하실 순 없을까요?”

편성 담당자분이 진심으로 하신 얘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저는 ‘오호라?’ 싶었어요.

“판매직으로 일한 적도 있고, 지금도 맨날 상품 판매하는데 내가 못 할 게 뭐야. 해보지 뭐.”

누군가는 패기라고도 할 수 있을 용기가 생긴 겁니다. 기획 단계부터 방송 때까지 상품은 늘 제 손을 거쳐갔기에 특징이나 강점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방송 당일까지만 해도 “나라고 못 할 게 뭐냐”며 큰소리를 잔뜩 쳤죠. 그런데 막상 방송 시간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니 갑자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기 직전엔 “저 심장 너무 뛰어서 죽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방송에 나가 상품을 소개하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참지 못할 만큼 좋은 상품이 생기면, 열변 토하는 열성 담당 MD로서 꾸준히 방송에 얼굴을 비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시트콤 인생

“진짜 네 인생은 시트콤 같아.”

제가 대학생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듣던 이야기입니다. 멀리서 봐도 희극, 가까이서 보면 더 시트콤인 케이스죠. 홈쇼핑 회사에서 일한 지 이제 4년 차가 돼가는데, 저는 여전히 시트콤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결을 알려드리자면 저는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보든 반드시 장점을 한 가지라도 찾아내는 스타일이에요. 

그렇게 찾은 장점 한 가지로 소위 말하는 ‘정신 승리’를 시작합니다. 자기합리화, 요즘 말로 행복 회로를 돌리는 거예요. 회사에 다니다 보면 늘 마음 맞는 사람과 즐거운 일만 할 순 없잖아요. 그럴 때마다 수련하듯 끊임없이 장점을 찾아내는 게 성장의 발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합니다. 그렇게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생각보다 인간적이고 재밌는 순간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상품 제조국 이름을 잘못 기재해 방송에 틀린 정보가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제 사회생활 사상 가장 큰 실수였어요. 금요일 오후 7시, 회사에서 그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은 뒤 주말 내내 자책에 빠져 퇴사를 고민했습니다. 고객과 신뢰를 쌓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놓친 제가 원망스러웠죠. 그런데 고뇌의 주말을 보내고 출근하니 질책하실 것 같았던 분들이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저는 꼼꼼함과 좋은 선배들을 얻게 됐어요. 제 직장 생활에서 가장 큰 위기였으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죠.

저는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홈쇼핑 채널에서, 그 꾸준함과 화려함을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든다는 게 아직도 설레고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이 일을 잘해나가며 ‘나만의 꽃’을 피우고자 노력하려고 합니다. 드라마나 시트콤을 보면 그런 인물들 있죠. 좌충우돌의 역사를 가득 간직한, 순탄한 것 하나 없지만 여전히 밝고 쾌활한 인물이요. 저 역시 그들처럼 때로는 우당탕탕 하면서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다양한 설정과 풍부한 글감 속에서 해피 엔딩이길 바랍니다.

#일의기쁨과슬픔 #홈쇼핑MD #쇼호스트 #여성동아


필자소개
김지민 현대홈쇼핑 데이터 방송 언더웨어 MD. 현대홈쇼핑 플러스샵에서 방송되는 모든 언더웨어 상품을 담당하는 MD이자, 부캐 ‘비비안의 여왕’으로 모바일 라이브 쇼호스트도 겸하고 있다.




사진제공 김지민



여성동아 2022년 3월 6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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