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톱스타도 1분짜리 드라마 찍는 시대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6. 06. 01

배우 김정은, 이상엽이 왜 거기서 나와? 톱스타들이 숏폼 드라마로 향하는 이유.

짧은 호흡 안에 압축된 감정선을 담아낸 이상엽의숏폼 드라마들.

짧은 호흡 안에 압축된 감정선을 담아낸 이상엽의숏폼 드라마들.

릴스를 스크롤하다 멈칫한 적 있는가. 1분짜리 영상 속 낯익은 얼굴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이 배우가 왜 여기서 나와?’라는 물음이 절로 떠오른다. 배우 이상엽, 김정은, 성훈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잇따라 숏폼 드라마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업계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자 저화질 콘텐츠의 대명사로 불리던 숏폼 드라마가 이제는 충무로 감독과 기성 배우들까지 앞다퉈 뛰어드는 새로운 격전지로 진화하고 있다.

기성 배우들의 숏폼 드라마 진출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달라진 콘텐츠 시장의 현실이 자리한다. 막대한 제작비 부담, 드라마 제작 편수 및 편성 축소, 한국 영화 산업의 침체, 여기에 AI 동영상 생성 모델의 등장까지 콘텐츠 산업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배우들이 새로운 무대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명 배우들 또한 휴식기 중 활동할 영역으로 숏폼 드라마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제작 기간이 짧고 촬영 일정이 압축적인 만큼, 공백기 없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최근 숏폼 시장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출연료 체계도 현실화해 회차별 개런티가 기존 드라마 수준까지 올라가 배우들 사이에서 “숏폼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폭발적인 시장 규모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숏폼 드라마의 시장 규모에 따르면,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 매출은 2023년 약 7조2000억 원에서 2025년 약 17조4000억 원으로 2년 만에 2배 넘게 급증했다. 이제 숏폼 드라마는 단순한 ‘킬링 타임용’ 콘텐츠를 넘어 본격적인 수익 창출의 무대가 된 셈이다.

통쾌한 복수극 서사를 완성한 김정은의 복귀작.

통쾌한 복수극 서사를 완성한 김정은의 복귀작.

톱배우들이 뛰어든 숏폼 드라마의 세계

배우 이상엽은 2025년 한 해 동안 연극과 숏폼 드라마라는 양극단의 장르를 동시에 경험하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의 첫 숏폼 도전작은 드라마박스의 ‘폭풍같은 결혼생활’로, 재벌가 외동딸 서지안과 정체를 숨긴 채 계약 결혼을 하는 김현우 역을 맡아 열연했다. 공개 나흘 만에 조회수 1000만 회를 돌파한 이 작품은, 처음엔 지상파 주연급 배우의 등장을 낯설게 받아들이던 시청자들로부터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재벌, 계약 결혼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자극적인 설정에 이상엽 특유의 차가운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매회가 끝날 때마다 다음 편을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후 ‘상속녀의 귀환’ ‘사랑은 시간 뒤에 서다’까지 연달아 출연하며 그는 업계 최고 대우를 받는 이른바 ‘숏폼계의 황정민’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23년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이후 휴식기를 갖던 김정은 역시 복귀작으로 숏폼 드라마를 선택했다. 회당 1분 30초 분량, 총 54회로 구성된 ‘사랑받는 엄마는 참지않아’에서 그는 이혼했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어린 세 아들과 함께 쫓겨난 한채희 역을 맡아, 20년 만에 화려한 반격을 펼치는 인물을 연기했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공개 다음 날 신작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드라마 퀸’의 이름값이 숏폼 세계에서도 건재함을 입증했다. 업계에서는 김정은이 관록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으며 기존 숏폼 드라마와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인물 간의 감정 충돌, 빠른 전개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 평가를 받는 ‘그 여자를 유혹해줘’.

인물 간의 감정 충돌, 빠른 전개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 평가를 받는 ‘그 여자를 유혹해줘’.

숏폼 드라마, 대중문화 주류로 편입

방송사 역시 숏폼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특히 채널A는 장편 드라마에서 다져온 멜로 흥행 노하우를 숏폼에 이식하며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채널A 스튜디오D가 제작한 ‘그 여자를 유혹해줘’는 글로벌 플랫폼에 동시 공개되며 ‘K-숏드’의 고퀄리티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내 남편의 내연녀를 유혹해달라’는 파격적인 설정과 AI 기술을 활용한 영상미가 기존 숏폼과의 차별점이다. 이 작품은 자극적인 소재가 짧은 호흡 속에 압축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음 편을 연이어 보게 만드는 몰입 구조를 완성했다. 출연진 또한 아이돌 그룹 프리스틴 출신 박시연과 배우 고욱, ‘솔로지옥’ 시즌 3의 윤하빈 등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해 화제성을 잡았다. 제작 총괄을 맡은 박종은 CP는 “검증된 제작 경험을 숏폼 드라마에 최적화해 감각적인 서사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방송사의 숙련된 노하우와 숏폼의 속도감이 결합한 이 작품은 현재 드라마박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기성 스타들의 유입은 숏폼 드라마의 품질과 인식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이병헌, 이준익 등 충무로 유명 감독들도 숏폼 드라마 제작에 진출하고 아이돌과 유명 배우까지 가세하면서, 과거 중국에서 유행하던 B급 감성의 킬링 타임 콘텐츠가 이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거대한 콘텐츠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숏폼 드라마 제작 과정을 주요 콘텐츠로 다룬 것도 숏폼이 이미 대중문화의 주류로 편입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6%가 숏폼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이 숏폼을 보는 가장 큰 이유로 ‘짧아서 부담이 없다’를 꼽았다. 대중의 시청 패턴 변화가 콘텐츠의 규격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숏폼 드라마는 비주류의 전유물을 넘어, 글로벌 시청자를 사로잡는 새로운 ‘K-콘텐츠의 최전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숏폼드라마인기 #그여자를유혹해줘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제공 드라마박스 스튜디오D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