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벙커 입구와 내부에 진열된 와인.
2월 11일 기자가 ‘보틀벙커’에서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한 상품 목록이다.
‘사봤자 저렴한 거 한두 개겠지.’ 롯데마트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매장 앞에 대기할 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다. 한 번에 10만원 넘게 쓰고 올 줄 상상도 못 했다. “에이, 와인 숍 가서 10만원도 안 쓰려 했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와인 한 병에 10만~20만원은 우스운 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기자는 결단코 술을 구매할 생각이 없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 자신이 우스웠다.
이날 쇼핑의 계기가 된 건 1월 중순, 우연히 들려온 소문이었다. “서울 잠실 롯데마트에 와인 매장이 새로 생겼는데 와인 동호회 사람들이 몰려와 술을 다 쓸어간다더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문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마트 앞에 길게 늘어서 있을 정도”라고도 했다. 호기심이 생겼다.
양으로 압도하는 보틀벙커
부라타 랩과 테이스팅 탭
아침부터 서둘러 매장에 들어서자 1322㎡(약 400여 평) 규모 공간을 가득 채운 술의 풍경이 일단 시선을 압도했다. 와인판 이케아 같았다. 요즘 핫한 내추럴 와인과 각종 프랑스·이탈리아 와인이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기자는 작년 초 지인과의 저녁 자리에서 우연히 내추럴 와인을 한 병 마시고 ‘꿀잠’을 잔 일이 있다. 이후 내추럴 와인에 푹 빠진 터라 이곳이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다.
친절한 와인 배치도 인상적이었다. 보틀벙커는 와인 섹션을 크게 구대륙·신대륙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서 다시 국가별·지역별·포도 품종별로 상품을 나눠 놓았다. 구대륙에는 이탈리아·프랑스·유럽(독일)·스페인, 신대륙에는 호주·미국·뉴질랜드 등이 포함된다. 와인 애호가는 좌고우면할 필요 없이 원하는 와인을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와알못(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은 여러 종류 와인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어 좋을 듯했다. 각 섹션마다 해당 지역 와인 특징, 화이트·레드 와인 특징 등에 대한 온갖 설명이 붙어 있어 전문가와 동행하지 않아도 충분히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자기 주도 학습이 가능한 ‘와인 학원’ 같은 느낌이랄까.
고가 와인은 매장 한쪽 ‘그랜드 크루’ 섹션에 따로 모아 놓았다. 20만~30만원대 와인부터 700만원을 호가하는 대용량 와인 ‘샤또 디껨 9000ml’, 매년 약 5500병만 생산하는 ‘로마네 꽁띠’ 등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 외에도 버번·싱글 몰트 등 위스키와 맥주, 중국·일본 술, 우리 전통주까지 주종을 막론하고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게 보틀벙커의 특징.
이곳에 온 이유, 부라타 랩과 테이스팅 탭
하지만 이곳이 초반 이슈 몰이를 한 게 단지 술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보틀벙커를 유명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는 ‘부라타 랩’과 ‘테이스팅 탭’. 먼저 숍인숍 개념으로 주식회사 차차가 운영하는 부라타 치즈 랩부터 들렀다. 이곳에서는 와인과 곁들여 먹기 좋은 부라타 치즈를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한다. 부라타, 프레시세트, 헤비 세트, 떡볶이 & 부라타 메뉴 가운데 프레시세트를 시켜 한입 먹고 눈이 번쩍 뜨였다. 서울 압구정·청담동 일대 웬만한 치즈 맛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신선하고 생크림처럼 부드러워서다. 만드는 과정을 조리실 유리창 밖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매력. 치즈와 함께 나온 오렌지 처트니와 바질 페스토 맛도 일품이었다. “이 조합을 왜 진즉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탄식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 2개를 포장 주문했다.마침 매장에 있던 주식회사 차차 나기정 대표에게 “정말 맛있다”고 하니 “우리 치즈는 충남 천안 목장에서 짜낸 지 72시간 이내 우유로만 만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치즈와 오렌지, 바질의 조합은 우리도 먹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는 설명도 들려줬다.
이어 발길이 닿은 테이스팅 탭은 레드·로제·내추럴 와인 등 80여 종의 술을 치즈와 함께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부라타 치즈 랩 카운터에서 최소 1만원부터 충전할 수 있는 이용권(전용 카드)을 구매해야 한다. 유효 기간은 한 달. 연장도 할 수 있다. 시음 기계에 이용권을 찍고 와인 잔을 가져다 댄 채로 마시고 싶은 와인 버튼을 누르면 한 번에 50ml씩 나온다. 방문 당시 잔당 가격은 2000~3만3000원으로 천차만별이다. 시음할 수 있는 와인 종류는 소진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보틀벙커 방문 총평은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함”. 넓은 만큼 술 종류가 많다. 공간이 쾌적해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기도 좋다. 단, 가격이 저렴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 매장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인생 막걸리’로 소문난 해창주조장의 ‘해창 18도’ 막걸리도 있었다. 판매가는 15만8000원. 해창주조장에서 구매하면 11만원이다(2월 16일 기준 해창주조장은 품절 상태).
보틀벙커를 떠날 시간, 내돈내산 물건들을 계산하며 카운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말, 토요일 밤에 특히 손님이 붐빈다. 한 번에 100만원어치 이상 사가는 고객도 많다”고 한다. 돈과 시간이 있는 애주가라면 보틀벙커 방문을 추천한다. 기자는 와인도 와인이지만 부라타 치즈를 사러 다시 들를 예정이다.
#보틀벙커 #와인쇼핑 #부라타랩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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