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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actor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 김무열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1.10.07 10:30:01

착한 사람 같아 보이다가도 한순간 섬뜩한 분위기가 감도는 묘한 매력의 배우 김무열. 영화 ‘보이스’에서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의 수뇌부 역할을 맡아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한 번쯤 받아봤을 보이스 피싱 전화. 수화기 너머 차분한 목소리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결국 무언가 홀린 듯 지시에 따르게끔 만든다. 수사 당국의 끈질긴 추적에도 보이스 피싱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수년째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해외에 본거지를 둔 경우가 태반이라 조직의 뿌리를 쉽사리 뽑지 못하고 있는 것.

실체 파악이 어려운 보이스 피싱 범죄단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 ‘보이스’가 9월 중순 개봉해 화제다. 영화는 건설 현장에서 시작된다. 노동자들은 차례로 의문의 전화를 받고,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피 같은 돈 30억원을 보이스 피싱 조직에게 빼앗긴다. 현장에 있던 전직 형사 서준은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직접 나서고, 중국에 위치한 본거지 잠입에 성공한다. 이윽고 그는 기획실 대본 입고, 인출책 섭외, 환전소, 대규모 콜센터까지 웬만한 기업 뺨치게 시스템화된 보이스 피싱 조직을 이끄는 총책 곽프로와 마주한다. 전직 형사 서준 역에 변요한이, 잘나가던 증권맨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곽프로 역에 김무열이 캐스팅됐다.

믿고 보는 두 배우의 열연에 작품은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충무로 대세로 떠오른 김무열(39)의 변신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드러냈다. 영화 ‘보이스’ 속에서 그는 정갈한 올백 머리에 안경을 쓰고 목폴라 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강렬한 비주얼로 등장한다. “보이스 피싱은 공감”이라며 부하들의 거짓말을 독려하는 모습에선 악인의 서늘한 분위기가 풍긴다. 베일에 가려진 보이스 피싱 범죄 총책의 실제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김무열이 배우로서 신뢰를 얻은 데는 20년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꾸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출신인 그는 ‘지하철 1호선’ ‘그리스’ ‘어쌔신’ ‘사랑은 비를 타고’ ‘쓰릴 미’ ‘광화문 연가’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2007년 ‘별순검’을 시작으로 ‘일지매’ ‘아내가 돌아왔다’ ‘아름다운 나의 신부’ ‘나쁜녀석들 : 악의 도시’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연기파 배우들이 그러하듯 영화계로 건너가 2009년 ‘작전’을 시작으로 ‘김종욱 찾기’ ‘최종병기 활’ ‘은교’ ‘연평해전’ ‘기억의 밤’ ‘악인전’ ‘정직한 후보’ 등으로 연기 내공을 펼쳐 보였다. 2015년에는 4년간 교제한 동료 배우 윤승아와 웨딩마치를 울렸다. 일과 가정, 2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김무열을 영화 ‘보이스’ 개봉 전날 온라인으로 인터뷰했다.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의 보스로 변신했어요. 워낙 피해자가 많은 범죄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듯한데 어떠셨나요.

어쨌든 연기를 해야 하니까 곽프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공감하지는 못했어요. 대본을 보면서도 ‘아주 못된 놈’이란 생각이 컸거든요. 역할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분개할 절대적인 적을 롤 모델 삼아 연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어요. 곽프로는 금융계에서 잘나가던 인물이었다가 나쁜 쪽에 손을 대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으로 설정돼 있어요. 누구보다 똑똑했고 인정받던 인물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심정이 어떨지 고민했는데 그런 극과 극의 감정을 동시에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깔끔한 이미지의 목폴라 티셔츠에 단정한 헤어, 지적인 이미지의 안경 등 곽프로의 디테일에 상당히 신경 쓴 흔적이 느껴져요.

일단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을 실제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피해자의 상황이나 생각을 간파하고 두 수 앞을 예측하는 사람이니 똑똑할 거라고, 나름 프로 의식도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죠. 부하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의식해서 포멀한 정장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옷을 갖춰 입을 거라고 상상했고요. 위로는 갖춰 입지만 함께 먹고 자다 보니 미처 신발까지는 신경 쓰지 못해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으로 설정했어요. 또 전화할 때는 정말 수사기관 전문가들처럼 연기하는, 그럴싸한 가면을 쓴 콘셉트를 잡고 연기해나갔어요.

곽프로의 보이스 피싱 수법이나 사고방식이 섬뜩할 때가 있었어요. 연기하면서도 소름 끼쳤을 듯한데요.

취업 준비생들의 절박함을 이용해서 그들의 돈을 뜯어내는 게 끔찍했어요. 취준생들은 정말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어서 취업해서 당당하게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지만, 취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절박해지는 그런 심리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데에 참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또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돈 잘 쓰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실제 피해 사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연기를 해야 하니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범죄자들이 갖고 있는 그런 극악무도함이 참 싫더라고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직접 쓴 대사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도 곽프로 대사 가운데 직접 만든 부분이 있나요.

감독님께서 쓰신 대본을 기본으로 애드리브를 추가하는 식이었어요. 대본에는 문어체 대사가 많았고, 격이 높은 대사도 꽤 있었어요. 니체를 인용한다든가 하는 거였는데 제가 좀 저렴한 멘트를 추가해 구어체로 바꾼 부분은 있어요. 예를 들면 “지옥 맛 좀 보여주자” “구라의 기본은 팩트 체크다” 등은 현장에서 만들었죠. 개인적으로는 “보이스 피싱은 공감이다”라는 대사가 마음에 들었어요. 피해자들의 빈틈을 이용하고 파고드는 범죄자의 마인드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사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춘 변요한 배우와의 촬영은 어땠나요.

작품하기 전부터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그간 배우 변요한의 결과물만 봐왔다면 이번에는 그 과정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무엇보다 상대 배우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가 참 멋졌어요. 상대 배우를 그렇게 존중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의 것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이기도 하거든요. 또 최대치의 연기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촉매제 같은 배우와 호흡을 맞추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인데 요한이가 딱 그랬어요. 동료 배우면서 진심으로 내 연기를 평가해주는 첫 번째 관객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후반에 변요한 배우와 액션신도 있어서 합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요한이가 코어 근육이 좋더라고요(웃음). 저를 들어서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잘 들어서 놀랐어요. 사실 배우들끼리 액션 장면을 찍으면 거의 다치기 마련이거든요. 잘못 맞거나 어디 부딪히거나 해서 사소한 부상도 생기죠. 이번에 요한이와 액션신을 찍으며 밑으로 기어가고 목을 조르는 등 여러 액션을 소화했는데 가벼운 생채기 하나 안 났어요. 둘이 너무 액션 합이 잘 맞아서 촬영이 예정보다 일찍 끝난 기억이 나네요.

극 중 보이스 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입장인데 실제 피해를 당하거나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나요.

저는 경험이 없는데 저희 어머니께서 저를 사칭한 톡을 받으신 적이 있었어요. 제 이름으로 ‘친구가 다쳤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말을 걸었다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용돈을 받아 쓸 때가 아니라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어요. 어머님이 대화를 캡처해서 ‘이거 너 아니지?’라며 물어보셨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정보가 빠져나가서 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사칭했다는 게 소름 끼치더라고요. 저희 영화에 여러 수법들이 나오니까 집사람에게도 그런 걸 다 얘기해줬어요.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은 후 확인 전화를 하고 싶으면 옆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전화로 확인하라는 얘기를 해줬죠.

‘기억의 밤’ ‘침입자’ 등 스릴러물이나 ‘은교’ 같은 멜로물, ‘정직한 후보’ 같은 코미디물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인데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있나요.

특정 장르를 선호한다고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잡식성이에요. 평소 좋아하는 장르는 SF 히어로물인데, 독립영화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선호하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다큐멘터리에 빠져서 많이 보고 있어요. 옛날에 선배들이 ‘동물의 왕국’ 재미있다고 하면 이해를 못 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다작을 한 덕분에 영화 채널에서 김무열 배우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과거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을 찾아보는 편인가요.

지난 작품들은 일부러 보지 않는 편이에요. 저한테 좀 잣대가 엄격한 편이라 과거작을 보면 왠지 지난 과오를 들추는 느낌이 들거든요. 부족한 모습만 자꾸 보여서 일부러 찾아보진 않아요. 저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찮게 제 작품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진한 감상에 젖어요. 아주 가끔 드물게 ‘아, 저때 조금 잘했네’ 하는 경우가 있긴 해요(웃음).

영화 ‘보이스’

영화 ‘보이스’

과거 작품 얘기가 나와서 질문하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보이스’ 개봉 이후에 많은 분들이 제 첫 장편영화 데뷔작인 ‘작전’과 비교해주시더라고요. 주식 시장 작전계의 에이스로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증권사 직원 조민형 역할을 맡았는데 곽프로와 닮은 부분이 있어서 비교하시는 것 같아요. 또 개인적으로 즐겁게 촬영했던 2012년 영화 ‘개들의 전쟁’도 기억에 남아요. 진선규, 김대명 등 여러 배우들이 출연했는데 그 배우들과 아직도 단톡방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친하게 지내거든요. 흥행과 관계없이 찍을 때 즐거웠던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을 오가는데, 배우로서 악역을 할 때 어떤 연기의 맛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악역을 할 때 연기하는 맛이 있기는 하죠. 욕먹는 재미요. 현장에서 연기하고 난 뒤 감독님이나 상대 배우가 “진짜 죽이고 싶었다”고 말하면 직업적인 재미가 생겨요. 그런데 이번 작품 ‘보이스’의 경우 워낙 피해자가 많은 범죄라 마음이 무거워지는 탓인지 이런 얘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지금은 영화 출연을 많이 하지만 원래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고 ‘대학로 아이돌’로 불리기까지 했어요. 비슷한 경로로 데뷔하는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무대는 그립지 않은지 궁금해요.

너무 잘하고 훌륭한 배우들이 많고 언제든지, 어디서든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이번에 황정민 선배 주연의 영화 ‘인질’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김)재범이 형도 그런 케이스고요.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뮤지컬이나 연극판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OTT 플랫폼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들이 많아졌어요. 저 역시 뮤지컬로 시작해 영화, 드라마를 해온 배우니까 비슷한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언제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가끔 “이제 공연은 안 하세요?”라고 묻는 후배들을 보면 무대에서의 나를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감사함을 느껴요. 그럴 때면 ‘어떤 식으로 배우 생활을 해나가야 할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하죠.

올해로 결혼 6년차 예요. 작품을 선택할 때 아내와 의논하는 편인가요.

결혼 후 작품 선택에 있어서는, 신혼 때는 서로 의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햇수로 6년 차라 서로 일적인 부분에 대해 논의하거나 하지 않아요. 그냥 통보하죠(웃음). 그렇게 됐어요.

지난해 말 서핑으로 유명한 강원도 양양에 4층짜리 건물을 지어서 화제가 됐어요. 자주 가서 휴식을 취하는 편인가요.

지금은 못 가고 있어요. 촬영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같이 살고 있는 반려동물이 아파서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 데리고 다니느라 바쁘거든요. 그 아이와의 시간이 조금 각별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에요. 노견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 존재가 저희에게 주는 거대한 것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시간을 소중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항상 열정이 넘치는 것 같아요.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요.

어떤 직업이든 갈고닦지 않으면 손도 굳고, 기술도 녹슬잖아요. 매 작품마다 저를 단련하는 마음으로 임해요. 항상 제가 참여하는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 작품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해요. 배우란 관객을 만나고, 평가받을 때 완성되는 직업이잖아요. 지금 당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도 후에 재평가될 수 있으니 매번 최선을 다해야죠. 좋아하는 수식어요? 저는 그냥 ‘배우 김무열’이면 만족해요.

사진제공 CJ ENM



여성동아 2021년 10월 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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