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49) 작가와 톱스타 전지현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썼다 하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률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김은희 작가는 방송가 섭외 1순위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으로 유명한 전지현이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는지 모른다.
지난 7월 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이하 ‘아신전’)은 공개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국내는 물론 해외 8개국에서 스트리밍 랭킹 1위를, 전 세계 71개국 랭킹에서는 2위를 기록한 것. 앞서 2년 전 조선시대에 등장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왕세자 이창(주지훈)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을 때도 충격적인 내용과 비주얼로 단번에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듬해 선보인 ‘킹덤’ 시즌 2 역시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에 의문의 여인 아신(전지현)이 등장해 역대급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김 작가는 ‘아신전’을 통해 아신이 어떤 서사를 가진 인물이며 조선에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시즌 1, 2의 주인공인 왕세자 이창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게 될 시즌 3에 대한 기대감까지 증폭시켰다. 이에 시청자들은 “역시 김은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김은희 작가가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다. 1990년대 초 그녀는 백댄서라는 독특한 이력을 거쳐 SBS 예능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보조 작가에 불과했다. 장항준 감독이 먼저 예능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김 작가는 그를 사수로 만났고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후 장 감독은 예능작가에서 벗어나 영화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했고,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 극본을 시작으로 영화계에서 인정받아 극본가 겸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김은희 작가는 1998년 장 감독과 결혼할 당시만 해도 드라마나 영화를 쓸 생각은 하지 않던 터였다. 결혼 후 장 감독이 종이에 쓴 시나리오를 워드로 옮겨주는 작업을 돕다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김 작가는 2006년 이병헌, 수애 주연의 ‘그해 여름’을 통해 극본가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멜로 영화였지만 이후 그녀는 진로를 변경했다. 남편인 장 감독과 함께 2010년 tvN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대본을 집필하며 드라마 작가로 첫발을 뗀 것. 이후 2011년 SBS 드라마 ‘싸인’을 쓰며 본격적으로 장르물에 눈을 떴다. 당시 ‘싸인’은 법의학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며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연기의 신으로 꼽히는 박신양이 열연해 화제가 됐다. ‘싸인’은 매회 호평을 받으며 최종회에서는 시청률 24.9%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김은희 작가는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장르물을 연거푸 내놓으며 이름을 알렸다. 사이버 범죄와 살인사건을 다룬 소지섭 주연의 SBS 드라마 ‘유령’(2012), 대통령 납치 및 암살사건을 다룬 손현주 주연의 SBS 드라마 ‘쓰리 데이즈’(2014) 등은 그간 미니시리즈에서 볼 수 없던 장르물로 마니아층을 낳았고, 한국 드라마는 김은희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간 쌓아온 김은희 작가의 명성을 한 단계 뛰어넘게 한 작품은 2016년 방영된 tvN 드라마 ‘시그널’이다.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무선 통신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쫓는 드라마 ‘시그널’은 초반에 김혜수, 이제훈, 조진웅이라는 충무로 연기파 스타들이 출연해 합을 맞췄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과거의 변수로 달라지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형사들의 공조가 몰입도를 높였고, 비지상파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최종회 시청률 13.4%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가 됐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장르물이 주특기였던 김은희 작가는 2019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 ‘킹덤’ 시리즈를 내놓으며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공개 초반에는 선혈이 낭자하는 좀비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탁월한 스토리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흡인력 있는 서사 등으로 좀비물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까지 사로잡았다. 특히 7월 공개된 ‘아신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시즌 2까지가 한계라는 통념을 깨고 시즌 3에 대한 기대감까지 한껏 높인 상황. 영화 극본가로 데뷔 후 15년이 흐른 지금,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은희 작가를 7월 말 온라인으로 인터뷰했다.
‘아신전’ 공개 후 반응이 뜨거웠어요. 시즌 3을 기다린 시청자들은 ‘아신전’이 단편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아신전’은 시즌 3으로 가기 위한 에피소드로 봐주셨으면 해요. 이 이야기 없이 바로 시즌 3에서 아신을 비롯한 아이다간(여진족 우두머리) 등 새로운 인물들이 갑자기 등장한다면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것 같았거든요. 왕세자 이창과 대립각을 세울 아신이란 인물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설명하고 싶었어요. 또한 이들이 만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걸 시즌 3에서 다루면 주요 인물에 대한 몰입이 깨질 것 같기도 했고요. 최소한의 인물 소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즌 3의 프롤로그 성격으로 ‘아신전’을 썼죠. 더불어 시즌 3에서 ‘폐사군(조선시대 여진족을 막기 위해 압록강 상류에 세워진 4군으로 단종과 세조 때 폐쇄되면서 폐사군으로 불림)’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설명이 필요했고요. 일부 시청자들은 짧아서 아쉬웠다고 하는데, 이런 기획 의도를 맞추기 위해 단편으로 제작하게 됐어요.
아신은 조선과 여진의 경계에 사는 이방인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설움과 분노가 쌓인 인물이에요. 이런 설정의 주인공을 내세운 이유가 있나요.
시즌 1, 2에서 ‘생사초(극 중 사람을 살리는 풀로 불리지만 실은 죽은 자를 좀비로 만드는 매개체)’가 조선에 퍼진 이후의 상황이 그려지는데, 그 풀이 북방에서 전해진 것으로 나와요.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북방에 대한 기록을 찾다가 ‘성저야인(국경지대 성 아래에 모여 사는 야인)’에 대한 글을 보게 됐고, 이 사람들의 정체성이 없다는 게 참 슬프더라고요. 시즌 1, 2는 조선 지배계층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뤘다면, 시즌 3에서는 피지배계층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아신전’을 통해 차별과 멸시로 아신의 가슴속에 서린 ‘한’이라는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자 했죠.
전지현 배우가 열연을 펼쳐 화제가 됐어요. 작가로서 소감이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전지현 배우가 활을 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양궁을 따로 배웠나?’ 싶을 정도로 자세나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도 현장에서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따로 활 쏘는 걸 배우고 준비도 많이 했겠지만, 감독님은 “첫 테이크에 바로 극 중 인물처럼 활을 잘 쏘는 배우는 처음 봤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그 장면 이외 아신이 벌판을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단순히 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까지 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아신의 절절한 심경이 잘 느껴져 ‘정말 놀라운 배우다!’라고 생각했죠.
처음 전지현 배우를 만났을 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도 궁금해요.
그렇게 호탕한 여배우의 웃음소리는 처음 들어봤어요(웃음). 사실 여배우분들은 낯도 가리고 그러는데 전지현 씨는 너무 털털해서 진짜 ‘별에서 온 그대’ 속 천송이를 보는 듯했죠. 평소 모습은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모습은 차기작인 ‘지리산’에 그대로 투영됐어요. 마치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성장해 ‘지리산’에 등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몰라요. 반면 서늘한 눈빛이 스칠 때는 영화 ‘암살’ ‘베를린’ 등에서 봤던 그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고, 이번 ‘아신전’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잘 드러났어요.
남편인 장항준 감독님은 ‘아신전’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에 편집본을 먼저 보여줬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라며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장 감독이 역사를 잘 몰라서 이해를 못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이후 넷플릭스에 공개된 완성본을 보고 나서는 “재미있게 봤는데, 액션 장면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어”라며 아쉬워하더라고요.
엔딩 크레디트의 ‘고마운 사람들’ 리스트에 장항준 감독님 이름도 올라와 있었어요. 혹시 장 감독께서 ‘아신전’ 집필에 영향을 주셨나요.
제 작업을 위해 곁에서 늘 응원하고 격려해준 분들의 이름을 올린 거예요. 장 감독을 비롯해 제 딸의 이름도 나와요. 사실 제가 ‘아신전’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모니터링해주거나 조언을 해준 부분은 없어요. 요즘은 자기 일이 바빠서 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가끔 “이러면 어떨 거 같아?” 물어보면 그냥 “네 생각대로 해~”라고 영혼 없는 멘트를 날리죠. 그런데 그게 제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남편을 비롯해 제 작업을 응원해주는 가족들 모두 큰 힘이 돼요.
따님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딸이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편인가요.
제 작품이 대부분 19금이라 아직 미성년인 딸과 상의하진 않아요. 다만 일상 속에서 하는 응원의 말들로 힘을 얻죠. 보통 집을 나설 때 “엄마 일하러 갔다 올게~”라고 딸에게 인사하는데 한번은 “엄마가 일하러 가는 거 서운하지 않니?”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난 엄마가 김은희 작가라서 좋아”라며 “잘 다녀와~ 돈 많이 벌어와~”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가볍게 이야기하는 듯했지만 그 말 속에 ‘엄마, 그런 죄책감 갖지 말고 열심히 일해’라는 응원의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많이 고마웠어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친언니 등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주지만 딸과 남편이 가장 고마워요. 앞으로도 계속 제 작품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갈 거예요.
대본을 쓴 지 15년, 새로운 소재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집필해오셨어요. 어떤 방식으로 창작하는지 궁금합니다.
제 안에 내재된 생각들, 호기심들을 키우고 키우다가 작품의 소재로 쓰는 편이에요. 딱 하나의 소재만 가지고 쓰는 경우는 없어요. ‘킹덤’ 시리즈가 그 예죠.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었고, 좀비물도 워낙 좋아해 즐겨 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좀비들이 측은해 보이더라고요. 불현듯 사극과 좀비물이라는 두 소재가 만나 ‘킹덤’이 탄생하게 됐어요. 차기작인 ‘지리산’의 경우에는 한 번도 지리산에 가본 적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사람들이 젊은 시절 한 번쯤 방황하는 마음을 풀기 위해 가는 곳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하나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킹덤’을 비롯해 ‘시그널’ ‘유령’ ‘싸인’ 등 대부분 호평을 받았는데요.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모든 작품이 제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어요.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저를 드라마 작가로 살게 해준 첫 작품이고, ‘싸인’은 공중파에서 처음으로 제게 드라마 작가로서의 기회를 준 작품이에요. ‘유령’은 사이버 수사에 대한 공부를, 정말 사람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많이 하게 만든 작품이라 기억에 남고요. ‘쓰리 데이즈’도 (혹평으로) 큰 아픔이 있었지만 ‘다음 작품에서 더 독해져야 해’라는 마음을 갖게 해줬어요. ‘시그널’은 김원석 감독님을 비롯해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 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제가 작가로서 또 다른 눈을 뜰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죠. ‘시그널’ 이후 ‘내가 이전까지 시선이 좁았구나’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킹덤’의 경우 영상화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운 좋게 만들어졌고 여러 사람의 추진력으로 다음 시즌까지 기약하게 된, 믿기지 않는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하나의 작품을 끝낼 때마다 힘이 들지만 늘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다음 작품에서 또 독하게 대본을 써요.
작가님 작품에는 김혜수, 박신양, 소지섭, 조진웅, 배두나, 주지훈, 이제훈 등 유독 톱스타들이 많이 출연했어요. 어떻게 캐스팅이 가능했는지, 직접 관여하는 편인지 궁금해요.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이 좋았고 그분들과 같이 일하게 돼서 행복했어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김혜수 선배님은, ‘반드시 김혜수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김원석 감독님과 의기투합해 캐스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나요. 그분을 만나러 가기 전부터 겁을 잔뜩 먹고, 둘이서 “끝까지 설득해보자” 다짐했죠. 사실 캐스팅이란 건 다 인연이에요. 같이하고 싶은 배우지만 스케줄이 안 맞으면 힘들고, 다행히 스케줄이 맞아도 제작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제 작품에 출연한 분들은 다들 스케줄이 됐는지, 응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좋은 배우들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어요.
작가님 작품에는 평범한 인간 군상의 삶과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잘 그려지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어떤 신념을 갖고 작품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신인 작가 시절 기획 PD님들을 만나면 “이 작품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하셨어요. 그때는 속으로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돌이켜보면 그게 드라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더라고요. 대본을 쓸 때 ‘이 캐릭터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지?’ ‘이 이야기는 무엇을 향해 가지?’ 그런 방향성에 대해 늘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다가 힘든 순간에 그걸 떠올리면서 ‘내가 기획 의도를 또 놓쳤구나’ 깨닫기도 해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놓치지 않으면서 가려고 합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지난 7월 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이하 ‘아신전’)은 공개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국내는 물론 해외 8개국에서 스트리밍 랭킹 1위를, 전 세계 71개국 랭킹에서는 2위를 기록한 것. 앞서 2년 전 조선시대에 등장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왕세자 이창(주지훈)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을 때도 충격적인 내용과 비주얼로 단번에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듬해 선보인 ‘킹덤’ 시즌 2 역시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에 의문의 여인 아신(전지현)이 등장해 역대급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김 작가는 ‘아신전’을 통해 아신이 어떤 서사를 가진 인물이며 조선에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시즌 1, 2의 주인공인 왕세자 이창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게 될 시즌 3에 대한 기대감까지 증폭시켰다. 이에 시청자들은 “역시 김은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뒷이야기를 궁금케 하는 마력의 소유자
김은희 작가는 작품마다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설정, 흡인력 있는 캐릭터들의 조합 등 매력적인 요소로 완성도 높은 극본을 써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아신전’의 제작발표회를 통해 알려진, 전지현이 사석에서 만난 김은희 작가에게 “좀비라도 좋으니 ‘킹덤’에 출연하고 싶다”며 캐스팅 의사를 피력했던 일화는 방송가에서 김 작가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하지만 김은희 작가가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다. 1990년대 초 그녀는 백댄서라는 독특한 이력을 거쳐 SBS 예능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보조 작가에 불과했다. 장항준 감독이 먼저 예능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김 작가는 그를 사수로 만났고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후 장 감독은 예능작가에서 벗어나 영화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했고,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 극본을 시작으로 영화계에서 인정받아 극본가 겸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김은희 작가는 1998년 장 감독과 결혼할 당시만 해도 드라마나 영화를 쓸 생각은 하지 않던 터였다. 결혼 후 장 감독이 종이에 쓴 시나리오를 워드로 옮겨주는 작업을 돕다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김 작가는 2006년 이병헌, 수애 주연의 ‘그해 여름’을 통해 극본가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멜로 영화였지만 이후 그녀는 진로를 변경했다. 남편인 장 감독과 함께 2010년 tvN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대본을 집필하며 드라마 작가로 첫발을 뗀 것. 이후 2011년 SBS 드라마 ‘싸인’을 쓰며 본격적으로 장르물에 눈을 떴다. 당시 ‘싸인’은 법의학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며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연기의 신으로 꼽히는 박신양이 열연해 화제가 됐다. ‘싸인’은 매회 호평을 받으며 최종회에서는 시청률 24.9%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김은희 작가는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장르물을 연거푸 내놓으며 이름을 알렸다. 사이버 범죄와 살인사건을 다룬 소지섭 주연의 SBS 드라마 ‘유령’(2012), 대통령 납치 및 암살사건을 다룬 손현주 주연의 SBS 드라마 ‘쓰리 데이즈’(2014) 등은 그간 미니시리즈에서 볼 수 없던 장르물로 마니아층을 낳았고, 한국 드라마는 김은희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간 쌓아온 김은희 작가의 명성을 한 단계 뛰어넘게 한 작품은 2016년 방영된 tvN 드라마 ‘시그널’이다.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무선 통신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쫓는 드라마 ‘시그널’은 초반에 김혜수, 이제훈, 조진웅이라는 충무로 연기파 스타들이 출연해 합을 맞췄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과거의 변수로 달라지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형사들의 공조가 몰입도를 높였고, 비지상파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최종회 시청률 13.4%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가 됐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장르물이 주특기였던 김은희 작가는 2019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 ‘킹덤’ 시리즈를 내놓으며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공개 초반에는 선혈이 낭자하는 좀비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탁월한 스토리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흡인력 있는 서사 등으로 좀비물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까지 사로잡았다. 특히 7월 공개된 ‘아신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시즌 2까지가 한계라는 통념을 깨고 시즌 3에 대한 기대감까지 한껏 높인 상황. 영화 극본가로 데뷔 후 15년이 흐른 지금,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은희 작가를 7월 말 온라인으로 인터뷰했다.
‘아신전’ 공개 후 반응이 뜨거웠어요. 시즌 3을 기다린 시청자들은 ‘아신전’이 단편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아신전’은 시즌 3으로 가기 위한 에피소드로 봐주셨으면 해요. 이 이야기 없이 바로 시즌 3에서 아신을 비롯한 아이다간(여진족 우두머리) 등 새로운 인물들이 갑자기 등장한다면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것 같았거든요. 왕세자 이창과 대립각을 세울 아신이란 인물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설명하고 싶었어요. 또한 이들이 만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걸 시즌 3에서 다루면 주요 인물에 대한 몰입이 깨질 것 같기도 했고요. 최소한의 인물 소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즌 3의 프롤로그 성격으로 ‘아신전’을 썼죠. 더불어 시즌 3에서 ‘폐사군(조선시대 여진족을 막기 위해 압록강 상류에 세워진 4군으로 단종과 세조 때 폐쇄되면서 폐사군으로 불림)’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설명이 필요했고요. 일부 시청자들은 짧아서 아쉬웠다고 하는데, 이런 기획 의도를 맞추기 위해 단편으로 제작하게 됐어요.
아신은 조선과 여진의 경계에 사는 이방인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설움과 분노가 쌓인 인물이에요. 이런 설정의 주인공을 내세운 이유가 있나요.
시즌 1, 2에서 ‘생사초(극 중 사람을 살리는 풀로 불리지만 실은 죽은 자를 좀비로 만드는 매개체)’가 조선에 퍼진 이후의 상황이 그려지는데, 그 풀이 북방에서 전해진 것으로 나와요.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북방에 대한 기록을 찾다가 ‘성저야인(국경지대 성 아래에 모여 사는 야인)’에 대한 글을 보게 됐고, 이 사람들의 정체성이 없다는 게 참 슬프더라고요. 시즌 1, 2는 조선 지배계층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뤘다면, 시즌 3에서는 피지배계층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아신전’을 통해 차별과 멸시로 아신의 가슴속에 서린 ‘한’이라는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자 했죠.
전지현 배우가 열연을 펼쳐 화제가 됐어요. 작가로서 소감이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전지현 배우가 활을 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양궁을 따로 배웠나?’ 싶을 정도로 자세나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도 현장에서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따로 활 쏘는 걸 배우고 준비도 많이 했겠지만, 감독님은 “첫 테이크에 바로 극 중 인물처럼 활을 잘 쏘는 배우는 처음 봤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그 장면 이외 아신이 벌판을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단순히 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까지 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아신의 절절한 심경이 잘 느껴져 ‘정말 놀라운 배우다!’라고 생각했죠.
처음 전지현 배우를 만났을 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도 궁금해요.
그렇게 호탕한 여배우의 웃음소리는 처음 들어봤어요(웃음). 사실 여배우분들은 낯도 가리고 그러는데 전지현 씨는 너무 털털해서 진짜 ‘별에서 온 그대’ 속 천송이를 보는 듯했죠. 평소 모습은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모습은 차기작인 ‘지리산’에 그대로 투영됐어요. 마치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성장해 ‘지리산’에 등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몰라요. 반면 서늘한 눈빛이 스칠 때는 영화 ‘암살’ ‘베를린’ 등에서 봤던 그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고, 이번 ‘아신전’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잘 드러났어요.
창작의 원동력은 가족, 그리고 호기심
김은희 작가는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답변이 부족할세라 차근히 말을 이어나갔다. 작품에 관한 질문뿐 아니라 최근 방송을 통해 활발히 얼굴을 내비치는 남편 장항준 감독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는데 곤란한 기색 없이 편하게 대답하는 모습에서 소탈함이 느껴졌다. 종종 방송에서 언급한 바 있는 10대 딸에 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풀어냈다. 최근 몇 년 사이 김 작가는 스케일이 큰 작품을 연거푸 써온 터라 남편과 딸에 대한 부채감이 쌓인 듯했는데 인터뷰를 통해 직접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녀는 가족이야말로 지난한 창작의 고통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했다.남편인 장항준 감독님은 ‘아신전’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에 편집본을 먼저 보여줬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라며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장 감독이 역사를 잘 몰라서 이해를 못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이후 넷플릭스에 공개된 완성본을 보고 나서는 “재미있게 봤는데, 액션 장면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어”라며 아쉬워하더라고요.
엔딩 크레디트의 ‘고마운 사람들’ 리스트에 장항준 감독님 이름도 올라와 있었어요. 혹시 장 감독께서 ‘아신전’ 집필에 영향을 주셨나요.
제 작업을 위해 곁에서 늘 응원하고 격려해준 분들의 이름을 올린 거예요. 장 감독을 비롯해 제 딸의 이름도 나와요. 사실 제가 ‘아신전’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모니터링해주거나 조언을 해준 부분은 없어요. 요즘은 자기 일이 바빠서 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가끔 “이러면 어떨 거 같아?” 물어보면 그냥 “네 생각대로 해~”라고 영혼 없는 멘트를 날리죠. 그런데 그게 제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남편을 비롯해 제 작업을 응원해주는 가족들 모두 큰 힘이 돼요.
따님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딸이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편인가요.
제 작품이 대부분 19금이라 아직 미성년인 딸과 상의하진 않아요. 다만 일상 속에서 하는 응원의 말들로 힘을 얻죠. 보통 집을 나설 때 “엄마 일하러 갔다 올게~”라고 딸에게 인사하는데 한번은 “엄마가 일하러 가는 거 서운하지 않니?”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난 엄마가 김은희 작가라서 좋아”라며 “잘 다녀와~ 돈 많이 벌어와~”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가볍게 이야기하는 듯했지만 그 말 속에 ‘엄마, 그런 죄책감 갖지 말고 열심히 일해’라는 응원의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많이 고마웠어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친언니 등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주지만 딸과 남편이 가장 고마워요. 앞으로도 계속 제 작품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갈 거예요.
대본을 쓴 지 15년, 새로운 소재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집필해오셨어요. 어떤 방식으로 창작하는지 궁금합니다.
제 안에 내재된 생각들, 호기심들을 키우고 키우다가 작품의 소재로 쓰는 편이에요. 딱 하나의 소재만 가지고 쓰는 경우는 없어요. ‘킹덤’ 시리즈가 그 예죠.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었고, 좀비물도 워낙 좋아해 즐겨 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좀비들이 측은해 보이더라고요. 불현듯 사극과 좀비물이라는 두 소재가 만나 ‘킹덤’이 탄생하게 됐어요. 차기작인 ‘지리산’의 경우에는 한 번도 지리산에 가본 적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사람들이 젊은 시절 한 번쯤 방황하는 마음을 풀기 위해 가는 곳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하나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킹덤’을 비롯해 ‘시그널’ ‘유령’ ‘싸인’ 등 대부분 호평을 받았는데요.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모든 작품이 제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어요.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저를 드라마 작가로 살게 해준 첫 작품이고, ‘싸인’은 공중파에서 처음으로 제게 드라마 작가로서의 기회를 준 작품이에요. ‘유령’은 사이버 수사에 대한 공부를, 정말 사람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많이 하게 만든 작품이라 기억에 남고요. ‘쓰리 데이즈’도 (혹평으로) 큰 아픔이 있었지만 ‘다음 작품에서 더 독해져야 해’라는 마음을 갖게 해줬어요. ‘시그널’은 김원석 감독님을 비롯해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 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제가 작가로서 또 다른 눈을 뜰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죠. ‘시그널’ 이후 ‘내가 이전까지 시선이 좁았구나’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킹덤’의 경우 영상화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운 좋게 만들어졌고 여러 사람의 추진력으로 다음 시즌까지 기약하게 된, 믿기지 않는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하나의 작품을 끝낼 때마다 힘이 들지만 늘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다음 작품에서 또 독하게 대본을 써요.
작가님 작품에는 김혜수, 박신양, 소지섭, 조진웅, 배두나, 주지훈, 이제훈 등 유독 톱스타들이 많이 출연했어요. 어떻게 캐스팅이 가능했는지, 직접 관여하는 편인지 궁금해요.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이 좋았고 그분들과 같이 일하게 돼서 행복했어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김혜수 선배님은, ‘반드시 김혜수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김원석 감독님과 의기투합해 캐스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나요. 그분을 만나러 가기 전부터 겁을 잔뜩 먹고, 둘이서 “끝까지 설득해보자” 다짐했죠. 사실 캐스팅이란 건 다 인연이에요. 같이하고 싶은 배우지만 스케줄이 안 맞으면 힘들고, 다행히 스케줄이 맞아도 제작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제 작품에 출연한 분들은 다들 스케줄이 됐는지, 응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좋은 배우들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어요.
작가님 작품에는 평범한 인간 군상의 삶과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잘 그려지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어떤 신념을 갖고 작품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신인 작가 시절 기획 PD님들을 만나면 “이 작품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하셨어요. 그때는 속으로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돌이켜보면 그게 드라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더라고요. 대본을 쓸 때 ‘이 캐릭터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지?’ ‘이 이야기는 무엇을 향해 가지?’ 그런 방향성에 대해 늘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다가 힘든 순간에 그걸 떠올리면서 ‘내가 기획 의도를 또 놓쳤구나’ 깨닫기도 해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놓치지 않으면서 가려고 합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