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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여자가 슬프면 우주가 슬프다’ 허난설헌의 삶을 모티프로 한 ‘초희’ 출간

글 김명희 기자

2021. 01. 18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류서재 작가의 ‘사라진 편지’가 ‘초희’라는 이름으로 복간됐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는 ‘나목’의 박완서를 시작으로 우애령, 송은일, 장정옥, 김비 등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들을 배출했다. 

‘초희’는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누이이자 탁월한 문장가, 화가였던 허난설헌(허초희)의 삶을 시적 문체로 섬세하게 부조한 작품. 허초희는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조선중기 석학 허엽의 셋째 딸인 그는 열여섯에 김성립에게 출가했으나 정쟁에 휘말린 아버지의 객사에 이어 어린 두 아이를 차례로 잃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스물일곱에 요절했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초희’가 인물의 비극을 시의 비극으로 옮겨 시의 언어가 언어의 전사가 되어 언어의 존재 이유를 위해 투쟁하며, 이러한 언어들의 겨룸을 통해서 시와 정치에 대한 성찰을 크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토마스 하디가 더버빌가(家)의 ‘테스’를 통해 남성이라는 운명에 희롱당하는 여성의 순결 문제를 그렸다면, 류서재는 안동김가(家)로 출가한 ‘초희’가 시집살이로 인해 뒤바뀐 운명을 갇힌 자아, 자유의지의 문제로 슬프게 서사화했다. 소설 속 ‘여자가 슬프면 우주가 슬프다’라는 허균의 대사에는 초희의 신산했던 삶과 더불어 동서고금을 막론한 여성의 운명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작가 류서재는 먹물이 마르지 않는 집안, 가풍이 자유로운 문한가 남매 허난설헌, 허균의 독특한 인생, 시와 삶이 이분되지 않는 문학적 태도의 곡진함에 복간의 의미를 두었다. 

책은 초희가 시집살이의 고독과 슬픔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는 곡진함과 죽은 누이를 향한 허균의 애틋함이 어떻게 명나라 문사를 움직여서 동아시아에 유명한 문집을 만들어내는가를 웅숭깊은 시선으로 추적하고 있다. 또한 초희의 시 40여 수를 그림자처럼 깔아놓았는데, 작가는 초희의 시문이 조선을 넘어 중국, 일본으로 퍼져나간 시적 지평의 광활함을 부각하고, 그 속에 씨앗처럼 존재하는 시혼의 깊이를 심미적인 필치로 생생하게 이미지화했다.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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