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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에서 미국 첫 여성 Top Spy까지,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장 지명자 이색 이력

글 윤혜진

2020. 11. 30

미국 국가정보국 첫 여성 수장으로 지명된 애브릴 헤인스. [컬럼비아대 제공]

미국 국가정보국 첫 여성 수장으로 지명된 애브릴 헤인스. [컬럼비아대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대변인에 젠 사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선임고문을, 백악관 공보국장에 케이트 베딩필드 캠프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임명하는 등 공보팀 선임 참모 7인을 모두 여성으로 임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재무장관으로는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유력시 되는 등 그 어느 내각보다 여성 인재의 발탁이 두드러진다. 이 가운데 지난 11월 23일 국가정보국 국장으로 지명된 애브릴 헤인스(Avril Haines·51) 전 CIA 부국장은 남다른 인생 여정으로 눈길을 끈다. 상원 인준 절차를 통과할 경우 DNI 첫 여성 사령탑이 되는 애브릴 헤인스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은 9·11 테러 이후 정보기관 개편의 필요성에 의해 2004년 설립된 장관급 부처로 중앙정보국(CIA) · 연방수사국(FBI) 등 미 정보기관 17개를 총괄하는 곳이다. 특히 DNI 수장은 대통령에게 매일 보고를 하는 만큼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깡’을 요하는 자리다. 그런 주요 보직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네 번이나 교체한터라 그 어느 때보다 ‘최고 스파이’(미 언론에서는 DNI 국장을 ‘Top Spy’로 칭함)가 누가 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던 차였다. CIA 부국장, 국가 안보 수석부보좌관 등을 거친 애브릴 헤인스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불협화음 없이 이끌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의 다양하고 독특한 이력도 한 몫 한다.

유도와 경비행기 조종 즐기던 북카페 주인

애브릴 헤인스가 11 월 24 일 국가정보국 국장DP 지명된 후 연설을 하고 있다. [GettyImage]

애브릴 헤인스가 11 월 24 일 국가정보국 국장DP 지명된 후 연설을 하고 있다. [GettyImage]

애브릴 헤인스는 1969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그의 집은 과학자이자 화가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책과 그림이 가득했고, 늘 손님으로 북적였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네 살 때 결핵에 걸린 어머니는 16세가 된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12세부터 직접 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심신이 지쳤던 헤인스는 고교 졸업 후 일본으로 날아갔다. 1년간 머물며 유도를 배워 갈색띠(1급)를 따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헤인스는 1988년 시카고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공부했다. 그 즈음 자동차 수리업체에서 일하면서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는데 유럽 횡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당시 훈련 교관과 그는 실제로 1961년산 낡은 세스나 경비행기를 구입해 비행하던 중 대서양 상공에서 엔진이 꺼져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 비상 착륙하는 아찔한 일도 겪었다. 그녀는 당시 교관이던 데이비드 다비기와 2003년 결혼한다. 

1992년 돌연 존스 홉킨스 대학 박사 과정을 중퇴한 헤인스는 경비행기를 팔고 은행 대출을 얻어 볼티모어에 북카페를 열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딴 ‘Adrian's Book Cafe’에서는 지역 작가들의 특이한 책을 팔았고 한 달에 한번 ‘에로티카 문학의 밤’이란 독서 모임을 열었다. 1995년 지역 신문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에서 헤인스는 “사람들이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으면서 성적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에로틱 소설이 더욱 퍼졌다”고 설명했다. 



낡은 바를 사들여 운영한 북 카페는 이내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제안하며 사업 확장을 권하기도 했으나 당시 법률에 관심이 있던 그는 1998년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200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리학에서 법학으로, 30대 제 2인생 시작

30대에 접어든 헤인스는 본격적으로 외교 안보 전문가로의 길을 걸었다. 2001년 헤이그 국제사법회의(HCCH)에서 법무관으로 일을 시작해 2003~2006년 국무부 법률 고문실에서 일했고, 2007~2008년 바이든이 위원장으로 있던 상원 외교위원회의 부 고문으로 일하며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2010년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해 국가 안보위원회 법률 고문으로 일하다 2013년 여성 최초로 CIA 부국장으로 발탁돼 2015년까지 일했다. CIA 부국장 시절 비밀리에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일관된 대북 압박을 통해 비핵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국가 안보 수석부보좌관을 끝으로 2017년 백악관을 떠난 후에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며 일했다. 또 차기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이 공동 창립자 중 한명인 외교 전략 컨설팅 회사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에 몸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애브릴 헤인스

“헤인스는 항상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하고 의사 결정권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불필요한 표현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는 똑똑하고 겸손하며, 한 번의 대화에서 문학과 이론물리학, 자동차 수리와 비행기 운전, 북 카페 운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1월 24일 초대 외교안보팀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녀와 함께 일할 때 나는 그녀가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신 그녀는 매 회의마다 많은 메모와 함께 나타났다. 그녀는 정치를 하거나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책 결정을 알리는 걸 돕고 싶어 했다. 그녀는 멀티태스킹에 능하다”
-헤인스와 함께 백악관 국가 안보위원회에서 근무했던 CNN 국가안보 해설위원인 사만사 비노그래드가 11월 24일 CNN에 기고한 글 중

“모범적인 공무원인 헤인스는 지성, 직업윤리, 겸손함으로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나는 그녀에 대해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우리 행정부에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
-2014년 12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헤인스를 국가 안보 보좌관으로 발탁하며

사진 컬럼비아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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