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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foodie

집밥 전도사에서 채소 전도사 변신 탤런트 김양출

글 이미주

2020. 08. 24

쌀에 매료되어 시작한 집밥 콘셉트 식당이 채소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채소 바로 다시 태어났다. ‘좋은 것을 내놓는다’는 양출(良出)의 새로운 도전에 대하여.

양출쿠킹의 성장, 양출서울

모던하고 내추럴한 양출서울의 내부 전경. 오른쪽 벽면의 그림은 자연을 소재로 한 운우 작가의 작품.

모던하고 내추럴한 양출서울의 내부 전경. 오른쪽 벽면의 그림은 자연을 소재로 한 운우 작가의 작품.

‘focus on vegetables’, 출입문에 쓰인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양출서울의 모든 메뉴는 채소가 주인공이다(왼쪽). 매주 화요일, 충남 홍성에서 채소 꾸러미가 배송된다.

‘focus on vegetables’, 출입문에 쓰인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양출서울의 모든 메뉴는 채소가 주인공이다(왼쪽). 매주 화요일, 충남 홍성에서 채소 꾸러미가 배송된다.

집밥이 외식 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은 7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인 가구와 혼밥족이 증가함에 따라 따스한 감성에 목말랐던 소비자들은 그냥 백반이 아닌 ‘정성스러운 한 끼’ 집밥에 열광했고, ‘먹방’ ‘쿡방’은 이러한 트렌드에 기름을 부었다. 2014년 5월, 집밥 열풍의 시작점에서 양출쿠킹이 문을 열었다. 김양출 대표의 가늘고 여리지만 야문 손끝에서 완성되는 집밥은 빠르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1년도 채 안 돼 근처에 2호점을 낼 정도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도 있는 법. 집밥 키워드는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했으나 집밥 식당에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는 목표물을 바꿔가며 조준했고, 양출쿠킹도 대중 매체에서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매스컴의 조명을 받든 그렇지 않든 김 대표는 매일 새 밥을 짓고 손님을 맞았다. 그러는 사이 양출쿠킹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좋은 식재료를 고집하다 보니 원가가 높아 수익 창출이 한계에 부닥쳤고,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디너에 와인 리스트를 추가하고 실험적인 메뉴도 선보였던 것.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반상에 정갈하게 차린 집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양출쿠킹 디너 파트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요리를 시도했어요. 그런데 워낙 밥집 이미지가 강해 새 메뉴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더라고요.”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 요리에 대한 자신감 상실은 슬럼프로 이어졌다.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송호윤 셰프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채소를 메인으로 음식을 내는 채소 바를 오픈하자고 한 것. 밥에 한정되지 않는 음식을 해보고 싶었고, 채소는 지속적으로 다뤄온 식재료라 확신도 있었다. 무엇보다 송 셰프의 진정성을 신뢰했다. 그렇게 신사동 가로수길의 터줏대감 양출쿠킹은 논현동 한적한 주택가로 자리를 옮겨 양출서울(@yangchulseoul)로 다시 태어났다.

채소의 매력 발산

양출서울의 주방을 총괄하는 송호윤 셰프. 그날 채소의 수급상황과 상태에 맞게 메뉴를 구성한다.

양출서울의 주방을 총괄하는 송호윤 셰프. 그날 채소의 수급상황과 상태에 맞게 메뉴를 구성한다.

focus on vegetables(채소에 주력하다). 양출서울은 출입문에 새겨진 슬로건에 걸맞게 스타터부터 메인 디시, 디저트까지 채소를 기본 재료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고수를 듬뿍 올린 탄탄면, 통가지와 볶은 채소가 어우러진 소고기통가지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날 채소의 수급 상황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용하는 채소의 생김새가 심상치 않다. 둥근 가지와 줄무늬 가지, 파스텔컬러 고추, 다양한 모양의 파프리카, 미니 사이즈 버터넛스쿼시까지 천편일률적인 ‘마트표’ 채소와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다. “매주 화요일 채소생활이라는 농장에서 제철 꾸러미가 올라와요.” 양출쿠킹 시절 특수 채소를 구하다 연을 맺은 충남 홍성에 위치한 채소생활(@vegelab)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소규모 농장이다. 채소가 지닌 매력과 재미, 맛과 멋을 탐구하며, SNS를 통해 채소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건강한 식재료는 김양출 대표의 영원한 화두인 만큼 채소에 대한 관심은 양출쿠킹 오픈 때부터 쭉 이어져왔지만 채소생활을 알게 되면서 참 매력에 푹 빠졌다. “하우스 재배 기술의 발달로 제철이라는 개념이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우리나라 사계절을 제대로 만끽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제철 채소를 먹는 것 아닐까요? 계절감을 혀끝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자연이 주는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은 나눌수록 커지기에 채소에 집중한 의미 있는 도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주말에는 양출쿠킹에서 ‘야사이 위켄드(채소 주말)’라는 주제로 채소 요리만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같은 주제로 홍성, 양양에 이어 올해 초 도쿄 시부야의 파르코백화점 내 레스토랑에서 팝업 키친을 열었다. 그리고 양출서울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채소 전도사로 나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채소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 “채소를 메인 재료로 사용해 어떻게 조리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갈증이 가장 컸어요. 농부 시장 마르쉐만 가더라도 평소에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채소를 만날 수 있지만 먹는 방법을 몰라 구입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거든요.” 

채소 구입이 늘어나면 유통의 어려움 때문에 특수 작물을 포기한 농부가 다시 재배를 시작할 것이고, 다양한 이색 채소의 공급이 늘어나면 외식 업계 종사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배우에서 셰프, 셰프에서 다시 경영자로

양출서울에서 김양출 대표는 키친이 아닌 홀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와인을 서빙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셰프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실력과 감각을 겸비한, 심지어 체력까지 좋은 젊은 후배들이 계속 쏟아지는데 제 자존심만 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럴수록 자괴감만 커질 뿐이었죠.” 그렇다고 눈높이를 낮추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대신 생각을 달리했다. “그러고 보면 양출쿠킹을 시작하면서 제 입으로 셰프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밥에 미쳐 있었고 건강한 한 끼에 대한 확신도 있었지만 ‘셰프’ 칭호는 저에게 너무 과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김 대표는 2002년 SBS 오픈 드라마 ‘남과 여’로 데뷔한 연기자다. 이후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 ‘왕과 나’ 등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감초 연기를 선보였고, 박사 학위를 따러 간 일본에서 요리에 눈을 떴다. 베테랑 연기자가 도쿄 핫토리영양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신사동 가로수길에 밥집을 오픈한 스토리는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되기에 충분했고, 그를 소재로 한 기사는 재가공을 거듭해 어느새 건강한 집밥을 대표하는 셰프로 우뚝 서 있었다. “양출쿠킹을 운영하면서 매스컴이 만들어준 타이틀이 버겁기도 했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 마음먹으니 잘하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안 되는 것에 애쓰지 말고 그들을 지원사격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주방에서 쌓은 다년간의 경험 덕에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경영자, 투자자로서 후배 셰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요리 세계에 입문한 지 11년 차에 주방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렸다. 

양출서울에서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송호윤 셰프는 양출쿠킹 2호점을 오픈하면서 합류한 멤버로 어느덧 7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양출서울의 채소 바 콘셉트는 엄연히 따지면 그의 아이디어였다. 밝고 친화력 좋은 김 대표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송 셰프지만 음식에 대한 관심사만큼은 김 대표와 꼭 닮았다.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던 중에 스태프밀에 빠져 집밥을 내는 김 대표와 손을 잡았고, 함께 건강한 한 끼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채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 대표는 송 셰프를 스카우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에게 스카우트당한 것이라 표현했다. “집밥의 한계에 부딪쳐 자포자기했던 찰나에 송 셰프가 새로운 콘셉트의 레스토랑 오픈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같은 요리임에도 양출쿠킹이 아닌 양출서울에서 채소를 다루니 손님들이 저희를 다시 봐주기 시작한 거예요. 채소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다 몰려오더라고요.” 

양출서울은 채소 메뉴에 내추럴 와인을 주로 페어링한다. 대량생산을 위해 맛을 표준화한 채소가 아닌 작은 농장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키운 ‘못생긴’ 제철 채소와 어떤 것도 넣거나 빼지 않은 내추럴 와인은 닮은 데가 있다. 또 만년 조연인 채소가 주연으로 승격된 양출서울의 스토리는 김 대표의 인생사와 일맥상통한다. “사실 연기와 요리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계속 준비는 하고 있는데 언제 빛을 볼지 모른다는 것, 농익을수록 더욱 매력을 뿜는다는 것. 다른 점은 연기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면, 요리는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에 만족합니다.” 내숭이 없어지는 나이가 되면서 요리가 편해졌다는 김 대표. 직접 주방을 책임지지 않더라도 식문화 관련해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때 무거운 짐이었던 요리를 이제야 비로소 즐기게 되었다고 10년 만의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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