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기사

column

“아들, 밥 먹어라”

박선영 더하우 영성경영연구소 대표

2020. 08. 18

박선영의 우리 아이 큰그릇으로 키우기


더하우 영성경영연구소 대표이자 태광실업 고문. 태광실업의 수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영성에서 답을 얻었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본성을 타고났으며, 영성회복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더하우 영성경영연구소를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기업 컨설팅 노하우를 공유한다.



“아들, 밥 먹어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순이 훨씬 넘은 어머니가 40대 아들을 이렇게 부르더군요. 앞서 언급한 방송이 아니더라도 어머니가 결혼한 아들을 ‘아들’이라고 칭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한 여성의 남편이요, 아이들의 아버지인 성인을 아직 자신의 아들로만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을 아들로만 생각하는지 며느리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시어머니를 보면 기가 찬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 성인 대접을 했습니다. 어릴 때는 이름을 부르다가도 그 아들이 장성해서 결혼하면 ‘아범’이라고 호칭을 바꾸고, 그 아들에게 자식이 생기면 ‘ㅇㅇ아범’이라 불렀습니다. 그도 아니면 손자나 손녀 이름을 부르며 말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ㅇㅇ야 아버지에게 이리, 저리 말씀드려라.” 

가시 많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 했는데 어찌 자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식이 귀하기는 하지만 부모가 그 자식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온실에서 키운 화초는 오뉴월에도 바깥에 내놓으면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죽어버립니다. 비 맞고 찬 바람 맞으며 한밤의 냉기를 견뎌낸 화초가 꽃도 더 많이 피우고 색깔도 화려하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들, 밥 먹어라.” 

사랑을 빙자한 관심이 내 자식을 곱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죽이는 것이라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자식에게 갖은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정성을 들일 수는 없는 것이니 귀한 자식을 부모의 지식이나 경험의 한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틀어막고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삼강오륜(三綱五倫). 사회질서 유지에 꼭 필요한 도덕률입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그 도덕률도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적용해야지 말이나 글로만 해석하고 실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영원한 숙제인 고부 갈등이 왜 생기겠습니까? 

부모와 자식 이전에 각자 살아온 인생 역정이 다르고 살아갈 세상이 다른 사람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내 자식의 아내니 내 자식에 맞추며 살아주기를 바라니 불만이고, 며느리는 내 남편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로만 생각해서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간섭한다고 생각하니 불평불만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도 자식 이전에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요, 며느리도 내 며느리이기 이전에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고부 갈등을 넘어 사위와 장모 간의 갈등이 문제라고 합니다. 부모가 있어 내 배우자가 있는 것이니 상대방 부모도 어찌 소중한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식도 부모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요,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때 부모로서의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이라고 해서 억지로 내 기준에 맞추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요, 배려 이전에 먼저 존재 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진정한 효도는 부모의 요구를 좇아 맞추기보다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