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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일자리 제공, 경제자립 기반 마련!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승원 이사장

EDITOR 김지은

2020. 06. 09

전국 최저가로 자동차 기름을 배달 받아 사용하고, 취업이 어려운 취약계층의 일자리까지 창출까지 도울 수 있다면 이보다 착한 소비가 있을까. 이 흥미로운 아이디어의 주인공 이비티에스(ebts)협동조합 이승원 이사장을 만났다.

이승원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사장. [조영철 기자]

이승원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사장. [조영철 기자]

“최근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지난해, 탈북 모자의 아사사건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개인의 가난이나 사회복지제도의 문제 외에 다른 문제가 또 있다는 뜻이죠.” 

올해 나이 쉰일곱. 혹자에게는 은퇴를 생각할 늦은 나이이지만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승원 이사장에게는 지금이 인생 3막을 시작하기 딱 좋은 때이다. 그가 꿈꾸던, 누구나 밥 먹고 살 걱정은 않고 지내도 되는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자신의 능력과 경험치가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새로이 힘을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최근 경영이 어렵거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주유소들을 모아 조합을 설립하고, 취업이 힘든 소외계층을 주유소 파견직 사원으로 채용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내년쯤에는 ‘찾아가는 주유배달서비스’도 시도할 생각이다.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주유배달서비스는 이미 부스터퓨얼(Booster Fuel), 제브라퓨얼(Zebra Fuel) 등의 회사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론칭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신사업이다. 이들 기업과 이비티에스협동조합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려운 주유소’와 갈 데 없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조합이다.

취약계층에 일자리 제공

이승원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사장. [조영철 기자]

이승원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사장. [조영철 기자]

“사회적 기업이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들 합니다. 성공의 개념 자체가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르니까요. 핵심은 사회성과 기업성이 정확히 50대 50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51만 되어도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이비티에스협동조합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는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자고 만든 게 아닙니다. 큰돈은 못 벌더라도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적어도 망해서 문 닫고 드러눕거나 일을 하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은 없게 하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탈북민, 그리고 혼자서 경제활동을 하며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미혼모와 한부모 가정 여성들이다. 탈북 여성의 경우 중국에서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인신매매혼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가 남한으로 넘어오거나, 탈북 후 외로움 때문에 동거를 시작했다가 아이까지 갖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아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탈북민들의 어두운 이면이다.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을 정도가 되면 동사무소에 찾아가 하소연이라도 해야 하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으니 시도를 해볼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탈북민들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존심도 셉니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특성도 있고요. 서로 마음을 열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건 우리의 생각이고, 이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거겠죠.” 

그래서 이 이사장은 소통을 강조한다. 지난 5월 20일 인천 논현동 소래포구의 한 횟집에서 황해도 출신 탈북민 30여 명과 식사자리를 마련하는 등 꾸준히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본사가 있는 경기 양주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탈북민 등 취약계층을 위한 문화공연도 준비 중이다.

탈북민에게 필요한 건 경제관념과 정서함양 교육

이승원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사장이 5월 20일 인천 논현동 소래포구의 한 횟집에서 황해도 출신 탈북민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승원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이사장이 5월 20일 인천 논현동 소래포구의 한 횟집에서 황해도 출신 탈북민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비티에스협동조합]

애초 탈북민에게 경제관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초기 정착금으로 지급된 돈을 며칠 사이에 다 써버리거나,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으로 몇 달 만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체득할 기회가 없던 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형식적인 이론 교육이 아닌, 살아있는 자본주의를 체득할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의 순간을 넘나들었던 기억을 치유할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인문교양 프로그램도 중요하다. 그는 그 최소간의 기간을 3년으로 봤다. 

“단순히 취업만 시켜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주유소의 사무실 공간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일을 하면 3년 후 1억 원의 경제자립금을 지급하는 것이 조합의 플랜입니다. 월 200만원씩 36개월을 모은 급여와 조합기부금 300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거죠. 그 3년간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이 운영하는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문화예술 활동도 병행하게 됩니다.” 

급여는 주유소 측이 아닌 조합에서 지급한다. 사회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시 사회적 기업에 지급되는 정부 지원금에 영업이익금을 더하면 충분히 충당 가능한 금액이라고 한다. 주유소로서도 별도의 인건비를 들이지 않고 숙식만 제공하면 두 명까지 인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단, 조합에 가입하려면 영업이익이 바닥을 치는, 소위 말하는 ‘망해가는’ 주유소여야 한다. 내부 과당경쟁을 피하기 위해 반경 1km 내 같은 조합원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워두었다.

주유소 과당경쟁 대신 상생의 길 찾아야

“사업화 첫 단계의 목표는 조합원 주유소의 판매가를 알뜰주유소 이하로 낮추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인건비를 절감하는 겁니다. 거리제한이 사라지면서 현재 국내 주유소의 1/3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장사가 안 되니 대량구매가 어려워 비싼 가격에 기름을 들여올 수밖에 없고, 가격경쟁에서 뒤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됩니다. 조합에서 기름을 대량 매입하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여기에 두 번째 단계인 취약계층의 파견근무로 인건비까지 절감되면 가격 경쟁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죠.” 

사업화 3번째 단계는 근거리에 있는 주유소들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주유소들을 통폐합해 매출액을 공평하게 나눠가짐으로써 제 살 깎아먹기를 멈추고 숨통을 틔우는 것이다. 매출에 조금씩 차이가 나던 업주들이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까. 그는 자신 있게 “No!”라고 말했다. 어차피 제살 깎아먹기로 망해가던 주유소들이라면 조합에서 제공하는 혜택이면 서로 망하지 않고 먹고 살 정도로 나눠가질 수 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외 주유소 경영에 필요한 실질적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는 30년간 주유소를 경영한 노하우를 책으로 엮어낸 백산주유소 문성필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금오공대 IT융합학과 김영형 교수는 배달앱 개발 등 기술부문 사외이사직을 맡았다. 

남은 것은 법제도의 개혁이다. 현행 유류 관련 법들은 1950년대 만들어진 것들로, 가정용 등유나 산업용 경유 외에는 배달 서비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시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해외에서도 이미 주유배달 차량 내 리터기를 장착하고 카드 결제 시스템을 통해 기름을 몰래 빼돌리는 등의 구시대적 행태는 근절시킨 지 오래다. 그가 바라는 대로 내년 이맘때 즈음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집 앞마당이나 회사 주차장, 한적한 시골길 어디에서나 최저가로 배달된 기름을 주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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