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일과는 회사 업무가 3, 개인적인 일이 7 정도입니다. 개인적인 일은 주로 2017년에 설립한 제산평생학습재단과 관련된 거예요. 책을 구해 읽기 어려운 시골의 아이들에게 책과 독서대를 보내주는 국민독서보급사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펴낸 마오쩌둥 평전 ‘살아서는 황제(皇帝) 죽어서는 신(神) 마오쩌둥(아이케이출판사)’이 전부가 아니었다. 김상문(68) 아이케이그룹 회장은 얼마 전 초등학생들을 위한 에이브러햄 링컨 평전 집필을 마쳤고, 내년엔 중고생들을 위한 백범 김구 평전과 포항제철 설립자인 박태준 회장 평전도 펴낼 예정이다. 링컨 평전은 비매품으로 5만 부 정도를 찍어 독서대와 함께 전국 읍면 단위 초등학생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박태준 평전은 박 회장을 잘 아는 작가에게 집필을 의뢰해놓았다. 김구 평전은 읍면 단위 중학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박태준 회장 평전은 읍면 단위 고등학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이미 많은 링컨 위인전이 있지만 대부분 통나무집, 독학, 노예 해방 이야기에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미국에는 흑백 갈등은 있을지언정 우리처럼 심각한 지역 간 갈등은 없거든요. 왜 그럴까요. 지역 갈등이 생길 조짐이 보일 때마다 미국인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What would Lincoln do?(링컨이라면 무엇을 했을까?)’”
2012년 ‘타임’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갈등과 대결의 분위기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링컨이 발휘한 통치자로서의 포용력, 관대한 리더십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링컨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집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평지 채굴 사업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 관련 법 규정을 공부하고 유관 기관을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던 그의 열정은 ‘114’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이케이 본사 사옥 곳곳에 아로새겨진 114는 그의 열정을 대변한다. 채석 사업을 하던 시절, 채굴에 적합한 땅을 발견하고서도 돈을 지불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그는 땅 주인에게 “우선 땅을 빌려주면 돈은 벌어서 갚겠다”는 황당무계한 제안을 했다. 114는 당시 김 회장이 그 땅을 빌리기 위해 땅 주인을 찾아가 설득한 횟수다. 처음에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김 회장을 내쫓았던 땅 주인은 그의 끈질긴 노력에 감복해 땅을 내주었고, 덕분에 사업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땅 주인과의 인연은 약속한 임차료를 갚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최근엔 병마와 싸우고 있는 땅 주인의 투병 생활을 돕고 있다고 한다.
114 정신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경영 철학이 독서와 학습이다. 회사 내에 도서관이 있는 것은 물론, 화장실을 비롯해 곳곳에 책들이 비치되어 있을 정도다. 그의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나 독서를 업무의 연장처럼 습관화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직원은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당할 정도로 그 비중이 절대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퇴사한 직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읽는 습관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힘이 들겠죠.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다 보면 직원들 스스로가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자기 입으로 ‘고객을 만날 때도 격이 달라진다’고 얘기할 정도니까요. 모임이나 가벼운 술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변화가 느껴진다고도 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던 그는 소위 요즘 말로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였다. 그러나 그에게 가난은 좌절이 아닌 또 다른 도전의 기회였다.
“내려갈 데가 없다는 것은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젊은 시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도전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군 복무 당시 작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1년에 1백 권 이상의 장서를 소화해낼 정도로 생활화되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것도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까지 진학한 그는 국내에서 몇 명 안 되는 한자 특급 자격증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저우언라이(주은래) 평전, 덩샤오핑(등소평) 평전(‘소평소도’)에 이어 마오쩌둥(모택동) 평전을 출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로써 김 회장은 중국 공산당의 3대 핵심 인물을 망라한 국내 최초의 저자가 되었다.
그런데 하필 지금, 왜 마오쩌둥일까. 마오는 현대 중국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 등 중국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가혹한 사건들의 주인공이다.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이 없었고, 중국 공산당이 없었다면 현대 중국 정부도 없었죠. 공산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당’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중국에 이 시스템을 만든 것이 마오입니다. 그렇기에 중국 공산당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한 마오는 중국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 겁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떠받들 듯이 중국 사람들은 마오의 말과 글을 떠받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차 안에 성모 마리아상이나 묵주, 염주를 걸어놓는 것처럼 중국 사람들은 마오 초상을 걸어놓습니다.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인 거죠. 그렇기에 더더욱 마오를 알지 않고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등으로 전 세계가 뒤숭숭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영향력이 사그라들거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필 기간만 4년여, 그는 마오쩌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과 수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공부를 새로이 했다. 마오쩌둥에 대한 그의 평가는 ‘공(功)과 과(過)가 분명한 인물’이다.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는 급이 다른 인물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마오쩌둥은 중국 역사에서도 몇 안 되는 큰 지도자입니다. 스탈린에게 무시당하고 견제받으면서도 중국 공산당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장제스까지 물리치고 역사의 승자가 된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가 1년 넘게 1만2000km가 넘는 길을 도망 다니던 ‘대장정’ 시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책입니다. 전질 2백 권에 달하는 ‘자치통감’을 내내 들고 다녔을 정도라니 책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죠. 그런 그가 꿈꾸던 것이 바로 공산 천국이었습니다. 중국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모두가 잘사는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것, 그것이 마오의 꿈이었죠.”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천부적 자질을 가진 지도자가 저지른 결정적 실수, 인간의 이기심을 간과한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마오쩌둥이 꿈꾸던 이타적 세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실패를 복구할 대안으로 고안해낸 문화대혁명은 그야말로 끔찍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오쩌둥이 간과한 것이 인간의 맹목적 충성심, 그리고 이기심입니다. 모든 사람이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그의 말대로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는 있었지만, 일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던 거죠. 결국 자신이 가진 견제되지 않는 권력, 검증되지 않고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만으로 내려진 의사 결정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낼지 마오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던 겁니다. ‘자신감’이 ‘자만감’으로 변질하고, ‘무오류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함정에 빠진 당시 마오와 중국 공산당의 행보가 지금 우리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문호가 개방된 오늘날에도 중국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 나라다. 엄청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가진 나라, 우리나라와의 무역 거래량은 물론 여행자 수, 비즈니스 관계 모든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무시나 안 당하면 다행인 존재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는 반문했다.
“우리가 이런 중국을 제대로 알거나 넘어서지 않고서 과연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지도자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시행착오, 그럼에도 그 과오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따라가기만 했던 수많은 추종자들, 그로 인해 비롯된 엄청난 비극들, 그 뒤에 감춰진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우리가 과연 어떻게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로 유지되는 ‘거대한 공룡’ 중국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토록 중국에 대한 공부를 강조하는 그가 정작 세계 권력구조의 재편 과정에 대해서는 뜻밖의 견해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곧 포스트 아메리카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포스트 아메리카가 중국이라는 일각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과연 중국의 시스템이 미국의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아메리카는 중국이 아닌 새로운 미국이 될 것이라 봅니다.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의 새로운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려는 태도로 보아야 합니다. 하물며 중국의 절대 권력자 시진핑조차 외동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지 않았습니까. 다만 지리적으로 우리에게 중국은 가깝고 미국은 먼 나라니까,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국의 포지션이 훨씬 커졌으니까 아이들에게 중국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행히 요즘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중국 학교가 많으니 그런 곳으로의 유학도 추천할 만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아이케이그룹은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미래 친환경 산업을 이끌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중국 시장 진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토종 기업의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술과 고화처리·토양정화 관련 기술이 바야흐로 세계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인 셈이다.
‘1억 달러’라는 단어가 가진 상징적 의미는 크다. 1964년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날, 이 기념비적인 날을 기억하기 위해 정부는 ‘수출의 날’을 제정, 공포했다.
“내년이면 우리 아이케이그룹이 탄생 3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 국가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죽기 살기로 매달려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지 불과 70년이 지나지 않아 이제는 그 국가에 뿌리내린 작은 기업들이 1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죠. 더 놀라운 것은 이제 해외에서 우리를 미래 산업의 주역으로까지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회사의 건축폐기물 처리 공정만 해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앞선 기술을 자랑합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더미를 연상하고 현장 견학을 왔던 해외 바이어들이 잔디가 펼쳐진 넓은 마당과 아름다운 미학적 구조를 가진 건축물, 그리고 비산먼지를 최소화한 실내 폐기물 리사이클링 시설에 깜짝 놀라곤 하죠.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은 작은 밀알의 역할에 불과합니다. 회사가 더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더 부강해지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이겠지요. 이러한 자질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일 테고요.”
‘100년 사옥’으로 불리는 아이케이그룹 본사 사옥은 인천 산업단지에 있는 탓에 주변이 온통 잿빛 풍경이다. 하지만 사옥에 들어서면 푸른 잔디밭과 미술관 같은 멋진 건물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건축가 윤경식의 작품으로 2013년 세계건축상 건축가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6년 인천시 주최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 어워드’에 선정됐을 정도다. 외관뿐 아니라 4층 갤러리를 비롯해 사옥 곳곳에 그림과 도자기 등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어 직원과 방문객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이런 아이케이 사옥의 모습이 김상문 회장의 경영 철학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폐자재는 ‘쓰레기’가 아닌 아름다운 재활용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앞선 생각, 건축물 폐자재 처리 공정도 충분히 친환경적이고 깨끗할 수 있다는 생각, 그 뒤에는 책 속에서 길을 찾은 그의 선지적 행보가 담겨 있구나 하는.
사진 김도균 디자인 최정미
최근 펴낸 마오쩌둥 평전 ‘살아서는 황제(皇帝) 죽어서는 신(神) 마오쩌둥(아이케이출판사)’이 전부가 아니었다. 김상문(68) 아이케이그룹 회장은 얼마 전 초등학생들을 위한 에이브러햄 링컨 평전 집필을 마쳤고, 내년엔 중고생들을 위한 백범 김구 평전과 포항제철 설립자인 박태준 회장 평전도 펴낼 예정이다. 링컨 평전은 비매품으로 5만 부 정도를 찍어 독서대와 함께 전국 읍면 단위 초등학생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박태준 평전은 박 회장을 잘 아는 작가에게 집필을 의뢰해놓았다. 김구 평전은 읍면 단위 중학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박태준 회장 평전은 읍면 단위 고등학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이미 많은 링컨 위인전이 있지만 대부분 통나무집, 독학, 노예 해방 이야기에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미국에는 흑백 갈등은 있을지언정 우리처럼 심각한 지역 간 갈등은 없거든요. 왜 그럴까요. 지역 갈등이 생길 조짐이 보일 때마다 미국인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What would Lincoln do?(링컨이라면 무엇을 했을까?)’”
2012년 ‘타임’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갈등과 대결의 분위기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링컨이 발휘한 통치자로서의 포용력, 관대한 리더십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링컨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집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흙수저에게 주어진 것은 ‘도전의 기회’
김상문 회장의 이력은 남다르다. 그는 앞서 소개한 제산평생학습재단의 설립자 이전에 건축폐기물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리사이클링 회사 ‘아이케이’의 오너다. 국내 최초로 산을 깎아 돌을 캐내는 것이 아닌 평지에서 돌을 캐내고 그 자리에 순환골재를 채워 메우는 새로운 방식으로 토양 오염과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평지 채굴 사업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 관련 법 규정을 공부하고 유관 기관을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던 그의 열정은 ‘114’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이케이 본사 사옥 곳곳에 아로새겨진 114는 그의 열정을 대변한다. 채석 사업을 하던 시절, 채굴에 적합한 땅을 발견하고서도 돈을 지불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그는 땅 주인에게 “우선 땅을 빌려주면 돈은 벌어서 갚겠다”는 황당무계한 제안을 했다. 114는 당시 김 회장이 그 땅을 빌리기 위해 땅 주인을 찾아가 설득한 횟수다. 처음에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김 회장을 내쫓았던 땅 주인은 그의 끈질긴 노력에 감복해 땅을 내주었고, 덕분에 사업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땅 주인과의 인연은 약속한 임차료를 갚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최근엔 병마와 싸우고 있는 땅 주인의 투병 생활을 돕고 있다고 한다.
114 정신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경영 철학이 독서와 학습이다. 회사 내에 도서관이 있는 것은 물론, 화장실을 비롯해 곳곳에 책들이 비치되어 있을 정도다. 그의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나 독서를 업무의 연장처럼 습관화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직원은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당할 정도로 그 비중이 절대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퇴사한 직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읽는 습관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힘이 들겠죠.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다 보면 직원들 스스로가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자기 입으로 ‘고객을 만날 때도 격이 달라진다’고 얘기할 정도니까요. 모임이나 가벼운 술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변화가 느껴진다고도 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던 그는 소위 요즘 말로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였다. 그러나 그에게 가난은 좌절이 아닌 또 다른 도전의 기회였다.
“내려갈 데가 없다는 것은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젊은 시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도전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군 복무 당시 작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1년에 1백 권 이상의 장서를 소화해낼 정도로 생활화되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것도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까지 진학한 그는 국내에서 몇 명 안 되는 한자 특급 자격증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저우언라이(주은래) 평전, 덩샤오핑(등소평) 평전(‘소평소도’)에 이어 마오쩌둥(모택동) 평전을 출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로써 김 회장은 중국 공산당의 3대 핵심 인물을 망라한 국내 최초의 저자가 되었다.
마오쩌둥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
현대 중국을 만든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 평전을 펴낸 김상문 아이케이그룹 회장은 읍면 단위 학생들에게 책을 기증하는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이 없었고, 중국 공산당이 없었다면 현대 중국 정부도 없었죠. 공산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당’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중국에 이 시스템을 만든 것이 마오입니다. 그렇기에 중국 공산당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한 마오는 중국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 겁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떠받들 듯이 중국 사람들은 마오의 말과 글을 떠받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차 안에 성모 마리아상이나 묵주, 염주를 걸어놓는 것처럼 중국 사람들은 마오 초상을 걸어놓습니다.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인 거죠. 그렇기에 더더욱 마오를 알지 않고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등으로 전 세계가 뒤숭숭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영향력이 사그라들거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필 기간만 4년여, 그는 마오쩌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과 수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공부를 새로이 했다. 마오쩌둥에 대한 그의 평가는 ‘공(功)과 과(過)가 분명한 인물’이다.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는 급이 다른 인물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마오쩌둥은 중국 역사에서도 몇 안 되는 큰 지도자입니다. 스탈린에게 무시당하고 견제받으면서도 중국 공산당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장제스까지 물리치고 역사의 승자가 된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가 1년 넘게 1만2000km가 넘는 길을 도망 다니던 ‘대장정’ 시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책입니다. 전질 2백 권에 달하는 ‘자치통감’을 내내 들고 다녔을 정도라니 책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죠. 그런 그가 꿈꾸던 것이 바로 공산 천국이었습니다. 중국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모두가 잘사는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것, 그것이 마오의 꿈이었죠.”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천부적 자질을 가진 지도자가 저지른 결정적 실수, 인간의 이기심을 간과한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마오쩌둥이 꿈꾸던 이타적 세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실패를 복구할 대안으로 고안해낸 문화대혁명은 그야말로 끔찍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오쩌둥이 간과한 것이 인간의 맹목적 충성심, 그리고 이기심입니다. 모든 사람이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그의 말대로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는 있었지만, 일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던 거죠. 결국 자신이 가진 견제되지 않는 권력, 검증되지 않고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만으로 내려진 의사 결정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낼지 마오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던 겁니다. ‘자신감’이 ‘자만감’으로 변질하고, ‘무오류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함정에 빠진 당시 마오와 중국 공산당의 행보가 지금 우리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국을 알면 百戰不殆(백전불태)
그가 중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당시 ‘삼국지’와 같은 책들은 국민 필독서로 불릴 정도로 애독되었지만 현실의 중국은 ‘죽의 장막’이라 불릴 정도로 철저한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공산화와 함께 엄청난 격변기를 겪는 동안, 중국은 우리에게 아주 가깝고도 먼 미지의 존재로 남겨졌다.문호가 개방된 오늘날에도 중국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 나라다. 엄청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가진 나라, 우리나라와의 무역 거래량은 물론 여행자 수, 비즈니스 관계 모든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무시나 안 당하면 다행인 존재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는 반문했다.
“우리가 이런 중국을 제대로 알거나 넘어서지 않고서 과연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지도자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시행착오, 그럼에도 그 과오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따라가기만 했던 수많은 추종자들, 그로 인해 비롯된 엄청난 비극들, 그 뒤에 감춰진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우리가 과연 어떻게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로 유지되는 ‘거대한 공룡’ 중국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토록 중국에 대한 공부를 강조하는 그가 정작 세계 권력구조의 재편 과정에 대해서는 뜻밖의 견해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곧 포스트 아메리카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포스트 아메리카가 중국이라는 일각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과연 중국의 시스템이 미국의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아메리카는 중국이 아닌 새로운 미국이 될 것이라 봅니다.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의 새로운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려는 태도로 보아야 합니다. 하물며 중국의 절대 권력자 시진핑조차 외동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지 않았습니까. 다만 지리적으로 우리에게 중국은 가깝고 미국은 먼 나라니까,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국의 포지션이 훨씬 커졌으니까 아이들에게 중국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행히 요즘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중국 학교가 많으니 그런 곳으로의 유학도 추천할 만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아이케이그룹은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미래 친환경 산업을 이끌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중국 시장 진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토종 기업의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기술과 고화처리·토양정화 관련 기술이 바야흐로 세계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인 셈이다.
‘1억 달러’라는 단어가 가진 상징적 의미는 크다. 1964년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날, 이 기념비적인 날을 기억하기 위해 정부는 ‘수출의 날’을 제정, 공포했다.
“내년이면 우리 아이케이그룹이 탄생 3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 국가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죽기 살기로 매달려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지 불과 70년이 지나지 않아 이제는 그 국가에 뿌리내린 작은 기업들이 1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죠. 더 놀라운 것은 이제 해외에서 우리를 미래 산업의 주역으로까지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회사의 건축폐기물 처리 공정만 해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앞선 기술을 자랑합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더미를 연상하고 현장 견학을 왔던 해외 바이어들이 잔디가 펼쳐진 넓은 마당과 아름다운 미학적 구조를 가진 건축물, 그리고 비산먼지를 최소화한 실내 폐기물 리사이클링 시설에 깜짝 놀라곤 하죠.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은 작은 밀알의 역할에 불과합니다. 회사가 더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더 부강해지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이겠지요. 이러한 자질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일 테고요.”
‘100년 사옥’으로 불리는 아이케이그룹 본사 사옥은 인천 산업단지에 있는 탓에 주변이 온통 잿빛 풍경이다. 하지만 사옥에 들어서면 푸른 잔디밭과 미술관 같은 멋진 건물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건축가 윤경식의 작품으로 2013년 세계건축상 건축가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6년 인천시 주최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 어워드’에 선정됐을 정도다. 외관뿐 아니라 4층 갤러리를 비롯해 사옥 곳곳에 그림과 도자기 등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어 직원과 방문객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이런 아이케이 사옥의 모습이 김상문 회장의 경영 철학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폐자재는 ‘쓰레기’가 아닌 아름다운 재활용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앞선 생각, 건축물 폐자재 처리 공정도 충분히 친환경적이고 깨끗할 수 있다는 생각, 그 뒤에는 책 속에서 길을 찾은 그의 선지적 행보가 담겨 있구나 하는.
사진 김도균 디자인 최정미
*제로 웨이스트는 깨끗하고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여성동아의 친환경 기사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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