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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drama

에릭을 무장해제시킨 고원희의 매력

EDITOR 김지은

2020. 04. 22

드라마 ‘유별나! 문셰프’의 ‘벨라’ 역으로 세계 최고 패션 디자이너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시골 아가씨의 매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배우 고원희. 그 어느 때보다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를 만났다.

양면성과 성장성.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를 필두로 한 트렌드 전문가들은 2020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중정체성을 ‘멀티 페르소나’라고 지목했다. 고대 그리스의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이 말은 복잡하고 개인화된 사회에서 때때로 자신을 감추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배우 고원희가 연기하는 드라마 ‘유별나! 문셰프’ 속 벨라도 그런 현대인들의 양면성을 대변하는, 멀티 페르소나의 모습이 아닐까. 

어떤 사고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설정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숱하게 등장한, 사골국처럼 진부한 설정이다. 그럼에도 ‘유별나! 문셰프’는 뻔해 보이기는커녕 트렌디하고 흥미진진하다. 기억을 잃기 전과 후 180° 달라지는 캐릭터 설정부터가 기존의 틀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다. 

“정말 ‘원 없이 연기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즐겁고 흥미진진해요. 벨라와 별나의 온도 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인물이 가진 2가지 매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잖아요.” 

모든 것이 완벽한 듯 보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도,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나 기쁨도 잊어버린 세계적인 디자이너 벨라와 어린 시절 천진난만했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시골 처녀 별나. 단순히 기억상실이라는 정신과적 증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 캐릭터 사이의 간극은 배우 고원희(26)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투혼 덕분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얻었다. 

“사실 저도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많이 달라져요. 그래서, 스스로를 딱 ‘어떤 사람이다’ 정의하기 힘들죠. 정말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듯 보이지만 의외로 밝고 유쾌한 면도 있고, ‘허당이다’라는 말도 자주 듣는 편이에요. 배우 고원희에게도 고원희는 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 같은 존재랄까요.”



철두철미한 관리의 여왕과 허당 사이

스스로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철저하게 분리되는 벨라의 이중성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밀착력 있게 소화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거식증에 걸릴 만큼 두려운 것이 많은 벨라의 예민하고 까칠한 내면과 기억을 잃어버리는 대신 어린 시절 천진난만했던 본래의 감수성을 되찾은 별나의 모습은 배우 고원희가 가진 다양한 페르소나와도 닿아 있다. 촬영 현장에서의 고원희 역시 완벽을 추구하는 프로페셔널과 순수하고 깨발랄한 아이 모습 사이를 순식간에 오가곤 하기 때문이다. 설아 역의 아역 배우 고도연과는 치킨 모양의 모자를 눌러쓰고 ‘아무노래 챌린지’를 하는 모습이 SNS에 공개될 만큼 절친이 되었고, 먹을 것 앞에서 이성을 잃고 망가지는 먹성 좋은 유별나를 연기할 때면 “평소엔 조용하고 말도 느린 편”이라 했던 과거 인터뷰가 무색할 정도다. 그간 쌓아온 세련되고 도도한 도시 여자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촌스러운 고쟁이에 털 달린 배자를 걸친 귀여운 사고뭉치 별나가 원래의 제 모습인 듯 고원희는 마냥 즐거워 보인다. 팬들에게 한 번도 보이지 못했던 귀여운 허당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벨라만큼은 아니지만 일상의 고원희는 철저하게 절식하고 관리하는, 다이어트의 여왕으로도 이름나 있다. 키 170cm에 몸무게 45kg, 다이어트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은 모델들도 갖기 어려운 슬림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해요. 하루에 딱 한 끼만 먹지만, 그 한 끼만큼은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것처럼 제대로 먹거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군것질 같은 것도 안 하게 되고, 따로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그런 면 때문인지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원희를 그저 까칠하고 도도한 도시 여자의 전형일 거라 지레짐작해버린다. 하지만 국내 촬영 전 진행된 호주에서의 로케이션에선 병원 입원 신을 찍다 정말로 잠이 들어버릴 만큼 허당기가 가득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동료 연기자들은 물론 스태프까지 단번에 무장해제시켜버리기도 했다. 그의 코 고는 소리 덕분에 서로 안면을 튼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문셰프 역의 에릭은 웃음을 참으며 연기에 몰입해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요리하는 재미로 에릭과의 케미 살려

상반된 두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위해 그가 준비한 또 하나의 카드는 눈에 확 띄게 다른 패션 스타일이다. 평소 세련되고 감각적인 패션 스타일로 팬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고원희지만 나름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룩만을 고집했기에, 이번처럼 과감한 패션 스타일링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드라마에선 자칫 어떤 옷을 입어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경우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해 온 옷을 그냥 입기만 하는 것과 배우로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옷을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다양한 패션 브랜드의 옷들도 찾아보고 유튜브 등을 통해 관련 콘텐츠를 섭렵하면서 다양한 패션 스타일에 도전해보기 시작했다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채색과 톤 다운된 옷에 다양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 벨라의 세련되고 지적인 이미지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원색 무늬가 들어간 옷과 목도리와 귀마개 등으로 표현한 별나의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 이 둘은 어느 쪽도 고원희 그 자체가 아닌 모습이 없다 싶을 정도로 쏙 들어맞았다. 

상대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에릭과는 요리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로 쉽게 친해졌다. 극 중 에릭의 직업이 요리사이다 보니 자연스레 주방 신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에도 요리를 즐겨 하는 에릭의 관심사와 백종원이 출연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챙겨 보며 곧잘 따라 해보곤 하던 고원희의 케미가 부드럽게 이어져 현장 분위기는 더할 수 없이 편안하고 화기애애했다. 

“에릭 선배님은 정말 단점이 없는 게 단점인 분 같아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섬세하고 꼼꼼해서 제가 그냥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까지도 빠르게 캐치하고 챙겨주시거든요. 연기의 합을 맞출 때도 항상 제 의견을 물어보고,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죠.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드라마 ‘유별나! 문셰프’는 배우 고원희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이자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다. 그 에너지가 보는 이들에게 따스한 힐링의 메시지로 전해질 수 있다면 이번에도 그의 변신은 역시, 대성공이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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