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둘이서 즐기며 살 때는 SUV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뒷좌석이 넓지 않고 트렁크 적재 용량이 크지 않아도 2000cc 세단에 불편함을 느낄 일이 없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짐이 급격히 늘어나고, 불만 없이 타던 세단도 비좁게만 느껴진다.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잠깐 교외 드라이브라도 다녀올라치면 간단하게 챙겨도 한 짐이다. 주말의 끝자락엔 늘 ‘여보, 우리 SUV로 갈아탈까’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돈다.
가족용 SUV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라면 지난 연말부터 현대자동차의 럭셔리 차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 출시를 기다렸을 것이다. 당초 GV80은 지난해 11월 말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차량 품질 점검과 디젤 엔진의 배기가스 인증 문제 등으로 출시 일정이 2020년으로 미뤄졌다. 결국 GV80은 1월 1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베일을 벗었다. 인기를 반영하듯 출시 당일 1만5천 대 계약을 기록했고, 사흘 만에 누적 계약 2만 대를 넘어섰다.
이번에 출시된 GV80은 제원과 디자인 면에서 현대자동차가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GV80은 3.0 직렬 6기통 디젤 엔진 모델이며 최고출력 278마력, 최대토크 60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디젤 엔진 차량이 먼저 출시됐으며 올해 안으로 2.5T 가솔린, 3.5T 가솔린 모델 출시도 예정돼 있다. 차량 전장 4945mm, 전폭 1975mm, 전고 1715mm이며 연비는 11.8km/ℓ(3.0 디젤)·10.9km/ℓ(3.0 디젤 AWD)다.
2월 초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GV80을 직접 몰아봤다. 딸 둘을 둔 4인 가족 워킹맘 취재기자와 딸 하나를 둔 3인 가족 사진기자 모두 패밀리 카 용도의 SUV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 더욱 꼼꼼히 살펴봤다.
#1 첫인상
외제 차 뺨치네 vs 조금 느끼해
인체공학적 시트 디자인은 운전자의 피로를 덜어준다.
사진기자 홍중식(이하 홍)_ 출시되기 전 사진으로 봤을 때는 느끼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실물로 보니 볼드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이 가벼우면서도 중후하게, 극단의 장점만을 뽑아 균형을 잘 맞춘 것 같다. 제네시스 라인에서 느껴지는 럭셔리함을 바탕으로 스포티한 느낌도 풍긴다. 남성은 물론 여성도, 젊은 층도, 노년층도 선호할 만한 디자인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국산 차 디자인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여러 면에서 조화가 잘 이뤄진 외관이라고 생각된다.
#2 내부
편안한 운전석 vs 아늑한 2열, 안습 3열
1 나란히 배열된 메뉴와 기어 변속 조그셔틀. 2 3열을 접은 상태의 트렁크 공간.
중앙으로 모아지면서 열리는 형태의 선루프.
#3 주행
덩치 커도 반응 빨라 vs 고속에서 안정적
정_ 평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여의도와 용산을 거쳐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도심 드라이브를 해봤다. 워낙 차량이 크다 보니 움직임이 세단에 비해 둔하고 액셀을 밟아도 잘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 순간 스르륵 앞으로 나가 생각보다 부드럽게 느껴졌다. 디젤 차량 특유의 시끄러운 소음도 내부에서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주행 중 외부에서 느껴지는 소음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현대자동차에서 이번에 디젤 SUV 차량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듯했다. 차가 막힐 때, 저속 주행할 때는 특별한 점을 느끼기 어려웠지만 강변북로를 타고 고속 주행을 할 때는 진가가 드러났다. 덩치가 다소 큰 차량임에도 반응 속도가 빨랐다. 특히 언덕을 오를 때는 힘 있게, 가뿐하게 넘어가 ‘오~’ 소리가 절로 났다. 홍_ 마찬가지로 저속에서는 둔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40km/h 이후 중속부터는 부드럽게 달려나갔고, 고속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특히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엔진음이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남성을 자극하는 소리가 났다. 속도를 낼 때는 소리가 좀 나주는 게 달리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 부분에서 마음에 들었다. 주행 시 6기통 엔진의 힘이 확실히 느껴졌다. 쏘렌토나 산타페가 일반 배라면 GV80은 고급 요트를 모는 느낌이었다. 다만 출발할 때는 힘이 약간 부치는 것 같았다. 정지 상태에서는 디젤 차량에서 발생하는 덜덜거림은 없었다. 아쉬운 점은 고속에서 핸들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시속 100km/h 이상 달릴 때 핸들링이 쉽게 반응해 고속에서는 좀 더 무거워져야 할 것 같았다.
#4 자녀 탑승
8세 딸은 훌쩍 vs 5세 딸은 버거워
8세 딸은 탑승에 무리가 없는 반면 5세 딸은 까치발을 들어도 탑승이 어려웠다.
홍_ 우리 딸은 105cm가 넘는 5세인데 혼자 올라타지 못했다. 적어도 6세 이상은 되어야 무리 없이 스스로 탈 걸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차량이 높고 넓어서 승차감에 있어서는 아이가 매우 만족해했다. 특히 4인승 세단은 뒷좌석이 뒤로 젖혀지지 않기 때문에 카시트를 설치했을 때 목이 좀 꺾인다. 그런데 2열을 뒤로 약간 젖힐 수 있어 카시트에 앉아 있을 때 목이 뒤로 기울어져 아이가 편안해했다. 또 일반 SUV는 트렁크 덮개가 없어 물건을 실어 나를 때 뒷좌석으로 튕겨 오를까 봐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 GV80은 외제 차처럼 트렁크 덮개가 내장돼 있어 짐을 고정시켜줘 아이를 뒷좌석에 태웠을 때도 안심이다.
#5 승차감
SUV는 SUV vs 세단 비스무리
정_ 조수석 승차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운전할 때는 몰랐는데 SUV 특유의 불편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서스펜션이 일반 세단에 비해 딱딱한 느낌이라 노면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또 아무래도 디젤 차량이라 조수석에 계속 앉아 가고 있으면 엔진음이 조금 거슬리는 순간이 있었다. 외제 차도 디젤 차량은 소음이 크고, 신차보다 연식이 오래된 차량일수록 디젤 엔진 특유의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매에 있어 망설여진다. 추후 출시되는 가솔린 차량을 비교 시승해보고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홍_ 뒷좌석에 앉아서 가봤는데 약간의 튕김 현상은 있었다. 예를 들어 방지 턱을 넘을 때 세단에 비해 SUV가 튕겨 오르는 높이가 더 높다. 그런데 GV80은 일반 국산 SUV에 비해 심하지 않은 정도로, 세단의 느낌을 많이 표현하려 한 것 같다. 서스펜션 균형감을 잘 맞춘 듯하다. 보통의 SUV는 뒷좌석에 앉으면 어쩔 수 없이 불편한데 럭셔리 SUV를 표방하다 보니 뒷좌석에 앉을 사람의 승차감도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다.
#6 장점
맛집 내장 내비게이터 vs 국산 가격의 외제 차 느낌
정_ SUV를 처음 선택하는 사람의 경우 지나치게 큰 차량은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4인승 세단을 모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에 적응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주차장의 주차 공간은 차량에 비해 좁은 곳이 많지 않나. 그런 면에서 GV80은 크기가 적당해 보인다. 팰리세이드보다는 약간 작고 일반 외제 차보다는 큰 느낌이어서 첫 SUV로 구매해보고 싶기는 하다. 또 한 가지 마음에 쏙 드는 건 맛집 내장형 내비게이터다. 글로벌 타이어 회사 ‘미쉐린’에서는 전 세계 맛집을 선정한다. 그것처럼 GV80 내비게이터에 서울 시내 곳곳의 맛집이 바로 떠서 굉장히 신선했다. 음식점 이름을 클릭하면 전화번호와 간략한 설명까지 소개되니 굳이 스마트폰을 켜서 검색할 필요가 없다. 또 이런 맛집들 중에는 평소에 리스트업해놓은 곳들도 상당수여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국산 차라면 이런 서비스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매년 업데이트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_ 풀 옵션을 기준으로 비싸게 느껴졌는데 자세히 보니 기본 사양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많아 눈길이 갔다. 출시 가격은 6천5백80만원인데 루프랙, 가죽 스티어링휠, 앞·뒷좌석 열선 시트 및 앞좌석 통풍 시트, 운전석 및 동승석 에어백, 차선이탈경보장치, 전후방감지센서, 자동 브레이크 등이 기본 사양이다. 추가로 옵션을 몇 개 선택하고, 세금까지 감안한다 하더라도 7천5백만원 정도면 나쁘지 않게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가격에 외제 차 느낌의 SUV를 몰 수 있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외제 차는 예약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수리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제네시스는 전용 서비스 센터가 있어 즉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드는 요소다.
#7 단점
낮은 연비 vs 기어 변속 조그셔틀
정_ 디젤 차량의 최대 장점은 연비가 좋다는 것이다. GV80의 공식 연비는 10km/ℓ가 넘는데 실제로는 6km/ℓ로 나왔다. 주행 후 시동을 끌 때 계기판에 연비가 뜨는데 처음에는 숫자가 잘못된 줄 알고 놀랐다. 도심 주행을 기준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서 연비가 낮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홍_ 운전자 편의를 위해 디자인한 것 같은데 기어 변속 조그셔틀은 정말 별로인 것 같다. 메뉴 조그셔틀과 위아래로 나란히 배열돼 있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또 이걸 돌려서 기어를 맞춰야 하는데 변속이 되는 지점이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후진하려고 조그셔틀을 돌렸는데 ‘R’로 끝까지 가지 않았던 탓에 ‘D’로 원상 복귀돼 그대로 액셀을 세게 밟았다면 사고가 날 뻔했다. 차라리 버튼형 기어 변속이 편할 것 같다.
총평
정혜연 기자_ 4인 가족 첫 SUV로 강추.홍중식 기자_ 3000cc 외제 차와 경쟁 가능.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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