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원이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는 콘셉트의 ‘백종원의 요리비책’은 지난해 6월 채널을 오픈한 지 사흘 만에 구독자 수 1백만 명을 넘는 기염을 토해 ‘유튜브 생태계 교란자’란 별명을 얻었다. 최근 구독자 수는 2월 5일 기준 3백38만 명이다. ‘워크맨’ 역시 지난해 7월 단독 채널로 독립한 후 35일 만에 1백만 구독자를 돌파, 최근 구독자 수는 3백87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4월 개설한 ‘자이언트 펭TV’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현재 구독자 수 2백3만 명을 넘어섰으며, 주인공 펭수는 각종 방송, 광고, 패션 잡지 화보까지 섭렵하고 있다.
세 채널의 수장들이 들려준 성공 키워드는 의외로 간단했다. ‘소통’ ‘진정성’ ‘자유로움’. 수능 만점자가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인터뷰만큼 뻔한 내용인가 싶었는데, 채널 개설 뒷이야기와 제작 과정을 들어보니 역시 최고를 만드는 한 끗 차이가 있었다.
선한 영향력, ‘백종원의 요리비책’ 백종원

#1. 취미는 Yes, 일로는 No
백종원 대표는 요리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즐긴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직접 요리하는 것, 내가 요리한 음식을 남이 먹는 걸 지켜보는 것까지 다 좋아한다. 유튜브 활동도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다. 그에게 유튜브란 대형 서점과 같다. 백 대표는 “서점에 가면 전문서적뿐만 아니라 동화책도 있잖나”라며 “특정 주제를 초보 입장에서 다루기도 하고, 전문가 입장에서 다루기도 하는 다양성이 재미있다”고 설명했다.유튜브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백 대표는 “요즘 장래 희망이 유튜버인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잘못된 생각이다. 유튜브 활동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며 “하다가 반응이 좋아서 나중에 사업적으로 연결할 순 있겠지만 처음에는 취미 삼아 해볼 것”을 조언했다.
또 유튜브 활동을 일기 쓰듯이 진솔하게 이어가면 큰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카메라를 대면 ‘착한 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척’을 자꾸 하다 보니 정말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선한 영향력을 더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양파 농가를 돕고자 제작한 ‘만능 양파 볶음’ 시리즈의 경우 실제로 “자신의 영향력을 좋은 곳에 쓰는 대단한 분” 등 칭찬 댓글이 수두룩하다.
#2. 핵심만 간단하게

#3. 아낌없이 나눈다

백 대표는 “음식 정보 공유로 눈높이가 높아진 사람들이 음식을 까다롭게 골라 먹다 보면 경쟁력 있는 식당만 살아남고, 결국 먹는 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득”이라며, “내가 노하우를 풀어놓으면 다른 누군가 덧칠을 해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게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고 강조했다.
백종원 화제의 말, 말, 말
“아침은 많이 먹어도 살 안 쪄요. 점심은 많이 먹고 움직이면 됩니다. 저녁은 많이 먹고 늦게 자면 되고요. 결국은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는 이야기예요.”-지난해 방영된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 중국 편에서 아침부터 먹방을 펼치며.“저는 모든 브랜드를 만들 때 제가 기준이에요. 내 입맛에 맞고 합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OK예요. 그렇다고 제 입이 고급은 아니에요. 내 입에 맛있게 만들어놓고 분석이 너무 심하면 안 돼요. 품평회 하면서 한마디씩 듣는 순간 복잡해지거든요. 내 입맛이 어떤지, 여러 사람 중 어디쯤 위치하는지 알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요.”-1월 4일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백종원의 장사이야기’ 중 “새로운 메뉴를 만들 때 어떤 기준이 있느냐”는 질문에.
병맛 감성, ‘워크맨’ 고동완 PD

#1. 시대를 읽는 통찰력

‘워크맨’은 ‘세상의 모든 Job(직업)을 리뷰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실 직업 체험은 흔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체험 삶의 현장’을 예능식으로 속도감 있게 유튜브에 접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튜브 주 시청층인 20대의 관심사 취업을 소재로 하되, 본편보다 ‘짤’을 더 선호하는 특성을 반영했다. 6시간을 촬영하지만 단 10분여에 담아낸다. 10초에 한 번씩은 웃겨야 한다는 게 고 PD의 지론이다.
#2. 덜어냄의 미학
‘워크맨’ 팀은 고 PD 외 조연출 1명, 편집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 작가도, 대본도 없다. 고 PD는 “예산 절약 차원이기도 하지만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적 구성을 했다”며, “직업 선정 후 그 직업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점이 무엇일 거란 정도만 구상해 가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얻는다”고 이유를 밝혔다.이렇게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덜어내고 나니 살아남은 것은 리얼리티다. 주유소 알바 8천3백50원, 배민커넥트 배달 한 건당 5천원 등 시급은 무조건 그대로 공개된다. 기존 프로그램처럼 연예인 거마비 같은 게 전혀 없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면 진짜 아르바이트생처럼 일하고 사인 요청도 거절한다. 덕분에 ‘을’의 위치에 선 ‘선넘규(선을 넘는 장성규)’의 캐릭터가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고 PD는 “원래 장성규를 비호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보니 평범한 한 살 많은 형이었다”며, “연예인이 일하면 진정성이 없는데 장성규가 하면 회사원 같고 현실적이지 않나. 그러면서도 평범한 직장인은 절대 할 수 없는 사이다 발언을 하는 걸 보면서 시청자들이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워크맨’ 구독자가 특히 열광하는 부분은 B급 감성 자막과 편집 방식이다. 고 PD는 “TV 예능이라면 이렇게 하겠지 떠오르는 자막은 일부러 피한다”며 “편집을 할 때도 구독자들이 안 보고 싶어 하는 건 연결상 필요해도 뺀다. 스킵의 미랄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 없이 바로 밖이 이어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3. 꼰대 마인드 버린 대가리

고 PD는 후배들에게 촬영 및 편집의 기술적인 부분을 알려주고, 후배들로부터는 신조어나 10·20대 문화를 배우니 서로 윈윈인 셈.
장성규화제의 말, 말, 말
“먹을 땐 좀 건드리지 마세요.”_술집 알바 중 식사 시간에 사장이 빨리 먹고 바쁜 곳 업무 보조 나가라고 지시하자.“1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아이들한테 옷 하나 안 사주고 모아도 래미안 아파트 한 평도 못 사.”_건설 현장 일용직 알바 일급을 센 후.
“키즈 카페라 그런지 시급도 아기만큼 주네.”_볼풀장에서 점프하는 아이에게 밟혀가며 4시간 동안 일하고 총 3만3천4백원을 받고 나서.
“이런 이사님께서 회사 이끌어가시는 거 맞아요?”_소개팅 앱 만드는 스타트업 면접 자리에서 어떤 회사인지 철학을 모호하게 설명하는 이사에게.
어른들의 뽀로로, ‘자이언트 펭TV’ 이슬예나 PD

#1. EBS가? 의외성이 생명

시작은 2018년 이슬예나 PD가 유아 어린이 TF팀으로 발령받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PD는 유아들이 부모가 채널을 선택해주는 시기에는 EBS를 보다가 자기가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외면하는 게 안타까웠다. 이 PD는 그 원인을 교육방송 특성에서 찾았다. 가르치려는 화법을 사용하고 ‘어린이’에 얽매여 지나치게 순한 맛으로 일관한 것이 문제였다. 이 PD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부분이 성인 예능 웃음 코드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며 “이왕이면 초등학교 이상의 친구들과 어른들도 진짜 재미있어서 찾아보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 의도는 적중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중 만 18~34세 비율이 70% 정도로, 이들을 위해 편성 시간까지 금요일 오후 8시 30분으로 이동했다.
#2. 펭수는 펭수, 눈치 챙겨
EBS의 그간 캐릭터 대다수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 형식에 맞을 것. 둘째 대의를 가진 캐릭터일 것. 보통 우주에서 미션을 수행하러 오거나 지구를 살리기 위해 애쓴다. 반면 남극에서 온 열 살 펭수는 스타가 되고 싶은 자기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EBS 연습생이다. “펭수가 미리 짠 각본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전에 공유한 철학, 세계관은 유지하되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원했다”는 이 PD의 바람처럼 펭수는 권력이나 위계질서에 굴하지 않는다. 시원함과 따뜻함을 오가는 순한 맛 사이다 화법도 매력적이다.이처럼 유튜브 콘텐츠에서 캐릭터가 주는 힘이 참 크다고 생각하는 이 PD는 펭수에 대한 무한 사랑을 내비치며 말했다. “유명 유튜버인 박막례 할머니도 무척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데 인기 있잖아요. 펭수 캐릭터의 힘을 믿고 지금까지 해왔어요. 앞으로 할 콘텐츠도 무궁무진합니다. 영화를 제작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혼자만의 바람일 수도 있지만(웃음).”
#3. 연애하듯 밀당하라

또 ‘밀당’은 구독자와의 사이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 PD는 자유로운 영혼 펭수와도 밀당을 한다. ‘자이언트 펭TV'는 자발성과 진정성이 매력인 콘텐츠지만 그렇다고 연출자의 역할이 아예 배제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연출자가 균형을 잡기 더 어려워졌다.
이 PD는 “상황을 잘 설계하고 게임처럼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시너지가 나는지 설계, 디자인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펭수 화제의 말, 말, 말
“저는 장난꾸러기 아닙니다. 펭수입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잔소리하지 말아주세요, 선배님.”_EBS 옥상에서 만난 뚝딱이 선배가 “너는 장난꾸러기 캐릭터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지적하자.“비싼 밥 먹고 싶을 때는 김명중.”_EBS 방송국 사장 이름을 외우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친구 이름 부르듯 수시로 부르지만 특히 돈 필요할 때 부르는 이름, 김명중.
“공부는 많이 해도 좋지만 너무 많이 해도 안 좋아요. 적당히 하세요.”_하교 후 학원 갔다 문제집 풀고 늦게 자는 바람에 학교 수업 시간에 자꾸 존다는 학생에게.
기획 정혜연 기자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유튜브 각 채널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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