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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그린 위의 워너비 허미정

EDITOR 김지은

입력 2020.01.07 15:00:38

2019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골프 여제들의 해였다. LPGA 27개 대회 중 절반이 넘는 15개 대회를 휩쓸며 2015년과 2017년에 이어 역대 우리나라 선수의 최다승 타이기록을 달성한 것. 특히 돋보인 것은 2승을 달성한 허미정 선수의 활약이었다. 챔피언 트로피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그린 위의 워너비 허미정
지난해 9월 30일, 대한민국 골프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허미정(31·대방건설)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브릭야드 크로싱 골프클럽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그는 마지막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추가하며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했다. 상금 30만 달러(약 3억6천만원)보다 값진 것은 생애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즉 대회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선두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경기를 주도하여 쟁취한 ‘완벽한’ 승리라는 점이다. 그는 그보다 한 달 앞선 8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에서도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LPGA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사무국에서 주최하는 공식 대회로, 초창기인 1950년대에는 미국 선수들이 주를 이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박세리 선수가 1998년 LPGA 입문 첫해에 4승을 거두고 10년 차가 되던 2007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예를 안은 바 있다. 이후로도 박지은, 김미현, 한희원 등 대한민국 골프 역사를 이끈 걸출한 인물들이 대거 LPGA로 진출해 승전보를 남겼으며 현재는 허미정을 비롯해 세계 랭킹 1위 고진영과 박인비, 박성현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골프 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골프 연습장은 나의 놀이터

지난 8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허미정 선수.

지난 8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허미정 선수.

허미정의 골프 인생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를 따라 구경 삼아 간 골프 연습장에서 흉내 내듯 골프채를 휘둘러본 것이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채만 휘둘렀는데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배워보고 싶다’고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제가 그냥 취미로 한번 해보고 싶어서 한 얘기려니 생각하셨을 거예요. 때마침 부모님의 일터 근처에 제가 다닐 만한 작은 골프 연습장이 있었거든요. 두 분이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어린 저를 마땅히 맡겨둘 데도 없었던 터라 기회가 좋았죠. 그날부터 매일 방과 후엔 부모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골프만 쳤습니다.” 

부모님에게 골프 연습장은 어린 허 선수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성격인 그에게도 골프장은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실력은 자연스레 늘었고, 시합에 나가볼 기회도 생겼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장래 희망:골프 선수’라고 가슴에 품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차곡차곡 시간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프로 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허미정의 프로필은 굉장히 화려하다. 2001년 12세에 여자 주니어 상비군으로 입단해 맹활약을 펼쳤고, 5년 뒤인 2006년부터는 국가대표로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그린을 누볐다. LPGA 데뷔 첫해인 2009년에는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장식하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순조로웠다. 골프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히 누려야 할 영광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독감, 어린 시절의 그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서서히 그의 마음을 좀먹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골프를 시작한 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커요. 또래들과 함께 경험해야 할 많은 것들을 놓쳤으니까요. 주변을 보아도 너무 어릴 때 골프를 시작해 열정적으로 달려온 선수들이 더 빨리 선수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 빛을 발하는 선수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겠죠. 제 경우에도 주니어 선수 시절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마냥 좋고 신났거든요. 아버지와 같이 다니며 재미있게 친 게 전부니까요. 그런데 프로가 되고선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후원사에도 보답을 해야 하는데, 그 보답이란 것이 결국 성적밖에 없으니까요.” 

재밌어서, 무작정 좋아서 시작한 골프지만 이미 미래를 정해버린 듯 한 가지에만 몰입해버린 유년기는 성인이 된 그에게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소소한 추억, 학교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크고 작은 경험들,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며 극복해가는 성장통 같은 것들. 그는 “다시 열 살 꼬꼬마 시절로 돌아간다면 ‘골프만 하면서 자란 유년기’를 ‘골프도 하면서 자란 유년기’ 정도로 조금은 나눠 쓰고 싶다”고 했다. 

유전적으로만 따지면 그는 작고 아담한 체구여야 마땅하다. 가족들 중 누구도 키가 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골프 선수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늘씬한 몸에 쭉 뻗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다. 

“중학교 때 키가 크려면 라면, 피자, 콜라 이런 것들을 모두 끊어야 한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그 뒤로 몇 년간 아예 그런 음식들엔 눈길도 주지 않고 버텼어요.” 

어릴 적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도 5개월 동안은 시키는 대로 마냥 똑딱볼(골프채를 좌우로 흔드는 자세)만 치며 버텼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기본기는 서른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도 그는 체력훈련 때면 옆에서 “한 개만 더!”를 외치는 트레이너가 있건 없건 힘에 부쳐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운동을 계속하곤 한다. 결국 승부는 빨리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것에서 결정 난다. 

“시작하자마자 풀스윙부터 가르쳐달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마음은 다 똑같을 거예요. 빨리 배워 필드에 나가보고 싶고, 당장에라도 멋지게 풀스윙을 날리고 싶고. 하지만 장기적으론 기본기를 잘 다져놓는 게 중요합니다. 기회가 되면 골프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무엇에서건 앞뒤 재지 않고 스스로를 한계치까지 몰아붙이곤 하는 성격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가 있었을까 싶다. 누군가에겐 거저 얻은 행운 같겠지만, 힘들다고 툴툴대거나 뒤돌아서 울지 않아도 괜찮았던 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혼이 선물한 생애 최고의 시즌

그린 위의 워너비 허미정
골프는 지독하리만치 고독한 스포츠다. 드넓은 그린 위 라이벌이라곤 오직 한 사람,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팀워크가 필요한 일도, 누군가를 탓할 만한 상황도 만나기 어렵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선수는 없었어요. 물론 저보다 멋지고 훌륭한 선수는 많지만, 골프라는 운동 자체가 지극히 혼자만의 게임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던 거 같아요.” 

프로의 세계는 빛과 공기가 차단된 진공의 세계처럼 공허하고, 무거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다른 선수들의 퍼팅, 스치듯 보게 되는 스코어, 그 찰나의 순간이 엄청난 위력으로 멘탈을 치고 들어올 때마다 그는 벼랑 끝에서 버티듯 호흡을 골랐다. 

“경기 때는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려 노력해요. 그래도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 있죠. 그럴 땐 심호흡을 해요. 들이마실 때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를, 내뱉을 때는 입술로 빠져나가는 공기를 느끼는 거죠. 그렇게 모든 감각을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잡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요.” 

묵묵히 견디거나 모든 걸 내려놓아야 끝이 나는 처절한 혼자만의 싸움, 두 번째 우승의 기회는 5년 뒤인 2014년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에서야 찾아왔다. 뛸 듯이 기뻤지만 또 한편으론 두려웠다. 우승의 기쁨보단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승부욕이 온몸의 세포를 예민하게 자극했다. 

“프로 입문 이후로는 골프에 관한 모든 것들이 무겁고 심각해졌어요. 골프가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운동이란 걸 프로가 된 후 오랫동안 잊고 지냈거든요.” 

허미정이 최근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는 데는 든든한 남편의 존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는 2018년 1월, 프로 골퍼 가운데는 이른 나이인 29세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를 만나러 부산에 잠깐 내려갔는데 형부가 저와 잘 어울릴 거 같다며 후배를 불러냈어요. 그때가 밤 11시쯤이어서 잠깐 얼굴만 보고선 바로 대전으로 올라왔죠. 그 뒤로 4주간 LPGA 아시안 스윙에 참가해야 했거든요.” 

그냥 스쳐 지나는 인연으로 끝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만남이었다. 한 해에도 몇 차례, 해외 곳곳으로 시즌 투어를 다녀야 하는 그에게 안정적인 연애는 말도 안 되는 사치였다. 

“아시안 스윙 기간 동안은 매일 영상 통화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았어요. 그러다 시즌이 끝나고는 최대한 많이 만났죠.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웠거든요. 시즌이 시작되면 또 떨어져 지내야 하니까.” 

만남이 거듭될수록 확신은 커졌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두 사람에게 결혼만큼 좋은 선택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함께할 수 있는 ‘구실이 필요했다’는 게 맞겠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을 좀 더 빨리할 걸 그랬나 싶을 정도”라고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골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내 편’이 한꺼번에 많이 생겼기 때문인 거 같아요. 남편이 3형제 중 막내인데 시부모님뿐만 아니라 아주버님, 형님들도 모두 골프를 좋아하세요. 2019년 프랑스 에비앙 챔피언십 때는 시댁 식구들 모두가 함께 응원해주러 오셨거든요. 예전에도 물론 아빠가 함께하시긴 했지만 이젠 내 편이 훨씬 더 많이 생긴 거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죠.”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히 하라”는 시부모님의 따뜻한 격려는 한껏 움츠려 있던 그의 마음에 노곤한 햇살처럼 살가웠다. 

지난 2019년 8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그는 남편과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마지막 홀에서 우승 퍼팅을 날렸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흐르더라고요. 날씨가 굉장히 안 좋기도 했고, 악조건 속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니 많이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 한 타 차이, 동타를 이어나가는 바람에 선수들 모두 엄청 긴장하면서 치른 대회였죠.” 

단지 5년 만의 우승, 1백13개 대회 출전 만에 되찾은 정상의 자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혼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숨 막힐 듯 옥죄던 성적에 대한 부담, 골프에 대한 경직된 마음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치관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여유롭고 너그러워졌다. 비집고 들어갈 틈 없던 경쟁심은 다른 선수들의 선전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박수 칠 수 있는 동료 의식으로 바뀌었다. 남편과 함께 다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되찾은 행복이었다. 

“가장 기뻤던 건 남편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거예요. 정말 꿈만 같았죠. 평소에도 남편이 제 경기를 보러 왔을 때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얘길 자주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 거니까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이 지켜보고 있다는 든든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혼과 함께 찾아온 승리의 여신은 다음 달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지금의 행복은 6년 전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행복이다. 이제는 시합을 치르는 동안에도, 시합이 끝난 다음에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즐겁고 편안하다. 다른 선수가 더 잘하면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들고, 후배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정말 축하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동료 선수들과 쇼핑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수다를 떠는 것도 전에 없이 즐겁다. 요즘 들어 부쩍 더 스타일리시하고 멋있어진 것 같다 싶어 그것도 결혼 덕분인가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시즌을 치르고 나면 늘 몸무게가 5kg쯤 빠지더라고요. 아니 시즌 오프 기간 동안 금세 5kg 정도가 불어버린다고 해야 할까요.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먹을 수 있을 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다 보니 몸무게가 딱 그만큼 늘었다가 또 줄었다가 하는 거 같아요.” 

몸무게가 늘면 확실히 힘은 좋아지지만 몸이 둔해지는 것 같고, 살이 빠지면 감각은 예민해지지만 체력은 달린다. 양쪽 모두 장단이 있으니 어느 쪽이 더 좋다 잘라 말하긴 그렇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이어오던 이 패턴에 끼어든 사람이 생겼다는 거다. 이제는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시즌 동안에도 매일 아침 영상 통화로 서로의 식사를 걱정하고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남편은 좋은 습관을 참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뭐든 잘 까먹는 편인데 남편은 하나하나 자상하게 잘 챙기는 스타일이랄까요. 그래서 코스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미리 챙겨주기도 하고, 세탁기가 없는 시합장에서는 손빨래도 거들어주려고 하고 그래요. 이런 소소한 것들이 저에겐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 

2019년 한 해, 그녀와 함께 했던 승리의 여신은 올해 또 어떤 모습으로 그녀를 꿈꾸게 할지 사뭇 기대가 되는 순간이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뉴스1 디자인 최정미 장소제공 경주 블루원CC




여성동아 2020년 1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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