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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역시, 이병헌

EDITOR 두경아

입력 2019.12.29 10:00:01

달변가는 아니었으나 매 질문마다 진심이 담긴 답을 찾았다. 데뷔 이래 수많은 인터뷰를 해왔으련만 여전히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다. 영화 ‘백두산’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역시, 이병헌’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역시, 이병헌
2000년 이수혁 육군 병장 역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지켰던 청년 배우가 그로부터 20년을 지나 북한 무력부 소속 리준평 역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백두산’을 통해서다. 데뷔 30년을 맞은 이병헌(50)은 그간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북한군 역할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병헌이 연기한 리준평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는 대사가 엿보게 하듯, 평탄하게 살아온 인물이 아니다. 전라도 사투리부터 러시아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며 상대를 현혹시키고,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 날렵하게 제압할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을 거듭하는 냉혈한이었다가도 딸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빠이기도 하다. 이병헌은 이처럼 진폭이 큰 입체적인 캐릭터를 특유의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으로 맛깔나게 표현해내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2018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이번 작품으로 또 한 번 ‘갓병헌’이라는 찬사를 들은 그를 지난 12월 19일 개봉 당일 오전에 만났다. 그는 스크린 위에서의 날렵한 모습과 달리 조금은 느릿한 말투와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역시, 이병헌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잘빠진’ 시나리오라, 오히려 매력이 덜 느껴졌거든요. 그러다 하정우가 먼저 캐스팅된 뒤 제게 직접 전화해 “형이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죠. 이후 감독 미팅을 하고 나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봐도 멋지게 나왔다!’고 생각하는 ‘최애’ 장면은 어떤 건가요. 

(영화 초반부터 사탕을 먹는데) 맨 마지막, 딸에게 사탕을 주면서 “(이거) 달다” 하는 장면요. 우리 회사 직원이 영화를 보자마자 사탕을 사서 먹더라고요. 사실 시중에 그런 제품은 없어요. 케이스는 소품 팀이 만들었고, 사탕은 비타민이었어요. 



영화 속에서 엉덩이 노출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 신 때문에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 판정을 받을까 봐 걱정했어요. 하하하. 

영화 ‘아저씨’ 속 원빈처럼 큰 가위로 혼자 삭발하는 장면이 있어요. 많은 연습이 필요한 신이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리준평이 원래 헤어디자이너가 아니었을까”하더라고요(웃음). 그 큰 가위로 머리도 자르고 수염도 잘 다듬었으니까요. 실제로 전문적인 솜씨처럼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제 담당 헤어디자이너에게 커트 치는 법을 배웠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커다란 가위로 제 머리카락을 자르려 하니 되게 위험하더라고요. 그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긴 했지만, 사실 약간 겁이 났어요. (거울을 보고 자르니) 어디를 어떻게 자르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또 수염은 가위를 가까이 대고 잘라야 하는데, 가위가 크니 더 위험했죠. 

원빈 씨의 삭발 신처럼 예능 프로나 유튜브에서 많이 패러디할 듯해요.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아요. 원빈 씨처럼 제가 복근을 안 보여줘서요(웃음). 

본인의 촬영 분량 중 삭제돼 아쉬운 장면을 떠올린다면요. 

극 중 딸하고 함께 연기한 부분이 잘렸어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신이었어요.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엔딩을 강렬하게 하고 싶을 텐데, 영화의 4분의 3 지점에 해당하는 그 장면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 전체적인 밸런스가 안 맞는다고 판단했을 것 같아요. 잘린 장면이 무척 슬픈 내용이었어요. 그 장면에서 꼬마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연기를 잘했어요. 그 꼬마 배우의 어머니에게 “진짜 너무나 훌륭한 배우가 탄생할 것 같다. 미리 축하한다”고 했는데, 그 연기를 볼 수 없게 돼 미안하고 아쉬웠어요. 

캐릭터를 만들어가기까지 이병헌 씨의 애드리브는 어느 정도 있었나요. 

많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잘린 부분도 있고요. 예를 들면 화장실이 급해 장갑차에서 내려 드라마 ‘다모’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만들어갔어요. 시나리오에는 ‘미드(미국 드라마)’까지 있었는데,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줄인 ‘지자’ ‘남한 것들은 별걸 다 줄이고 지랄이야’를 줄인 ‘별다지’ 이런 것들은 애드리브로 한 부분이에요. 상점에서 콜라 마시다 ‘사콜맛(사회 콜라 맛)’이라고 말하는 장면도요. 한번 줄임말을 하다 보니까 영화 속에서 재미있게 쓰게 되더라고요. 젊은 세대가 잘 쓰는 줄임말에 대해 기성세대가 느끼는 거부감이나 재미를 북한 사람도 똑같이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말미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한 아이의 아빠로서 감정이 이입된 것 아닌가 싶었어요. 아내인 배우 이민정 씨와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잖아요. 

당연히 (아빠가 된 뒤로는) 부정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감정 이입이 훨씬 쉽게 되지 않나 싶어요. 아무리 현실적인 이야기라도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장면은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운 좋게 경험했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신을 만나면 몰입이 잘돼 그 장면을 자신 있게 연기하게 되거든요. 


영화 ‘백두산’에서 하정우와 함께 브로맨스 케미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 이병헌.

영화 ‘백두산’에서 하정우와 함께 브로맨스 케미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 이병헌.

하정우 씨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요. 

하정우 씨는 순발력이 좋은 배우예요. 순간순간 재치가 뛰어나요. 평소에는 재치가 넘치다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배우도 많은데, 하정우 씨는 평소의 유머나 재치를 영화에도 백분 활용할 줄 아는 배우 같아요. 

하정우 씨가 배우 이병헌을 두고 “연기 기계”라고 평했어요. 시사회가 끝난 뒤에는 “역시 이병헌”이라는 찬사가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고요. 기분이 어떤가요.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죠. 특히 같은 일을 하는 분들에게 들으면요. 

대중이 이병헌 씨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나요. 

팬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바와는 다르더군요. 막연하게 저의 코믹한 모습, 슬퍼하는 모습, 혹은 액션 잘하는 멋있는 모습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뭔가 결핍이 있어 연민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일 때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살아나는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이병헌 씨 같은 연기의 달인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나요. 

연기를 하는 순간, 느껴지는 고민들이 있어요. ‘내가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있는 건가? 흉내만 내고 있는 건가?’ 싶어서요. 어떤 일에 일희일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연기를 끝내고 굉장히 기분 좋게 집에 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어요. 사소한 대사라도 진심을 다해 연기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온 종일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감정이 안 나와서 가짜로 흉내를 냈다고 느껴지는 날은 저도 모르게 ‘디프레스’되는 것 같아요. 


역시, 이병헌
촬영 현장에서 갈등이 생길 때 대처하는 나름의 스킬이 있나요. 

배우들은 감정이 섬세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다치는 순간 자신의 연기를 할 수 없어요. 특히 촬영할 때는 감정이 활짝 열려 있는 예민하고 위험한 상태여서 외부적인 요소로 인해 감정이 상했을 때 연기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만약 함께 일하는 동료와 큰소리치고 감정적으로 싸우게 되면 앞으로 남은 촬영 기간 동안 그 상태로 일해야 하니까 힘든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게 넘어가는 편이에요. 갈등이 생겨도 앞으로 많은 사람이 큰 곤란을 겪을 것 같으면 (그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남은 촬영 기간 동안 방해 없이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SNS 계정을 만드셨더군요. 그런 걸 안 할 것 같았는데 의외였어요. 

사실 소속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권유했지만,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제가 컴퓨터나 새로운 매체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 아니어서 SNS 활동을 안 했어요. 지금도 왜 하는 건지 모르지만, 기왕 시작을 했으니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이에요. 예를 들어 영화가 끝나고 비하인드 컷을 올리면,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은 ‘촬영 안 할 때는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하고 느끼며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잖아요. 제 미국 활동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예전에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나 ‘레드’ 찍을 때 그 배우들과 SNS 친구를 맺어놨으면 지금 팔로어가 얼마나 늘었겠느냐”며 아쉬워하더군요. 

‘이병헌 TV’ 같은 개인 유튜브 방송을 개설하는 건 어떤가요. 요즘 즐기는 취미가 ‘먹방 시청’이라고 들었어요. 

이번 영화를 찍으며 촬영장에서 대기하는 시간에 ‘먹방’ 을 즐겨본 것 같아요.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찍을 때는 모바일 게임 애니팡에 빠졌었는데, 이번에는 먹방이었어요. 딱 촬영 기간에만요. 남들이 봐서 저도 보기 시작했는데, 빨리 먹고 많이 먹고 매운 거 먹는 게 신기해서 계속 봤어요. ‘왜 이걸 내가 보고 있지?’ 하면서요. (제가 새로운 매체에 익숙한 편이 아니라서) 유튜브 같은 건 못할 것 같아요. 

다음엔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까요. 

새해 개봉되는 영화 ‘비상선언’과 드라마 ‘히어’로 인사드리게 될 겁니다. ‘히어’는 아직 방영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4개월 이상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할 예정이에요.


기획 김지영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20년 1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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