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일지라도, 새 마음 새 뜻을 세우는 첫걸음
예전에는 거리 곳곳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거나, 길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면서 연말연시 분위기를 느꼈다. 그런데 요즘은 커피 전문점의 다이어리 프로모션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 같다. 10~17잔을 마시면 커피 전문점에서 특별 제작한 다이어리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이 도장 깨기처럼 행해지고 있다.꼭 커피 전문점의 다이어리 획득에 도전하지 않더라도 대형 서점에 들러 각양각색의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년 내내 빠짐없이 쓰지는 않더라도 새해를 맞아 계획을 세우기 위해 다이어리를 사는 것. 또 요즘은 하루 일과를 정리할 수 있는 다양한 다이어리 앱이 나와 있지만 종이 다이어리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쓰는 재미를 따라올 수 없다. 39세 직장인 강현정 씨도 이런 이유로 연말이면 ‘연중행사’처럼 다이어리를 마련한다고.
“커피 전문점의 다이어리 프로모션이 시작되면 연말이라는 자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올 한 해는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게 되고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같이 느껴질 때 신년 다이어리를 사러 가요. ‘내년에는 목표를 가지고 좀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첫 페이지를 펼쳐 새해에 꼭 이루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작성하고, 며칠간 열심히 일기를 쓰죠. 사실 꾸준히 쓰는 것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다이어리는 꼭 사요. 새해 목표를 다짐하는 연중행사 같은 느낌이랄까요?”
깜빡깜빡 흐릿해지는 기억력,
다이어리로 기억 저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일상을 정리하고 다가올 일정을 기록해두기 위해 다이어리를 구입한다. 그런데 주부들의 경우 개인의 필요에 따라 세부 주제가 다양하게 나뉜다. 가족들의 스케줄이나 일정 관리가 목적인 경우도 있고, 아이들의 건강 기록을 관리하기 위한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38세 가정주부 이지은 씨는 집안 대소사를 정리해놓기 위해 구입하는 부류다. “아들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항상 정신이 없어요. 다이어리를 사면 우선 가족들의 생일이나 제사처럼 잊지 말아야 할 기념일을 전부 표시해요. 이외에 가장 많이 기록하는 것은 지출이에요. 가계부를 꼼꼼하게 쓰는 것은 스트레스로 느껴져서, 아이들 교육비나 차량 수리비, 세금처럼 큰 금액은 다이어리에 표시하는 편이에요.”
어린 자녀를 키우는 주부일수록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후 1~2년 동안 육아에 매진하다 보면 필수 예방접종, 어린이집 등록, 국가 지원금 신청 등 중요한 일정을 잊어버릴 수 있어 상시 체크해야 한다. 33세 웹디자이너 김예진 씨는 아이를 낳고 꼼꼼하게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이 생긴 경우다.
“두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가 조산으로 태어나서 병원 갈 일이 많았어요. 언제 어떤 진료를 받았고,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파악하려고 아이의 건강 및 발달 기록용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작게 태어나서 키와 몸무게를 표준으로 맞추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는데, 월별로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기록하면서 그래프를 그려 발달 추이를 파악하니 좋더라고요.”
다시 보고 싶은 기록은 다이어리에, 나만의 기록관
독서나 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을 즐기는 경우라면 기록의 중요성은 더해진다.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고, 강연 리뷰를 기록해 관련 콘텐츠를 추가 구독함으로써 생각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45세 주부 김영애 씨는 다이어리에 강좌 내용을 기록한 뒤 삶의 질이 높아졌다.“지역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강연에 자주 가요. 좋은 강연을 들어도 메모해두지 않으면 기억이 휘발되는 경험을 몇 차례 거듭한 후에는 강연 때 들은 내용과 저의 감상을 정리하는 다이어리를 만들었어요. 월별 기록 페이지에는 참석한 강연과 일시, 장소를 적어두고 일간 기록 페이지에는 강연 주제와 내용, 느낀 점을 기록하는 형식이에요. 연말에 쭉 훑어보면 한 해 동안 몇 회의 강연을 들었고, 어떤 점이 특히 좋았는지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아요. 이 기록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에요.”
나를 찾아줘, 다이어리를 통해 발견하는
나만의 스토리
다이어리에 어떤 내용을 기록하는지보다, 다이어리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이 시간을 통해 누군가는 잠시의 휴식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점검하기도 한다. 43세 공무원 손정아 씨는 하루 일과 후 다이어리 작성 시간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됐다.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하루를 5분, 10분 단위로 쪼개서 살아도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정말 지치고 힘들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 요즘 대체 뭐하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하루 일과를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재운 후 식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펴놓고 30분씩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의외로 힐링이 되더라고요. 늘 아이와 남편을 우선하는 습관을 내려놓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요.”
목적을 갖고 다이어리를 작성하기보다 반대로 다이어리를 작성하다 보니 삶의 목적을 찾게 된 경우도 있다. 47세 어린이집 원장 권은경 씨는 반신반의로 시작했다가 인생의 이정표를 다시금 세우게 됐다.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스타 강사 김미경 씨가 다이어리만 잘 써도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영상을 보게 됐어요. 내가 미래에 이루고 싶은 일, 예를 들면 영어 공부 같은 것은 하이라이트로 표시해서 매일 연속적으로 시행하고, 다이어트나 매일 운동하기처럼 현재 꼭 해야 할 일들은 습관으로 삼아 꾸준히 체크하고,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은 감사일기 형식으로 간단히 기록해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이었는데,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저에게는 정말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더라고요. 2020년에는 이 조언을 실천해보고 싶어서 십수년 만에 새 다이어리를 장만해 쓰고 있어요.”
기획 정혜연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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