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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부원장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역량”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김철중 동아일보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5.12.03 11:34:00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대신 직업의 세계는 더욱 다양하고 세분화돼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미래엔 어떤 직업이 유망하며, 아이들에겐 어떻게 진로 지도를 해야 할까.
시골의 아이들에게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을 펼치고 있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부원장에게 물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부원장
직업 교육에 있어 현장 체험은 아이들에게 참 훌륭한 공부가 돼요. 그런데 전남의 한 중학교 선생님이 ‘우리는 아이들 데리고 나가봤자 염전밖에 없어요’라고 현장 체험의 어려움을 토로하시더군요. ‘어떻게 하면 지방의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주고 많은 걸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차에 정보통신기술(ICT)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ICT 지원 원격영상 진로멘토링’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미석(57)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원장은 이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국민들이 빠르게 바뀌는 직업 환경에 적응하며 능력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국책연구기관이다. 진 부원장은 “정보화시대 들어 경제적 · 사회적 여건에 의해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 정보 격차)가 심해지는 것처럼, 진로 교육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나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은 학생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멘토(직업인)가 자신의 회사 혹은 스튜디오에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은 각자 교실에 설치된 셋톱 박스 장치를 통해 화상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멘토에게 실시간으로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고, 한 번의 강의에 전국의 5개 학급까지 동시 참여가 가능하다. 도시 지역에 비해 진로 체험 기회가 적었던 농산어촌 학생들의 큰 호응 덕분에 2013년 57개 학교를 시작으로 2014년 4백57곳, 올해는 1천5백 곳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하려는 멘토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아요. 그런데 이분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없애니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멘토들이 저희를 찾아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그맨, 가수부터 지난해에는 소니 코리아 사장, 유엔 해비타트(Habitat) 사무총장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학생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은 단순히 멘토의 강의를 듣고 끝나는 방식이 아니다. 글씨를 예쁘게 디자인하는 직업인 캘리그래퍼와의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도화지에 글씨를 그리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요리사나 웹툰 작가도, 비록 모니터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지만 함께 실습하며 자신들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요즘 학생들은 연예계 종사자는 물론이고 헬스 트레이너, 푸드 닥터, 아쿠아리스트 등 어른들도 생소한 직업인들에 관심을 갖고 있더군요.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를 사전에 조사해 진로 지도 시 이를 반영하지만 종종 선생님들과 눈높이가 안 맞아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부모님들이 원하는 의사, 판검사 같은 직업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인기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 있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부원장

아이들에게 자기 관리 능력과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라고 조언하는 진미석 부원장.



체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직업에 대한 흥미 심어줘야

진 부원장은 서울대에서 교육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99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설립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요 연구를 이끌어온 교육 전문가다. 진 부원장은 자녀의 진로 문제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에게 ‘확신’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녀가 성장해 사회에 진출할 때는 부모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고, 자녀들 역시 커가는 과정에서 관심사가 그때그때 바뀌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모와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죠. 연예인이 되겠다고 춤 연습하고 방법을 찾아보고 하는 게 어른들이 볼 때는 자칫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 관심사만 바꿔준다면 그것을 위해 또 열심히 노력할 거니까요. 다만 요즘 학생들의 상당수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데, 이런 경우는 여러 체험의 기회를 통해 흥미를 찾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진 부원장이 아이들의 진로 교육에 이처럼 힘을 쏟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과 달리 직업의 안정성이 많이 떨어져, 삶의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직업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시대다. 또 직업의 종류도 세분화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어떤 직업이 나에게 맞는지, 앞으로 유망한지 등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진 부원장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기 이전에 자녀 셋을 키운 ‘다둥이’ 엄마다. 그는 살아오면서 자녀들에게 특정 직업을 가지라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기초 학문’을 배우는 게 좋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자녀 3명 모두 대학에서 기초 학문을 전공했으며, 큰딸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 전문가답게 이른바 ‘자식 농사’에 성공한 것 같다고 하자 진 부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직업 특성상 자녀 문제에 대한 상담을 많이 하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어느 시기든 한 번은 ‘대가’를 치른다는 겁니다. 어떤 아이들은 ‘급행(익스프레스)’ 티켓을 가지고 빠르게 가고, 다른 아이들은 ‘완행열차’를 타고 이곳저곳 들렀다 가기도 하는데 최종 목적지는 알 수가 없고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워요. 사실 우리 큰딸도 사춘기 없이 빨리 공부를 마쳤다 싶었는데, 박사 학위 받고난 지금에서야 비정부기구(NGO) 활동 등을 하며 이른바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어요.”

진 부원장은 대통령 직속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이다. 특히 자녀 셋을 키운 워킹맘으로서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경력단절여성(경단녀)’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했다. 그 역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유학을 갈 때는 큰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났고, 한국에 와서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가장 늦게까지 맡겨놓는 엄마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 부원장은 “사회복지 수준이 과거에 비해 올라갔다고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금의 워킹맘들이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경단녀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들 교육이 나라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떠나서라도, 국내의 훌륭한 여성 인재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진 부원장은 “각 직장의 조직 문화와 인식이 바뀌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정부가 제도를 고치고 지원을 강화하면 할수록 그 변화는 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단녀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청년들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한 우리나라 산업계의 구조 조정도 연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진 부원장은 미래 유망한 직업을 묻는 질문에 ‘환경’을 키워드로 꼽았다. 그는 “재생 에너지 같은 환경 친화적인 기술을 만들고 그걸 접목하기 위한 경제 · 사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무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회의 변화 속도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는 만큼 ‘지식’보다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각자 교실에서 실시간으로 다른 도시의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 못했던 것처럼, 2030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알기 어렵잖아요. 지금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자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 ‘자기주장과 논리를 세울 수 있는 역량’을 먼저 길러주세요.”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12월 6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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