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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TRAVEL

바진의 ‘휴식의 정원’과 중국 쓰촨 성 청두

결국 사랑과 화해만이 유일한 치유임을 확인했던 시간

글&사진 · 남기환 여행작가

입력 2015.09.04 14:37:00

소설 ‘휴식의 정원’ 속에서 청두는 현실의 도시(쓰촨 성의 중심)이자 동시에 상징적인 공간으로 등장한다.
중국 내에서도 유서 깊은 곳으로 손꼽히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바진은 전통이 근대의 거센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여러 인물들의 성정과 의식, 가치를 통해 집약해서 들려준다.
바진의 ‘휴식의 정원’과 중국 쓰촨 성 청두
휴식의 정원에서 머물렀던 시간에 대한 기록

지난 16년간 외지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해오던 작가인 ‘나’는 오랜만에 고향 청두(成都)를 찾아온다. 그곳에서 소학교와 중등학교, 대학교까지 함께 다닌 오랜 친구이자 관직을 떠나 부모의 유산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랴오궈둥을 우연히 만나 그의 강권에 못 이겨 랴오궈둥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긴다. ‘나’는 소설 집필이 끝날 때까지 마냥 마음 편치는 않지만 친구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아들이며 저택 내 ‘휴식의 정원’에 머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에서 꽃을 꺾다가 하인과 다툼을 벌이는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의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그가 이 저택의 옛 주인이었던 양씨 가문의 아이며, 가문의 몰락으로 집이 넘어간 다음에도 가끔 정원에 들어와 꽃을 꺾어 간다는 사실을 이 저택의 하인으로 일해온 노인으로부터 듣게 된다. ‘나’는 뭔가 심상찮은 사연이 소년에게 있음을 직감한다. 더구나 양 도령은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른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녀 호기심을 더욱 부추겼다.

저택에 머무는 동안 ‘나’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랴오궈둥의 가족과 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된다. 랴오궈둥이 전처의 죽음 뒤 맞이한 지금의 아내 완자오화는 5·4운동(1919년 일어난 전국적인 반일 운동으로, 중국 근대화의 출발점)의 영향으로 신식 교육을 받은 온화한 성품의 여인이지만,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샤오후는 노는 것만 밝히고 공부나 웃어른에 대한 예의는 등한시하며 거친 성정을 지녀 여러모로 또래의 양 도령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친구 랴오궈둥은 ‘넉넉한 돈이 있는데 그렇게 지내는 게 무슨 문제가 되랴’는 태도로 샤오후를 감싸기까지 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전보다 자유롭게 정원을 출입하도록 허락받은 양 도령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그의 사연에도 근접해간다. 그는 듣던 대로 이 저택의 전 소유주였던 양씨 가문의 셋째 아들인 양멍츠의 둘째 아들이다. 그러나 가세가 몰락하며 저택은 팔리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내, 첫째 아들과 마찰을 빚게 된 양멍츠는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엄마, 형과 달리 양 도령(양한얼)은 끔찍하게도 아빠를 따르고 존경했다. 가족들이 말다툼을 벌일 때도 그는 늘 아빠 편에 섰으며 화해를 중재하는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왔다.



그러나 문제는 양멍츠 자신에게도 있었다. 봉건지주의 자손으로 가세는 심각하게 기울었지만 여전히 예전의 씀씀이와 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성품은 온화하며 명예와 체면을 중시 여기지만 도박과 여인에 빠져 가산을 탕진해가면서도 자립의 방도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장남의 분노를 더욱 키워 결국 가족 간의 갈등은 양멍츠가 완전히 집을 떠나는 사태를 초래한다. 그리고 한참 만에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양멍츠를 발견한 양 도령은 그를 한 절에 머물게 하고, 과거 이 정원의 꽃을 좋아했던 아빠를 위해 꽃을 꺾어 갔었다. 양 도령이 왜 그토록 이 정원과 꽃에 집착했는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의 소설은 양 도령의 사연과 랴오궈둥 아내의 바람이 마음을 뒤흔들며 이전과는 다른 방향의 결말을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개월간 휴식의 정원에서 지내며 써왔던 소설은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기보다는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로 결말을 맺게 된다. 소설은 출판사의 선배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이제 휴식의 정원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양멍츠의 죽음이 전해진다. 랴오궈둥의 아들 샤오후 역시 강에서 놀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젠 이 많은 이야기들과 작별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상심한 친구를 뒤로한 채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나’는 청두를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박애주의와 화해, 작가가 제안하는 시대 변화의 해법

소설 ‘휴식의 정원’은 주인공인 소설가가 고향 청두에 체류하는 몇 개월 사이에 겪은 친구 랴오궈둥의 가족사와 더불어 우연히 양 도령이라는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된 한 집안의 흥망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를 이루며 전개되어간다. 배경은 1942년경 중국 쓰촨 성(四川省)의 청두(成都). 당시 항일전쟁이 한창이었고 이곳 청두와 충칭(重慶) 등은 국민당 정부가 점령하던 ‘대후방’ 지역으로, 일본의 공습이 잦긴 했지만 비교적 큰 혼란 없는 일상이 이어지던 도시였다.

이곳에서 만난 오랜 친구 랴오궈둥은 한마디로 여전히 남아 있는 봉건지주의 전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식 교육을 통해 하인을 존중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잘 아는 과도기적 인물로 등장한다. 반면, 양 도령의 가문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중국 봉건 세습 지주층이 시대의 변화에 떠밀려 ‘돈이 없으면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당하는 주체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멍츠는 여전히 예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체면을 중시한 나머지 씀씀이도, 과거의 향락도 저버리지 못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생업에 뛰어드는 일은 명예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동시에 그저 자신과 몰락한 가문의 신세를 한탄하는 나약한 인물이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비참한 방랑객의 처지가 된 양멍츠의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의 무기력함에 어이없음을 넘어 약간의 분노마저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정황의 증인으로 등장하는 ‘나’는 이 소설의 저자 바진(巴金, 1904~ 2005)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그는 아름다운 문체와 인간의 삶 그리고 그를 통한 현실의 직시를 담은 작품들을 통해 중국 문학사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루쉰(魯迅)과 라오서(老舍)와 더불어 중국 3대 문학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쓰촨 성 청두 태생(소설의 주인공과 같은)의 그는 부유한 봉건지주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를 통해 인도주의를, 1919년의 5·4운동을 통해 반봉건 사상을 갖게 됐다. 이후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를 접하며 반봉건 운동을 활발히 벌였으며 프랑스 유학과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세상으로의 시야를 더욱 넓혀 귀국 후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벌여나간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숙청의 대상으로 지목되었지만 1976년 극좌파 4인방의 몰락 후 사면 복권되는 등 우여곡절도 적지 않게 겪는다. 그리고 그가 이룬 문학적 성과는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비롯해 여러 국제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휴식의 정원’은 현실주의에 입각해 인간성의 타락과 회복에 관심을 기울였던 바진의 문학적 경향이 절정을 이루었던 작품으로 손꼽힌다. 중국의 대가족 제도와 그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 회복 등을 다룬 바진의 대표적인 가족 소설들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특히 양씨 가문의 몰락에 주목한다. 돈과 명예를 잃은 가문의 현실을 양멍츠의 아내와 장남은 재빨리 수긍하고 적응하는(그의 장남은 전신국 직원으로 취직한다) 반면, 양멍츠의 태도는 여전히 봉건 부호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비참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바진은 소설 속 주인공인 ‘나’(주인공의 직업 역시 소설가여서 바진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의 청두 체류 기간 동안 양멍츠를 비롯해 친구 랴오궈둥, 양 도령, 샤오후, 완자오화 등 여러 인물을 만나며 그들이 지닌 저마다의 성정과 사연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1942년의 중국 사회를 꿰뚫으며 이 소설을 하나의 상징적 완성체로 구성해나간 듯하다. 결국 행복은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고 사랑과 화해를 실천하는 이들의 몫임을 안하무인의 태도로 일관하며 전형적인 봉건 가문 후손의 모습을 보인 샤오후와, 가문의 몰락으로 무기력증에 빠진 양멍츠 등 이 둘의 죽음을 통해 말하고 있다. 여전히 봉건 후손의 지위를 만끽하지만 가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랴오궈둥과, 봉건 부호의 며느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그의 아내, 그리고 부친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화해를 보여주는 양 도령의 해피 엔딩과는 사뭇 다른 셈이다.

바진의 ‘휴식의 정원’과 중국 쓰촨 성 청두

1 무후사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제갈공명의 출사표. 제갈공명의 친필이 아니라 남송의 악비가 다시 쓴 것이다. 2 청두의 상업 지구인 금리. 중국 시대극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쓰촨 문명과 촉한의 전통이 수천 년간 이어진 도시 속으로

중국 쓰촨 성은 내륙 분지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중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오랜 세월 이곳만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완성해왔던 지역이다. 이름 그대로 네 개의 큰 강이 흐르는 덕분에 수량도 풍부하고 토지는 비옥해 중국의 그 어느 지역도 부럽지 않은 부강함을 누려온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전통문화의 뿌리는 매우 깊고 두꺼우며,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문화적, 역사적 자원을 상당 부분 잉태하고 보유하고 있다. 소설의 주 무대인 청두는 쓰촨 성 최대의 도시이자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현대화의 속도를 채근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동시에 쓰촨 성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한 문화 유적들을 도심과 주변에 두고 있어 쓰촨 성 여행의 출발과 시작을 삼을 만한 곳이다.

이 청두와 쓰촨 성의 전통문화를 말할 때 ‘삼국지’를 빼놓을 수 없다. 유비 의형제들의 활약이 펼쳐진 ‘촉한’이 바로 쓰촨 성 일대였다. 그러니까 청두는 유비가 세운 촉한의 수도였던 셈이다. 촉한의 흔적을 발견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청두 시내에 자리한 무후사(武侯祠)를 들 수 있다. 무후사는 ‘삼국지’에서도 가장 인기 있고 인상적인 인물인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이자 그의 주군인 유비의 묘, 헌릉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무후사는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벼 중국인들의 ‘삼국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과 친구 부부도 이곳을 찾아 여유를 즐겼다.

제갈공명보다 먼저 세상을 뜬 유비의 묘가 있던 자리는 14세기에 이르러 제갈공명의 사당이 더해졌고, 그의 시호를 따 무후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제갈공명의 사당과 유비의 묘에 이르기 전 ‘삼국지’의 주요 영웅 호걸 조각상과 그 유명한 ‘출사표’ 사본 등을 관람하게 된다. 그저 상상 속의 모습을 조각한 전시품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이미 당·청 시대에 만들어진 문화재와 다름없다. 유비의 뒤를 이은 아들 유선이 선정을 베풀지 못하는 것을 짐짓 꾸짖으며 목숨을 다해 전쟁을 치를 것을 선언한 출사표는 그림처럼 기개 넘치는 필체가 인상적이지만, 아쉽게도 제갈량의 친필이 아니라, 훗날 남송의 명장인 악비가 다시 쓴 것이라고 한다.

웅장하면서도 위엄 있게 지어진 사당을 차례로 지나며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량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묘사한 조각상을 안치한 내부를 둘러보게 된다. 특이한 것은 분명 군신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제갈공명의 사당이 유비보다 뒤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당을 조성할 당시 청나라 황제가 제갈공명의 인기가 더 높아 참배객들이 행여 제갈공명의 사당만 들르고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낳은 독특한 구조라고 한다. 제갈공명의 사당을 지나면 붉은 벽과 그 위로 드리운 대나무가 인상적인 길을 따라 유비의 묘에 이른다. 유비의 묘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면 혹은 기단부를 보지 못한다면 작은 동산이라며 지나칠 정도로 거대하고(둘레 180m) 그 위로 초목이 우거져 있다. 그 규모에 눌렸는지 지금껏 도굴되지 않았고 별다른 발굴 작업도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무후사를 나오면 전통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지붕을 이어가는 테마 거리인 ‘금리’로 동선이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오래전부터 있던 옛 건물이 아니라 따로 조성한 상업 지구다. 그래도 마치 중국 시대극의 거리로 들어선 듯한 정취를 맛보기에는 좋다. 이곳에 자리한 상점들은 대부분 기념품 또는 특산품 등을 팔거나 인기 있는 길거리 간식, 간단한 식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 고풍스러움 가득한 거리 초입, 가장 목 좋은 자리에 외국계 유명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 있다는 점은 이채로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쉽다. 마치 우리의 인사동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바진의 ‘휴식의 정원’과 중국 쓰촨 성 청두

3 청두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이를 활용한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두장옌. 4 중국의 4대 연극 중 하나로 꼽히는 천극의 한 장면. 5 쓰촨 성을 대표하는 명주, 수정방 양조장. 아직도 전통 수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의 그들이 전통을 즐기는 방식과 만나며

바진의 ‘휴식의 정원’과 중국 쓰촨 성 청두

훠궈

청두의 전통문화를 만나는 여행은 근교로 이어진다. 시내에서 승용차로 4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두장옌(都江堰)은 쓰촨과 청두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이를 활용한 이곳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쓰촨은 이름처럼 네 개의 큰 강이 흐르는 곳이며, 그런 지세는 청두와 주변에서도 변함이 없어 쓰촨 여행을 하는 동안 어디서나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강을 볼 수 있었다. 두장옌은 이 가운데서도 민강의 범람을 막아 백성의 안위를 돌본 유적이다. 일종의 인공 제방으로 물길을 다스린 곳인데, 강 중간에 인공 섬 같은 제방을 쌓아 물길을 여러 갈래로 찢어놓아 수세를 잠재운 식이다. 놀라운 것은 이 시설이 완비된 해가 기원전 256년. 당시 이 지역의 태수였던 이빙과 그의 아들 이랑이 세대를 이어가며 완성한 업적이다. 기원전에 이미 이런 시설을 만들었으니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따로 추측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터. 전망대에서 본 강은 제방으로 막았으되 그 수량과 폭이 놀랍기 그지없다. 현대적으로 추가된 댐 근처로 가 물 가까이 서서 보니 강바닥에 부딪히며 드세게 흘러가는 강물이 이리저리 밀치며 구르며 아예 우르르 소리까지 낸다. 그나마 치수를 했기에 이 정도라니 우기엔 얼마나 잦은 홍수에 시달렸을지 짐작되고 남는다. 이곳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청두에서 경험하는 또 하나의 전통문화는 ‘천극(川劇)’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친구인 랴오궈둥 부부는 가끔 친척들과 함께 경극을 보러 간다. 그의 아들 샤오후는 마니아 수준으로 거의 매일 경극을 보는데, 작가 바진은 이 상황을 봉건 부호들의 한가한 유흥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당시 대표적인 타도 대상이었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경극은 이제 누가 뭐래도 세계적인 예술로 대접받고 있다. 쓰촨의 극 공연은 따로 ‘천극’이라 부르며 중국의 4대극 중 하나로 손꼽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극의 요소도 담고 있지만 여기에 다양한 기예가 더해지고 스토리가 명확해 더욱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다. 천극 공연의 절정은 ‘변검’이다. 쓰촨에서 탄생한 변검은 비밀에 싸인 기술을 통해 순식간에 얼굴에 쓴 가면이 바뀌는 공연이다. 고수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모자 등 액세서리까지 함께 바꿔버린다. 쓰촨의 천극 공연 도중에는 사람이 손수 가면을 바꾸기도 하지만 인형을 조종해 변검을 구사하는 신기한 광경도 보여준다. 절로 박수가 터져나오는 순간이다.

그 밖에도 청두와 그 주변만 둘러보더라도 중국이 자랑하는 전통 예술과 문화, 역사 유적이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에 풍부한 산물을 이용한 미식 문화도 더불어 발달해 이 역시 주요한 전통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청두 여행 중 들렀던, 전통주이자 중국에서도 명주(名酒)로 유명한 ‘수정방(水晶坊)’은 그 전통을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을 따로 두고 있어 이채롭다. 진흙 속에서 발효한 주정을 증류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여전히 전통의 수제 양조 방식을 고집한 덕분에 쓰촨과 중국을 대표하는 술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들이 늘 차관에 들러 차를 즐겼듯 중국차 문화의 발원지이자 세계 차 문화의 선두 역할을 하는 곳 역시 쓰촨이다. 청두 시내 곳곳의 차관은 세대를 아우르며 차를 즐기는 청두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계에서 단일 면적으로는 가장 큰 쇼핑몰이 들어서 청두의 현재를 들려주고 있지만, 동시에 어디서건 수천 년을 이어온 광폭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이 어색함 없이 이와 어우러지는 도시라는 점은 상당히 매력 있다.

EPILOGUE

바진은 1940년대를 배경으로 전통과 근대의 교차점으로 쓰촨 성의 중심인 청두를 택했고, 두 시대의 대비를 통해 암울함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의 가치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나’가 ‘휴식의 정원’을 떠나온 뒤 70여 년이 지난 지금, 청두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동시에 특히 전통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면서 한편으로는 빠른 현대화의 가능성을 드높이고 있는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 성과는 세상의 변화를 향해서 조금씩 자신과, 그리고 주변의 가족들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소설 속 인물들 덕분일지 모른다. 휴식의 정원을 중심으로 그 가능성을 키워나갔던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Travel Information


1. 찾아가기 : 인천-청두 간 비행기 직항 편이 있다. 비행 소요 시간은 약 4시간.

2. 쓰촨 미식 기행 : 쓰촨 성은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미식의 고장이다. 다양한 식재료에 강한 향신채로 맛을 낸 요리들이 특히 유명하다. 중국요리 가운데는 쓰촨이 원조인 음식들도 많은데, 그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 중국식 샤부샤부 요리인 ‘훠궈’다. 보통 매운 고추 기름을 쓴 육수와 담백한 육수가 함께 나와 취향에 따라 해산물, 육류, 채소 등을 넣어 익혀 먹는다. 매운맛의 정도를 달리해 주문할 수 있는데, 우리 식의 매운맛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갖은 식재료를 익히는 동안 육수가 점점 맛이 들어 묘하게 입맛을 당긴다.


디자인 · 김수미

취재협조 · 중국 쓰촨 성 정부여유국 한국 대표처(http://global.tsichuan.com)

여성동아 2015년 9월 6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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