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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12개 식당 운영하는 ‘경리단길 골목대장’ 장진우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5.08.18 15:36:00

‘요섹남’ 등장의 배경에는 음식을 하나의 문화이자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인식 변화가 자리한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로 장진우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개인 작업실을 식당으로 바꿔 5년 만에 식당 개수를 12개로 늘린 요식업계의 이단아다. 속 모르는 사람은 그의 성공 비결을 부모의 경제력 혹은 운으로 돌릴지 모르겠으나, 그가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따로 있었다.
스물아홉, 12개 식당 운영하는 ‘경리단길 골목대장’ 장진우
스물아홉, 12개 식당 운영하는 ‘경리단길 골목대장’ 장진우
이태원 경리단길에는 일명 ‘장진우 거리’가 있다.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까지, 그리고 경리단에서 하얏트호텔로 올라가는 두 갈래 길을 통틀어 경리단길이라 칭하는데, 호젓한 주택가였던 이곳이 몇 년 전부터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는 데는 장진우 거리의 주인공 장진우(29) 셰프의 공이 크다.

2011년 경리단 입구에서 50m가량 떨어진 회나무길에 ‘장진우식당’을 처음 연 그는 이후 이 일대에 실내 포장마차 ‘방범포차’, 한식 전문점 ‘문오리’, 디저트 전문점 ‘프랭크’, 이탤리언 지중해 음식점 ‘그랑블루’, 파인 다이닝 ‘마틸다’, 종합 외식 몰 ‘프랭크 타운’ 등을 연달아 오픈했다. 예전에 있던 ‘장진우다방’과 ‘장스시’ ‘경성스테이크’는 없어졌고, 경성스테이크 자리에 새로운 이름의 바&커피숍이 들어올 예정이다. 이쯤 되면 ‘장진우 거리’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성과가 불과 5년 안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장진우는 연 매출 30억원을 기록 중이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요식업계가 주목하는 큰손으로 떠오른 장진우는 음식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을 아우르는 트렌드세터로도 주목받고 있다. 중앙대 국악학과 출신인 그는 대학 때 사진에 빠져 졸업 후 개인 스튜디오를 열고 광고 사진을 주로 찍었다. 남다른 미적 감각으로 ‘장진우 공사’라는 인테리어 사업도 운영 중이다. 요즘 맛집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장진우식당은 모던 클래식 분위기의 작은 음식점이다.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오래된 LP판과 예술 서적들이 꽂혀 있고 그 옆으로 형형색색의 폴란드 그릇이 놓여 있어, 처음 방문한 사람은 이곳이 식당인지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실제로 장진우식당의 원래 용도는 장진우 개인 서재였다. 포토그래퍼로 활동할 당시 마련한 곳인데, 특이하게 처음부터 서재에 주방이 있었다. 평소 요리에 소질이 있던 장진우는 이곳에서 지인들과 미팅을 가진 뒤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수시로 친구들을 초대해 늦은 밤까지 음악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처럼 서재에서 식당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한 곳이기에 장진우식당에는 간판도 없고, 식탁도 10명 정도 둘러앉을 수 있는 사이즈의 라운드 테이블이 전부다. 덕분에 각자 밥을 먹으러 들어왔던 손님들이 나중에는 한데 어울려 파티를 즐기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요즘에는 저녁 시간대에 단체 대관 손님 위주로 받고 있다. 점심 식사는 수요일에만 가능하다.

스물아홉, 12개 식당 운영하는 ‘경리단길 골목대장’ 장진우
중학교 퇴학당하고 서울로 유학, 일찌감치 깨달은 생존의 법칙



지난 7월 중순 장진우식당에서 만난 장진우는 멋스러운 카키색 앞치마를 두른 채 식당 앞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앞치마가 마음에 들어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묻자 그는 “언제 앞치마 콜렉터 특집이 있으면 한번 불러주세요. 집에 앞치마가 1백 개가 넘어요” 하며 씩 웃는다. 알고 보니 이날 입은 앞치마는 그가 최근 영국 가든 투어 중 구입한 가드닝용이었다. 재주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가드닝에도 관심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던 터라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여행 이야기로 흘렀다.

“어려서부터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투박한 외모와 달리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해요(웃음). 가든 투어는 말 그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원을 둘러보는 여행이에요. 영국의 경우 스코틀랜드 최북단에서 잉글랜드 최남단까지 종단하는 지옥의 스케줄인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 의미 있었어요. 얼마 전부터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번 여행도 모임에서 같이 간 거예요. 회원 중에는 저처럼 요리하는 분도 있고, 건축하는 분, 리빙 전문가, 가드너도 있어요.”

가든과 식당업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지만 장진우의 목표 중 하나가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거나 자연미가 뛰어난 곳을 소유 · 관리하며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는 일을 하는 민간 단체)’ 같은 재단을 만드는 것인 만큼 결코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또한 그가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식당업을 시작한 이유도 돈을 벌어야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흔히 사람들은 그가 운이 좋아 혹은 부모 잘 만나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이 바닥에 운이란 건 없다. 운을 거꾸로 돌려보면 ‘공’이 되는데, 공을 들이지 않고는 요식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당차게 말했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장진우는 중학교 2학년 때 문제아로 낙인찍혀 퇴학당한 후 아버지의 명으로 서울로 유학 왔다. 대치동 고시원에서 혼자 지낸 그는 한 달에 수백만원 하는 국악 레슨비를 감당하기 위해 중국집과 족발집, 피자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생존 법칙을 터득해갔다. 처음 장진우식당이 적자에 허덕일 때 요정(술집)에서 피리를 불어 임대료를 내면서 오히려 식당 3개를 추가로 오픈한 것도 보통 배포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 그럼에도 그는 자기 자신을 ‘엉망진창’이라고 평한다.

“그냥 경리단길 골목대장이에요(웃음). 요리가 좋아서 음식으로 돈을 벌 생각을 했고, 한번 일에 빠지니까 앞뒤 안 보고 돌진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허점투성이예요(웃음). 식당 운영도 엉망이었어요. 그동안 잘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이없이 새는 돈이 많았더라고요. 식당이 여러 개다 보니 ‘그거 얼마 되겠어?’ 하는 소소한 비용들이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거죠. 소득세, 주민세 등 내야 할 세금도 많고, 기부 관련 영수증은 받지도 않았더라고요(웃음). 결국 석 달 전쯤 ‘장진우 회사’를 설립하고 회계 담당자와 비서를 새로 뽑았어요. 이렇게 흩어져 있던 식당을 하나로 묶으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네요.”

장진우 회사의 모든 비즈니스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한다. 홈페이지에도 식당별 셰프와 매니저, 서빙 담당 직원들 사진이 올라와 있고, 직원 채용 방식도 남다르다. 얼마 전 그는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바보, 찌질이, 울보, 싸가지들을 뽑는다. 꿈을 믿고 따라올 수 있는 ‘꿈돌이’인지를 본다. 단, 옆 가게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 한 가지 예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장진우 회사는 구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기회를 준다. 3개월간의 인턴십 제도 덕분인데, 그 기간에는 1백3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다. 정식 직원의 평균 월급은 4백만~5백만원 선이다.

“주말에는 직원들이 알아서 ‘설거지 알바’를 쓰긴 하는데, 직원 전원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인센티브 제도도 있어요. 많이 받는 친구들 월급은 6백만원 정도 되니까 동종 업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적은 금액은 아니라고 봐요. 대기업만큼 직원 복지에 많이 투자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죠.”

바보 · 찌질이 · 울보 · 싸가지를 환영하는 이유

스물아홉, 12개 식당 운영하는 ‘경리단길 골목대장’ 장진우
화려한 스펙의 인재가 넘쳐나는 요즘 굳이 ‘바보’를 채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장진우는 “소외된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통 사업가들은 기피하는 후미진 골목에 식당을 낸 것도 콘텐츠만 좋다면 장소는 상관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상권이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브랜드가 좋은 상권을 만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정식으로 셰프 코스를 밟지도 않았고, 집안이 부자도 아니고, ‘빽’도 없지만 나름의 철학은 있어요. 제가 만약 화가라면 그림으로, 작가라면 글로, 교육자라면 후학 양성을 통해 문화 부흥에 힘썼겠지만 저는 장사꾼이니까 사업을 잘해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해요.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행동보다 바른 생각이 앞서는, 사회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요.”

지난해 발족한 ‘장진우 창업스쿨’도 같은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기술은 있는데 돈이 없거나, 아이디어는 있는데 어떻게 창업으로 연결시킬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8주 동안 그가 경험한 ‘장사의 기술’을 모두 전하는 것. 로고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메뉴와 음악 선정, 세무 관리 등 창업에 있어 꼭 필요한 것들 위주로 교육하며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은 그가 운영하는 ‘프랭크 타운’에서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치게 한 뒤 가게 오픈을 도와준다. 프랭크 타운에는 한식집과 커피숍, 인테리어 숍, 금속공예 숍 등이 입점해 각자 원하는 곳에서 실무를 익힐 수 있다. 또한 장진우는 소년원 아이들을 돕는 일도 구상 중이다.

“청소년기 철없는 행동으로 큰 상처를 안은 아이들에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힘이 돼주고 싶어요. 요리사, 바텐더, 바리스타 등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거죠.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도 소년원 청소년들을 요리의 세계로 인도했는데, 저라고 못할 이유가 없죠. 하하.”

장진우 회사는 경리단길에만 국한하지 않고 점점 외부로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올 4월에는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식품관 ‘고메이494’에 장진우식당과 프랭크가 입점했고, 7월 21일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관에 새 브랜드 ‘오키나와 블루’를 오픈했다. 또 삼청동에도 장진우식당을 열 예정이어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버는 족족 새로 식당을 내다 보니 남는 돈은 많지 않아요. 그동안 번 돈으로 빌딩 하나는 올렸겠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임대료 내면서 장사하고 있어요(웃음). 사실 처음 돈 좀 번다 했을 때 빌딩을 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우리나라 임대업 구조상 빌딩 하나만 있으면 정말 일을 안 해도 되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월세만 올리면 돼요. 사실 지금 운영하는 가게들도 초창기에 비해 임대료가 두 배 가까이 올랐어요. 하지만 불만은 없어요. 조금 벌 땐 조금 내고 많이 벌 땐 많이 내야죠. 정 못 버티겠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돼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넓어요. 전국이 다 장진우회사 무대라고 생각해요(웃음).”

장진우의 또 다른 목표는 결혼이다. 갤러리스트인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예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결혼이 생각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못하는 눈치다.

“여자친구 부모님께 아직 허락을 받지 못했어요. 사업하는 남자한테 시집가면 고생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에요. 평범한 회사원들과는 생활 패턴이 다르니까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집에 들어갈 수도 없을 테고, 출장도 잦고, 여러모로 불안정한 면이 있겠죠. 하지만 누구보다 잘 살아갈 자신이 있고,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놈이란 걸 꼭 알아주시면 좋겠어요(웃음).”

장진우 대표는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스케줄을 위해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 시간이 늦었다며 그가 올라탄 것은 스쿠터. “차 막히는 서울 시내에서는 오토바이가 최고”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를 보니 진짜 ‘젊은이의 패기’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8월 6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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