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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출신 역술가 이철용 소설 같은 인생&명사들의 운세

“사주팔자보다 더 강한 건 사람의 의지”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5.07.16 11:01:00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일찌감치 예견한 역술가가 있다.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구두닦이들의 왕초 노릇을 하다 빈민운동가가 됐고, ‘꼬방동네 사람들’의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출마, 금배지까지 달았던 이철용 전 국회의원. 밑바닥 인생부터 정치권력의 심장부까지 경험한 그가 역술가로 살아가는 이유와 사주로 풀어본 명사들의 운세를 들려줬다.
국회의원 출신 역술가 이철용 소설 같은 인생&명사들의 운세
“박근혜 정부는 있는 걸 잘 관리하고, 화(火) 기운이 필요하니 붉은색을 써야 합니다. 정부의 모토도 ‘나눔 정부’로 가야 성공합니다. 나눔 정부는 못살아도 좋은 겁니다. 있는 가운데서 나누면 되니까요. 그럼 불만이 없어요. 고르지 못한 데서 불만이 생기는 거예요. 박 대통령은 해외가 아닌, 국내 저변의 사각지대를 돌며 무엇보다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해요.”

대권의 윤곽이 오리무중이던 2012년 초, 일찌감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예견해 화제를 모은 국회의원 출신 역술가 이철용(66)은 최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국내 상황을 걱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민당 의원이던 1989년, 헌정 사상 처음 전직 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운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살인마”라는 ‘돌직구’를 날린 인물로도 유명하다.

“당시 국민들은 제 발언을 지지했어요. 식당에 가면 밥값도 내주고, 후원금도 보내주고, 그야말로 인기 ‘짱’이었어요. 하지만 당내 기류는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결국 그 일로 정치 생명이 끝났죠. 이후에는 공천을 못 받았거든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정치를 그만두고 역술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는 불특정 다수에게 떠들고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식이지만, 역술은 개개인을 직접 만나 희망을 줄 수 있거든요.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만큼 큰 보시가 없죠.”

신체장애 덕에 악착같은 생활력 키워 어려운 이웃 도와

국회의원 출신 역술가 이철용 소설 같은 인생&명사들의 운세
금배지가 가슴에 붙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마음의 소리를 행동으로 옮기며 당당하게 살아온 그에게도 절망의 나날이 있었다. 그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결핵으로 세상을 뜬 부친으로부터 감염돼 결핵성 관절염을 앓으면서 신체장애를 갖게 된 것. 그는 어린 시절 놀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한번은 저희 집 인근 한의원집 아들이 제 뒤를 따라오면서 절뚝거리는 흉내를 냈어요. 어찌나 서럽던지 집에 가 엉엉 울었더니 어머니가 그 길로 한의원집을 찾아가 대문을 부숴버렸어요. ‘앞으로 누가 너를 놀리면 이렇게 부숴버려. 바보처럼 울지 말고’ 하시면서요.”

그 일로 살아남으려면 강인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생존 현장에 뛰어들었다. 불편한 몸으로 살아남으려면 무기를 들어야 했고, 악명이 날로 높아졌다. 악착같이 싸우다 보니 ‘깡다구’라는 별명이 생겼고, 20~30곳의 구두 터를 운영하며 1백여 명의 구두닦이를 통솔하는 ‘왕초’가 됐다.

“깡패 왕초는 싸움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에요. 술 마시고 실수해도 안 되고, 친구나 후배 애인에게 눈길을 줘서도 안 돼요. 의처증이 있는 놈은 나중에 적이 되거든요. 돈을 직접 만져서도 안 돼요. 돈은 후배가 관리하게 해야 해요. 후배들이 경찰에 붙잡혀 가면 빼주는 힘도 필요하고요. 생존의 문제니까 남다른 전략으로 구두 터를 관리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죠.”

청계천 일대에서 깡패 왕초로 통한 그는 남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기 싫어 해수욕장이나 공중목욕탕도 찾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장애를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인 건 20대 초반, 덫에 걸린 쥐를 물고 흔드는 진돗개를 보고 나서다.

“저라면 다리를 잘라서라도 목숨을 건질 텐데 그 쥐는 다리가 걸려 결국 죽었어요. ‘지금까지 다리 하나 때문에 덫에 걸린 쥐처럼 살아왔지만 이제는 장애에 연연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더 악착같이 살게 되더라고요.”

국회의원 출신 역술가 이철용 소설 같은 인생&명사들의 운세
1974년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만든 야학교에 은성학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손학규 전 의원을 비롯한 여러 명문대생이 학생들 지도를 맡았다. 그 무렵 만난 빈민운동가 허병섭 목사는 ‘돈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던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가 심해 국민투표를 했는데, 투표용지를 뭉텅이로 갖고 다니는 놈이 있어서 신고했어요. 그런데 제가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구속됐죠. 결혼한 지 20일 만이던 1975년 2월 10일에요. 정의로운 일로 수감된 거라 감옥살이가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 달린 거더라고요.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허 목사가 넣어준 성경책을 보면서 혼자 잘살 게 아니라 더불어 잘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을 품고 빈민운동에 ‘올인’했다. 힘없는 이들이 빼앗긴 권리를 집단행동으로 되찾도록 조직을 만들고 훈련하는 현장 운동가로 발 벗고 나서자 수배와 도피, 구속, 고문이 거듭됐다.

“1976년에는 간첩으로 몰려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40일을 지냈어요. 1979년 YMCA 위장 결혼식 사건(결혼식을 가장한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 때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용산구 서빙고동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지요. 야구 방망이에다 헝겊을 씌워 펑펑 소리 나게 때렸어요. 하도 맞아 턱도 안 움직였죠. 살려고 턱을 손으로 움직여서 억지로 먹었어요. 거기서 기절을 두 번이나 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예요.”

금배지 내려놓은 후 역술로 생활정치에 뛰어들어

경찰의 지명수배로 쫓기는 신세였을 때도 그는 처자식을 굶기는 법이 없었다. 숨어 지내기는커녕 오히려 파출소 앞에서 노점상을 하며 아내와 두 아들에게 생활비를 보낸 것. 또한 도망 다니며 집필한 소설 ‘어둠의 자식들’(1980)과 두 번째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1981)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한 달에 책이 몇 만 부씩 나가니까 집 한 채 값의 인세가 다달이 들어왔어요. 그 돈으로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공부방과 어린이집을 내고, 이웃들에게 이발도 해주고 침도 놔주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어요. 그때 제가 한 빈민운동의 모토는 1인 1기였어요. 살아가려면 기술이 적어도 하나는 필요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이발이나 침술을 배우게 했죠.”

서민들이 지지하는 인기 작가가 되자 정치권의 러브 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가 가장 존경하는 고 이문영 고려대 교수가 그 대신 평민당에 입당 원서를 내고,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3대 총선에서 도봉을 지역 후보로 그를 공천했다. 하도 돌아다녀 얼굴은 지역 주민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본명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동철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써온 탓이었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본명을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리어카에 ‘이동철의 본명은 이철용’이라고 쓴 휘장을 달았어요.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을 그 안에 쌓아놓고 책값은 알아서 달라고 했더니 돈도 생기도 선전도 되더군요. 그렇게 리어카를 끌고 한 집 한 집 돌며 악수하고 다녔어요. 결국 큰 표 차이로 제가 이겼죠.”

빈민운동을 하면서 ‘조개가 상처를 입지 않고서는 진주를 만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국회에 입성해 ‘장애인을 슬프게 만드는 장애물 걷어내기’에 주력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일 뿐, 장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그릇된 인식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국회 등원 첫날부터 휠체어를 타고 1인 시위를 벌여 의원회관 내부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부터 만들게 했다. 맹인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점자로 다닐 수 있는 길과 휠체어가 오르내리기 좋은 경사로,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등이 그것. 또 장애자라는 명칭을 장애인으로, 장애인 복지법의 권고 조항을 의무 조항으로 바꾸고, 장애인도 당당히 일해 돈을 벌 수 있도록 장애인 고용촉진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생긴 후 많은 장애인이 직장을 얻고 관련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었어요. 그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이 제 생애 가장 보람 있고 뿌듯한 일이에요.”

헌정 사상 최초의 장애인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그는 13대 임기를 마치고 공천을 받지 못해 14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정치적인 재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그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정치를 하기 위해 역술가로 변신한다.

“역술은 개개인을 직접 만나 불행에 대비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생활정치예요. 빈민운동을 하면서 그 효과를 확인했죠. 빈민운동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서 장애인이 됐나? 우리 어머니는 뭐가 달라서 일찍 과부가 됐나?’ 궁금증이 일었어요. 결혼하기 전 책을 사다 역학을 공부했는데 아무리 뒤져도 왜 장애인이 됐는지는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1979년 보안사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나왔을 때 문익환 목사가 보내준 웅담을 먹고 차츰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의학에 빠졌죠. 침술과 뜸술을 익히며 인체의 음양오행에 대해 배우다 보니 관상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빈민운동에 활용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하며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다 보니 다시 역학에 심취하게 되더라고요. 사주도 실은 여러 데이터의 통계로 그 사람의 성향을 보는 거거든요. 사주는 연월일시 네 기둥에 2개씩 있는 8자의 조합으로 개연성을 따지는 거예요. 적중률이 높게는 70~80%, 낮게는 60~70%죠.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와 사주가 비슷한 사람이 와서 이혼수가 있겠다고 했더니 몇 년 전 사별했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이런 게 사주죠.”

국회의원 출신 역술가 이철용 소설 같은 인생&명사들의 운세
‘월드 스타’ 이병헌, 노력 이상의 것을 얻는 사주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일찌감치 예견하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보다 사주의 기운이 월등히 강력해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자”라는 이유를 들었던 그에게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누가 용이 될 것 같으냐고 묻자 “지금은 오리무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용의 기운이 있는 정치인들 가운데 다음 대선 때 사주의 기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언급하기는 일러요. 여당과 야당 모두 대선 후보의 윤곽이 불투명한 상황이고, 무엇보다 선거는 개인의 공보다 상대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기운이 워낙 좋았을 뿐 아니라 선거 당일도 당선에 도움이 되는 날이었어요. 박 대통령이 그날 보호색인 붉은색 옷을 입은 것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재임 중은 물론 퇴임 후에도 온갖 루머에 휩싸였지만 무탈하게 지내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주는 어떨까. 이철용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은 좋은 사주를 타고난 데다 후천적으로도 강한 의지와 근면성을 키워 자기 것을 놓치지 않고 잘 챙기는 노력파지만, 좋은 기운이 다 가서 안 좋은 일이 닥칠 개연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앞으로 잘 관리하지 않으면 노후에 구설수를 겪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친 김에 최근 여자 문제로 구설에 올랐던 월드 스타 이병헌과 ‘삼시세끼’에서 숨은 요리 실력을 발휘해 최고의 ‘요섹남’으로 떠오른 배우 차승원의 사주도 물었다. 1970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고비 때마다 슬기롭게 극복하며 데뷔 후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차승원 씨와 이병헌 씨 둘 다 사주에 시비수가 항상 있어요. 구설수가 강한 사주예요. 근데 두 사람 모두 잘 치고 빠져나가요. 특히 이병헌 씨는 1만 가지 흉허물이 생겨도 덮어주는 귀인이 있어서 계속 살아남을 거예요. 노후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요. 명도 길어요. 90세까지 운이 뻗쳐요. 70세에도 대운이 와요.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는 사주예요. 비바람이 치고 태풍이 와도 끄떡없어요. 차승원 씨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예요.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 되면 좋은 기운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는 앞서 언급한 세 명 중 이병헌의 관상을 최고로 쳤다. 다른 두 사람에 비해 하관이 월등히 발달하고, 치아도 가지런하게 났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차승원 씨도 노력파예요. 근데 이병헌 씨는 항상 노력 이상의 것을 얻어요.”

그렇다면 타고난 사주팔자를 바꿀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이 전 의원은 “역학은 운명학이 아니라 관리학”이라면서 “사주가 좋다고 과신하지 말고 사주가 나쁘다고 좌절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주보다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예요. 분노, 언동, 쾌락, 식탐, 이 4가지만 절제하면 사주를 볼 필요가 없어요. 절제를 못해서 사주를 보는 거예요. 흔히 좋은 사주를 온실의 화초, 나쁜 사주를 야생화에 비유하는데 온실의 화초는 잘 관리해도 밖에 나가면 죽어요. 반면 야생화는 잘 관리하면 어디에서든 살아남죠. 야생화를 접붙여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듯이 사주가 적당히 나쁜 사람은 꾸준한 노력을 통해 잘될 수 있어요.”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7월 6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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