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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리얼’과 연기 사이에서 어느덧 정상에 오른 배우 남궁민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935엔터테인먼트, SBS 제공

2015. 07. 16

‘우리 결혼했어요’의 인기를 이끌었고, 하차로 팬들의 엄청난 ‘원망’을 샀던 남궁민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의 명연기로 모든 소란함을 잠재웠다. 연쇄살인을 이어가는 사이코패스 연기로 주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공학도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가 ‘믿고 보는 명품 조연’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여정.

‘리얼’과 연기 사이에서 어느덧 정상에 오른 배우 남궁민
“최근 찍은 작품 가운데 반응이 가장 좋았어요. 제 연기를 본 분들이 하나같이 ‘무섭다’는 반응을 보여서 다행이다 싶었죠. 촬영할 때마다 연기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해야 좋을지 고민했는데 적당했던 것 같아요.”

SBS 미니시리즈 ‘냄새를 보는 소녀’(이하 냄보소)에서 해맑은 미소 뒤에 연쇄살인의 본능을 감춘 스타 셰프 권재희 역으로 열연한 배우 남궁민(37). 일류 요리를 만드는 섬세한 손길로 피해자의 팔목에 바코드 모양의 칼자국을 정교하게 새긴 뒤 인증 사진까지 찍는 여유를 보여준 그는 방영 내내 서늘한 사이코패스 연기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주연보다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를 만난 건 ‘냄보소’가 종영되고 보름이 지난 6월 5일 오후. 그사이 그는 드라마를 찍느라 미뤄뒀던 광고 촬영 등 밀린 숙제를 해치웠다. 지난해 3월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 출연을 시작으로 1년 넘게 쉼 없이 활동해온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냄보소’의 권재희 셰프보다 ‘우결’에서 가수 홍진영의 마음을 흔들던 달달한 남편 남궁민에 가까웠다.

배우 꿈 이루려 버둥댈 때 최진실 도움 받아

▼ ‘냄보소’ 권재희 셰프가 왜 사이코패스가 됐는지, 양부모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 드라마가 끝나서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어요.



저도 아쉬웠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었어요. 주인공이 따로 있는데 이야기가 권재희 쪽으로 집중되면 안 되잖아요. 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을 주로 하다 보니 이런 일을 많이 겪어요. 대신 이야기의 흐름이 급작스럽게 끊기면 안 되니까, 대본의 내용을 최대한 살려 작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대사의 뉘앙스를 바꾸곤 했죠.

▼ 어떤 결말을 기대했나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권재희가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든, 안 뉘우치든 간에 다른 피해자들처럼 자서전을 쓰고 자살하는 결말이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권재희가 자살하면 작가님이 의도한 권선징악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죽게 하는 건 맞지 않았던 거죠.

▼ ‘냄보소’에 출연한 동기가 뭔가요.

이 드라마를 연출한 백수찬 PD님이 오래전 출연했던 드라마 ‘대박가족’(2002)의 조연출이었어요. 데뷔작은 아니었지만 고정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었어요. 당시 저는 20대 중반의 신인 배우여서 백 PD님에게 혼나기 일쑤였어요. 혼나면 삐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적받은 점을 열심히 고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PD님이 그런 제게 좋은 인상을 받으셨던 모양이에요. 그때 인연으로 감독님에게 출연 제의를 받았고, 저 역시 ‘연쇄살인을 하는 요리사’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와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남녀 주인공을 맡은 (박)유천이와 (신)세경이 둘 다 열심히 연기하는 타입이라서 작품을 같이하면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 백 PD가 ‘냄보소’를 찍을 때도 혼내던가요.

‘대박가족’ 이후 13년 만에 다시 만나서인지 PD님이 저를 굉장히 신뢰해주셨어요. 그런 믿음이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어디를 가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한류 스타 박유천과 맞짱 뜬 배우로 중국 대륙에까지 이름과 얼굴을 알린 것도 이 드라마로 얻은 소득이다.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박유천, 신세경에게 좋은 자극을 받았는지 묻자 그의 입에선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둘 다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정말 좋아요. 1백 점 만점에 1백 점이에요. 여러 작품을 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유천이는 본인이 더 멋져 보여야 하는 주인공임에도 저를 많이 배려해줬어요. 상대가 그렇게 나오니 저도 조연으로서 그 친구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 중앙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던데 무슨 연유로 연기자가 됐나요.

원래 꿈이 연기자였어요. 기계공학과에 들어간 건 점수 맞춰 원서를 넣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에요. 하지만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연예계에 아무런 연줄도 없어서 오디션을 치를 때마다 낙방을 밥 먹듯 할 뿐 아니라 단역 한 자리 따내기도 어려웠어요. 프로필 사진도 광고 기획사에 직접 돌렸는데, 그 와중에 출연한 자동차 보험 CF에서 최진실 씨를 만났어요. 제 멘트는 ‘다 됐습니다’라는 한마디밖에 없었는데 매니저도 없이 혼자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최진실 씨가 매니저를 소개시켜줬어요. 그 무렵 마침 제 일을 봐주겠다는 다른 매니저를 만나 연기를 시작했고, 최진실 씨를 통해 알게 된 그 매니저 덕분에 ‘대박가족’에 출연할 수 있었죠.

▼ 배우 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이 뭔가요.

좋아하는 연기를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좋은데, 배우는 외로운 직업이에요. 데뷔 초반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을 혼자 견뎌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것도 조금씩 불편해지더라고요. 낯을 가린다기보다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마음을 빨리 열어야 상대의 단점도 보고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작품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만큼 친해지질 못해요. 이번에도 유천이, 세경이와 친해지려는 찰나 드라마가 끝나서 소주 한잔 같이 못 마셨고, 그 친구들 연락처도 몰라요. 이런 경우가 허다해요.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를 같이한 친구들과는 그나마 연락하며 지내요. 방송이 끝난 뒤 만들어진 단체 카톡방에 합류해 연예인 친구들이 좀 생겼죠.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여자가 좋아

2001년 연예계에 발을 들인 그도 이제 30대 중턱을 훌쩍 넘어섰다. 나이를 먹으니 중후해지더냐고 물으니 그가 허허 웃었다. 그 웃음 끝에 이어진 “나이를 떠나 언제부턴가 마음이 편해졌다”는 고백이 메아리처럼 귓전을 울렸다.

“어릴 때는 어떻게 하면 더 올라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을 내려놨어요. 좋은 작품은 찾아 헤맨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라 열심히 연기하다 보면 만나게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지난해 ‘우결’에 출연한 것도 제 딴에는 큰 변화였어요. 예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걸 싫어했거든요. 연기자는 연기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 그게 다 겉멋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제 독단적인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물 흐르듯 사는 여유가 생겼죠.”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우결’에서 홍진영과 가상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이들 커플이 방송에서 보여준 애정이 묻어나는 스킨십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짜 부부’임을 잊게 할 정도로 훈훈함을 안겼다. 두 사람을 보는 재미로 ‘우결’을 시청한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2월 두 사람의 하차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결’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은 이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담긴 글로 ‘도배’됐다.

‘리얼’과 연기 사이에서 어느덧 정상에 오른 배우 남궁민
▼ ‘우결’에서 가상 아내였던 홍진영 씨와는 지금도 연락하나요.

그동안 연락을 못하다 오늘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요. 최근 제가 ‘홍진영 씨와 연락 안 한다’고 말한 기사가 났는데 그 뉘앙스를 안 좋은 쪽으로 오해할까 걱정된다고 했더니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인터뷰하라’는 답이 왔어요.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는 걸 알기 때문에 이해한다’면서요.

▼ 지우고 싶은 기사가 있나요.

이번에는 제 발언이 남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돼 신경이 쓰였던 거니까 오해는 말아주세요(웃음). 원래 저에 관한 기사 내용에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 만날 욕먹으면서 연기를 배워 내성이 생겼어요. 싸우는 것이 싫어서 피한다고 할까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도 없는 일이고요.

▼ 사귀는 사람이 생기면 대중에게 알리고 ‘공개 연애’를 할 건가요.

지금은 교제하는 사람도 없고, 누구를 사귄다고 해도 ‘공개 연애’를 하고 싶진 않아요.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몰래 연애할 거예요. 연애하는 모습이 안 걸릴 수 있게 열심히 숨기려고요(웃음).

▼ 연애하고 싶은 여성상이 있나요.

저와 관심사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영화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영화를 즐겨 봐요. 특히 엽기 떡볶이를 좋아해요. ‘냄보소’에 출연하는 동안에도 다른 건 살찔까 봐 안 먹고 삼시 세끼 엽기 떡볶이만 먹은 날도 있어요(웃음). 여자의 외모도 봐요.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좋아요. 패션 감각이 떨어지는 건 괜찮지만 자기 자신을 방치하는 사람은 별로예요.

‘리얼’과 연기 사이에서 어느덧 정상에 오른 배우 남궁민
▼ 남궁민 씨도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사람’ 같아요. ‘냄보소’에서 보여준 근육질 몸매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던걸요.

허리 디스크가 생긴 지 좀 됐어요. 허리가 아파서 군 복무도 공익근무요원으로 했어요. 한 2년 동안 서울 강남의 척추병원을 다 돌아다녔는데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어요. 허리 디스크가 생기니 목에도 이상이 나타나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운동하면 디스크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통증이 차츰 사라졌어요. 한번은 앉아서 TV를 봤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았어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더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됐죠. 재활 차원에서요. 척추에 근육이 생기면 디스크를 예방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한 달 이상 운동을 안 하면 허리 디스크가 도지기 때문에 촬영 중일 때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어요.

▼ 평소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푸나요.

가벼운 스트레스는 운동하면 해소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먹는 걸로 푸는 경향이 있어요. 보통 때는 과식하지 않는데 한번 먹기 시작하면 정신 줄을 놔버려요. 일단 몸이 망가지면 정신을 못 차리다가 작품이 들어와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할 때 헬스클럽에 가죠. 그때는 몸매가 예쁜 여자를 보면 ‘와우’ 하는 게 아니라 밥 먹다가 숟가락을 놔요. 살 빼야 한다는 자극을 받아서요.

▼ 사이코패스 역할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요.

살다 보면 지구를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이 사람을 죽이는 게 정당화된다면 죽일 수 있겠다 싶은 사이코패스 역할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연기로 표현했어요. 극 중에선 못마땅한 사람을 ‘너 죽인다’ 하고 죽일 수 있었는데, 그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게 없죠. 사실 연예인이다 보니 기분이 나빠도 어디를 가든 웃으며 답해야 할 때가 많아요. 제 시간을 즐기려고 찾은 장소에서조차 남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게 이 직업의 숙명이죠. 근데 극 중 재희는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모자 쓰고 나가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덩달아 저도 스트레스 좀 풀었죠.

소년 감성 죽이고 남성적 매력 키우고파

배우의 꿈을 이룬 후 그에겐 연기하면서 느낀 점을 그때그때 기록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 도전한 사극인 MBC ‘구암 허준’을 찍으며 남긴 기록은 3백 페이지가 넘는다. 1백30부작 사극을 하며 배운 게 많다는 그는 “말투만 바꾸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얼마나 많은지, 노력하는 자세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됐다”면서 “지금도 연기가 뭔지 모르겠지만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의 연기 노트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제게 부족한 점 위주로 썼어요. 얼마 전 미드 ‘왕좌의 게임’을 보는데 마음에 꽂히는 대사가 있어서 그것도 적어뒀어요.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네 맘의 추위를 죽이고 남자가 돼라’는 말이었어요. 사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년처럼 좋은 것만 보려고 했는데 그걸 죽여야 연기가 한결 풍요로워질 것 같아요.”

그동안 ‘금쪽같은 내 새끼’ ‘내 마음이 들리니’ ‘청담동 앨리스’ 같은 화제작에 출연하며 연기 이력을 다져온 그는 ‘냄보소’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 진출의 첫발도 내딛게 됐다. 중국 영화에 캐스팅돼 6월 말 대륙으로 건너가는 것. 백수찬 PD는 이런 그를 두고 “전성기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남궁민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정점을 찍은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이름을 말했을 때 딱 떠오르는 대표작이 없거든요. 그래도 올해보다는 내년, 내년보다는 내후년에 더 잘될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요. 다음 작품에서도 권재희처럼 절제된 연기를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권재희와는 딴판인 남성미 넘치는 마초 살인마도 좋고요. 이제는 부드러운 캐릭터 말고 투박하고 남자다운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저만의 수식어도 갖고 싶어요. 식상하지 않고 제게 꼭 맞는 수식어요(웃음).”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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