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소년
입력 2015.07.10 14:30:00
남자들은 스파를 받으러 가서도 야한 생각을 한다.
섹스를 안 해도 다른 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수건을 약간 접어서 말자 어깨가 서늘했다. 그녀가 내 어깨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일하다 보면 재밌는 이야기 정말 많이 들어.” 나는 얇은 종이 팬티 한 장만 입고, 등에 수건을 걸친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터라, 그 재미있는 얘기가 어떤 건지, 자꾸 음… 섹스가 하고 싶었다. 대낮에, 평일에, 회사에서 일하다 말고, 청담동 스파에서. 섹스를 안 해도 다른 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는 가끔 스파에 가서 전신 마사지를 받는다. 가격은 15만원 정도니까 무지 비싸다. 그걸 받는다고 어깨나 허리의 통증이 극적으로 낫는 건 아닌데, 적어도 그 90분 동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는 살이 그리운 사람이다. 그녀가 팔뚝으로 내 어깨뼈를 밀면서 눌렀다. 아, 내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그녀는 안 예쁘고 안 날씬하지만, 안 못 생겼고, 안 뚱뚱하다. 그래서 정말 그녀가 나를 유혹한다면 한 번쯤 눈 딱 감고 섹스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6번 정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스파를 받다가 담당 관리사와 섹스를 하는 건 ‘야동’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섹스를 안 해도, 나는 다른 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아, 이런 거 적으면 완전 변태 인증하는 거지…. 아무튼 관리사가 손바닥으로 오일이 듬뿍 묻은 내 등을 쓰다듬을 때 몸속에서 피로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로 잠이 들어와 쌓인다. 섹스의 흥분은 나를 발기시키지만, 스파의 흥분은 나를 잠들게 한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아주 깊은 섹스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건 아주 기분 좋게도, 술을 마신 후 2차를 나가서 서둘러 섹스할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황홀하다.
“그래서 누나 재미있는 얘기가 뭔데?” 나는 그녀를 누나라고 부른다. 그녀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골 여자 고객이 있는데, 남자 친구랑 섹스한 얘기를 해주더라고.”
“헐, 그 여자 놀랍다. 벗고 누워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나 보네.”
“아무래도 긴장이 풀리니까, 근데 그 고객이 뭐라냐면, 자기랑 남자 친구는 만난 지 너무 오래돼서 섹스를 해도 별로 흥분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방법을 찾았는데….”
누나는 말을 후다닥 할 것같이 굴면서도 아주 뜸을 들였다. 약간, 이런 표현은 그런데, 남자가 셔츠의 단추를 두 개 끄르면 굳이 하나를 채우는 여자 같았다. 벗을 것 같으면서 안 벗는 여자.
“그래서, 그래서, 누나?”
“별로 새로운 건 아니야. 역할극을 한대. 옷까지 입고. 굉장히 치밀하고 진지하게.”
“어떻게 하는 게 치밀한 거야?”
방송에서 종종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는 들은 게 없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대본을 썼대. 상황을 만든 거지. 예를 들어서 과외 선생님과 제자라고 하면, 제자가 숙제를 안 해 와서, 선생님한테 혼나는 상황인 거야.”
“너 왜 숙제 안 해 왔어? 손바닥 대,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제자가 손바닥 말고 엉덩이 때려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가? 하하하하. 정말 흥분될 것 같아, 누나.”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구체적으로 상황을 정하는 건데, 이제 거기에서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하는 거지.”
“누나, 나,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도 스파 받는 남자랑 스파 해주는 여자 콘셉트로 한번 해볼까? 아, 아, 아파 살살해줘.”
누나가 내 뒷목을 엄지손가락으로 사정없이 눌렀다.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눌렀다. 너무 야한 말을 했나? 하지만 별로 안 싫어하는 것 같았다.
“시원해.”
“그런데 가끔 서로 화를 낸대. 특히 요즘.”
“왜?”
“연기에 집중을 안 해서. 막 싸운대. ‘오빠, 여기서 어떻게 애드리브 할지 미리 생각을 해 왔어야 할 거 아냐?’ ‘오빠는 왜 만날 준비를 안 해?’라고 자기가 막 화를 낸대. 그게 시간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자기도 어이없는데, 그 순간에는 진지하다는 거야. 그리고 남자친구도 그걸 이해한대. 본인도 똑같은 이유로 막 화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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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분되는 섹스 상대는 누구?
조금 웃겼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상황극이라는 걸 만든다는 게 좀 변태 같아 보이긴 하지만, 뭐 나름대로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 같기도 하다. 굳이 그걸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인간은 자극을 좇는 동물이라서, 결국 더 강한 자극을 좇게 된다고, 부정적인 분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섹스라는 게 자극으로 시작해서 자극으로 끝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더 강한 자극을 끊임없이 좇기에는, 남자는 서른다섯 살만 지나도 체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내가 저 상황극에서 정말 마음에 든 건, 서로 화를 낸다는 점이다. 섹스를 하면서 화를 내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사과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상황극이기 때문에, 그리고 역할에 관해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인가를 두고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엄청 행복한 일이다. 굳이 내가 말을 안 해도 다 아시겠지만. 대화는 어찌 됐건 개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섹스를 하면서 화를 낸다는 거, 그래서 엄청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상황극을 만들어서 섹스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해보고 싶다. 그 전에 애인이 먼저 생겨야겠지만.
애인이 생기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야 가능하겠지? 연애 초반에 저렇게 하자고 했다가는 변태처럼 보일 테니까. 내가 변태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납득시킨 이후에 시도해봐야 할 텐데, 여자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까? 대부분 여자들은 저런 거 싫어하지 않나? 아닌가? 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변태가 맞다.
“그런데 별의별 상황을 다 만들어봤을 거 아냐. 택배 기사랑도 섹스해보고, 옆집 남자랑도 섹스해보고, 심지어 경비 아저씨랑도 했고, 세탁소 아저씨하고도 했대. 그런데 누구랑 했을 때가 제일 좋았는지 알아?”
아, 당연히 모르지. 갑자기 너무 궁금했다. 누굴까? 누구지?
“생수통 배달하러 온 아저씨.”
“누나, 그럼 정말 남자가 어깨에 생수통 들고 초인종 누르는 거야?”
“어, 나도 물어봤는데, 정말 작업복 입고 생수통 들고 집에 들어와서….”
히힛. 왜 생수통 배달하러 온 아저씨랑 섹스하는 게 좋았는지 모르지만 알 것 같았다. 나는 누워서 뭉친 근육을 푸는 마사지나 받고 있는데, 이럴 게 아니라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덤벨을 들어 올려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5초쯤 했다.
“누나, 섹스 안 하고 싶어?” 내가 아무렇지 않게,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자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는 겨우 여섯 번 본 사이다. 하지만 늘 작은 방에 단둘이 있었다. 나는 농담하듯이 말했다. “걱정 마, 누나. 아직 나, 퇴근 시간 안 됐어. 사무실 들어가야지.” 다행히 누나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고소도 안 했다. 이거 그린라이트? 이 글 다 쓰고 오랜만에 스파나 받으러 갈까?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 일러스트 · 손혜승
■ 디자인 · 유내경
여성동아 2015년 7월 6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