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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쿠거’ 주연 박해미 · 김선경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를 수 있게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홍태식, 쇼플레이 제공

입력 2015.06.16 09:28:00

대한민국 뮤지컬계를 이끌어온 두 여걸이 여성 관객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대형 무대를 뒤로하고 소극장 무대에 서고 있는 것. 뮤지컬 ‘쿠거’의 주연 박해미  김선경에게 험난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중년 여성들의 자아 찾기 스토리를 들었다.
뮤지컬 ‘쿠거’ 주연 박해미 · 김선경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7월 26일까지) 뮤지컬 ‘쿠거’는 요즘 유행하는 연상연하 커플의 그렇고 그런 ‘밀당’ 이야기가 아니다. 무력증에 빠져 있던 중년 여성들의 거친 욕망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이야기의 주 무대는 쿠거(Cougar, 원래는 먹이를 찾아 늦은 밤까지 어슬렁대는 고양이과 동물을 가리키지만, 최근에는 서구에서 연하남을 좋아하는 돈 많은 중년 여성 혹은 연하남과 연애하거나 결혼한 여성들을 비아냥대는 말로 쓰인다) 바, 즉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으로 연하남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상녀들이 모이는 술집이다. 그곳에서 만난 세 명의 중년 여성 릴리, 클래리티, 메리마리는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거친 욕망을 발견하고, 매력적인 연하남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녀들은 중년 여성들에게 덧씌워진 세상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스스로를 가둬놓았던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쿠거’는 이 중년의 여배우들이 또래 여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었던 내면의 이야기다. 박해미(51)와 김선경(47)은 모두 릴리 역을 맡고 있다. 릴리는 이혼 후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여자로 무대 위에서 진한 키스신도 선보인다.

▼ 뮤지컬 ‘쿠거’의 국내 초연에 김선경 씨의 공이 컸다고 들었다. 특별히 욕심을 낸 이유가 있나.

김선경(이하 선경) ‘쿠거’는 작가 도나 무어가 극작과 작곡을 맡아 8년에 걸쳐 완성한 밀도 있는 작품이다. 지난 2012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이후 2년 동안 3백 회 이상 공연을 매진시킬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작품을 국내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은 2012년 당시부터 있었는데 실제로 공연이 성사되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연출자를 섭외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커다란 줄기를 잡는 것까지 도맡아했다. 그만큼 욕심이 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배우들을 비롯한 중년 여성들 자신의 이야기다. 야한 대사나 코믹한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달하기 위한 요소일 뿐, 그 안에는 그보다 훨씬 크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중년 여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해미(이하 해미) 이 공연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우리 중견 여배우들을 위해서다. 과거에 비해 국내 뮤지컬 시장이 많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대는 편협하고 나이 든 여배우들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실력 있는 중견 여배우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거다. 선배로서, 숨겨진 옥석 같은 여배우들에게 설 자리를 마련해주고 이들의 진가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나, 박해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여자들에게 늘 자신을 숨기고 순종하기만 바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솔직하고 노골적이다.

뮤지컬 ‘쿠거’ 주연 박해미 · 김선경

박해미·김선경은 뮤지컬 ‘쿠거’를 통해 사랑에 있어 ‘편견의 틀’에 갇혀 있는 중년 여성들의 현실을 꼬집고 “당당하게 사랑하라”고 말한다.

▼ 언제나 에너지 넘치고 당당한 이미지의 박해미 씨와 달리, 릴리는 소심하고 지고지순한 캐릭터란 생각이 든다.



해미 처음 섭외를 받고 가장 좋았던 부분이 극의 첫 장면, 릴리가 도로시 분장을 하고 튀어나와서 막 떠들어대는 거였다. 그런데 각색 과정에서 그 장면이 삭제되고 말았다. 원작에서의 릴리는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어린이집에서 이벤트걸로 일하는 여자였는데, ‘이벤트걸’이라는 직업이 한국 정서에는 다소 맞지 않아 직업을 요리사로 바꿨기 때문이다. 사실 이벤트걸 장면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릴리 역을 하겠다고 한 거였는데, 개인적으론 많이 실망스러웠다. 한국형 릴리는 확실히 원작보다 더 청순가련형이긴 하다. 어릴 땐 이런 지고지순한 역할도 많이 해봤는데, 새삼 도전 아닌 도전을 하게 된 것 같다.

▼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하나.

해미 극 중 대사에도 나오는데, 자기 욕망과 사랑에 충실한 여성들에게는 ‘쿠거’라는 조롱이 따라붙지만 반대로 어린 여성들을 선호하거나 그들과 사귀는 남자를 뜻하는 말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남자다. 미국과 한국,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여성들에게 가정에 충실한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것만은 비슷하다. 중년의 여성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인생에서 자기 자신은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에 여성 관객들이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선경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밝히면 ‘대가 센 여자’ 취급을 받는다. 자기표현을 하면 가볍고 신중하지 못한 몹쓸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그래서 화병이 생기는 거다. 화병이란 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이라는데, 그 이유도 자기 속에 있는 얘길 할 수 없어서 생기는 거 아닌가. 특히 매 맞는 여성들의 경우 가정을 뿌리치고 싶어도 혼자 살아갈 용기가 없어 참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여성들에게 ‘쿠거’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도 된다, 그렇게 해보라는 일종의 호소문이다.

▼ 소극장에서의 연기가 조금은 낯설 것도 같은데.

선경 소극장 공연만이 가지는 장점이 있다. 소극장 무대에 서면 배우들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가 세세하게 드러나서 관객들과 마치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으로 공연에 임할 수 있다. 관객들의 반응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은데, 나 또한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같은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사실 이런 농익은 연기는 젊은 배우들이 하기에 무리가 있다. 물론 요즘 뮤지컬 무대에 자주 오르는 유명 아이돌 출신 배우들도 장점은 있다. 하지만 사랑에는 달콤하고 아리따운 로맨스만 존재하는 게 아니지 않나. 40대가 넘어서면 사랑에는 아프고,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감정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이제야 인생을 조금 알게 된 중견배우들의 몫인 거 같다.

해미 나는 결벽증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키스신이 있어도 굳이 무대 위에서 입을 맞추거나 하지 않았다(웃음). 하지만 이번엔 실제로 무대 위에서 키스를 한다. 소극장 무대다 보니 내가 가짜로 흉내를 내면 관객들 눈에 그대로 다 보일뿐더러 한창 몰입해 있던 감정선을 확 깨버리게 된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남자 배우와 입을 맞춘 건 처음인데 나쁘지 않았다. 하하. 몰입한 만큼 편안하게 연기하고 있다.

뮤지컬 ‘쿠거’ 주연 박해미 · 김선경

박해미 김선경이 더블 캐스팅된 릴리는 지고지순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이혼을 선택,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인물이다.

▼ 남편이 질투를 하진 않나.

해미 물론 한다. 며칠 전에도 내가 학교에서 제자들의 연기수업을 돕느라 밤 12시까지 연락이 되지 않은 적이 있는데, 약이 오른 남편이 문자를 10통이나 남겼더라. 마지막 문자가 가관이었다. ‘그래, 니가 하는 건 로맨스고 내가 하는 건 불륜이냐!’. 혼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 거다. 그런데 그런 문자를 받을 때면 에너지가 솟는다. 서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낸다는 증거이지 않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적으로는 4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그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성적으로도 만족스럽고 뜨겁다.(남편 황민 씨가 아홉 살 연하다.) 하하. 사실 남편 역시 일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객관적인 사람이다. 예전에 ‘맘마미아’ 공연을 보고 나서도 왜 실제로 입을 맞추지 않나, 어색했다고 지적을 했을 정도다.

연기로 인한 카타르시스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어

뮤지컬 ‘쿠거’ 주연 박해미 · 김선경
▼ 두 사람 모두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그럼에도 뮤지컬 무대를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경 무대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어우러짐이 좋다. 모든 일에는 겉으로 보이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은 것이기도 하고. 드라마는 각자가 자기 캐릭터를 연구하는 각개전투식이지만 공연은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 과정이 너무 좋다. 드라마와 뮤지컬은 몰입도 면에서도 굉장한 차이가 있다. 드라마의 경우 1번 신을 찍었다가 다음에 바로 20번 신으로 건너뛰어 찍기도 하고 어떤 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순간적인 집중력은 발휘되지만 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절대 무대 공연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해미 드라마는 한마디로 연기의 신들이 모인 곳이다. 결과물만 본 사람들은 무대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연기를 더 잘한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대 공연은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배우가 인물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건 차라리 쉽다. 하지만 방송은 방금 전까지 깔깔거리면서 웃다가도 슛 들어가면 바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식이다. 내가 함께 작품을 해본 배우 중에는 김보연 언니가 최고인 거 같다. 언니를 보면 가끔은 무서울 정도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획 바뀌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떨 땐 드라마가 공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기의 신들을 모아놓고 착착 찍어내는 느낌?(웃음)

▼ 최근 들어 새로 시작한 일이 있다면 뭔가.

해미 아직 홍보가 잘되진 않았지만 올해 10월, 경북 문경에서 세계군인올림픽이 열린다. 지난해부터 특별고문위원단직을 맡게 돼 조금 더 바빠졌다. 동아방송대에서 전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고, 해미뮤지컬컴퍼니에서 청소년 성장 뮤지컬 같은 것들도 만들고 있다. 쉰살이 넘고 보니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내 얼굴이고 내 이름이란 걸 알겠더라. 그래서 상업적인 것보다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하려 애쓴다.

선경 신앙생활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1년에 두 번 정도 해외 봉사활동도 나가고 있다. 주로 에티오피아, 인도, 라오스 같은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데, 그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큰 행복이다. 군부대 위문 공연 같은 것도 다닌다. 소녀시대만 인기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모 시대’로 의외로 꽤 인기가 좋다. 하하.

뮤지컬 ‘쿠거’ 주연 박해미 · 김선경
▼ 체력적으로 버겁지는 않나.

선경 사실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다. 작품을 준비할 때도 시장조사부터 연출자며 배우들을 만나러 다니고, 관계자들 섭외하고 회의하고 연습하고…. 정말 시간이 없다. 누우면 쓰러져서 바로 파김치가 되곤 한다. 다른 연예인들 인터뷰한 걸 보면 틈틈이 운동도 하고, 피부 관리도 한다는데 나는 다 거짓말 같다. 그럴 시간이 정말 있기나 한 걸까. 나는 운동 대신 2시간 무대에서 흠뻑 땀을 흘리는 게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

해미 체력 관리 같은 건 거의 안 했는데 50대가 되고 나니 확실히 체력이 떨어진 게 표시가 났다. 그래서 작년부터 러닝머신 위에서 뛴다. 살도 좀 빼야 할 거 같아서 다이어트도 하고 있다. TV를 봤더니 살이 찐 게 표시가 확 나더라. 나이 들수록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선경 ‘쿠거’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중년 여배우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게 목표다. 최근 KBS에서 새로 시작한 웹툰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에도 출연하게 됐다. 흡혈귀 역할인데, 나를 믿고 캐릭터를 맡겨주신 감독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웃음).

해미 MBC 일일드라마 ‘딱 너 같은 딸’에서 허당기 있는 독한 시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초반인 만큼 배역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앞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예전에는 그냥 허투루 지나갔던 것들도 하나하나 새삼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연습실에서도 괜한 잔소리꾼이 돼가는 중이다. 굴러다니는 종이컵, 마시다 만 물병 이런 것들을 보면 다 아까워서 그냥 넘기지 못한다. 후배들에게 누구 거냐, 왜 함부로 버렸냐, 남은 물은 양치할 때도 쓸 수 있다 등 잔소리를 해댄다. 그런 행동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세상, 작은 것부터 챙기고 배려하는 것들을 해보려 한다. 이제야 조금 철이 드는 것 같다(웃음).

디자인 · 이지은

헤어 · 동휘(애브뉴준오) 써니(S휴)

메이크업 · 하재형(애브뉴준오) 최영옥(S휴)

여성동아 2015년 6월 6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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